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2018년 미주 문학 캠프 후기 1

2018.08.13 13:57

서경 조회 수: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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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처럼 귀한 나들이를 했다. 해마다 8월에 연중 행사로 열리는 미주문인협회 문학 캠프다. 올해는 8월 11일과 12일 양일간 팜 스프링 미라클 호텔에서 열렸다. 참가 인원은 약 100명. 시, 시조, 수필, 소설, 아동문학 등 5개 분과 소속 회원들이 전국에서 모여 들었다. 
  여름 문학 캠프는 유익한 문학 강의를 듣는 즐거움과 작품으로만 만나던 문우들과의 만남으로 한껏 우리를 들뜨게 한다. 이번 초청 강사님은 유명 시인인 한남대 김완하 교수와 문학 평론가인 경희대 홍용희 교수다. 홍용희 교수는 그 유명한 < 채식주의자>를 쓴 ‘한 강’ 작가의 부군이기도 하다. 
  제 1 강의를 맡으신 김완하 교수는 ‘글로벌 시대의 상상력과 시정신’이란 제목으로 담담하게 풀어 가셨다. 시인의 꿈과 상상력, 이미지와 상상력, 이미지와 형상화, 상상력의 확장, 문학 창작과 생의 통찰, 시인과 시정신은 무엇인가? 등의 소제목으로 세분화 하여 실질적 창작에 도움 되는 유익한 강의를 해 주셨다. 
  특히, 2부 강의 말미에 낭송해 주신 본인의 시 <뻐꾹새 한 마리 산을 깨울 때>는 명시 반열에 들 정도로 좋은 시로 잠시 숙연하게 했다. 억수장마로 산비탈이 무너져 시뻘건 황토가 강을 이루고 언덕배기 나무들을 휘감으며 한바탕 난장판을 치고 나면 제일 먼저 우는 새가 뻐꾹새라 한다. 
  “뻐꾹! 뻐꾹!” 하고 우는 뻐꾹새 울음소리가 죽은 산을 다시 살리려고 ‘인공 호흡’을 하는 것같이 들렸다는 대목이 퍽 인상적이었다. 속살이 다 파헤쳐지고 기사회생이 불가능해 보이는 그 산도 다시금 살려보려 피울음 토해 내는 뻐꾹새의 모습에서 그는 시인의 역할과 책무를 느꼈다 한다. 
  그 말을 들으며, 내 몸은 이미 타임머신을 타고 그가 대학 초년생으로 겪었다는 1980년대의 암울했던 시절로 회귀했다. 곧 이어, 닫힌 학교 교문을 뒤로 한 채 짐을 싸들고 금산 진악산 보광사로 들어간 고뇌에 찬 한 젊은 청년 시인과 동행했다. 몸은 강의실에 홀로 두고, 내 마음은 상상의 나래를 타고 그를 따라 나선다. 
  밤마다 도시의 불빛이 피끓는 젊은이를 유혹해도 스스로 ‘금족령’을 내리고 오직 공부에만 정진했다는 그. 그의 유일한 외출은 걸어서 두 시간 반이 걸렸다는 금산 5일장으로 왁자한 인간의 소음 속에 자신을 풀어 놓았다가 다시 간 길을 되짚어 오곤 했단다. 금산장의 막차가 떠난 뒤, 다시 천지가 고요로 덮히고 혼자 산으로 돌아오는 길, 그의 마음 속엔 밤하늘에 빛나는 별들만큼이나 많은 생각들이 오갔을 터이다.
  위 시는 그때 쓰여진 시 중의 하나였다. 만신창이가 된 산은 암울했던 시대의 상황이요, ‘인공 호흡’하듯 밤새 “뻐꾹! 뻐꾹” 울던 뻐꾹새는 시대를 아파하는 한 젊은 청년 시인과 진배 없었다. 
  1980년이라면, 내가 딸을 낳았던 해요 이듬해 1981년에는 금쪽 같은 네 살박이 아들을 백혈병으로 잃었던 시간이다. 연이어, 근로 청소년 센터에서 교육 부장으로 재직하며 상주하는 이형사와 늘 신경전을 벌이던 시절이며 우리 미국 원장 신부님이 미방화범 문제로 담화문 인쇄를 앞두고 잠 못 들고 재떨이에 수북히 담배 꽁초를 쌓아가던 시간이다. 
  자칫하면, 미 본국으로 추방당할 위기에 이르던 급박한 상황이었다. 다행히, 주교관의 지시가 철회되어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순수하게 근로 청소년들을 사랑으로 돕고 있던 외국 신부님에겐 퍽이나 어렵고 죄송스런 미션이었다. 
  살림만 살고 있던 서른 살 젊은 아낙네가, 어느 날 갑자기 급격히 돌아가는 암울한 시대 상황 속으로 떨어져 가슴 졸였다. 그럴수록, 가난 때문에 학교 대신 공장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근로 청소년들에게 희망을 심어 주며 사랑으로 내 모든 능력을 발휘하여 열정적으로 일 하던 시기였다. 신앙 교육을 따로 하지 않았음에도 우리 아이들 중 한 분의 신부님과 아홉 분의 수녀님을 배출한 것도 자랑이지만, 어려운 시간을 지나 모두 어엿한 사회인으로 살아가는 모습은 나를 뿌듯하게 한다. 지금도 그 시간은 내 삶의 연대표에 또렷이 각인되어 있다. 
  거리 곳곳에서 데모 청년이 잡혀가고 쥐도 새도 모르게 없어지던 그 시간, 또 다른 한 공간에서는 절대 고독과 싸우며 시대를 아파 하는 한 청년이 있었다는 얘기는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어떻게 윤동주나 이육사만 시대를 아파한 민족 시인이라 하겠는가. 앞으로도 무수한 시인들이 시대를 아파하며 혈서 쓰듯 피 토하는 뻐꾹새 울음으로 ‘인공 호흡’을 계속 하리라. 
  ‘조국이란 무엇인가. 민족을 갈라 놓고 인권을 유린하며 국민을 울리는 것이 위정자들의 정치 목적인가?’ 하고 끊임없이 반문하게 하던 그 시절이 강의 시간 내내 떠올랐다. 이제, 캠퍼스 대신 절 속에 숨어 들어 금산 5일장에 절대 고독을 풀던 청년 시인이 중년이 되어 문학 강사로 내 앞에 앉아 있다. 그리고 그가 육성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나는 그의 문학 강의를 듣고 있는 게 아니라, 그의 성장통을 듣고 있으며 동시대를 살아온 한 인간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있다. 
  40년 전 이야기를 다시 듣고 있자니, 상상력에 대한 그의 주 강의보다는 예문으로 삽입한 이야기가 내 개인사와 더불어 가슴에 더욱 큰 파장을 일으켰다. 새삼, 시대의 아픔은 나와 상관 없다는 듯 변방으로 나 앉아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나 끄적대고 있는 내 모습이 한심하기도 했다. 조곤조곤한 강의가 오후의 햇살을 받아 나른한 오수를 불러들이려 할 즈음, 새삼 내 눈동자를 초롱초롱 빛나게 해 준 뜻깊은 강의였다. 
  문학의 표현에 있어 직설적 설명보다는 우회적 메타포 사용법을 두고 ‘문학은 쓰리 쿠션이다”라고 표현한 것도 재미있었으며, ‘시어’는 멋 부리기 위해 다는 장식이 아니라 필수불가결한 목적어란 말도 인상적이었다. 크게 그릴수록 나도 행복하고 독자도 행복하게 해 준다는 그의 ‘허공 이론’도 참신한 발상으로 내 창작법에 적용할 만했다. 
  제 1 강의 후기 보너스로 김완하 교수의 <뻐꾹새 한 마리 산을 깨울 때>를 덧붙인다. 이 한 편의 시를 통해, 집중 호우로 만신창이가 된 뻘건 황토산 앞에 우리를 세우고 ‘인공 호흡’하듯 혼신의 힘을 다해 울어대는 뻐꾹새 울음 소리에 귀와 가슴을 열어 보자. 피 토하며 울던 뻐꾹새 한 마리 ‘산의 심장’에 자신을 묻을 때, 우린 함께 통곡할 것인가 아니면 너무나 억장이 무너져 외려 울음조차 삼가하고 무거운 침묵 속에 옷깃만 여밀 것인가. 옳음과 그름을 떠나, 우린 ‘각자의 방법대로’ 뻐꾹새의 울음에 ‘동참하는’ 동시대의 증언자가 되어야 하리. 그게 우리 작가들의 소명이지 싶다. 
  
  - 뻐꾹새 한 마리가
    쓰러진 산을 일으킬 때가 있다
    억수장마에 검게 타버린 솔숲
    둥치 부러진 오리목,
    칡덩굴 황토에 쓸리고
    계곡물 바위에 뒤엉킬 때 
 
    산길 끊겨 오가는 이 하나 없는
    저 가파른 비탈길 쓰러지며 넘어 와
    온 산을 휘감았다 풀고
    풀었다 다시 휘감는 뻐꾹새 울음  
 
    낭자하게 파헤쳐진 산의 심장에
    생피를 토해내며
    한 마리 젖은 뻐꾹새가
    무너진 산을 추스려 
    바로 세울 때가 있다 
 
    그 울음 소리에
    달맞이 꽃잎이 파르르 떨고
    드러난 풀뿌리 흙내 맡을 때
    소나무 가지에 한 점 뻐꾹새는
    산의 심장에 자신을 묻는다 -
 
    <뻐꾹새 한 마리 산을 깨울 때/김완하> 


* '익명의 독자'에 대한 서비스로 모처럼 독사진 하나 올렸습니다. (사진 : 이영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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