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 칼럼
2019.10.26 21:32

집시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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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작가 미상


로방인(路彷人)

필우(筆友)로부터 편지가 왔다.

보낸이는로방인(路彷人)’이었다.

다름아닌, 길을 떠도는 사람이란 뜻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밝히면 이렇다.

로방인은 캠핑카에서 생활하는 집시맨이다.

 

그의 흰색 편지 봉투는 두틈 했다.

편지 겉봉투에는 다양한 종류의 우표딱지가 붙어 있었다.

그리고 수취인과 발신인의 주소는 고딕체 14포인트 크기로 썼다.

만년필로 쓴 손 글씨였다.

사용된 잉크는 검정색이었다.

편지봉투의 재질이 종이인 탓인가?

잉크가 마치 화선지에 스민 먹물처럼 엷게 흩뜨러져 있었다.

 

아날로그 향취가 묻어있는 주소를 읽으며 생각했다.

서한(書翰)을 띄운 필우는 글을 쓸 때 어느 고즈넉한 장소에 머물고 있었을 것이다.

필우는 그곳에서 ‘40년이 넘도록 사용하고 있다‘는 몽블랑 만년필로 편지를 썼으리라.

아마도 벅찬 감성을 제어하지 못한 채....

 

나는 편지 봉투를 개봉하기에 앞서 주소에 쓰인 잉크 냄새를 맡아보았다.

왜냐하면, 보낸 이의 숨결과 편지를 쓴 장소가 그 속(잉크)에 내재해 있을 것 같았기 때문 였다.

 

편지봉투를 개봉했다.

봉투속에는 4X4 크기의 편지 6장이 들어 있었다.

 

마음이 설레었다.

그리고 꺼내 든 편지를 펼쳤다.

 

편지 속에는 네잎 클로버가 동봉됐다.

컸다.

크레딧 카드 절반 크기만 했다.

뿐만 아니었다.

4HB 스케치 연필로 그린 풍경화도 있었다.

그림을 담은 재료는 담배를 보호하는 은박지였다.

화풍은, 해변가 모래밭 가장자리에 평풍처럼 둘러친 솔숲이었다.

바다 풍광을 필사(筆寫) 은박지 하단 모서리에는 친애하는 화자(話者)에게‘라고 적었다.

사실적으로 묘사된 풍경화는 생동감이 넘쳤다.

방금이라도 허연 포말을 일으키며 밀려온 파도가 정강이를 간지를 것만 같았다.

그림과 네잎 클로버에 번갈아 시선을 주며 필우의 다정다감을 기렸다.

 

파이크 커피

설탕을 넣지 않은 파이크 커피를 마시며 편지를 읽는다.

 

편지 글의 서두는 이렇게 전개됐다.

 

작가 선생.

무탈 하시지?

벌써 가을이네.

산하의 수목방초(樹木芳草)를 보시게.

저마다 한 껏 욕망을 드러내지 않던가.

하여, 세번 째 절기인 가을이야 말로 계절의 으뜸일테지.

 

나는 지금 강원도 춘천에 있네.

아름다운 호반 공지천에서 말일세.

이 곳에 캠핑카를 세우고 편지를 쓰네.

 

물론 작가를 생각하면서

 

현재 춘천의 날씨와 기온은 이렇네.

하늘은 처녀의 이마처럼 부드럽고 기온은 평균 섭씨 18도 안팍일세.

허나, 밤과 새벽녘의 온기는 차갑네.

아무튼 본론에 앞서 밝힐 것이 있으이.

은박지 풍경화와 네 잎 클로버는 강원도 양양 바닷가에서 수확한 것이네.

기형적으로 큰 네잎 클로버는 여간해선 보기가 드문 행운초 일걸세.

잘 간직 하시게.


안개 도시

춘천(春川).

아름다운 고유명사지.

호반(湖畔)속에 드리운 안개의 도시.

 

작가 선생은 춘천을 끔찍이 좋아했지?

물론 나도 이 지방을 사랑하네 만.

 

40년 여 전인가

 

작가와 내가 처음 연을 맺은 것도 다름아닌 춘천 때문 였어.

당시 작가와 나는 성북 역에서 출발하는 춘천 행 완행 열차에 몸을 실었지.

마주보게 설치한 의자에 앉아 서로를 흘끔거렸네.

그러고는 출발한 열차가 마석역에 도착할 즈음 내가 작가를 향해 말을 걸었지.

통성명(通姓名)이나 나누자

작가와 나는 순식간에 서로를 알아보았고, 의기투합했네.

 

작가는 가요와 팝 음악을 해설하는 칼럼니스트였고, 나는 지방지 일간신문 문화부 소속 기자이자 시인을 열망하는 작가 지망생 이었음이.

 

우리 두 사람은 완행 열차가 남춘천 역에 도착할 때까지 많은 이야기를 나눴지.

특히 인문학과 관련된 소재를 놓고 자신의 견해를 피력할 때는 결연함 마저 드러내 보였네.

돌이켜 보건대 참으로 행복한 순간 이었어.

 

열차가 청평과 가평을 지나 강촌역에 도착할 즈음 나는 작가에게 습작 시()를 읊었지.

 

운율(韻律)의 구애를 받지 않는 자유시였는데

 

유치했네.

어찌 그것을 시라 했는지.

작가도 그리 느꼈을 걸세.

하지만 작가는 시의 후렴구가 종지부를 찍자 진지한 표정으로 박수를 쳤네.

그러고는 말했다.

가슴을 치는 울림입니다!’

 

그 시는 훗날 작가의 예언대로 신춘문예를 통과 했고, 나를 시인으로 만들었지.

작가와 나를 태운 완행열차는 강촌역에서 소양강 지류를 거슬러 이리저리 굽이돌다 남춘천역에 도착 했네.

 

우리 두 사람은 이 곳에서 작별을 하고 다시 만날 것을 기약했지.

 

그날 밤.

작가는 방송국 심야 음악 프로에 나와 다양한 팝 음악을 칼럼 하더군.

나는 작가의 유려한 음악 해석을 명확히 듣기 위해 트랜지스터 라디오 볼륨을 높였네.

 

작가는 이 날 영국 출신의 싱어 / 송라이터(Singer / Songwriter)닉 드레이크(Nick Drake)북녘 하늘(Nothern Sky)’을 심도 있게 소개했네.

내가 닉의 노래를 좋아하게 된 결정적 순간이었지.

 

이후 작가와 나는 매 주 일요일이면 성북역에서 춘천행 완행열차에 몸을 실었고.

그로부터 점차 우정을 키워갔다.

 

우정이 깊으면 피를 나눈 형제보다 의리가 확고하네.

원한다면 목숨도 기꺼이 내줄 수 있을 것이네.

 

작가와 나는 어느새 이같은 지행합일체(知行合一體)가 되었던 걸세.

작금의 21세기 광학문명(光學文明) 시대에 우정 운운 타령하면, 현대인들은 손사례를 치지.

고리타분한 역설(逆說)이라면서.

하지만 우정이야 말로 우리의 일상을 풍요롭게 만드는 원천이 아니던가.

 

작가와 나의 우정은 해를 거듭할 수록 더욱 더 돈독해 갔고 우리는 서로가 추구하는 열망을 하나하나씩 이뤘네.

이같은 성과는 우정에서 비롯된 것일세.

 

임질

작가 선생.

 

, 여담 하나 할까.

나의 썰()을 듣노라면 작가도 무릎을 칠 걸.

작가도 알다시피 내가 군입대를 느지막이 했지.

 

내가 논산훈련소에 입소하기 이틀 전, 작가가 입영 기념이라면서 나를 데리고 매음굴에 데리고 갔네.

 

미군부대 인근에 위치한 곳이었어.

 

막상 매음굴 입구에 도착하자 작가와 나는 서로 민망해 하며 진입을 머뭇거렸지.

허나, 기왕지사 내친 걸음이라며 용기를 내 매음굴 포주와 마주쳤네.

입가에 색이 넘쳐나는 포주 였어.

어림잡아 50대 초반 쯤으로 보였지.

 

영계처럼 생긴 젊은 두 사내를 바라보는 포주의 눈 빛도 예사롭지 않았고.

 

포주가 말했다.

두 학생. 맛있게 생겼네. 대학생 맞지?”

그러고는 포주가 손으로 작가의 거시기를 슬쩍 쥐었는데

포주의 감언이설에 넘어간 우리는 비로소 흥정을 폈고, 때마침 가진 돈이 없어 손목시계와 주민등록을 맡기고 성애(性愛)를 감득했지.’

작가는, 여체(女體)의 요사스러움을 안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했고, 나는 이미 이력이 난 상태였기에 밤 새 운우(.雲雨)를 교감했으이.

다음 날 아침 작가는 혼비백산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포주 아줌마가 밤 새 한잠도 자지 않고 나의 거시기를 세우고 몸속의 모든 액기스를 뽑아냈다. 생각만 해도 진저리가 처진다.’

 

헌데, 작가는 말은 그리 하면서도 표정은 웬지 흐뭇해 보이더군.

그리고 매음굴에 다녀 온지 10여 일 후 사고가 났지.

 

나 말고, 작가 말일세.

 

작가의 고깃덩이에서 쌀뜨물처럼 생긴 허연 액체가 찔끔찔끔 나오더라 고.

뿐만 아니라,새벽이 되면 바짝 돋기가 오른 고깃덩이가 엄청 쑤신다 고.

 

영문을 몰라 당혹스러워 할 즈음 작가의 모친께서 정색한 표정으로 누렇게 변색된 팬티를 내 보이며 말씀하셨다고 했던가.

, 어디에서 몹쓸 짓을 했구나. 대체 이게 뭐냐? , 고추에 병이 난 것 같다. 어여 보건소에 가거라. 가서 침 맞고 마이신(항생제) 달라 해라.”

 

작가는 모친의 시킴을 그대로 실천함으로써 결국 한 달 만에 거시기를 치료했지.

 

당시 병명이 뭐랬드라?

그래, 임질!

빌어먹을 임질 같으니

 

작가는 고약스런 성병을 경험한 이후로 여자만 보면 질색했네.

 

작가가 여지 껏 독수공방하며 홀아비로 지내는 것을 탓할 것을 없네 만, 모든 여성들이 결코 임질을 품고 있는 것은 아닐세.

 

그 사악한 포주가 사전 경고도 하지 않고 먹음직스런 작가를 덥석 문 탓인 게지.

(계속)

 

이산해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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