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절 유감

2018.08.15 10:34

백남규 조회 수:18

그러나 그게 무슨 문제란 말인가/ 정희성

이런 시대에 사는 것 자체가 죄인데 
나라 없던 시절의 친일행적이나
독립투쟁이 다 그게 그거 아니냐고
공이 있으면 과도 있게 마련이라고
광복절 대신 건국절을 기념하잔다
건국 이전은 글자 그대로 선사시대니까
건국 이전은 바람 부는 만주 벌판이니까
건국 이전은 말하자면 캄캄한
시베리아 벌판이나 다름없을 테니까
우리는 나라를 두 번이나 빼앗겼다
한번은 제국주의 일본에게
또 한번은 자신의 과거를 지우고 싶은
혹은 당당하게 미화시키고 싶어하는
이 땅의 친일 친독재 세력에게
그러나 그게 무슨 문제란 말인가
개똥이 개똥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절망이 절망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 계간 《창작과 비평》 2016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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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7월19일 하와이 한 노인요양원에서 이승만은 구순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3년 전 50주기 추모식에서 김무성 당시 새누리당 대표는 “이승만 대통령이 안 계셨으면 우리나라 건국이 안 되었고, 건국이 안 되었으면 우리는 지금 공산 치하에 있어야 된다.”라고 말한데 이어 “공과가 있지만 어제에는 어제의 역사가 있고, 오늘에는 오늘의 역사가 있다”며 “한국은 국가는 존재해도 국부는 존재하지 않는 부끄러운 나라다. 이제는 한국의 높아진 위상에 걸맞게 이승만 건국 대통령을 국부로 모실 때가 됐다”고 거듭 주장했다. 그의 줄기찬 이승만 예찬과 국부논란은 ‘광복절’을 ‘건국절’로 변경 지정하자는 주장과 밀접하게 닿아있다.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이 독립운동단체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대적인 ‘건국60년’행사를 치룰 때부터 보수 세력들이 똘똘 뭉쳐 이의 관철을 시도하고 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23년 전 조선일보에 의해 조직적인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해방 50년을 맞이해 보수단체 일각에서 벌였던 '이승만 되살리기 운동'과 연계해 '이승만의 나라 세우기'라는 제목으로 대문짝만한 특집과 함께 전시회를 개최한 게 시발점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4월 혁명정신을 모독하고 역사를 거꾸로 되돌려 놓으려는 망동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민주사관을 가진 일반의 대체적 인식이었다. 조선일보의 책동은 ‘수구꼴통언론’이란 낙인만 짙게 찍힌 채 큰 반향을 얻지 못했다.

그리고 지난 해 광복절, 문재인 대통령은 1919년 4월 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일'을 대한민국 건국으로, 내년이 건국 100주년 되는 해라고 선언했다. 이로써 정리가 되고 꺼진 줄로만 알았던 ‘건국절’ 불씨가 올해 또 다시 자유한국당에 의해 지펴지고 있다. 김병준 비대위원장도 라디오 인터뷰에서 “다수의 의견은 건국년을 1948년이라 보고 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도 1948년 건국을 당연시 받아들였다”는 일방적 궤변을 늘어놓았다. 반민족 반민주적 독재자의 전형인 인물을 굳이 ‘건국의 아버지’로 세우려하는 까닭은 무언가. ‘그게 무슨 문제’라고, 온 나라를 낡은 이념논쟁에 휩싸이도록 하려는 노림가 '보수 결집'만일까.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나라를 어째서 '건국70년'밖에 안 되는 초라한 신생국가로 만들려고 하는가. 대한민국의 헌법정신을 부정하는 반역사적 자기모순에 빠지면서까지 얻는 유익이 무얼까. 임시정부의 존재를 보잘 것 없는 '망명정부' 신세로 전락케 하고, 대한민국에서 북한의 존재를 배제해 버림으로써 분단과 대결구도를 영구화하고, 식민의 역사와 친일파의 죄상을 덮어버리고 대한민국에서 제외시킴으로서 득을 보는 세력이 과연 누굴까. 명문화된 헌법 전문까지 부정하면서 ‘자신의 과거를 지우고 싶은 혹은 당당하게 미화시키고 싶어 하는 이 땅의 친일 친독재 세력’이 내심 두려워하는 상황은 통일한국이 아닐까.

일련의 조짐들에서 우려를 감출 수 없음은 왜일까. 임시정부는 남북 분단 이전의 역사이므로 남북화해와 통일을 추진하는 흐름에도 철저히 부합한다. 임시정부와 독립운동의 정신은 건국이념이 되었고 오늘날 우리는 그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 남북화해의 마당에서 통일의 당위성마저 없애버리려는 숨은 의도가 만약 사실이라면 그들은 정말로 구제불능이다. ‘절망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는 김수영의 시구가 환기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러나 그게 무슨 문제란 말인가’ 차라리 서로에게 체념하면 속이라도 편하겠건만. 분단을 고착화하고 통일을 바라지 않는 세력이 그들이라면 이거야말로 소름 돋을 우리 안의 적들이 아닌가.

권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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