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내, 너를 두고 어이 떠나랴!

2019.10.19 06:30

서경 조회 수: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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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너를 두고 2.jpg


어떻게 된 일인지 요즘 따라 이 집 저 집 애완 동물 봐 주러 다니느라 바쁘다.
딸이 여행 가면, 거기 가서 2,3일 고양이 티거와 같이 지내야 한다.
오늘은 여동생이 데스 밸리로 여행을 가면서 강아지를 맡겨 주말을 반납하고 여기 와 있다.
동물을 워낙 좋아하기도 하지만, 인간은 자고로 쓰임새가 있어야 사랑 받기에 마다 않고 봐 준다.
내 눈엔 그다지 사랑스럽거나 예쁘지도 않는데 이름을 ‘예삐’라 지어 놓고 동생은 그저 입에 ‘예삐’를 달고 산다.
같이 있어 보니, 예삐는 진짜 행실이 예쁘다.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게 하나도 없다.
밥을 먹고 있으면, 테이블 밑에서 고고한 자태로 앉아서 기다려 준다.
책을 읽고 있으면, 내 옆에 배를 깔고 누워 세상 편한 마음으로 잠이 든다.
양심의 가책을 느껴, 같이 놀아줄 양으로 “공 가져 오세요!” 하면 비호와 같이 날아 공을 가져 온다.
공을 가지고 놀 때는 나하고 밀당도 한다.
아무리 “공 주세요!”하고 말해도 눈치만 슬슬 보면서 입으로 공을 가지고 논다.
그러다 짐짓 화난 듯한 목소리로 “공 주세요!” 하면 슬그머니 입으로 밀어 내 손 앞에 볼을 대령시킨다.
배 고프면 제 밥 먹고, 목 마르면 물 마신다.
오줌 누고 싶으면 내게 신고할 필요도 없이 뒷마당에 가서 누고 온다.
그러다, 낯선 사람 발자국 소리가 들리거나 이웃집 고양이가 우리 창문 밖에 얼씬대면 가차없이 짓는다.
완전 하이 소프라노다.
요즘 유행어가 ‘각자 제 일 하면 된다’는데, 예삐야 말로 충실히 제 일을 하는 어진 백성이다.
그야말로, 저는 저 할 일 하고 나는 나 할 일 하면 된다.
‘물은 물이요, 산은 산이로다’ 하는 말보다 더 간단한 말이요 진리다.
FM 91.5 클래식 음악을 틀어놓고 저는 저 할 일 하고 나는 책을 읽는다.
책장에서 원동연 박사가 쓴 <5차원 독서치료>를 빼 들고 창가 카우치에 앉아 책장을 넘긴다.
FM에서는 모짤트가 흐르고 바람은 선들선들하게 불어 한갖진 가을 오후.
저나 나나 참으로 평온하고 행복한 시간이다.
동생이 오려면 밤 10시, 좀 늦어지겠단다.
만약, 바쁘면 문을 잠그고 열쇠는 비밀 장소에 두고 가도 좋다고 메시지가 뜬다.
물론, 주말이면 나도 할 일이 있고 또 집에 있으면 편안하기 그지없다.
무엇보다도, 주인 없을 때 제 집을 지키고 있는 건 강아지 임무 중 하나다.
무릇, 모든 생명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났다지만 강아지 주제에 사람을 종살이 시켜서야 쓰나.
이어령 선생 말처럼 사람들은 언젠가부터 God에게 실망하여 God 반대인 Dog와 사랑에 빠졌다더니 정말 그런가.
요즘은 개에게 충성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충성하다 버리는 경우도 많지만, 외로움의 지불 댓가치고는  시간과 돈을 너무 많이 쓴다.
나 역시 이 중의 한 사람임에야 말해서 무엇하랴.
오늘은 큰 맘 먹고 예삐에게 선심이나 한 번 써 볼까.
제 할 일 하도록 기회를 주는 것도 좋은 일이다.
그런데 이 녀석, 내가 일어서서 움직이기 시작하니 저도 바빠진다.
내 가는 곳마다 쫄쫄 따라 다닌다.
커피 물을 내리면 부엌 앞에 앉아 기다리고, 화장실에 가면 화장실까지 따라온다.
샤워를 끝내고 화장을 하니, 훌쩍 장 위에 올라 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핸드백을 열고 열쇠를 챙기니, 카우치에 올라 목을 쭉 빼고 드러 눕는다.
차마 날 붙잡지 못하고 처분만 바라는 것이다.
정수리에 굿바이 키스를 해 주려 얼굴을 들어 올리니 눈빛에 많은 말을 담고 있다.
“조금만 더 있다 가면 안 돼요?”
“가지 마세요!”
“혼자 있기 싫어요!”
혼자 있기 싫어하는 아이와 진배 없다.
아, 이 아이를 홀로 두고 내 어이 떠나랴!
다시 저 곁에 주저 앉았다.
좋아서 머리를 꼬며 배를 내민다.
배를 어루만져주며 혼자 중얼댄다.
“더러운 게 정이라더니, 참 개같은 정이다. 예삐야! 그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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