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찰나에 일어난 사고

2019.10.19 11:28

서경 조회 수: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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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나에 2.jpg


아차하는 순간에 사고는 일어났다.
방심한 사이, 한순간에 엎어져 왼쪽 얼굴을 모질게 다쳤다.
얼마나 아픈지, 얼굴을 감싸고 길바닥에 주저 앉아 한참을 일어나지 못했다.
광대뼈가 욱씬거리고 입술이 터져 피가 흐르고 금방 부어 올랐다.
머리까지 어질어질해 왔다.
도움을 받고 싶었으나, 오가는 사람이 이 날 따라 한 명도 없었다.
무심한 차량들만 쌩쌩거리며 스쳐갔다.
이 상태로 한 시간이나 밤운전을 해서 집으로 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가까이 사는 제인에게 겨우 전화를 걸었으나, 늘 집에만 있던 제인이 하필이면 합창단 공연차 도로시 챈들러에 가 있다고 한다.
이를 두고 설상가상이라 하는가.
어차피 나한테 달려올 수 없는 상황.  
편한 마음으로 공연하고 오라고 많이 다쳐 길바닥에 주저 앉아 있다는 말은 목으로 삼켰다.
피도 많이 흐르고 통증이 더 심해져 할 수 없이 가게로 다시 돌아갔다.
빨리 얼음찜질이라도 하고 좀 누어 쉬고 싶었다.
매양 다니는 길.
시간도 저녁 아홉 시, 같은 퇴근 시간이다.
평소에는 습관적으로 인도로 올라서던 보도 블럭.
세로 높이가 채 한 뼘도 안 되는 블록에 걸려 엎어지다니!
갑자기 백업하는 내 차에 같이 끌려가며 다리를 다쳤던 사고 이후로 이렇게 크게 다쳐 보기는 처음이다.
그때는 마흔 아홉으로 아홉 수 액땜이라 치고 서늘한 간담을 쓸어내렸다.
두 달을 꼼짝도 못하고 누어 있는 바람에 10파운드가 늘긴 했으나 생명엔 지장이 없었으니 그나마 다행으로 여겼다.
그런데 이 불상사는 아홉 수 액땜도 아니고 뭔가 싶어 화가 났다.
게다가, 큰 행사를 일주일 앞두고 있는 시점이 아닌가.
이 모양 이 꼴로 어떻게 사람들 앞에 서나.
‘사람들 앞에 얼굴을 들 수 없다’는 부끄러움이 아니라, 사고로 사람들 앞에 얼굴을 들 수 없을 수도 있구나 싶어 속으로 쓴웃음이 나왔다.
얼음찜질을 하는 사이, 사고를 되돌아 보았다.
문제는 ‘내 탓’이다.
가로등 불빛이 손짓하는 저 멀리 내 차 파킹랏이 있었다.
인도에 올라 서서 차 열쇠를 꺼집어 내도 늦지 않을 터.
왜 오늘 따라 차도를 건너 인도에 채 오르기 전에 열쇠를 꺼집어 낸다고 핸드백을 뒤적였는지 모르겠다.
한 손엔 런치 박스, 한 손엔 키,
어깨에 사선으로 맨 핸드백.
들고 지고 다니는 게 너무 많았다.
돌부리에 걸려 엎어져도, 한 손이라도 프리 상태였다면 얼굴이 갈리진 않았을 게다.
나이 들면, 잘 넘어지니 손은 언제나 프리로 해야 된다는 말을 언니로부터 들었으나 귓등으로 흘려 들었다.
그게 불찰이라면 불찰이다.
크리스마스 때 딸이 사 준 백팩 형태의 백도 너무 젊은 애들 스타일이다 싶어 한번도 사용하지 않고 두었는데 그것도 후회가 되었다.
사후 약방문이라고 다친 뒤에야 후회막급이다.
하지만, 사고를 통해 얻은 것도 있다.
첫째, 가급적 손에는 물건을 들고 다니지 말 것.
둘째,하늘을 보지 말고 땅을 보고 걸을 것.
셋째, 낮아도 넘지 못할 벽도 있다는 것.
인생살이에 응용해 보면,
첫째, 소유를 줄일 것.
둘째, 이상만 쫒지 말고 현실을 직시할 것.
셋째, 넘지 못할 벽은 돌아서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것.
등등 사유의 제목거리도 많다.
오늘도 내가 엎어진 그 길을 걸어 오며 이 생각 저 생각에 잠겼다.
저 멀리 가로등 불빛이 보이고 내가 가야 할 길은 아직도 남아 있다.
마치, 내 남은 여명의 길을 보여 주듯이.
그러나저러나, 내 남은 여명의 길이 이토록 굴곡없이 곧게 뻗어 나갈지는 미지수다.
다만, 신의 은총을 바라며 겸손되이 땅을 보고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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