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 가족1.jpg



- 얘들아! 세상을 헤쳐 가려면 헤엄을 잘 쳐야 한단다.
- 네, 엄마!
- 다행히 호수 물결은 높지 않지만, 바람이 불면 그것도 알 수 없단다. 
- 그땐 어떻게 해야 되나요?
- 바람 불고 물결 거세지면, 헤엄을 치지 말고 잠시 피해 있으렴.
- 네, 엄마!
- 그리고 얘들아!
- 혹 바람 불지 않는 날, 물결 잠잠해도 조심해야 해.
- 왜요?
- 으응, 그건 말이야. 호수는 깊이가 있기 때문이지. 높이도 겁나지만, 깊이도 겁나는 거란다.
- 네, 엄마!
- 그래, 착하기도 하지. 하지만, 얘들아! 세상이란 늘 아름다운 그림만 있는 게 아니란다. 
- 그건 또 무슨 말이죠?
- 으응, 그건 이런 거란다. 사람들은 아마도 우리가 헤엄쳐 가는 모습을 보며 아름다운 풍경이라 생각할 거야.  하지만, 우린 지금 힘겹게 헤엄쳐 가고 있잖니?
- 네, 그래요!
- 세상은 겉으로 보는 것과 실지로 살아가는 것과는 참 많이 다르단다. 
- 네, 엄마!
- 그래, 이제 거의 다 건너 왔나 보다. 하지만, 다 온 건 아니란다. 마지막까지 힘차게 저어야 해. 
- 네, 엄마!
- 그래. 과정도 중요하지만, 잘 끝맺는 것도 중요하단다. 
- 네, 엄마!
- 자, 이제 다 왔다! 돌아 보렴! 멀리도 헤엄쳐 왔지?
- 와아!
- 너희들이 참 자랑스럽구나!
- 고마워요. 엄마 때문에 여기까지 힘들지 않고 올 수 있었어요. 
- 그래. 오늘 내가 말을 좀 많이 했구나. 사실, 얼마 전에 어느 산책 나온 두 사람 이야기를 들었어. 
- 무슨 말을요?
- 으응. 엄마는 아이들에게  말을 많이 해 줘야 한다더구나. 엄마는 아이들의 텍스트 북이래.. 
- 텍스트 북이 뭐지요? 
- 글쎄, 그건 나도 잘 모르지. 뭐, 듣고 읽고 배우는 책이라나? 자기들이 쓰는 책이 있나 봐. 우린 자연이 다 책이지, 안 그러냐?
- 네, 엄마!  좋은 말씀, 고마워요. 
- 고맙긴! 너희들이 잘 크는 게 내 행복이지! 
- 엄마가 있어서 정말 행복해요. 
- 그래, 그 말도 참 듣기 좋구나!  하지만, 얘들아! 지금은 "네, 네"하며 스폰지처럼 빨아 들이지만, 언젠가는 "아, 그거 아니에요!" 하고 덤빌 날도 올 거야. 
- 에이, 우린 그러지 않을 거에요!
- 아냐, 원하지 않아도 그런 날은 언젠가 온단다.
- 정말요?
- 그래. 하지만, 괜찮아! 난 다 이해할 수 있단다. 내가 우리 엄마한테 그랬거든? 하하.  자, 이제 가서 쉬어라. 꽃구경도 하고... 나도 좀 피곤하구나.
- 네, 엄마!
- 그래, 훗날, 너희들이 커서 혼자 호수를 건널 때도 내 말을 명심하거라. 
- 네, 엄마! 
 
나병춘 시인이 폐이스 북에 올린 오리 가족 사진을 보고 이런 상상을 해 보았다. 제목은 <엄마와 아기 오리>라고 정했다. 실상, 상상을 할 땐 사실성이 중요한 게 아니다. 암놈인지 숫놈인지, 아빤지 엄만지, 제 애긴지 아닌지, 오리 종류는 무엇이며 이름은 무엇인지 굳이 중요하지 않다. 그리스 신화나 로마 신화가 사실적인 고증을 거쳤기에 고전이 된 건 아니지 않는가. 일단, 가정해 보는 거다. 그러곤, 상상의 나래를 달고 한 번 날아가 보는 거다. 시공을 넘나들며 플래시 백을 해도 상관 없다. 내 좋아서 하는 상상. 누가 참견할 수 있으랴. 안 들리는 말도 들을 수 있게 하는 게 상상력이다. 보이는 것에서 보이지 않는 것까지 보여주는 것도 상상력이다. <엄마와 아기 오리>. 엄마는 분명히 할 말이 많을 거다. 왜, 엄마니까. 아기 오리들은 분명 듣고 싶은 게 많으리라. 왜, 모든 게 신기하고 궁금한 게 많은 아기 오리니까.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오리 가족 사진을 오래도록 드려다 본다. 어느 새 내 마음도 고운 꽃물이 들기 시작한다. 연분홍 파스텔톤 사랑이 담채화 여린 빛깔을 띠고 내 마음에 스며 든다. 꽃봉오리 열리듯 서서히 마음 문이 열리기 시작한다. 물살 가르는 소리, 호면을 스치는 미세한 바람 소리까지 들린다. 오리 가족의 대화가 더 가까이 들려 온다. 마음의 평화가 잔물결 친다. 관심을 갖는다는 건 이웃이 된다는 것. 동화 같은 그들의 따순 대화를 들으며 그대로 받아 적는다. 마음으로 듣는 대화. 속기할 필요도 없고, 달팽이관 크게 열 필요도 없다. 묘한 일이다. 마음을 열면 안 들리던 것까지 다 들린다. 영감이 통한다면, 저들도 내 마음을 이미 훔쳐 보았으리라. "엄마들은 얘기를 많이 들려 주어야 한다"는 얘기는 실상 나의 이야기다. 오리 엄마도 내가 호숫가를 뛸 때마다 친구랑 나누는 이야기를 들었으리라. 상상은 즐겁다. 상상이야말로 모든 예술의 원천이요 힘이다. 상상은 고전과 현대를 넘나들고 우주선을 타지 않아도 환상의 세계를 나르게 해 준다. 한 가난한 싱글 엄마가 상상력 하나만으로 쓴 이야기가 세계적인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는 걸 알만한 사람은 알고 있으리라. 그 책 이름이 바로 <<해리 포터>>다.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에게까지 꿈을 심어주고 환상의 세계를 날게 해 준 이가 바로 경제고로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한 여성 작가에게서 비롯되었다니 놀랍지 않은가. 이 위대한 여정의 시발이 바로 상상의 힘이 아니겠는가. 그렇다고, 환타지 소설만 상상의 힘을 필요로 하는 건 아니다. 시조나 수필을 쓰는 나도 이 상상력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이야기 전개할 수 없다. 내 포토 시가 그러하고 내 모든 포토 에세이가 그러하다. 보이는 것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봐야 하고, 들리는 것에서 들리지 않는 것을 들어야 한다는 얘기는 현재도 미래도 유효하다. 어찌 문학과 예술에서만 상상이 필요하랴. 과학과 건축, 우리 일상의 편리한 모든 이기는 상상이 만들어 낸 산물이다. 상상은 우리 삶에 있어 공기처럼 필요하고 귀한 존재다. 산소를 갈구하듯 상상을 호흡하고, 열 달 뱃속에 vna품은 아이처럼 공들여 키우자. 상상력을 키운다는 건, 내 삶의 질을 높이고 누군가의 메마른 가슴에 물을 대어주는 일이다. 이런 점에서, 상상의 한 쪽 날개를 받쳐주는 건 사랑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면 관심 갖게 되고 관심 갖게 되면 모든 촉수는 그에게로 향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즐거운 상상을 통해 기쁘게 해 줄 아이디어도 퐁퐁 솟는다. 딸아이가 어릴 때, 나는 가급적이면 많은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초등학교 일학년 땐가. 내가 말을 하기 전에 "이건 교과서에 없는 얘기다" 했더니, "교과서가 뭐냐?"고 딸아이가 되물었다. 세 살 때 미국에 온 아이라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몰랐나 보다. 나는 얼른 '텍스트 북'이라고 그 애가 더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설명해 주었다. <엄마와 아기 오리> 이야기는 어린 날 우리들의 시간으로 추억 여행을 시켜 주었다. 언제나 주고 받았던 우리들의 이야기가 오리 가족 대화에 녹아 들었다. 상상은 가끔 이웃 동네도 들린다. 환상, 공상, 망상, 추억 마을까지. 번지수가 좀 틀리면 어떠랴, 상상이 자유이듯이 주제도 자유다. 하지 못할 것도 없고 가지 못할 동네도 없다.  상상은 내 문학의 힘, 내 삶의비타민이다. 사진 한 장을 통한 오리 가족의 상상 대화를 들으며 추억에 잠긴 하루. 엄마가 많이 생각난 여름날 오후였다. 상상이 내게 준 행복한 시간이었다.


                                                                  (사진 : 나병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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