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요리 단상

2019.02.25 22:47

서경 조회 수:8


 요리 단상.jpg

    

   오늘은 쉬는 날. 쉬는 날엔 먹고 싶은 거 한 가지씩 만들기로 했다. 그렇다고 대단한 요리를 하는 건 아니고 그야말로 소박한 음식이다.
  주로 부추전이나 명태전 혹은 국수나 수제비 등 분식 종류다. 때로는 무우채나 명태포 무침도 한다. 시간이 있을 때는 열무 국김치나 파김치 혹은 양념 게장 등을 담는다. 
  재료를 씻고 다듬고 하는 사이, 나는 노래를 흥얼거리거나 글감 구상을 한다. 먹기 위해서 음식을 만들기보다, 그 시간을 즐기기 위해서 부엌으로 향한다. 요리(?)는 내게 있어 힐링이다. 대체로 몸보다는 머리를 많이 쓰는 편인 나는 이런 시간이야말로 황금같은 휴식 시간이다. 
  언젠가, 부부 모임에 가서 부인들과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눌 때였다. 나이 들어 가니, 청소고 요리고 다 하기 싫단다. 나는 내 느낌 그대로 청소나 요리하는 건 힐링이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 중 한 명이 나를 ‘빤히’ 쳐다 봤다. 정말 기분  나쁜 눈빛이었다. 유난히 크고 땡그마한 그녀의 눈빛에 의심과 적의가 어른댔다. 
  그녀는 음식도 잘 하고 남편을 떠받들어 산다고 소문난 현모양처(?)였다. 그러나, “나이 들어 가니, 청소도 요리도 하기 싫다”고 제일 먼저 입을 뗀 장본인이다. 정말, 식구 먹이는 게 즐거워서 하는 줄 알았는데 그 말을 듣고 놀랐다. 
  음식이야 말로 사랑은 필요 충분 조건 아닌가. 그렇다면, 그녀는 밥상을 차릴 때도 어쩔 수 없이 ‘의무’로 해줬던가? 아니면, 그동안 너무 봉사(?)를 많이 해서 지쳐버린 것인가. 그녀에 대한 아름다운 환상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무엇을 하든지, 놀이가 되어야지 노동이 되어선 안된다는 게 내 지론이다. 
  그녀가 나를 빤히 쳐다 본 것은 아마도 아침마다 남편이 밥을 해준다는 소문 때문인 듯했다. 게다가, 가게를 하고 부터는 저녁까지 남편이 해다 바친다는 소문이 부인들 사이에 떠돈 모양이다. 
  물론, 나는 모닝 커피에 아침 밥(?)을 얻어 먹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건 동물 밥 주기 위해서 새벽 일찍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남편의 생활 습성 때문이지 ‘사랑’ 때문이 아니다. 이건, 훗날 한 에피소드를 통해 확인한 사실이다. 
  저녁밥도 아내가 예뻐서 해다 바치는 게 아니다. 넓은 땅 타령을 하는 남편을 위해 도심에서 뚝 떨어진 동네에 과수원 하던 집을 사고 보니 다운타운 가게가 아침 저녁 운전 거리 네 시간으로 멀어졌다. 일에 시달리고 교통량에 밀려 축 늘어져 집에 오면 저녁 여덟 시. 자연히, 은퇴하고 하루종일 집에 있는 남편이 저녁 밥을 짓게 되었다. 다행히, 남편은 빵도 잘 만들고 이것 저것 해 먹는 걸 좋아 했다. 
  하지만, 주말엔 분명히 내가 밥을 하고 반찬도 여러 가지 한다. 내가 얻어 먹는 아침이래야, 샌드위치나 샐러드 아니면 오트밀이나 삶은 밥 정도다. 저녁도 부대찌개 하나 혹은 미역국이다. 
  사실, 요리사도 아닌 남자가 음식을 하면 얼마나 하겠나. 그나마 마다 않고 해 주는 게 가상하여 고마워할 뿐이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엔 내가 나선다. 젓가락이 어디로 가야할 지 모를 정도로 차려 낸다. 이때만이라도 제대로 먹어보자는 심사다. 
  - 아니, 언제 이렇게 다 했어?
  - 내 별명이 ‘동시동작’이잖아!
  부부 밥상 머리에서 오고 가는 이런 얘기를 그녀는 모르리라. 가족을 ‘식구’라고 부르는 것처럼 밥을 함께 나눈다는 건 ‘관계’의 결속이다. 여기에 ‘사랑’이 빠진다? 게다가, 귀찮기 까지? 나로선 상상하기 힘들다. 
   어느 날인가, 그날따라 몸이 너무 피곤하고 에너지가 없어 집에 오자마자 카우치에 드러누웠다. 잠시 쉬는 사이, 부엌에서 천둥 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니, 밥 먹을 생각 안 하고 뭐하는 거야?” 짜증나는 목소리였다. 
  그 순간, 나는 남편이 습관이나 의무에 의해 기계처럼 부엌을 들랑거렸다는 걸 알았다. 사랑으로 하는 사람은 절대 짜증내지 않는다. 밥이고 뭐고 다 귀찮았지만, 어쩔 수 없이 일어났다. 밥 생각 없다며 힘없는 목소리로 한마디 던졌다. 
  - 사랑으로 해 주는 거 아니었어?
  - 사랑 좋~아하시네!!!
  이 한마디로 사건은 종료되었다. 충격적 진실을 안 이상, 거기에 무슨 토를 달랴. 짜증 나는 사람은 안 하면 되고, 그런 밥 먹고 싶지 않은 사람은 자기가 챙겨 먹으면 된다. 아름다운 오해여, 이젠 안녕. 살다 보면, 아름다운 환상에 금 가는 일이 어디 이 뿐이랴. 부엌을 ‘성소’로 믿는 나에겐  남편이 버럭 지른 그 한마디가 작은 파문을 일으켰다.
  종종 어머니께 들릴 때면, 우정 어머니가 밥상을 차려 주시도록 카우치에 드러누워 있을 때가 많다. 어머니는 언제나 해 먹이는 걸 좋아하셨다. 맛있게 먹었다는 그 한 마디보다 노후의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는 말은 없었다. 노모의 밥상을 앉아서 받는 건 욕 먹을지 모르나, 내 나름의 효도였다. 나의 최상 행복도 자식 입에 맛난 음식 넣어주는 거다. 
  ‘밥상이 약상’인 이유는 어디 맛있는 요리가 그득하기 때문이겠는가. 해 주는 사람의 손길에 사랑이 담겨 있기 때문이 아닌가. 그게 바로 ‘밥그릇을 바지런히 섬기는’ 아내의 즐거움이요 엄마의 기쁨이 아닐까.       
  이런 마음으로 올해부터는 해마다 딸 생일에 엄마표 밥상을 차려 주기로 했다. 1월 24일이 서른 아홉 번째 맞는 딸 생일로 목요일이었다. 새벽 출근이라, 아침을 잘 안 먹고 다니는 딸을 위해 수요일 저녁 밥상을 차려 주고 싶었다. 
  23일, 부랴부랴 저녁장을 보고 코비나 딸집으로 향했다. 저녁 여덟 시에 집에 도착한다는 얘기를 들은 터라, 마음이 급했다. 소고기를 넣은 미역국을 끓이고 먹고 싶다는 명태전과 삼색 나물 등 몇 가지 음식을 만들어 급히 차려냈다. 
  딸은 누가 이 밤길 달려와 내 생일밥 해 주겠냐며 감동했다. 그 모습을 보는 나도 흐뭇했다. 음식은 서로를 끌어 당겨주는 강력한 사랑의 도구다. “밥 한번 먹자”란 말은 가장 다정한 인사말이다. 부부 사이라도 밥을 가지고 장난치는 벌은 가장 치사하다. 몇 번을 더 해 줄지 모르지만, 훗날 내 떠난 뒤에도 기억될 사랑의 선물이 아닐까 싶다. 그러고 보니, 30여 년 전 딸아이 돌상도 내가 직접 차려낸 기억이 난다. 
   또 한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우리 성당 앞에 사시던 황 가스발 할아버지 댁에는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 거기엔 언제나 사랑이 넘치는 밥상이 있었다. 밥 하나에 국 한 가지 그리고 김치. 그 뿐이었다. 그러나 국도 김치도 일미였다. 뿐인가. 황 할머니는 항상 성호를 긋고 밥을 퍼 주셨다. 그 ‘성스러운’ 밥을 받을 때마다 얼마나 가슴 뭉클했는지 모른다. 지금은 두 분 다 돌아가셨지만, 그 분들이 차려준 소박한 밥상과 조용히 성호를 긋던 모습은 잊혀지지 않는다. 
  오늘은 달래와 쪽파 무침으로 정했다. 얼마 전에 제인 집에 갔다가 밥 비벼 먹어본 뒤 꿀맛이라, 나도 난생 처음 달래를 사 왔다. 음식을 할 때는 종종 응용하기를 좋아한다. 무우채 무침에 미나리를 섞거나 수제비 할 때는 미숫가루나 17곡 가루를 넣어 반죽을 하는 식이다. 쑥가루나 비트로 색을 내 보기도 한다. 색다른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이번엔 달래 무침에 쪽파도 같이 넣어 보기로 했다. 쪽파 네 단 다듬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다. 뿌리를 낱낱이 씻다 보니 시간이 엄청 걸렸다. 하지만, 지금껏 써 온 이야기가 다 쪽파를 다듬으며 떠올린 기억들이니 고맙다 해야할 일이다.  
  매운 걸 못 먹는 언니를 위해 고추 가루를 약간 적게 넣었더니, 맛이 좀 덜 했다. 사진을 찍어 보니, 비쥬얼도 별로다. 어쩌면, 고춧가루 양의 문제만은 아니리라. 음식은 손끝 맛이라는 비의가 있는 법. 역시 요리사 제인이 나보다 한 수 윈가 보다. 하지만, 사랑 듬뿍 담긴 내 달래 무침을 언니도 반겨 주리라. 
  달래 쪽파 무침으로 일주일이 즐겁겠다. 따뜻한 쌀밥에 비벼 먹는 맛. 어릴 때 참기름 한방울 똑 떨어뜨려 ‘왜간장’에 비벼 먹던 보리밥이 향수를 자극한다. 달래 쪽파 비빔밥엔 봄향내도 묻혀 오겠지. 덤으로 얻는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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