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과 반보기

2019.09.13 04:41

김학천 조회 수:89

  한 번 시집간 딸은 출가외인(出嫁外人)이라 해서 시집간 딸과 친정 어머니가 마음대로 볼 수 없었던 조선시대, 일년 중 딱 하루 모녀가 제각기 음식을 가지고 양쪽 집의 중간쯤 되는 곳에 만나 회포를 푸는 애절한 모습을 담은 노래가 있다.
  하도 하도 보고 시퍼/반보기를 허락 받아/ 내 몸이 절반 길을 가고/친정 어메 절반을 오시어/ 새중간 복바위에서/눈물 콧물 다 흘리며/엄마 엄마 울 엄마야/날 보내고 어이 살았노.’ 일명 ‘반보기’의 일부다.
   서로가 절반을 걸어와 만난다 하여 반보기, 다른 가족은 볼 수 없어 반보기, 눈물이 앞을 가려 얼굴의 반밖에 못 본다 하여 반보기라 한 이른바 눈물의 상봉 ‘반보기’라는 풍속이다.  헌데 중간에서 만난다 하여 ‘중로상봉(
中路相逢)’이라고도 한 이 풍속은 추석을 전후해 이루어졌다.    
   유교 경전 '예기'(禮記) '봄은 새벽달이 좋고, 가을은 저녁 달이 좋다'(春朝月 秋夕月)이란 구절이 나온다. 저녁 달이 뜬 가을밤을 의미하는 추석은 일년 중 입추와 입동 중간에 있는 날로 가을의 한가운데에 있다 하여 중추절(仲秋節)이라고도 하고 가운데에서도 크다 하여 한가위 그리고 가위를 이두식 한자로 '가배'(嘉俳)’라고도 한다.
  가배란 말은 여러 문헌에 나오지만 그 중 고려가요 동동에도 나온다. 동동은 1 12달에 맞춰 풍속세시를 그린 노래인데 주로 남녀간의 여러 가지 느낌을 읊었다. 그 중8월의 내용은 이러하다. ‘8월 보로만 아으/가배나리마란/니믈 뫼셔 녀곤/오날날 가배샷다/아으 동동다리. 오늘 말로 풀이하면 8월 보름은 아아, 한가윗날이지마는, 임을 모시고 지내야만 오늘이 뜻 있는 한가윗날이네.’ 그리운 님이 더욱 간절해지는 때란 거다.
  또한 한가위에는 만남의 기원도 있다. 신라 유리 왕은 도성 안에 있는 여자들을 두 편으로 나누어 7월 보름날부터 밤늦게까지 길쌈을 하도록 시켰다. 이렇게 한 달을 계속한 뒤 8월 보름날인 한가위에 승부를 가려 진 편이 음식과 술을 마련해 이긴 편에 대접하도록 했다
  이 때 진 편에서 한 여자가 일어나 춤을 추며 탄식하기를 ‘會蘇會蘇(회소회소)’라 하였는데, 그 소리가 구슬프면서도 아름다워 후에 사람들은 이를 노래로 지어 ‘회소곡’이라 했다. ‘회소’는 ‘아소(아소서)’ 혹은 ‘모이소()’라는 의미라고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추석은 남에 대한 배려도 담겨있었다. 주인들은 여름 내내 고생한 농민들과 추석 음식을 장만 못하는 가난한 이들에게 음식을 대접해 주었으며 머슴들에게도 새 옷, 추석빔을 마련해 주기도 했다. 

  이렇듯 한가위는 님을 그리워하고 만남을 바라는 동시에 남에게 인정을 베푸는 날이다마침 오늘은 추석이다. 흩어졌던 가족이나 친지들이 모여 서로 담소를 하며 정도 나눌 것이다. 하지만 스트레스와 번거로움 등으로 ‘나 홀로 추석’을 즐기는 이도 있겠으나 어쩔 수 없이 홀로 지내는 이도 많을 것이다.   
  또한 이런 저런 이유로 상처받고 서로 외면하고 사는 너와 나에게 
'반보기'는 서로가 반씩 물러나야 한다는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서로가 반 걸음 물러나고 상대에게 반 걸음 다가가려는 마음이 바로 갈등과 오해를 풀 수 있는 반보기의 교훈이 아닐는지

  한번 결혼하면 친정에 가기가 쉽지 않았던 당시, 추석 때만이라도 친정 어머니와 회포를 풀도록 한 시댁의 너그러운 배려가 환하고 둥근 추석 달을 통해 오늘 우리 모두에게 비추어 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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