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드 이야기 3 - 귀여운 약속

2019.10.19 11:35

서경 조회 수: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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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수요일, 쉬는 날이다. 밀린 서류를 정리하려고 이것 저것 뒤지다 보니, 노란 메모 한 장이 나왔다. 삐뚤삐뚤한 글씨, 그러나 따스한 마음씨가 담긴 손녀 제이드의 글이다. 이 메모를 받던 날이 생각난다.
  그 날도, 바쁜 제 어미 대신 내가 학교에서 픽업해서 올 때였다. 하교할 때 쯤이면, 늘 배가 고플 거라 싶어 맥도널드에서 제 먹을 것을 사 가지고 간다. 프랜치 프라이와 치킨 맥넉을 받아 들면 늘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하고 맛있게 먹곤 했다.
  그런데 이 날은 갑자기 가방에서 메모지를 꺼내어 흔들리는 차 속에서 즉석 매모를 써내려 갔다. 내용을 보니, 만약 자기가 커서 의사가 되면 돈을 받지 않고 ‘free’로 치료해 주고 그렇지 않으면 병원비를 대신 지불해 주겠다는 각서였다.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맨날 맛있는 거 사 주고 잘 해 주는 할미가 고마웠던 모양이다. 저도 무언가 보답을 하고 싶어 훗날 할머니가 몸이 아프면 병원비를 내 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나 보다.
  그 따뜻한 마음이 고마워 감동했다. 이럴 땐, 자동적으로 내 특유의 오버 리액션이 나온다.  
  - 와우! 정말?
  - 네! 만약, 내가 의사가 되면 밑에는 병원하고 위에는 식구들과 같이 살 거에요. 그래야 아픈 사람 오면, 빨리 내려 가지요!
  - 오, 그래? 좋은 생각이다! 할머니도 같이 살아도 돼?
  - 물로~오~온!
  기분 좋은 아이의 목소리는 경쾌한 음악이다.
  - 그래, 프로미스 이즈 프로미스! 알았지?
  - 네!
  대답 하나 우렁차다. 그 비싸다는 병원비를 진작에 해결했으니, 이제는 내가 덕담을 해줄 차례다.
  - 제이드! 넌 손이 특별해서 머리나 배에 손만 얹어 줘도 금방 아픈 사람이 나을 거야!
  - 네! 엄마 맛사지 해 주면 손이 진짜 따뜻하대요!
  - 그래! 나도 너가 내 어깨 맛사지해 주면 손이 뜨거워 핫 타올 올린 것같이 시원하더라. 내가 너 어릴 때부터 손이 특별하다는 말 자주 했지. 생각나?
  -네!
  이런 얘기가 오고 간 날이 제이드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제이드는 어느 새 훌쩍 자라, 올 오월에 대학 졸업을 하고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에서 인턴쉽을 끝내고 돌아 왔다.
  제이드는 의사가 되지 않고 글로벌 스터디를 전공해서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는 휴머니스트가 되려 한다. 마음이 착한 제이드에게는 적성에 맞고 보람은 있겠으나, 돈이 되는 직업은 아니다.
  처음에 듣도 보도 못한 전공 과목 소식을 듣고 내심 ‘돈 안 되는 전공이구나!’부터 생각한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우리로 치면, 졸업해도 취직 안 되는 문과가 아닌가.
  딸에게 슬쩍 그런 마음을 비추었더니, “엄마! 저 하고 싶고 잘 하는 거 하면 됐어! 돈은 내가 벌면 되잖아!”하고 일축했다. 미국에 오래 살았어도 아직 한국적 사고방식과 속물근성에 젖어있는 나와는 역시 차원이 다른 아이다. 내가 학비를 대줄 것도 아니다 싶어 입을 꾹 다물고 말았다.
  슬쩍, 장난기가 동해 제이드에게 메모 사진을 찍어 텍스트 메시지로 보냈다.
  -제이드! 이거 적어준 거 생각나? 마음도 고맙고 귀여워서 아직 가지고 있어! 몇 학년 때지?
  마음에 부담을 줄까 봐 한마디 덧붙였다.
  -hahaaha! 아홉 살! 그렇다면 4학년?
  여기서 태어나고 공부한 아이가 ‘그렇다면’이란 접속사까지 구사하면서 한글로 답을 해 오니 기특하다. 어릴 때 미국에 온 제 엄마하고도 그렇지만, 제이드하고 메시지를 주고 받을 때에는 늘 영어와 한글을 혼용하며 쓰고 있다.
  -그렇네? 할머니가 아프면 병원비가 비쌀 건데 우짜노? 휴머니스트는 돈을 많이 버는 job이 아닌데?
  -ㅋㅋㅋㅋ 그럼 난 부자하고 결혼하면 되지롱!
  빵 터지는 농담으로 응수해 왔다.
  -하하하! 아주 좋은 생각이다! 그런데 그런 ‘눈 먼 부자 봉사’가 있을까?
  ‘그런 눈 먼 부자 남자’라고 쓴다는 게 ‘눈 먼 부자 봉사’라써 버렸다. 메시지 하나를 보내도 국어 공부 하라고 신경 써서 보내는데 실수했다. 혹시 ‘봉사’란 말을 모를까 봐 ‘봉사=눈 먼 사람’이라는 부차 설명까지 붙였다.
  -그럼 지금부터 잘 보고 시작해야지?
  농담인지 진담인지 속셈은 다 있다.
  -하이고! 제이드가 다 생각이 있구먼! 믿어도 되겠다! 그런데 나라에서 다 페이해 주니 너가 병원비 걱정 안 해도 되겠다. 난 너 따뜻한 마음만 받을 테니, 부자 남자 찾지 말고 정말 서로 사랑하고 아껴줄 수 있는 사람 만나거라!
  제이드는 내 말에 대한 응답으로 핑크 하트 이모콘을 보내 왔다. 스물 세 살 손녀와 칠십을 가차이 바라 보는 할미와의 농담 섞인 대화는 여기서 끝났다.
  13년 전, 서툰 글씨로 써 준 사랑의 각서. 그 손메모는 레몬과도 같이 상큼한 향기를 담고 오래도록 내 가슴에 남아 있으리라.
  하나밖에 없는 내 손녀, 제이드. 누구보다 마음이 따뜻하고 각별한 아이. 부드럽지만 내적으로는 강한 아이.
  언제나 주님께서 함께 해 주시고 주님 사업의 동력자로 써 주시길 간절히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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