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의 바다와 박지훈의 바다

2018.12.11 06:52

조형숙 조회 수:41

   합창단원들은 흰 저고리 분홍치마 한복으로 무대 위로 나왔다. 지휘자 박지훈도 한복으로 차려 입어 고향냄새가 물씬 풍긴다. 여자들은 한 쪽 치마 폭을 잔뜩 잡아 올려 오른쪽 허리에 묶었다. 장구춤을 추러 나온 것 같은 가벼운 복장이다. 연회색의 여자들 저고리 고름은 남자들의 저고리 색깔과 맞추었다. 고향의 아침이 시작된다. 꼬끼오  꼬꼬오꼬 닭들이 울고 멍멍 개들이 짖어댄다. 바람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불어온다. 풀피리 소리도, 흐르는 물소리도 난다. 조용한 산사의 잉경소리와 함께 목탁소리도 들린다. 산새가 운다. 뻐꾸기도 울고있다. 쉬이이 바람소리도 스산하게 퍼지는 속에 호랑이 소리가 숲 속을 호령한다. 정겨운 고향의 봄 소리를 음악으로 이렇게 기막히게 표현을 할 수 있는 것이 경이로웠다. 합창이 시작된다. '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께 새 집 다오'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잠 자안다. 잠꾸러어기. 밥 먹는다. 무슨 바안찬 개구리 바안찬. 죽었니 살았니?' '살았다' 하면서 두손을 번쩍 치켜든다. 개울가에 개구리가 울고 뒷산에 부엉이가 울던 고향의 풍경이다. 그리운 소리들을 합창단의 소리로 전해 들을 수 있는 행복함에 가슴이 저리다. 정말 아름답다. 오랫동안을 아름다운 고국 강산에 앉아 있었다.  

 

   바다에서 상처 받은 가족들의 아픔을 위로 하기 위한 곡을 합창으로 표현했다. 한 남자 단원이 노를 젓는다. 다른 단원들이 모두 무대 바닥에 주저앉아 고개를 떨구고 청승스럽게 울고 있다. 아아--아, 우우-우우 뱃사람의 가족들이 울고 있다. 조금씩 정신을 차리고 사방을 둘러 본다. 하나 둘 씩 일어나 기력을 차리고 부르는 바다의 노래는 피아노에서 포르테로 바뀌며 더 슬퍼진다. 어그러차 여어차. 어그러차 여어차. 바다에 수장된 영혼들을 위로 하는 노래는 슬프지만 힘차게 이어진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하니까 힘을 낸다. 하나 둘 씩 노를 젓기 시작한다. 힘찬 북소리도 함께 한다. 소리들이 점점 커진다. 불쌍한 마누라 위해 바다로 나갔던 사내의 한많은 인생이 노래 속에 겹쳐진다. 풍랑이다. 여인들이 울부짖는다. 풍랑에 모두 흔들리다가  바닥으로 쓰러진다. 살아 있는 여인 하나가 뼈가 저리도록 자지러지는 곡성을 허공에 흩어낸다. 인생살이 슬픔을 울고, 쓰러져 또 운다.
 
   김훈의 '흑산'을 보면서 느꼈던 슬픔을 합창이 다시 불러왔다. 죄인 정약전이 유배되어 살던 흑산이라는 작은 섬의 슬픈 바다 이야기가 합창과 함께 어우러져서 감동과 슬픔을 일으키고 멍한 가슴에 눈물이 솟구치게 했다.
 
   '아침에 순하던 바람이 한낮에 갑자기 뒤집혀서 멀리 나갔던 배들이 허다히 돌아 오지 못했다. 갑자기 먼 바다에서 바람이 일어서면 수평선 쪽의 물 빛이 들끓었다. 그런 날, 날이 저물어도 배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이 물가에 나와 모닥불을 피우고 징을 때리면서 밤을 새웠다. 봄에는 남풍에 데워진 바닷물이 습기를 내뿜어 짙은 안개가 끼었다. 안개가 바람에 밀려 올 때는 바다도 하늘도 보이지 않았고, 구름에 갇혀 눈 먼 세상에 물 소리만 들렸다. 서둘러 돌아오던 배들이 길을 찾지 못해서 포구를 지척에 두고도 접안하지 못했다. 사람들이 산꼭대기로 올라가 징을 때려서 배를 유도했으나, 소리만으로 물길을 잡기는 어려웠다. 배들은 하루 내내 물위에 떠있다가 안개가 걷힌 뒤에야 돌아 오거나 안개 속으로 영영 사라져 버리기도 했다. 물에 쓸려 나간 배들이 먼 바다에서 깨져서 물에 불은 시체나 나무토막이 며칠 후에 물가에 밀려오는 일도 있었다. 날이 밝아도 배가 돌아오지 않고, 다시 날이 저물어도 배가 돌아오지 않는 저녁에 물가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은 제가끔 흩어져서 집으로 돌아갔다. 굴뚝에서 연기가 오르지 않았고 마을은 어둠 속에서 고요했다. 그러다가, 어느 한 집에서 눌렸던 울음소리가 터져 나오면, 울음은 이 집 저 집으로 번져갔다. 여인네들의 울음소리는 어둠을 찢었고 늙은이의 울음은 메말라서 버석 거렸다. 마을은 밤새 울었고 놀란 개들이 짖어댔다. 슬픔은 비빌 곳이 없어서 지층처럼 사람들의 마음 밑바닥에 쌓였고, 사람들은 다시 바다로 나아갔다.'
(김훈의 흑산 86-87쪽)
 
  같은 인생의 모습을  작곡가 박지훈은 음악으로 표현해 냈고, 소설가 김훈은 글로 표현했다. 흑산의 슬픔 속에 합창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합창을 들으면서 흑산의 슬픈 바다 이야기가  눈앞에 떠올랐다. 전체 400페이지에 가까운 책의 분량중에 바다를 적은 글이 무척 많았지만, 유독 반페이지에 실려 있는 몇 줄이 마음을 아프게 찔렀다. 무대의 몸짓들과 합창이 바다를 부르며 자꾸 머리를 맴돌았다. 병풍처럼 둘러친 무대 뒤에 바다 풍경이  푸른 산과 함께  물위에 비추이는 것 같았다. 박지훈은 흑산을 읽었을까? 
 
   지휘자 박지훈은 차세대를 이끌어가는 작곡가중 가장 주목받는다. 군산시립합창단의 지휘자,  꿈의교회 음악감독을 맡고 있다. 합창지휘의 거장인 윤학원교수의 제자로 다양한 성가곡을 작곡하고 드라마, 영화, 뮤지컬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미국 솔트레이크 씨티에서 열렸던 미국합창연합회 컨퍼런스에서 안산시립합창단의 박신화교수가 박지훈의 '뱃노래'를 연주하면서 행사에 모인 2만명의 청중을 놀라게 만들었다. '뱃노래는 한국정서가 물씬 배어 나오는 현대 합창곡으로 한 시골 어부의 삶과 죽음, 슬픔을 노래한 곡이다. 최근 엘에이 윌셔 연합교회에서 '뱃노래'를 연주했다. 
 
  이 글은 미주문학 2019년 여름호에 실린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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