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특별 방문객 K

2019.05.30 11:43

서경 조회 수:7


 특별 방문객.jpg


    1980년대 중반, 어느 초여름 오후였다.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같은 성당 교우로 아주 신심이 돈독한 가밀라씨였다. 
  - 요안나씨! 누가 아기를 입양하고 싶다는데 좀 도와 주실 수 있나요?
  - 아기 입양?
  뜬금없이 묻는 질문에 잠시 의아했으나 곧 떠오르는 일이 있었다. 
  - 누군데요? 
  - 네, 저하고 같이 일하고 있는 직원입니다. 아주 성실한 분이세요.
  - 그래요? 
  - 제가 요안나씨 전화번호를 그 분께 드려도 될까요? 
  - 네. 가밀라씨가 믿을만한 분이라면 일단 만나 보죠. 도울 일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좀 뜻밖의 부탁이었지만, 홀트 아동 복지 센터 이소장님을 떠올리며 수화기를 놓았다. 
  미국 오기 전, 근로청소년센터에서 외국 신부님과 일할 때 여러 계층에서 사회 봉사하시는 분들을 만났다. 이소장님도 그 중의 한 분으로 아주 명랑 쾌활한 분이셨다. 가밀라씨가 그 분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다음 날, 입양을 하고 싶다는 분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젊은 남자분 목소리였다.
  - 아, 입양을 하고 싶다는 분?
  - 네. 아내가 아기를 낳지 못해 입양하려 합니다.
  - 실례지만, 아직 젊은 분 같은데 좀더 기다려 보시죠? 
  - 아닙니다. 아내는 아기를 낳을 수 없는 몸입니다.
  - 그래요? 의사 진단서가 있나요?
  - 네. 만나서 상세한 이야기 드리고 싶습니다. 
  - 알겠습니다. 안 바쁘시면 저희 집으로 오시죠. 
  입양을 한 뒤, 뜻밖에 임신이 되어 자기 아이를 가지게 되면 파양하는 경우도 있다기에 제일 먼저 확인하고 싶은 문제였다. 
  그가 왔다. 참한 얼굴에 삼십 대 전후반으로 보이는 젊은이였다. 다만, 핏발 선 그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하지만, 가밀라씨가 믿을 만한 사람이라 소개했기에 마음 편한 상태에서 대화를 이어갔다. 
  K라고 소개한 그는 왜 자기 아내가 아이를 갖지 못하게 되었는지 자초지종 설명을 했다. 그것은 마치 소설 속 이야기 같이 비현실적으로 들렸다. 
  뉴욕에서 리커스토어를 운영하던 중 권총 강도를 만났다고 한다. 그것도 한 명이 아닌 다섯 명의 권총 강도가 들이닥쳤다. 더우기, 생각지도 못했던 백인 떼거리 강도다. 아내가 비명을 지르자, 제풀에 놀란 강도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아내를 향해 쏘았다. 아내는 만삭의 몸이었다. 
  풀썩 쓰러지는 아내를 보자, 흥분한 그는 숨겨 두었던 권총을 빼들고 바로 총격전을 벌였다. 경찰은 이미 가게 주변을 포위했으나, 총격전이 벌어지고 있는 가게 안으로 뛰어들진 않았다. 누군가 밖에서 한국말로 소리쳤다.
  - 천정을 향해 한 발 쏘세요!
  직감적으로 그는 마지막발을 천정에다 쏘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기도 총상을 입었지만 강도 다섯 명도 모두 총을 맞았다. 문제는 K는 살았고 강도는 모두 죽었다. 일등 명사수가 아닌 다음에야, 1:5의 총격전에서 어떻게 살아날 수 있었는지 놀랍기만 했다. 
  하지만, 후유증은 컸다. 그는 법정에 서게 되었고, 아내는 목숨을 건졌으나 뱃속 아이는 잃었다. 게다가, 그 사건으로 아내는 영구 불임 진단을 받았다. 지리한 법정 공방 끝에 정당방위로 재판은 끝났다. 천정에 쏜 한 발의 총알이 재판을 유리한 쪽으로 몰고 갔다. 
  사건 이후로 아내는 우울증에 빠졌고, 뉴욕에 살 수도 없어 여기 LA로 터전을 옮기게 되었단다. 이소장님께 추천해 줘야 하는 입장이라, 이런저런 송곳 질문을 많이 던졌는데도 그는 명쾌히 대답을 해 주었다.
  - 세상에! 명사수였나 봐요? 어떻게 다섯 명을 다 죽일 수 있나요? 
  - 네. 군에 있을 때도 명사수였어요. 
  - 아, 그렇군요! 경찰도 놀랐겠어요. 
  - 네... 그랬나 봐요.
  어느 정도 대화를 통해 친밀해 지자, 내가 조심스레 물었다. 눈에 선 핏발이 궁금했다.
  - 그런데 봉제공장 일이 많이 힘드세요? 왜 그리 눈에 핏발이 서 있어요? 
  - 아, 이거요?
  그는 손가락으로 자기 눈을 가리키더니 잠시 침묵을 지켰다. 마치, 물어선 안될 질문을 한 듯 미안했다. 
  - 혹, 5.18 광주 사태 들어 보셨어요? 
   뜻밖의 질문이다.
  - 5.18 광주사태? 진압 과정에서 엄청 사람들도 많이 죽고 공수 부대가 잔인했다는? 공수부대원한테 약 먹였다는 말도 있더라구요?
  - 네... 제가 바로 진압에 동원되었던 공수부대원이었어요. 
  - 네?
  - 그때 하도 사람을  많이 죽이고 죽은 사람도 많이 봐서...
  - 그랬군요...
  - 그때 선 핏발이 여지껏 없어지지 않네요...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했죠...
  그러고 보니, 월남전에 참전하고 돌아온 오빠의 눈에 선 핏발과 비슷했다. 그가 명사수일 수밖에 없는 이유도 이해가 갔다. 
  - 군인들이야 명령에 따라야 하니 어쩔 수 없었겠죠! 국민을 향해 총을 쏘라고 지시한 사람이 나쁜 놈이죠!  

   화가 나서 한마디 불쑥 뱉었다. 사실, 명령에 따른 군인이 무슨 죄가 있겠는가.
  - 그렇긴 하지만... 마음이 무거워 한국에 그대로 살 수가 없더군요. 그래서 미국으로 이민 왔는데... 
  - ......
  정말 할 말이 없었다. 역사의 비극이요, 개인의 비극이다. 그래도 새 삶을 일구어 보려고 미국으로 이민 오고 큰 일을 당한 뒤 다시 LA로 터전을 옮겨 입양까지 하려는 K.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연민이 솟구쳤다. 
  눈을 감는 그 날까지, 우리는 삶의 여정을 끝낼 수 없다. 어떤 고난을 당하더라도 삶은 견디어 내야 한다. 죽음 없는 부활이 없듯이, 광야의 여행 없이 젖과 꿀이 흐르는 복지로 입성할 수가 없다. 그것이 삶의 공식이고 우리의 엄숙한 숙명이다. 
  이소장님 연락처를 전해주고 우리는 헤어졌다. K가 직장도 옮기고 나도 이사를 가는 바람에, 입양 절차를 시작했다는 말만 듣고 소식이 끊겼다. 
  까마득히 잊고 있던 삼십 여 년 전 이야기가 다시 생각난 것은 서른 아홉 번째 5.18이 돌아 오고 충격적 증언들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현장 당사자들의 증언은 쏟아져 나오는데 누가 과연 책임지고 이 사건의 퍼즐을 온전히 완성해낼 지 알 수 없다. 
  독재에 항거하여 민주화 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들어 선 지금, 그 진상이 낱낱이 파헤쳐져 벌 받을 사람 벌 받고 한 맺힌 사람은 그 한을 반이라도 풀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직도 좌파 우파 가르기에 혈안이 되고, 독재에 항거한 시민을 ‘폭도’라고 규정짓는 파렴치한 자들이 판 치는 세상. ‘전두환 찢어 죽여라!’ 고 쓰인 현수막에서 광주 시민의 핏빛 어린 절규를 읽는다. 
  일말의 회개도 후회도 없는 당시 보안 사령관 전두환. 자서전에도 자기 합리화를 위한 거짓말로 점철한 전직 대통령 전두환. 입만 벙긋하면 5.18을 민주화 항쟁이 아니라 불순분자들이 일으킨 폭동이라고 말 하는 그와 옹호하는 무리들. 
  그는 자기 체면에 걸려, 팔십 노인에 접어 든 지금까지도 망상 프레임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것이 자기 철학이고 자존심이라 굳게 믿는다. 왜, 김대중 대통령은 특별 사면을 해 주어 광주 시민에게 천추의 한을 남기고 갔는지!
  물에 빠진 개는 건져 주어야 한다지만, 물에 빠진 개도 개 나름이다. 미친 개는 절대 건져 주어서는 안된다. 그 개에게 물리기 때문이다. 한 명의 전직 대통령 목숨은 중요하고 그에게 죽임을 당한 수 백 수 천의 생목숨은 귀하지 않단 말인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회개라는 전제 조건없이 용서나 화해가 이루어진다면, 그건 낭만적 유희에 불과하다. 
  18년 독재의 군화 속에 짓밟혀 죽어간 민주화 영혼들이여! 신군부 독재 정권을 정당화 하기 위한 시나리오에 희생 당한 5.18 영령들이여! 영면하지 마시고 두 눈 부릅 뜬 채 우리 나라를 지켜 주소서!
  구조적인 부조리를 없애고 국민을 귀히 여기는 정부가 탄생할 수 있도록 우리를 위해 빌어 주소서! 나라가 평안하고 국민이 행복하게 사는 그 날, 순국 영령들이여, 그때 편히 영면하시고 영생복락 누리소서! 
 
(사진 : 방송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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