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만섭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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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멋을 좇아서

2019.08.08 04:58

라만섭 조회 수:13

멋을 좇아서

 

이 글을 쓰면서, 몇 해 전에 맛있는 사람....’, 그리고 올봄에는 재미있는 사람.....’이란 주제로 쓴 수필이 생각난다. 그러면서 멋을 좇아서라는 제목의 이글도 본질적으로는 그들과 일맥상통 하지 않겠나 생각하게 된다.

 

왜냐 하면 재미와 맛의 추구는 결국 생태적으로 이라는 부산물을 낳게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맹목적인 쾌락위주의 삶이 아닌 이상, 절제와 절충이라는 과정을 거쳐, 뜻있는 가치설정의 필요성이 자연히 대두되게 마련이다.

 

한국의 민중서림이 펴낸 국어사전은 을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다. ‘차림새, 행동, 생김새 등이 세련되고 아름다우며, 격에 어울리게 운치 있는 맛이라고. 여기서 우리 관심의 대상은, 차림새나 생김새 같은 외양보다는, 주로 세련되고 아름다운 행동 또는 격에 어울리게 운치 있는 에 있다고 하겠다. 멋이란 어떤 특정의 영역에만 해당하는 좁은 개념이라기보다, 생활 전반에 걸쳐 세련되고 운치 있게 작용하는 보다 넓은 의미의 개념이라 하겠다. 멋있는 글도 당연히 거기에 포함되어 마땅하다고 본다.

 

멋은 이처럼 광의의 개념이라서 그런지, 뚜렷하게 그 뜻을 정의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1958년에 한국에서 그에 관한 논쟁이 있었다. 멋은 조선민족만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정서라고 주장하는 이희승(李熙昇)씨는 옷고름 포르르 바람에 날리는 여인의 모습이나, 어깨를 우쓱이며 엉덩춤을 추는 고유의 풍속에서 한국적인 멋을 본다고 했다. 이 같은 한국 고유의 멋은, 단지 댄디(dandy)하다거나 포피쉬(foppish)하다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독특한 맛이 깃들어 있다고 그는 주장한다. 이에 반하여 조윤제(趙潤濟)씨는 멋은 어느 문화나 다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것으로, 가령 모닝 코트에 씰크햇을 쓰고 스틱을 흔들며 걸어가는 영국 신사의 모습에서도 멋을 발견할 수 있다고 반박한다.

 

사람에 따라서 보고 느끼는 멋에 대한 감흥에도 차이가 있는 것을 본다. 개인마다 가치관이나 인생관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리라. 필자에게 개인적으로 멋있게 반영되는, 아주 평범한 매력 포인트(십계)를 가진 유형의 사람을 아래에 적어 본다.

 

1, 자연을 진정으로 사랑할 줄 아는 사람

2, 잘못을 나의 탓으로 돌릴 줄 아는 사람

3, 아집을 꺾을 줄 아는 사람

4, 역지사지(易地思之) 할 줄 아는 사람

5, 꾸밈이 없이 자연스러운 사람

6, 필요한 희생(손해, 양보)을 감내 할 줄 아는 사람

7, 소리 내어 웃을 줄 아는 사람

8, 미소와 유머감각을 잃지 않고 분위기에 어울릴 줄 아는 사람

9, 객관적으로 투영(投影)된 자신의 모습을 볼 줄 아는 사람(주제 파악)

10, 속물근성(俗物根性, Snobbism))을 억제할 줄 아는 사람 등등.......

 

이러한 매력 포인트를 끄집어내기는 쉬워도, 스스로 간직하기란 쉽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나는 이런 매력을 가진 사람을 매우 귀하게 여긴다. 나에게 있어, 그들은 참 멋을 아는 사람들로 비친다.


하나는 감성적()이고 다른 하나는 감각적()이라는 뉴앙스가 있을 뿐, 멋은 맛과 어감이 비슷하다. 연혁(沿革)으로 보아, 멋은 맛에서 유래됐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꾸밈이 없는 자연스러운 인간미()를 풍기는 사람은, 주변에 훈훈한 평화의 분위기를 선사한다. 그런 사람과의 사이에는 울타리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201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