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망자의 벗’ 김로마노

2019.05.06 14:22

서경 조회 수:5

망자의 벗 1.jpg



 김 로마노씨로부터 오랜만에 전화가 왔다.
그는 1995년부터 지금까지 망자들과 유족들을 위하여 홀로 봉사하고 계신 분이다. 
지금은 서로 다른 도시에 떨어져 살지만, 이민 초창기 때부터 그의 순수한 인품이 좋아 각별히 정을 느껴 온 사람이다. 
- 요안나 자매님, 오래간만입니다. 내일이 지 수연 베로니카 어머님 7주기죠?
- 세상에! 잊지도 않고 저희 어머님 기일까지 기억해 주시네요?
- 제 망자 명부에 다 기록되어 있어요. 유족들이 잘 기억하고 계시겠지만, 저도 함께 추모하는 마음으로 전화 드리는 겁니다.
- 로마노씨! 로마노씨는 정말 ‘망자의 벗’입니다.
- 옛날에, 제 인터뷰 기사 쓰실 때 ‘망자의 벗’이라고 타이틀 붙여 주셨지요.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 무슨 소리! 우리가 정말 고맙지요. 로마노씨! 어쩌면 그렇게 변함없이 봉사하실 수 있어요? 장례식부터 묘지 참배까지 그리고 수 년에 걸쳐 묘지 돌보기까지......
- 하하! 그러게 말입니다. 저도 이렇게 까지 오래 할 줄은 몰랐지요. 망자 기록부는 10000 명이 넘은 지 오래 되었구요, 십 년 전에 시작한 제 봉사일지 블로그 뷰도 오십 만이 넘었더라구요?
- 아유, 정말 대단하십니다! 
- 뭘요,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죽는 날까지 이렇게 봉사하다가 가야지요. 
정말이다. 
김 로마노씨는 대단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는 아무도 하지 않는 일을 하는 특별한 사람이다. 
병자 방문이나 장례 미사까지는 성당 레지오 단원들도 열심히 봉사하지만, 막상 장례식이 끝나면 그야말로 고인은 ‘망자’가 되어 사람들에게 잊혀진다. 
자식들도 일년에 한 두 번 묘소를 찾을까 말까하는데 그는 자식들보다 더 자주 묘소를 방문하고 가꾸어 준다. 
무연고자 묘소가 있는지, 잡초가 무성하지 않는지, 묘석에 먼지가 끼여 이름조차 묻혀버린 건 아닌지, 비온 뒤 묘소가 마모되지는 않았는지......
그는 묘소 주변 잡초를 제거해 주고, 묘석을 닦아주고, 무릎 바지에  풀물이 들도록 망자를 위해 기도를 바친다. 
뿐만 아니라, 망자 기일이 되면 편지나 전화로 이렇게 추모의 마음을 잊지 않고 보내준다. 
돈 한 푼 주는 이 없고, 박수 쳐 주는 사람 하나 없어도 그냥 묵묵히 외로운 망자의 벗이 되어 준다. 
언젠가, 우리 시어머님 묘지 앞 꽃병에 그의 기도문이 들어 있어 모두를 놀라게 했다. 
우리가 뜸한 사이, 그는 벌써 다녀갔을 뿐 아니라 기도까지 바치고 라미네이트한 기도문을 꽃 대신 바치고 갔다. 
이렇게 돌 보는 묘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묘소 참배 구역도 한 두 군데가 아니다. 
이젠 참전 장병들 묘소와 아기 묘소들까지 돌보니 보통 바쁜 게 아니다. 
생업에 종사하고 있으면서도, 언제 그 많은 묘소를 다 둘러 보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묘지 옆에서 3년상을 치른 옛 효자들보다 더 지극정성이다. 
본인이 아는 한, 그 망자를 추모하는 마음은 해가 거듭되어도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해마다 그러하듯이, 4월 26일 어머님 7주기를 맞아 어김없이 자기 블로그에 사진과 기일을 추모하는 글을 올렸다. 
편지 보낸 기억도 없는데, 나의 감사 편지와 CD까지 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고이 간직하고 있었다. 
그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사랑하고, 잊혀진 목숨까지도 귀히 여긴다.
망자의 벗, 김 로마노!
난 그의 이름을 잊지 않을 것이다.
‘죽을 때까지’가 아니다. 
‘죽음 이후에도’다. 
왜냐하면, 내가 죽은 후에라도 그는 나의 이름을 기억할 것이며 호명해줄 것을 믿기에 . 
그의 망자 명부에 이름이 오른다는 건 주님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는 것만큼이나 영광스러운 일이다. 
잊혀진 여인이 가장 불쌍한 여인이라면, 적어도 로마노씨가 나보다 먼저 죽지 않는 한 나는 잊혀진 여인이 아닐 것이기에 죽어서도 행복한 여인이 되는 거다. 
로마노씨!
죽으면 이내 잊혀질 사람까지도 호명해 주고 그들의 기일까지 기억해 주는 그 마음 그대로 안고 주님 앞에 가서 큰 상 받으세요. 
세상의 눈, 세상의 말에 상처 입지 마세요.
자기들이 하지 않는 일이 낯설 뿐이겠죠. 
선의의 마음과 행동이 설령 이해 받지 못하더라도 섭하게 생각지 마세요.
저 위에 계신 분과 함께 계시는 망자들이 흐뭇한 미소 지으며 내려다 보고 계실 거에요. 
힘 내시고, 건강 잘 지키셔서 기쁜 마음으로 봉사하시길 빌어요. 
힘찬 응원을 보냅니다.

 
(사진 설명 - 김 로마노씨가 블로거에 올린 어머님 추모 사진과  '대한 장의사' 수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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