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소리에 잠을 깼다. 창으로 들어오는 여명의 빛살을 바라보며 침대에 나를 그대로 버려둔다. 적어도, 이 해 뜰 무렵의 한 시간, 새벽 여섯 시부터 일곱 시 까지는 하루 중 가장 행복한 나만의 시간이다.

   늘 바쁘게 사는 자신을 붙들어 이렇게 게으름 속에 버려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 육체의 게으름을 마음껏 피우는 이 시간이 오히려 내겐 창작의 시간이 된다. 내 마음은 상상의 나래를 타고 시공을 넘나든다. 시인이 되고 ,철학가가 되는 것도 이 시간이다. 소설가가 된들 어떠리.
   게으름을 피우는 내 눈에 남쪽으로 난 큰 창이 들어온다. 사방 막힌 벽에 창이 있다는 건 얼마나 큰 위안인가. 주검같이 꼼짝하지 않고 누워 있어도 창이 있음에 내 방은 무덤이 되지 않고 집이 되어준다. 집과 무덤의 차이는 창의 유무라던가. 창은 외부와의 차단을 막아주는 열림의 상징이다. 창이 있음으로써 내 마음은 열리고 사고는 확장된다. 그리고 관계가 성립된다. 창은 바깥 세상을 보여주고, 나는 내 마음의 내밀한 정원을 보여준다. 생물과 생물과의 관계도 아름답지만, 생물과 무생물의 교감도 그 못지않게 아름답다.
   창을 본다는 것은 결국 창을 읽는다는 것이다. 그것도 눈과 가슴으로 읽는 묵독이다. 조근조근, 나긋나긋. 자연이 전해주는 말은 언제나 나직하다. 그러나 긴 여운이 있다. 창이 보여주는 세상은 지루한 산문이 아니라, 암시와 은유로 가득 찬 경쾌한 시요 음악이다. 아니, 시와 음악이 어우러진 풍경화라고나 할까.

   나는 새벽 창을 통해 비발디의 사계를 듣고, 모네 말년의 흐릿한 풍경화를 본다. 때로는, 빛의 작가 램브란트가 모네 자리를 대신하기도 한다. 나는 이 시와 음악이 흐르는 다양한 창의 풍경화를 ‘새벽 전람회’라 이름 지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오직 나만을 위해 열어주는 새벽 전람회. 이 전람회는 나만을 위한 유일성도 있지만, 그 표정과 모습이 매양 다르기에 흥미롭다.  
    오늘은 마침, 부활 전야 미사가 있는 날이다. 사순 시기를 지나고, 슬픔과 고통의 강을 건너 드디어 맞게 된 부활전야. 서로에게 촛불을 붙여주며 함께 어둠을 밝혀가는 빛의 예식이 있는 날이다. 빛의 예식이 끝나면, 우리는 “알렐루야, 알렐루야, 알렐루야!”하고 환호하며  부활의 기쁨을 나누게 된다. 사람들은 이미 설레는 마음으로 오늘 밤 자정미사를 기다리고 있으리라. 이 특별한 날, 나의 창은 어떤 그림을 내어걸며 오늘의 메시지를 전해올까. 사뭇 기대 된다.  
    아침 햇살이 서서히 부챗살로 퍼져오자, 새벽하늘도 노을 풀어 어둠 밀며 오는 태양의 배경이 되어준다. 가슴을 연다는 것은 상대방의 배경이 되어준다는 것, 그 아름다운 의미를 읽는다.  새벽하늘에 붉은 기운이 더해지니, 창에 걸렸던 무채색 묵화 한 폭도 색을 입어 서서히 담채화로 바뀌어 간다. 그제서야 어둠 속에 지워졌던 형체와 색깔들이 조금씩 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4x6피트의 커다란 화폭에 비해서 구성이나 소재는 매우 단순하다. 네모난 창틀 왼쪽 귀퉁이에 반쯤 몸을 드러내고 있는 팜트리와 시골 학교 종처럼 처마 밑에서 달랑거리고 있는 구리 풍경, 뒷뜰 정자 곁에서 너울대고 있는 버드나무와 키 큰  잡목 한 그루. 그리고 풍경화의 단골손님인 구름 몇 점과 이 모든 소품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연푸른 하늘. 단순한 소재에 구성 또한 늘 고정되어 있어 어찌 보면 매우 단조롭고 지루할 것 같은 풍경화다. 하지만, 이 단조로운 풍경화가 날마다 새롭게 느껴지는 것은 역시 바람의 장난 때문이다. 거기에 새벽 새들의 군무가 곁들여지면 얘기는 달라진다.
   어떻게 보면, 우리네 인생도 참 단순한 풍경이다. ‘생로병사’라는 간단한 문패 하나 달고 있을 뿐이다. 길게 풀어 써봤자 ‘태어나고, 늙고, 병들어 죽었다’라는 한 문장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이 ‘생’과 ‘노’라는 단 두 음절 사이에 놓여 있는 ‘사랑’이나 ‘운명’이란 섶다리 때문에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장편 소설을 쓰고 갔는가. 뿐인가. 전집을 써도 모자란다며 아예 말문을 닫고 간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은가. ‘병’과 ‘사’ 사이에 끼어있는 긴 고통은 차라리 말없음표로 남겨두자.

   하지만, 조약돌 없이 어찌 시냇물의  노랫소리를 기대할 수 있을까. 기어이, 불러야할 마지막 한 소절을 위해 우리는 조약돌에 미끄러져  무릎이 깨지더라도 나아가야만 한다. 걸림돌로만 생각되던 조약돌도 때로는 노래가 되는 것을 익혀가는 거다.      

   오늘 따라, 멋진 풍경화를 보여주기 위해 새벽부터 분주하던 새들이 더욱 바빠졌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오른쪽에서 다시 왼쪽으로 사방팔방 무늬를 그리는 새떼들의 군무는 단조로운 풍경을 더욱 다채롭게 꾸며준다. 저들의 전언은 무엇일까.

   새벽 새떼들의 몸짓을 보며 그들의 암호를 풀어본다. 저 넓은 창공을 날고도 상처 하나 내지 않는 ‘무흔적’. 순간, 이 세상에 점 하나라도 남기고 싶어 안달하던 내 욕심에 실소했다. 그러면서도 ‘흔적 없이 사라지고 싶다’고 말하던 그 위선이라니. 그토록 부산하던 새들의 날갯짓은 이런 나를 깨우치기 위한 작은 몸짓이었는지도 모른다.

    때마침, 한 줄기 바람이 풍경을 깨우곤  팜트리 잎 사이로 도망치듯 빠져나갔다. 풍경이 놀라 땡그랑거리자,  팜트리도 후두둑 잎을 턴다. 아, 그때였다! 갈가리 찢기운 잎새 끝에서 수 천 수 만 조각의 금빛 햇살 가루가 쏟아져 내렸다. 자석을 갖다대면 , 금빛 가루가 다 들어 붙을 것같았다. 그건 하나의 경이였다. 이 집에 십 수년을 살아도 이런 장관은 처음이다.

   와아, 저 눈부신 빛의 난무. 찢겨서 더욱 아름다운 ‘성의’를 펄럭이며 잎새도 목청 높여 부활을 노래하고 있다. 바람과, 햇살과, 팜트리의 잎새가 탄주하는 빛의 삼중주. 숨이 멎도록 아름다웠다. 아니, 눈물겨웠다.

   생떽쥐베리가 갈파했던가. 고독하기에 필요한 것은 사랑이라고. 결핍이 있기에 필요한 것도 사랑이다. 새도 앉지 않고 비껴 간다는 팜트리의 찢긴 잎새들. 거기에 바람이 와 머물고, 따스한 햇살 앉으니 금빛 가루가 여우비처럼 쏟아진다. 비바람 세찬 날이면 저도 미친듯이 울부짖다가, 바람 멎으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눈물 훔치고 기도 올리는 정갈한 여인이여. 너로 인해, 내 눈에 눈물 고이구나. 알 수 없는 수분이 두 볼을 적신다. 
   LA 공항에 떨어질 때부터, 팜트리는 제일 먼저 내 눈을 사로잡았다. 이국적인 풍경도 풍경이려니와, 잎 하나 달지 않고 깡마른 모습으로 하늘만 향해 올라간 가녀린 모습이 왠지 짠했다. 예상치 못한 일로, 식구 두 명을 잃고 달랑 딸아이 손 하나 잡고 고국을 떠나 온 내 처지가 그와 흡사했다. 많은 것이 바뀌고 생략되어 버린 나의 삶. 그때 나는 차창을 스쳐가는 팜트리를 보며 '널 벗삼아 이 낯선 이민의 삶을 살아가야 겠구나!'하고 생각을 했다.

  잎도, 꽃도, 자랑할 게 없는 팜트리. 아니, 자랑조차도 상납해 버린 듯한 초연한 모습이 볼 때마다 처연했다. 마치, '꽃 피지 않는 화분'을 들고 왕비 간택에 나온 가난한 동화속 소녀같은 애잔함이 일었다. 버릴 것 다 버리고, 잊을 것 다 잊었다 하면서도 어찌 다 잊고 사냐며 여전히 소소한 생각 몇 이고 살아가는 모습이 어쩌면 그리도 날 닮았는지. 갈가리 찢겨져 축 늘어진 팜트리 잎새들은 또 왜 그리도 상처 받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연상시키는지.

   저나 나나, 상처란 누구나 장기처럼 지니고 살아가는 것. 아픔은 아름다움이 아닌데도, 아름다움 이상의 아름다움이 있고 슬픔 이상의 슬픔이 있다. 통증을 모르는 나환자에게는 통증이야말로 가장 큰 선물이라고 한다. 어쩌면, 육체적 통증이나 마음의 아픔이야말로 더욱 사랑 받아야할 가장 큰 이유가 아닌가 싶다.

   오늘 따라, 늘 아웃사이더였던  팜트리가 황금 옷을 너울대며 폭포수같은 빛가루를 뿌려주니 놀라움을 넘어 감동이다. 정녕 꼴지의 반란이요, 약자의 화려한 변신이다. 이는, 주님이 폭포수처럼 뿌려주는 은총의 빛줄기가 아니겠는가. 그야말로, 상한 갈대를 긍휼히 여기시는 부활 전야 최고의 선물이다. 
     '이 은혜 놀랍고 고마와...'하는 성가가 절로 나온다. 오늘은, 웬일로 저토록 아름다운 빛의 축제를 벌여 날 들뜨게 하시는가. 어쩌면 이토록 내 새벽 전람회를 찬란하게 꾸며 주시는가. 부름에 응답이라도 하듯, 팜트리도 '황금 성의'를 더욱 펄럭인다. 밤바다를 휘저으면 찬란한 은빛 인이 일던 어린 날의 동화 같은 풍경이다. 간밤에 흐느껴 운 우리네 삶도, 때로는 바람 불어 금빛 햇살 쏟아지는 아침도 있겠거니-

   금빛가루 뿌리며 너울너울 춤추는 팜트리를 처음으로 애잔한 마음 없이 뿌듯하게 바라 본다. '그래, 너도 열심히 살아 왔지?' 팜트리를 칭찬해 주고 싶은 아침이다. 어느새 밝아온 부활 전야 아침. 나만을 위한 ‘새벽 전람회’도 문을 닫아야할 시간이다. 팜트리 위에서 부서지던 금빛 햇살이 새벽 풍경화에 부제를 달고 있다. '지나온 삶은 모두가 은총이었네.’

   들뜬 내 마음도 벌써, 기쁨과 감사의 '알렐루야!' 삼창을 올리고 있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알렐루야!"             



* 후기 메모 : 2018년도 <문학세계>에 게재할 수필 대표작을 보내 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난감했다. 다 도토리 키재기로 고만고만한 작품들이라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다. 이것 저것 다시 읽어 보면서도 고르지를 못해 한 달간 미적거리기만 했다. 미주 중앙일보 신춘 문예에 당선 되었던 <구리 풍경>을 고를까, 아니면, 임헌영 교수한테 호평을 받은 <기차 여행>을 고를까 하다가 결국 <<에세이 문학>> 천료 작품인  <새벽 전람회>를 골랐다. 내가 십 수년 간 살았고, 일어나면 제일 먼저 눈을 주었던  밸리집 창가. 이제 그 집은 지상에 없다. 도심 속 원 에이커가 넘는 넓은 땅을 탐내던 개발업자에게 집을 팔았기 때문이다. 나에게 그토록 많은 영감을 주고 글감을 던져주었던 우리의 아방궁. 불도저로 밀린 추억은 재방문했을 때 어린 손녀까지 울게 했다. 그렇게 살던 집에 다시 가 보자고 조르는 손녀를 데리고  다시 들렸을 때, 거긴 우리가 살던 옛집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Plummer Street 이었던 길 이름마저 딴 이름으로 바뀌었다. 그 자리엔, 우리의 추억과 옛얘기를 딛고 번듯한 콘도가 이십 여 체나 들어 서 있었다. 돌아오는 길, 여섯 살 짜리 손녀는 "다시는 안 올 거야! 다시는 안 올 거야!"하며 연신 눈물을 훔쳤다. "그래, 나도 다시는 안 오고 싶다!' 마음 속으로 대답했다. 이 글을 다시 손질하면서, 이젠 영원히 잃어버린 그 창가와 금빛 가루 휘날리던 팜트리 잎새와  못 생긴 나무라 놀림 받던 꺽다리 잡목과 수영하며 깔깔대던 어린 손녀의 웃음을 떠올렸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만 땄던 아름드리 살구 나무와 그늘에서 오수를 즐기던 우리 져먼 쉐퍼드 점프까지 내 기억 속으로 되돌아 왔다. 이젠 모두 마음의 보석 상자에 담겨있을 뿐, 만날 수 없는 인연들이다. 가고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 슬픈 추억의 반추. 십 여 년 전에 쓴 이 글을 뒤적이는 동안 내내 마음이 먹먹했다. 지상의 모든 것은 변하고 사라진다. 생성과 소멸. 내 기억에서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새벽 전람회>를 통해 다시 한 번 그들을 호명해 본다. 내 사랑하는 것들아, 안녕. 설령, '이것이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난 너희들을 사랑했고 너희도 나를 사랑했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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