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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성희롱과 범죄 그리고 염색체

2018.03.27 03:41

라만섭 조회 수:7

성희롱과 범죄 그리고 염색체

 

과거에 성희롱을 당한 적이 있다는 피해 여성들의 공개 발언이 요즘 들어 국내외에서(특히 미국과 한국)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현상을 보면서 놀라움과 실망을 함께 느끼게 된다. 사회적으로 잘 알려진 유명인사들의 이름이 가해자로 거론되고 있는 현실은 성희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그만큼 달라진 것을 말해준다. 음탕한 마음을 가지고 여성을 쳐다보기만 해도 간음한 것으로 간주하는 종교적 기준에 비추어 볼 때, 성희롱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은, 남녀를 불문하고, 드물 것으로 보인다.

20세기는 과학뿐 아니라 인간의 의식면에도 혁명적인 결과를 몰고 온 대변혁의 시기이다. 다른 나라에 비해 성희롱 문제에 엄격하기로 알려진 미국에서조차 20세기 후반에 들어서야 이 문제가 세간의 주목을 끌게 된 것이다. 직장에서 상사로 부터 성 희롱을 당했다고 공개적으로 주장하는(Coming Out) 용감한 여성 피해자가, 회사를 상대로 막대한 배상금을 요구하면서 법적소송을 제기하는 사례가 생기기 시작했다. 피해자를 보호 한다는 본래의 취지는 무색해진 채, 소송을 당한 회사는 피해자 측과 합의에 도달함으로써 더 이상의 피해를 방지하고자 민감하게 반응하는 실정이다.

 

급변하는 세태에 4차 산업 혁명이니 뭐니 하며 법석이지만 인간의 생물학적 기본욕구는 그대로인 것 같다. 그중에서도 특히 성적욕구는 대표적이다. 그 같은 연장선상에서 볼 때, 남성(수컷)이 여성(암컷)에게 접근하고자 하는 본능적인 욕구가 Y염색체의 유전 인자에 남아 있는 한, 성 문제의 근절은 쉽게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된다. 법적 대응과 같은 근시안적인 방법은, 개별적인 대증(對症)요법이 될지는 몰라도, 근본적인 원인 치료 방법으로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문제의 핵심은 생태적인 내면에 자리 잡고 있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남녀 모두를 대상으로, 장기 계몽교육(성범죄를 주제로 한)을 제도화함으로써 효과를 기대해 보는 것이 보다 현실적이지 않을는지. 남녀평등이라는 시대조류에 적응해 가는데 필요한 의식수준을 함양하는데 목적이 있다고 하겠다.

 

요즈음은 온갖 일에 과민 반응하는 시대이다. 상대에게 비교적 관대했던 관행은 사라지고 그자리에 불신과 경계심이 들어선 느낌이다. 상대의 기분을 살피고 거부 반응 여부를 알아 차려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법적 송사(인종, 종교, 성 차별 등등)에 휘말릴 수도 있는 세태이다. 이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가 그만큼 각박하고 좁아졌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성적인 내용을 함축한 정제되지 않은(unfiltered) 언사를 사용함으로써 여성의 수치심을 자극한다거나, 원치 않는 신체 접촉을 일방적으로 시도한다거나 하는 남성들의 몰지각한 태도에 변화가 필요한 때이다. 무릇 말과 행동에는 책임이 따라야 할 것이다. 가해자의 입장에서는 별 생각 없는 행동이, 피해자에게는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trauma)를 안겨주는 결과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할 일이다. 의도적인 범죄 행위와, 악의 없는 단순한 성희롱은 질적으로 다르다고 생각 한다.

 

얼마 전 로이터 통신에 의하면, 지난 110일자 르몽드지에 현재 미국 내에서 거세게 일고 있는 미투운동을 반박하는 칼럼이 실렸다고 한다. 프랑스의 유명한 여배우 카트린느 드뇌브(Catherine Deneuve, 1960년대 쉘부르의 우산’))를 포함한 백 명의 프랑스 여성들이 할리우드에서 일고 있는 미투 운동은 남성증오심에서 비롯된 것으로, 여성을 돕기 보다는 남성을 도살장으로 모는 짓이라고 주장하는 내용이다. 그 요지는 다음과 같다. ‘강간은 범죄이다. 그러나 남자들이 끈질기고 서툰 솜씨로 여자를 유혹하는 행위는 범죄가 아니다.’ ‘우리는 남성이 여성을 유혹(pester)하는 권리를 옹호하며, 이는 성 자유를 위해 필수적인(vital) 것이라고 본다.’ 아이코닉한 여배우인 브리지튼 바르도(Brigitte Bardot) 또한 미투 캠페인은 위선이며 웃음꺼리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비난하고 나섰다. 대체로 헐리우드의 미투운동에 대한 프랑스 여권 운동가들의 반응은 매우 냉소적이다. 여성 작가 겸 언론인인 아그네스 포이리에(Agnes Poirier)자기 의견에 찬성하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페미니즘을 나는 인정하지 못하겠다. 미투는 남성 권력에 대항하기보다 남성 혐오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한다. 비곹(Bigot)이라는 이름의 한 여성 언론인은 프랑스는 여성을 사랑하는 남성이 있는 나라이다. 성적 유혹은 프랑스 국민의 정체성의 일면이다. ‘프랑스의 연인’ ‘프랑스식 키스가 정치성 때문에 위협받고 있다.’ 라고 하면서 미국식 훼니즘을 비웃는다. 성희롱도, 이처럼 보는 시각이나 문화적 전통에 따라서 다르게 비쳐지는 모양이다. 마치 미투(MeToo)를 다르게 표현하면 유투(YouToo)가 될 수 있는 것처럼.

 

성희롱에 관련하여 남성을 편의상 크게 두 부류로 나누어 본다. 하나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성 범죄자형, 이를테면 상습적인 강간범(Rapist), 근친 상간범(Incest), 미성년자를 상대로 한 성범죄자(Pedophile)등과 같은 형사범들이 여기에 속하겠다. 최근 미국 법원은 전 올림픽 체조대표팀 주치의 래리 나싸르(Larry Nassar)에게 175(2100개월)의 징역형을 내리면서 다시는 감옥 밖으로 걸어 나갈 자격이 없다고 선고 하였다. 그는 30여 년 동안에 걸쳐 160여명에 이르는 어린 여자선수들을 성추행해온 파렴치한 치한 이다. 이 같은 성범죄자들은 치유 가능성이 거의 보이지 않는 특수한 부류로서, 흔히 화학적 거세여부의 논란이 되는 양심 부재 범들이기도 하다. 나머지는, 기존의 남성 중심 문화에서 자란 대부분의 보통 남자들이다. 이들은 방아쇠를 당길 때는 마치 애인의 젖가슴을 만지듯이’(미군 신병훈련 교재에서 따옴)와 같은 세속적 비유가 낯설게 들리지 않는 부류로서, 이글의 주된 대상은 대체로 이 그릅에 속하는 남성들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성폭력 피해자에는 여성뿐 아니라 남성도 포함되는 모양이다. 믿거나 말거나 2016년에 경찰에 신고된 성폭력 피해 남성의 숫자가 무려 12천명에 달하는 것으로 영국의 더타임즈는 보도하고 있으니 말이다. 설문 조사에 의하면 대부분의 남성 피해자는 경찰에 신고하지 않는 것으로 추정 된다.

 

여자의 치마 길이와 연설문은 짧을수록 좋다와 같은 은유적인 방담(放談)을 어떤 남자가 대중을 향해 했다고 가정 하자. 이때 대다수의 여성들은 이 말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여성비하를 일반화하고 수용하는 발상은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무고한 남자들일지라도 성희롱의 본질을 본능적으로 익히는데 있어, 일정한 한계를 느낀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원죄는 그들이 타고난 염색체에서 찾아야 하는 것인가.

 

: 여자가 아닌 나로서는, 성희롱 피해 여성의 입장을 속속 들이 헤아리지 못할 수도 있겠다 는 점을 인정 하면서 이글을 쓴다. 그래서 좀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다가서는 것이 사실이 다. 만약 나의 몽매함을 지적해주는 여성들의 질책이 있다면, 나는 이를 기꺼이 수용할 것이다. 201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