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위 일사집을 짓고

2018.05.09 22:42

박봉진 조회 수: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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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위 일산(日傘)집을 짓고/ 박봉진

    아홉 칸 사다리를 차곡차곡 딛고 오른다. 두 손은 침팬지처럼 위 칸을 교대로 잡아가며 오른다. ‘나무 위 일산 집’에 오를락 거릴 땐 그리스 마태오라 절벽 집을 생각한다. 거기서처럼 계단 계단을 침착히 오르내려야하는 게 수칙(守則)이기에.
   오래전, 하던 일을 정리 후, 샀던 집엔 몇 거루 고목 유실수가 있었다. 그중의 하나, 무화과나무 밑둥치엔 톱자국 상흔이 역력했다. 그전집 주인이 고심했을 흔적이다. 나도 베어낼까 하다 놔뒀던 그 나무. 지금은 바깥 별실인양 들락거린다.
   그 무화과나무 둥치는 내 몸통 사이즈다. 키는 단층집 지붕높이니 둘레가 만만찮다. 펴는 사다리에 올라 열매를 땄다. 한여름 푹푹 찌는 날씨에 옷이 흠뻑 젖고 숨이 차다. 그런데도 우듬지 높이에는 손이 닿지 않는다. 모르면 용감하다던가? 러닝샤스에 반바지차림으로 재도전이다. 영 품세가 마뜩찮다. 전신이 땀에 젖고 옷은 몸에 찰싹 달라붙는다. 껄끄러운 잎은 내 맨살을 긁고, 어쩌다 나뭇가지와 잎 접점을 스치면 허연 진액을 흘려낸다. 내 어깨, 팔뚝은 울긋불긋 발진(發振)에다 가려운 물집까지. 초전 완패다.
   어설픈 구애접근에 거들떠보지 않겠단 앙탈이 매섭다. 여태 무화과나무에 얼마만큼 관심을 쏟아왔던가에 대한 내 실점 때문일 것을. 침실과 서제 다음으로 자주 머무는 장소가 거기이건만. 나무와 사람간의 공생(共生)은 서로의 유익(有益)을 지켜주는 거다. 그 묵계 안에서 서로에게 길들어져야 하는데. 무화과나무는 천방지축 뒤헝큰 가지에다 넓적하고 껄끄러운 잎을 포개 햇볕을 가린다. 옆 과목의 일광 권까지 차지하려는 몸짓처럼.
   그러면서도 제 꽃은 여느 꽃처럼 바깥에 피우지 않는다. 제안으로만 피워 열매를 익힌다. 무화과나무 수형개조(樹形改造) 안(案)이 급부상 했다. 그건 가릴 레오의 지동설(地動說)만큼이나 혁명적이다. ‘역발상으로 살아보기’ 구상의 독전(督戰)이었다. 그 일은 단계별로 차근차근 해나갈 거다. 혼자할 일이지만 내가 즐겨하는 일이기로 완성해내리라.
   나무 모양새를 일산(日傘)형태로 만드는 일이다. 컬만큼 다 큰 나무라서 대수술은 불가피하다. 종형무진 톱질로 나무둥치 상부는 위통 벗은 U자 형상이 됐다. 여섯 중간 중간 가지는 전략적으로 남겼다. 그랬어도 썰렁하다. 그 가지마다에서 돋아날 새잎들이 무성해지면, 작열하는 뙤약볕을 차단해 줄 터이지만.
   ‘나무 위 일산 집’ 짓기의 백미(白眉)는 초미니 ‘로마 원형극장’을 본뜨는 거다. 평평한 밑바닥과 오목한 외곽둘레 계단 위에 수평바닥 깔기다. 그게 이번 일의 알파이고 오메가다. 그런데 탑신처럼 쭉 뻗어 오른 나무 둥치에서 문어발처럼 팔방으로 도장(徒長)한 주지(主枝)들 모양새가 내 발목을 잡는다. 울퉁불퉁 제멋대로 돌출이 난감하다. 언제 내가 목수는커녕 카우보이라도 해봤던가? 이리 뛰고 저리 날뛰는 야생마 길들이기만큼이나 어렵겠다. 눈을 감았다. 진퇴양단상황에서 스친 환청(幻聽). “궁하면 통한다.” 소년 다윗의 명승부 재현일까.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배포가 내게도 남아있음이 놀랍다.
   먼저 할일은 집터 땅바닥 고르기 같은 거다. 팔방으로 뻗어나간 주지 중에서 높은 주지 기준으로 수평 밑바닥 깔기다. 땅은 높은 데를 깎고, 나무위에선 낮은 데를 채우는 공법이다. 내 인성수평(人性水平)유지와 다름 아니겠다. 나무 주지 위엔 평면바닥을 만들고, 둘레끝 쪽 삼단 높이마다엔 바닥 깔기 일이다. 길고, 짧고, 두께도 다른 목재를 살아있는 나무 위에 올렸다. 이리 재고 저리 맞추며 시도 때도 없이 뚝딱거렸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실감나는 날. 다목적을 염두에 뒀던 실상도 드러났다. 그때는 만추의 불청객 ‘산타아나 열풍’이 몰려와 남가주는 찜통이었다. 햇볕을 가려주고 통풍이 시원한 ‘나무 위 일산 집’이 손짓을 한다. 적기적소 우대다. 스파이드 맨이 따로 없다. 단숨에 사다리를 넘었다. 둘레 쪽 계단에 앉아 책을 폈다. 누워봤다. 일어섰다. 팔을 쭉 펴니 자색 열매가 손안에 부둑하다. 너 댓 친구들과 둘러앉은 담소도 기대된다.
   그래 우리네 인생사란 한 판 널뛰기라던데. 오르막 내리막 애환(哀歡)이 어찌 없겠는가? 내가 자청해 끌어드린 일이지만 우리 집 무화과나무는 대수술을 받았다. 나도 좀은-. 하던 일이 아무리 힘들어도 작심한 것엔 끝을 내고 마는 내 습성이 어깨 회전근육 몇 가락 파열을 불렀다. 과유불급(過猶不及) 실습의 산 깨우침일 터다.
   우리 집 무화과나무도 이젠 ‘아낌없이 주는 나무’ 그 속까지 다 육화(肉化)했음을 알겠다. 인연(因緣)은 어떤 게기 이였던 소중하지 않는 것은 없다. 간혹 삶의 고비가 버거울 땐 ‘나무 위 일산 집’을 생각하자. 하긴 거기도 봄, 여름, 가을까지가 제철이다. 우리네 한 시절도 불고 가버릴 바람일 거니. 심금(心琴)에 남을 한 자락 얘기로 나눠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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