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꼬마의 질문과 교황님의 답

2019.10.31 07:25

서경 조회 수:87

교황 꼬마  콜라보.jpg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로마 시내에 있는 십자가의 성 바오로 성당에 본당 사목차 들렸을 때의 일이다. 교회 마당에서 즉석 교리 문답이 이루어졌다. 그때, 한 꼬마가 나왔다. 할 말이 있는 것같은데 말은 못하고 쭈뼛거리고 있었다.
  - 말해 보렴, 뭘 묻고 싶은지...
  진행하던 신부님이 다정스레 말했다. 그러자 소년은 이내 눈물을 쏟아내며 말을 잇지 못했다.
 - 못하겠어요... 할 게 없어요...
  소년은 무슨 사연인지 계속 흐느낀다. 분명 수줍거나 교황님이 무서워서 운 건 아니었다. 아이에게는 어울릴 것 같지 않는 서러움의 눈물이다. 말못할 사정, 그러나 묻고 싶고 듣고 싶은 답이 있어 아이는 분명 용기를 내어 마이크 앞에 섰을 게다. 그런 모습을 흥미롭게 보고 있던 교황님은 자애로운 음성으로 그러나 다급한 마음으로 소년을 부르셨다.
 - 오, 이리 오렴! 와서 나에게 귓속말로 해 주렴!
  아이가 다가오자, 교황님은 아이를 끌어안은 채 귀를 갖다댄다. 아이가 울먹이는 소리로 무언가 말을 하자, 교황님은 아이의 이마에 당신 이마를 맞대고 소곤소곤 속삭이신 뒤 자리로 돌려 보낸다.
  이윽고 교황님은 마이크를 잡으시고 방금 전 소년과 나누었던 대화를 소개했다. 그리고 이 대화의 내용을 공개해도 좋으냐며 소년에게 허락받았다고 덧붙이셨다. 사람들은 교황님과 소년이 나눈 귓속말이 궁금해 귀를 쫑긋했다. 교황님은 그 꼬마를 친구라 불렀다.
  - 친구는 얼마 전에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그 아버지는 교회에 나가는 분이 아니었다고 하는군요. 그러나 자녀 네 분을 모두 영세를 받게 해 주셨답니다. 친구는 “우리 아버지는 천국에 계실까요?”하고 묻더군요. 아버지를 사랑하는 소년은 너무나 걱정스러워 울 수밖에 없겠죠. 친구가 말하길, 아버지는 정말 좋은 분이셨다는군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교황님은 모인 청중들을 둘러보시며 되물었다. 누구도 입을 떼지 못하고 조용한 가운데 교황님 말씀을 기다렸다.
  선한 사람이었지만 신앙이 없던 사람. 신학자 카알 힐티에 의하면, ‘익명의 그리스도인’이다. 지금 이 소년은 익명의 그리스도인이었던 아버지의 사후를 묻고 있다. 그리고 교황님은 즉석 대답 대신, 교회 마당에 모인 모든 신자들에게 되묻고 있는 거였다.
  가족, 친지, 친구 중에 분명 신앙을 갖지 않고 돌아가신 분들이 있을 터이다. 심지어, 기독교에서 ‘구원이 없다’고 말하는 타종교’를 믿다가 간 사람도 있을 것이다. 영혼불멸을 믿는 크리스챤이라면 누군들 이런 의문과 걱정에 휩싸이지 않으리. 교황님은 질문을 이어가셨다.
  - 아버지는 좋은 분이셨다는데 천국에 갔을까요? 여러분이 보시기엔 어떠신가요??
  - ......
  - 헌데, 누가 하늘 나라에 가는지 말해 주는 분은 하느님이시죠! 그렇다면, 이에 앞서 하느님 마음은 어떠실까요?
  - ......
  청중은 숨을 죽인 채 교황님 말씀에 귀를 세운다.
  - 네, 하느님의 마음은 바로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비록 신자는 아니지만, 친구 아버지는 자녀들이 세례를 받게 하고 능력을 물려주셨습니다. 여러분이 보시기에 하느님께서는 그를 멀리 하실 것 같은가요? 용기를 가지고 큰 소리로 말해 보세요!
  - 아니요!
  그제서야, 기다렸다는 듯 청중은 일제히 소리친다.
  - 하느님께서 그 자녀들을 내버려 두실까요?
  - 아니요!!
  - 하느님께서 그 자녀들이 선한 마음을 지녔음에도 정말 멀리 하실까요?
  - 아니요!!!
  사람들의 대답은 함성에 가까웠다.
  - 임마누엘! 이것이 바로 질문에 대한 대답이에요. 하느님께서는 우리 친구의 아버지를 ‘기특하게’ 여기셨을 겁니다.
  모두가 안도의 표정이다. 신앙은 이렇듯 희망적이다.
  - 이젠 아버지에 대해 기도합시다. 임마누엘! 고마워요. 우리 친구는 정말 용감했어요!
  형 옆구리에 얼굴을 파묻고 있던 소년은 살포시 고개를 들어 교황님을 바라 보았다. 우연의 일치일까. 소년의 이름은 하느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이었다.
 ‘천국’이란 말 대신, 그 아버지를 ‘기특하게’ 여기실 거라며 에둘러 대답해 주신 교황님 답변이 현명하다. 그리고 임마누엘의 용기를 칭찬해 주시는 교황님 마음이 참 다사롭다. 바로 아버지의 마음이다.
  교황님과 꼬마들에 대한 에피소드는 너무나 많다. 하지만, 유독 이 이야기가 심금을 울리는 것은 나도 신부님께 울면서같은 질문을 한 경험이 있기때문이다.
  삼십 년 전, 한국으로부터 오빠가 불의의 해상사고로 실종됐다는 비보가 날아 왔다. 서른 일곱의 나이, 하나밖에 없는 오빠였다. 사춘기 시절의 오빠는 나의 생인손으로 아리아리 아픔을 준 사람이다. 어릴 때는 두 살 터울의 오빠가 앞장서서 교회에 데리고 다니고, 겨울 새벽 기도를 다닐 때는 유독 추위를 잘 타는 내 앞에서 칼바람을 막아주던 바람막이였다.
   그러던 오빠가 대도시로 전학오면서 홈시크에 걸리고 껄렁한 친구와 어울리게 되면서 교회도 떠나 버렸다. 모범생이었던 나는 그런 오빠가 창피했고, 길에서 만나도 투명인간 취급을 했다. 그러나, 단 한번도 나에게 언짢은 내색이나 큰소리 한번 치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나를 천사라고 불렀던 오빠에게 나는 영원한 천사였다.
  나보다 결혼도 늦고 아이도 늦었던 오빠는 우리 아이를 무척 사랑했다. 잠꼬대로 우리 딸 이름을 불러 올케의 핀잔을 들을 정도였다. 뿐인가. 네살박이 아들 녀석이 급성 임파선 백혈병으로 죽음을 앞두고 있을 땐, 휴가를 내고 달려와 밤새 병상을 지켜주었다.
  험란한 사춘기를 지나, 월남전에 갖다 오고 착한 올케를 만나면서부터 오빠의 긴 방황도 끝났다. 올케를 아끼고 딸을 사랑하는 마음도 끔찍했다. 안전한 육상 근무 대신 위험 수당을 주는 해상근무로 바꾼 것도 모두 가족을 위한 처사였다. 행복은 이제부터였다. 그러나 채 십 년도 채우지 못하고 일곱 살 딸 아이 하나 남겨둔 채 우리 곁을 떠나 버렸다.
  시체도 찾지 못하고 자연의 일부가 되어버린 오빠. 나는 미안함과 애통함에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더더구나, 교회를 떠난 오빠의 영혼 소재지는 어딜까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졌다. 나는 오빠가 한창 빗나갔을 때, 단 한번도 교회 다시 나가자고 권한 적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찬송가 성경책 옆에 끼고 예배에 빠짐없이 참석하던 껍데기 신자였다.
  아, 이젠 사랑의 빚을 갚을 시간조차 없다니. 미국 와서 가톨릭 신자가 된 나는 미사 중 성가를 부를 때마다 가사 한 자 한 자가 못이 되어 내 폐부를 찔렀다. 어떤 땐 코피까지 터져 곁에서 건네준 수녀님의 하얀 손수건을 벌겋게 적시기도 했다.
   끝내는 완전히 드러눕게 되어 종부성사까지 받게 되었다. 아버지처럼 따르던 나신부님이 급히 달려 오셨다. 그때, 나도 임마누엘처럼 울면서 신부님께 물었다.
  - 신부님! 우리 오빠의 영혼 소재지는 어디일까요?
  오랫동안 교회를 떠나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오빠를 지옥이나 연옥으로 보내고 싶지 않았다. 지옥이나 연옥은 내가 가야할 사람이다.
  - 요안나! 그건 주님만이 아시는 일, 우린 열심히 오빠 영혼을 위하여 기도해 줍시다. 요안나가 어서 일어나야 오빠도 기뻐 하시지?
  신부님인들 그 이상 무어라 위로해 주실 수 있겠는가. 임마누엘의 아버지처럼 우리 오빠도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 비록, 한때는 빗나가기도 하고 교회를 떠나 버렸지만 동생과 가족을 목숨처럼 사랑해 주었고, 겨울 찬 바다에 표류하면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해병대 출신인 자기만 믿으라며 동료를 격려하고 살려준 사람이었다.
  ‘좋은 아빠’를 잃은 임마누엘의 마음이 삼십 년 전 오빠를 잃었을 때의 내 마음과 어쩌면 이리도 닮은 것일까. 사랑에 빚진 사람들 마음은 다 똑같은가 보다.
  아직도 내겐 생인손 오빠에 대한 슬픔이 다 가시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 교황님 말씀이 큰 위로가 되었다. 꼬마 임마누엘에게도 큰 힘이 되었으면 한다. 사랑의 빚을 갚는 일은 우리가 ‘기쁘게’ 사는 일. 임마누엘! 우리 그렇게 살자꾸나.
  키리에 엘레이손.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회원:
4
새 글:
0
등록일:
2015.06.19

오늘:
0
어제:
5
전체:
1,317,3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