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 나무

2018.12.09 05:21

조형숙 조회 수:26

    리틀 도쿄 빌리지 플라자의 중앙도로에는 벤자민 나무가 몇 그루 서 있다. 그 중 하나는 이름이 Wishing Tree인데  정성스럽게 소망을 적은 작은 종이들이 매달려 있다. 크리스마스나 신년초, 특히 일본인 마츠리(축제)가 열리는 때가 되면  많은 사람들의 소망으로 나무가지가  휘어 늘어진다. 벤자민 나무 밑둥에 대나무를 빙 둘러 묶고  대나무 잔 가지마다 예쁜 색깔의 종이가  소원을 담고 살랑살랑 흔들린다. 나무 앞 가게 Blooming Art의 일본인 여자주인이 종이 한 장에 50센트를 받고 서비스하고 있다. 지난 여름 어떤 못된 사람이 그 나무에 불을 질렀다. 더 큰 화재로 번지기 전에 경비원이 발견하여 불을 껐으나 소망의 종이와 대나무둥치가 다 타서 없어져 버렸다. 불이 난 다음 날 아침 벤자민 나무는 그을린 것을 깨끗이 정리하고, 새로운 대나무가 둘러 쳐지고 소망은 다시 매달린다.  
   어느 날은 갑자기 비가 많이 쏟아져 내렸다. 나무들은 잎새 하나 하나 다 깨끗해졌으나 소망의 종이들은 고개를 수그린채 땅을 향하여 축 늘어져 있다. 비오기가 가뭄에 콩나듯 하는 로스엔젤레스에서 비는 순식간에 한 도시를 점령한 어느 장군처럼 확 달려들었다가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는 소망종이를 패잔병처럼 만신창이로 만들어 버렸다. 다음날 많은 이들의 소망은 떼어내져 버리고 다시 새 소망이 달리기 시작한다. 없어진 소망들이 다 이루어졌으리라 나도 마음으로 소망해본다. 눈부시게 빛나는 태양이 다시 떠오른 거리는 더 밝고 신선한 움직임으로 부산하다. 작은 새들이 비가 그쳤다고 알리며 날아 오르다가 또 땅으로 내려 앉는다. 

    어릴 때 내가 살던 누상동에서 청운동에 있는 국민학교(그 때는 초등학교를 국민학교라 했다.)를 가려면 옥인동을 지나 성황당 고개를 넘어가야  가까웠다. 그 고개 성황당앞에 서 있는 큰 나무에는 조각난 형형색색의 헝겊들이 매달려 바람에 흔들리고 있어 무서웠다. 특히 붉은색깔의 헝겊은 아주 싫었다. 나와 친구는 무엇인가 튀어 나올 것 같은 그 곳이  무서워 옥인동 시장을 통과하여 빙돌아 학교를 다녔다. 그래도 대학을 다닐 때는 그 고개를 넘어 나에게 과외공부하러 오는 아이가 있어 공부 끝나면 꼭 그 길로 데려다 주었다. 특히 겨울밤에는 코트안에 그아이를 감싸안고 함께 노래 부르며 데려다 주었다. 아이가 집으로 들어가면 걸음아 날 살려라하고 그곳을 도망쳐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 용기가 어디서 났는지 모르겠다. 지금 생각해도 희안하다. 그 여자 아이가  무척 사랑스러웠거나 아니면 돈을 받은 책임감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가끔 나무 옆을 지나며 소망을 죽 흝어 보면 참 여러가지의 소원이 있다. 아파트를 찾고 있는 한 커플은 '새로운 집에서 행복과 웃음으로 온 삶을 사랑하며 함께 하고 싶다'고 한다. '제 3국에 살고 있는 가족이 미국에 올 수 있기를' '대학 졸업을 잘 할 수 있기를' '성공하고 싶다' '직장을 구하고 있다' '행복과 정신적 육체적 건강이 영원하기를 바란다' '최선을 다하고 싶다' '나와 가족이 행복하고 건강하기를' '오래 살고 싶다'등의 소원이다. 종합해 보면 많은 사람이 행복, 건강, 돈, 사랑, Long life를 소망한다. Stress free life도 있다. 아주 현실적이다. 'More sleep, less work, more pay'라는 소망이 눈에 띄었다. 일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랬으면 좋겠으나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그래도 그 분이 소망한대로 되기를 나도 함께 바란다.

   우리의 소망은 자주 바뀐다. 이루어 진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지만 또 새로운 것을 자꾸 매달게 된다. 저 산너머에 있는 행복을 찾듯이 소망은 끝도 없이 매달린다. 편안하게 뿌리 내리지 못하고 살아가는 인생살이처럼 매달렸다가 떼어진다. 생각대로 살아 보겠다고 허둥대는 인생은 아니었는지 돌아본다. 나는 세상에 무엇을 남길까 하고 시작한 글쓰기가 지금 나의 소망이 되어 충실하게 이루고 싶으나 게으르다. 자꾸 미룬다. 없어질지언정 소망을 써서 매달아야 한다. 세상의 것보다 하늘나라의 것이면 더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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