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만섭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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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재미, 있는 사람 없는 사람

2019.06.02 17:17

라만섭 조회 수:4

재미 있는 사람, 없는 사람

살면서 조우하게 되는 여러 사람들 가운데에는 재미있는 사람도 있고 재미없는 사람도 본다. 만나면 아무런 부담 없이 그냥 좋고 반가운 사람이 있다. 그와 함께하는 시간은 언제나 즐겁고 행복하다. 그는 재미있는 사람이다.

 

삶에 있어서 재미의 실종이야 말로 지루하고 단조롭고 무미건조한 행위의 반복일 뿐이다. 즐거움을 잃어버린 사회를 한번 떠올려 보라. 상상만 해도 우리를 슬프게 한다. 어떠한 이유로도 유머가 희생물이 돼서는 안 된다. 우리 안에 깊이 자리 잡고 있는 태생적 재미의 본성을 강제로 억압하면 안 된다. ‘늙어가기 때문에 못 노는 것이 아니라, 놀지 않기 때문에 늙어가는 것이다.(We don't stop playing because we grow old; we grow old because we stop playing...') 아일랜드 출신 극작가 죠지 버나드 쇼의 말이다.

 

목적을 추구해가는 중에도 유머의 여유를 잃으면 재미가 없다. 유머와 재미는 끝까지 잃지 말아야 하겠다. 재미는 삶의 활력소이기도 하다. 삶의 을 유지하기 위하여서도 재미는 필수적이다. 여기서 말하는 재미란, 그저 쾌락위주의 삶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재미가 있으면서도 그 안에 이 담겨 있는 삶의 태도를 일컫는다. 재미와 뜻의 절충 형 이라 한다면 이해에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요즘 젊은이들은 흔히 욜로(YOLO)를 강조 한다고 들었다. 영어의 You only live once 에서 머리글자를 따온 것이라 한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나는 욜로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를 제대로 모른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그에 관한 논평을 삼가 하려고 한다.

어떤 이유에서 이건, 만나서 부담스럽거나 이해하기 어렵고 혐오감을 주는 상대와는 긴 시간을 함께 하기를 꺼리게 된다. 대화 내내 자신의 홍보에만 열을 올리는 사람을 더러 본다. 잠재해 있는 속물 근성의 우회적 발현일까. 특별한 거부감은 없음에도, 그냥 재미가 없는 사람도 있다. 고달픈 인생 여정에서 때때로 느끼게 되는 재충전을 위한 감각 중추가 없어 보인다.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오직 자신의 인생관 만이 유일한 진리인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도 있다. 고집 불통의 나르시시스트(Narcisist)이다. 대체로 이런 사람과의 사이에는, 대화를 위한 공동의 광장이 존재할 수 없으므로, 원만한 소통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의식(대화)의 단절을 불러오는 이들은 결과적으로 재미없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재미없게 보여도, 내실은 투철한 철학과 가치관으로 무장한 채, 그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이들을 발견할 때가 가끔 있다. 부조리와 불공정에 맞서 싸우는 정의감 넘치는 야심찬 사람들, 그들은 신념을 가지고 고통을 참으며 말없이 일하는 사람들이다. 이상(理想)의 실현을 위해, 재미 보는 일을 잠정적으로 절제하고 희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일의 우선순위의 결정은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이며, 그 과정에는 당연히 고난의 길도 있을 것이고 실패의 쓰라림도 맛 볼 것이다.

 

신념 앞에서는 고난도 외롭지 않고 실패도 두렵지 않다. 그들 앞에는 재미있는 내일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삶을 지탱해 주는 힘은, 그들이 지향하는 목표와 신선한 동기 부여 에서 나온다. 그들은 절제의 삶을 통하여, 인생의 을 추구하는 이상 주이자 들이다. 사실 인간의 가치는, 목적이 이끄는 삶(Purpose-driven-life)에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재미없는 사람, 재미있는 사람들이 섞여 사는 세상이다. 싫던 좋던 서로 이해하고 도우며 공생해 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어느 한쪽만의 희생을 강요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절제와 절충이 공존한다고 하겠다. 여태까지 그래온 것처럼, 가치()를 추구해 가는 가운데 재미()와도 함께 하면서 살아가는 길을 앞으로도 계속해서 모색할 수 있기를 나는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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