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 스러져가는 별들

2019.11.06 04:19

김영강 조회 수:7



스러져가는 별들

 

김 영 강


 

  “진짜로 이혼한다고오--- 이호--- ---. 한번 두번도 아니고 벌써 몇 번째야?

  남편의 언성이 높아졌다.

  “제 외출을 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는 건, 열쇠 없어진 지가 꽤 오래됐다는 얘기 아냐? 이번에 못 찾으면 진짜로 이혼이야 이혼.

  ‘? 열쇠 잃어버렸다고 이혼? 70이 넘은 나이에?’

  남편은 진짜로를 강조하며 지겨워 죽겠다는 듯이 얼굴을 찌푸리고 이혼 소리를 내뱉었다. 눈이 아예 모로 서 있었다.

  “맨날 따라다니며 챙겨줘야 하니 이젠 나도 지쳤다고 지쳤어. 다른 집은 남편 뒤치다꺼리를 와이프가 해준다는데 우리 집은 완전히 거꾸로 됐다고.”

  ‘언제는 따라다니며 챙겨주는 것이 행복하다고 살랑거리더니, 이젠 맘이 변했다 그거지?’

  남편은 경자의 허점을 계속 찔러댔다. 얼굴까지 붉으락푸르락했다.

어디 열쇠뿐이야. 그 비싼 안경도 다 잃어버렸잖아? 샤넬에 크리스천 디올, 또 베르사체····.”

그 비싼 안경이라고? 그걸 뭐 자기가 사 주었나? 99센트 스토어에서 99전짜리 안경이나 사오는 주제에····. ’

  브랜드 이름이라면 도통 모르는 줄 알았더니, 이럴 땐 잘도 왼다. 명품하고는 거리가 먼 경자이지만 비싼 안경이 몇 개 있긴 했다. 다 선물 받은 것들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싸구려 선글라스는 그대로 있는데, 비싼 것들은 다 잃어버렸다.

  “또 냄비란 냄비는 다 태워 먹었잖이? 여자가 왜 그래?”

  그의 말대로 한두 번이 아니니 화를 낼 만은 하다. 그런데 정도가 너무 심하다. 화를 잘 내는 사람이라면 그려러니 하겠는데, 아내한테 소리를 지르거나 화를 내거나 하는 그가 아니기 때문에 경자는 언뜻 멍해졌다. 요즘은 그가 예전하고는 많이 달라졌다. 보통 때 같으면 그냥 넘겨버리던 일인데도 괜히 짜증을 부린다. 잔소리가 엄청 심해졌다. 빈 방에 불이 켜져 있으면 그냥 꺼버리면 될 일을 꼭 한마디 한다.

  경자는 순간적으로 머리가 획 돌았다.

  그냥 한판 붙어봐?’

  그렇지만 입이 열 개라도 지금은 할 말이 없는 그녀라 목구멍으로 말을 삼키는 수밖에 없었다. 참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누울 자리보고 다리를 뻗어야지, 한쪽이 저 정도로 강하게 나오면 한쪽은 참아야 한다. 어쨌든 원인 제공자는 경자 자신 아닌가? 하지만 속은 계속 부글거린다.

   '열쇠가 주제면 열쇠 얘기만 하면 되지, 비겁하게시리 왜 지난 일까지 시시콜콜 끄집어내 사람을 긁어? 저렇게 길길이 뛴다고 발 달린 열쇠가 놀라 뛰어나올 리도 만무이고, 이왕지사 일은 벌어졌는데, 좀 점잖은 척 가면을 쓰고 존경스런 남편 노릇을 한다 해도 발 달린 열쇠가 꽁꽁 숨어버릴 리도 없지 않은가?’

  잠깐 말을 끊기에 이제 끝났나 싶었더니 뜻밖에도 미장원 사건을 들추어냈다. 3년 전쯤 알이다. 금세 일어난 일들은 깝빡깝빡하면서 3년이나 지난 일을 잘도 외워댔다.

  “집안에서 생기는 일은 괜찮다고 쳐. 그런데 미장원에서 일어났던 사건이 또 터지면 어떡하지? 정말 큰일이야 큰일. 까딱 잘못하다간 감옥 가는 수가 있다고, 제발 정신 좀 차려.”

  

  그 일은 지금 생각해도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늘 동네 미장원에만 가는 그녀가 그날은 딸을 따라 코리아타운에 있는 미장원에 갔었다. 딸은 커트만 했고, 경자는 두어 시간 동안에 아예 딴 사람으로 변신을 했다. 브라운 염색에 하이라이트까지 가미해서인지 10년은 젊어 보인다고 다들 야단이었다. 자신이 봐도 정말 그랬다. 데리러 온 딸이 좀 늦어 20여 분을 기다리다가 집에 가는 길이었다. 운전 중인 딸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미장원 주인이었다. 경자가 남의 핸드백을 집어 들고 나왔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경자 발 앞에 낯선 백이 하나 놓여 있었다. 딸은 머리를 조아리며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오늘은 엄마가 핸드백을 안 갖고 나왔는데 그만 깜빡했나 봐요. 백이 비슷하게 생겨서 엄마 건 줄 아셨던 모양이에요. 정말 죄송해요. 요즘은 엄마가 정신이 없어요.”

비슷하게 생기지도 않은 백을 비슷하게 생겼다고 변명을 하면서 딸은 한숨을 쉬었다.

마침 딸이랑 동반 외출이라 그녀는 휴대전화만 주머니에 넣고 빈손으로 나왔다. 핸드백도 무거워 들기가 거추장스러워서다. 딸도 그렇다. 엄마가 빈손으로 나온 걸 뻔히 알면서도 손에 핸드백이 들린 것에 신경이 안 간 것이다. 집을 나올 때 빈손인 엄마에게 딸은 분명히 엄마, 핸드 백?” 하고 챙겼었다.

남편한테는 암말 말 걸, 경자 자신도 너무 놀라고 이상해서 그날 밤 다 털어놓았다.

그녀는 요즘 부쩍 기억력이 떨어진 것을 실감한다. 외출을 하려고 여기저기 열쇠를 찾다보면 가방을 든 손가락에 키가 걸려 있질 않나, 어느 땐 약도 안 먹고 핸드폰도 두고 나와 도로 집엘 들어가서 일단 약 먼저 먹고 핸드폰 찾느라 또 시간을 잡아먹는다. 그럴 땐 전화를 걸어보는 수밖에. 이제는 귀도 갔는지 소리는 들리는데 어딘지를 몰라 이방 저방을 헤맨다. 그러다가 찾고 나면 이제는 손에 들고 있던 열쇠가 없다.

어디 그뿐이랴? 식당에서 나와서도 맡겨놓은 키를 찾느라 가방을 뒤지지를 않나. 키뿐이 아니다. 안경 찾느라고 집 안 구석구석을 헤매다보면 안경은 벌써 귀에 걸려 있다. 텔레비전 리모컨트롤을 전화기 받침대에 꽂으면서 이게 왜 맞지가 않아?’ 하다가 폭소를 터뜨리기도 했다.

  경자는 열쇠를 찾는 척하며 서재로 슬쩍 피했다. 다행히 남편이 따라 들어오지는 않았다. 컴퓨터 앞에 우두커니 앉았는데 문 닫는 소리가 쾅하고 들렸다. 속이 시원했다. 얼른 창가로 가 바깥을 내다보았다. 자동차를 타자마자 그는 급하게 시동을 걸었다. 보통 때보다는 더 큰 소리가 부르릉거렸다. 남편의 음성이 자동차 소리보다 더 크게 부르릉거리며 다시금 귓가를 때렸다.

  그녀는 본격적으로 열쇠 찾는 작업에 들어갔다. 우선 차 안부터 샅샅이 살펴보았다. 누구는 냉장고에서 전화기를 찾았다기에 냉장고 안도 들여다보았다. 재킷 등, 바지 호주머니까지도 다 뒤져보았다. 침대보에 시트까지도 들춰보았다. 덕분에 침대 위에 퍼질러진 옷들도 걸고 구석구석에 늘려 있는 잡동사니들도 정리를 했다. 바짝 엎드려 침대 밑바닥도 들여다보았다. 심지어 휴지통까지 쏟아 보았으나 열쇠는 나오지 않았다. 물론 방, 거실 부엌 할 것 없이 구석구석 보고 또 보았다.

  현관에 있는 장식장 거울 앞이 열쇠 놓는 자리다. 들랑날랑 할 때 가장 쉽게 눈에 띄는 곳이다. 거기에 없으면 핸드백 안에 있거나 어디에 있거나 두루두루 찾으면 별 탈 없이 찾곤 했는데 이번에는 아무리 뒤져도 오리무중이다. 열쇠가 한두 개가 아니고 한 뭉텅이가 달렸으니 어디 사이에 끼일 리도 없다. 경자는 자신을 믿을 수가 없어, ‘혹시 남편 열쇠를 놓아두는 곳에 두었나?’ 하고 안방 침대 왼쪽 스탠드 아래까지도 살펴보았다. 밖에서 잃어버렸을까도 생각해 봤으나 그건 절대 아니었다.

정말 기가 막힐 노릇이다. 남편이 주로 운전을 했고, 요즘은 혼자 나간 적이 거의 없어 언제 열쇠를 사용했는지조차도 생각나지 않는다. 기억을 더듬어 거꾸로 쳐 올라가봤다. 그래도 감감했다.

열쇠를 새로 만들려면 돈이 삼백 달러가 넘게 든다. 남편한테 욕먹는 것보다 돈 들어가는 것이 더 속상하다. 보나마나 남편은 지금 열쇠 만들러 간 게 분명하다. 예전에도 그랬다. 며칠을 참지 못하고 후다닥 튀어나가 열쇠를 주문했었다. 그런데 만든 지 나흘 만에 찾았다. 아깝게 돈만 날려버려, ‘왜 저렇게 남자가 참을성이 없을까?’ 하고 돌아서서 쭝얼거렸다.

이것저것 다 들추면서 남편은 정작 해야 할 반지 얘기는 꺼내지 않아 좀 아리송하다. 한 달 전쯤이다. 반지를 끼고 나가다가 무심코 빼서 어깨에 걸린 백 바깥 주머니에 넣었었다. 그리고 외출 후, 집에 들어와서는 깜빡 잊어버렸다.

사실, 반지나 시계가 있던 자리에 없어 찾아보면 핸드백 속에 있는 때가 더러 있었다. 그러나 이번엔 경우가 달랐다. 며칠 후, 그 반지가 집 앞 길거리에서 발견이 된 것이다. 그것도 남편한테. 나가다 말고 도로 들어온 남편이 반지를 경자 코앞에 디밀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이거 당신 반지 아냐? 근데 왜 이게 길거리에 떨어져 있지?”

  그때야 생각이 났다. 그리고 머리도 금세 돌아갔다. 어깨에 메고 있는 백 바깥쪽에 붙은 주머니에 넣는다는 것이 그만 길바닥에다 떨어뜨린 것이다. 시선이 주머니 쪽으로 가지 않았기에 손이 실수를 한 것이었다. 그녀는 시치미를 뚝 떼고 말했다.

  “반지가 좀 헐렁헐렁했는데 저절로 빠진 모양이네.”

남편이 믿을 리 만무인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냥 던져본 말이다. 그리고는 바로 자초지종을 실토했다. 진짜로 잔소리를 늘어놓아야 할 상황인데도 웬일로 그는 인상만 잔뜩 구기고 조심하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얼른 나갔다. 아마 골프 시간이 급했던 모양이다. 저녁에 들어와서는 한 소리 하겠지 했는데 그는 잠잠했다.

이상하다. 그 성격에 그냥 넘어갈 사람이 아닌데····. ’

아침에 있었던 반지 사건을 기억 못 하는 것이 분명했다. 다행이라는 기분보다는 약간은 걱정스러웠다.

시험 삼아 경자가 한 번 얘기를 꺼내볼까 하다가 그녀도 침묵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경자가 마켓을 가려고 문을 나서는데 그가 한마디 했다.

  “왜 그, 아침에 먹는 빵 있잖아? 그거 좀 사와.”

  ‘아침에 먹는 빵이 어디 한둘인가?’

  “아침에 먹는 빵이라니요? 그게 뭔데?”

  “왜 있잖아. 똥그란 거. 가운데 구멍 빵 뚫린 거 말야.”

  “도나스?”

  “아니 도나스 말고. 그건 튀긴 거잖아? 튀긴 거 말고 왜 그 있잖아····.”

  “············ 그 있잖아 뭐어?”

  “왜 그 있잖아. 뭐 발라 먹는 거 말이야. 반으로 짜개서 토스트 해서····. 그 참 이상하네. 왜 이름이 생각 안 나지?”

  머리에 그림은 환히 그려지는데, 입이 따로 놀아 그도 답답한지, “그 있잖아.”를 반복했다.

  “--!! !베이글?”

  그때야 남편은 어려운 숙제라도 푼 듯, 속이 시원해진 모양이었다.

  “맞아. 맞아. 베이글!! 베이글!!”

  경자는 남편을 한 번 시험해 보고 싶었다.

  “근데, 뭐 발라 먹는 거, 그거 이름은 뭐지?”

  대학 입학 시험문제나 맞힌 듯이 그는 당당하게 대답했다.

  “크림치즈지. 크림치이--.”

  그리고 아내를 도매금으로 넘기며 자신의 자존심을 만회했다.

  “당신도 깜빡했구나. 크림치즈도 몰라?”

 

  또 언젠가는 이런 일도 있었다. 마침 한국 빵집이 가까운 데에 있어 그는 자주 팥빵을 사온다. 가끔은 찹쌀 도넛을 딱 두 개만 끼워서. 튀긴 것은 몸에 나쁘니 하나씩만 먹자는 식이다. 식기 전에 먹어야 맛있다며 사오자마자 그는 얼른 하나를 먹어치웠다. 경자는 그다음 날 찹쌀 도넛을 먹으려고 아무리 찾아도 냉장고 안에 없었다. 거실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그에게 물으니 왼쪽 서랍에 있다고 했다. 그러나 거기엔 팥빵만 남아 있었다

  뭘 찾다 보면 눈앞에 두고도 못 찾아 냉장고 안을 몽땅 뒤질 때도 있고, 분명히 서랍 속에 넣어둔 것 같은데 문 안쪽 칸에 있을 때도 있어, 여기저기를 살펴도 찹쌀 도넛은 없었다. 팥빵만 있고 도넛은 없다고 해도 남편은 막무가내였다. 왼쪽 서랍에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하도 우기기에 경자는 그럼 당신이 와서 찾아보시오.” 하고 언성을 높였다. 그도 언성을 높였다.

  “아니 이게 눈에 안 보여?”

  그러나 그가 집어든 것은 찹쌀 도넛이 아닌 팥빵이었다. 팥빵을 집어들고 도넛이라 외치고 있는 것이었다. 기가 찰 노릇이다. 팥빵을 도넛이라니····. 집어들기 전에 분간이 갔어야지.

  경자의 음성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더 높아졌다.

  “아니, 그게 어떻게 도넛이에요? 팥빵이잖아 팥빠-----.”

  남편은 얼른 사라져버렸다.

그뿐이 아니다. 케이크를 파이라고 한 적도 있다. 그리고 배우 이름, 연속방송극도 막 뒤섞어 놓는다. 같은 배우가 등장을 하면 이게 저건지 저게 이건지 분간을 못 한다. 두 방송극에서 완전 다른 역을 같은 배우가 연기를 할 경우는 부득부득 다른 사람이라고 우긴다.

경자도 그럴 때가 있긴 하다. 줄줄이 꿰던 배우 이름이 요즘은 생각이 난다. 그렇다고 배우의 이름을 바꾸어 놓지는 않는다. 남편하고는 차원이 다르다.

  ‘그렇다면, 혹시 남편이 어디다 둔 게 아닐까? 자기 열쇠인 줄 알고 운전을 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얼른 안방으로 가 남편 옷장에 걸려 있는 바지들 주머니를 뒤져보았다. 그리고 윗도리 주머니도 점검을 했으나 열쇠는 없었다.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웃기는 가십거리라도 읽으며 잠시라도 열쇠에서 벗어나고 싶었으나, 갑자기 운동장만한 남편의 늙은 얼굴이 모니터에 불쑥 나타나 경자는 화들짝 놀랐다. 화면 전체에 화가 잔뜩 나 찌그러진 그의 얼굴이 클로즈업 되니 경자의 속은 다시 부글거렸다.

  누구한테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어 민숙이에게 전화를 걸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도 얼른 행동이 따르지가 않았다. 항상 먼저 전화를 걸어 안부를 전하는 경자인데도 요즘은 그게 맘대로 안 된다. 마음도 굼뜨고 몸도 굼뜨다. 앉았다 일어설 때도 벌떡 못 일어서고 먼저 방바닥을 짚는다. 바짓가랑이를 끼다가도 나자빠진다. 차에서 내릴 때도 빨랑빨랑 행동이 안 돼 남편한테 핀잔을 듣는다.

  “아니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날아다니더니 요즘은 왜 그래? 학교 때에는 운동선수였다며?”

  송구 선수로 운동장을 휘젓고 다닐 때가 언제 적이라고,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얘기를 끄집어내는 남편, 그것도 좀 이상하다.

한데 남편은 아직도 행동 하나는 기차게 빠르다. 운전도 쌩쌩 잘한다. 밤눈도 밝아 표시판도 잘 읽는다. 눈 하나는 기차게 타고 났다. 안경도 없이 신문을 줄줄 읽는가 하면 바늘귀도 쑥쑥 잘도 뀐다. 경자는 돋보기를 끼고도 바늘귀를 끼려면 장장의 시간을 소모하는데 말이다. 이빨도 좋고 입맛도 좋아 체력이 흘러넘친다. 70이 넘었다고는 상상이 안 될 만큼 육체적인 건강은 타고난 남편이다. 이런저런 성인병은 다 붙어 아침저녁으로 약을 한 줌이나 먹는 경자에 비해 그는 약 먹는 것도 없다.

약을 많이 먹으면 기억력이 떨어진다고 하던데 그래서 요즘 내가 그 모양인가? 장장 20년도 더 넘게 약을 복용했으니····.’

기분이 여엉-- 찜찜하다.

때마침 전화벨이 울렸다. 민숙이었다. 이심전심했다 싶어 눈이 번쩍 띄었다. 자초지종을 읊어대니 민숙은 경자에게 맞장구를 치기보다는 먼저 깔깔대고 웃기 시작했다.

  “뭐 이혼? , 우리 남편도 마찬가지야. 그리고 휭 나가버린 것도 마찬가지고. 너도 알지? 우리 교회 나오는 강 집사 말이야. 한 번은 그 사람들이랑 팜데일에 파피꽃 구경 간 적이 있었는데 그다음 날 내 키가 없어진 거야.”

민숙이가 열쇠 두는 곳은 거실 전화기 옆이다. 거기에 없으면 핸드백 안에 있거나 어디에 있거나 두루두루 찾으면 별 탈 없이 찾곤 했는데 그날은 아무리 뒤져도 오리무중이었다고 한다.

  “지금 네 경우하고 똑 같았어. 우리 남편도 이혼 소리 입에 담으며 내 속을 박박 긁더니 휭 나가버리더라고.”

  그날 민숙이 부부는 강 집사의 차를 탔다고 한다. 아침에 나갈 때 열쇠를 분명히 핸드백 안에 넣었었다. 그리고 하루가 지난 후, 우체국에 가려고 하는데 열쇠가 온 데 간 데 없어진 것이었다. 강 집사가 차를 운전했고 민숙이 남편은 앞에 타고 민숙과 미시즈 강은 뒷좌석에 앉았었다. 열쇠가 들어있는 핸드백은 연 일이 없다. 식당에서도 그녀는 핸드백을 열지 않았다. 집에 들어올 때 문을 연 것도 남편이었다. 집에 들어온 후에 열쇠를 꺼냈는지 어쨌는지도 기억에 가물가물했다.

  “우선은 미시스 강한테 전화를 걸었어. 백프로 그럴 리가 없지만 혹시나 그 차에 떨어졌나 하고 말이야.”

언젠가 한 번도 열쇠가 없어져 찾느라고 야단법석을 떨었는데 남편 차 뒷좌석 밑바닥에 떨어져 있었었다. “헬로우하는 그녀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전화선을 타고 흘렀다.

  “미시스 강, 지금 제가 이혼을 할 위기에 놓여 있어요.”

  내용과는 달리 지극히 밝은 민숙의의 음성을 들으면서 미시스 강은 희망적인 말을 했다. 차 안에서 민숙이가  열쇠 뭉텅이를 만지작거리는 것을 봤다는 것이다. 하지만 민숙은 열쇠를 꺼낸 기억이 도무지 없다.

  “지금 미스터 강이 차고로 갔어요. 조금 후면 결판이 나니 희망을 가져보세요. 이혼을 당하느냐 안 당하느냐가 지금 이 순간에 달렸으니 제가 막 떨리네요.”

  그리고 잠시 후, 미시스 강의 활기 찬 목소리가 전화통에 울려퍼졌다.

  “아이고, 축하합니다. 드디어 이혼은 면했어요. 찾았어요. 찾았어요. 차 뒷좌석 구석에 있더래요.”

  아무리 생각해도 민숙은 핸드백을 열고 열쇠를 꺼낸 적이 없었다. 열쇠를 꺼내야 할 아무런 이유도 없었다. 열쇠에 발이 달려 저절로 걸어 나온 것이 분명했다. 핸드백 지퍼까지 열어젖히고····. 유머가 풍부한 미시스 강이 깔깔대고 웃으며 민숙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맞아요. 맞아. 어디 열쇠에만 발이 달렸나요? 구루마가 달리고 날개 달린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열쇠 잃어버렸다고 이혼하면 우린 벌써 열두 번도 더 이혼했을 거예요.”

민숙의 얘기는 계속 이어졌다.

  “경자야, 너 기억나니? 요세미티 갔다 오다가 내가 식당에 핸드백 놓고 나온 거 말야.”


  물론 기억한다. 민숙이가 너무나 충격을 받아 진짜로 이혼을 할 뻔했던 사건이다. 아들이 고급차 한 대를 사 주어, 그 차를 타고 민숙이 부부가 북가주 여행을 갔다 오다가 생긴 일이다. 벌써 10년도 더 되었다.

아들로부터 고급차를 선물 받고 민숙이 남편은 만나는 사람마다 붙들고 자랑을 해, 그녀는 이제 제발 좀 그만하라고 얼마나 말렸는지 모른다.

  “와아!!! 진짜 달리는 궁전이야 궁전.”

  떠날 때도 좋았고, 아들이 예약해 놓은 호텔에 도착할 때도 좋았다. 해변을 끼고 아름다운 경치를 보며 달릴 때는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중간에 쉬면서 식당에 들러 맛있는 음식도 먹었다. 호텔에 짐을 풀고 일주일을 묵으면서 아들이 짜 준 스케줄대로 관광을 했고 모든 일이 다 순조로웠다. 쉴 수 있는 시간도 많아, 느긋하게 나날을 즐겼기에 하나도 피곤하지 않았다.

  그런데 오는 길에 일이 터졌다. 거의 다섯 시간을 달린 후였다. 민숙이의 핸드백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어깨에 메는 자그마한 백이다. 다행하게도 민숙은 자신의 행적에 대한 기억이 술술 풀렸다. 아침 식사를 하고 호텔을 떠날 때는 분명히 메고 나왔다. 점심은 오는 도중에 어느 카페에서 간단히 때웠는데, 그때 민숙은 의자에 백을 걸어놓고 샌드위치를 먹었었다. 그런데 그만 깜빡 잊고 그냥 나온 것이다. 두어 시간 정도만 가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다.

  차를 돌려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었다. 만일 찾지 못 하는 경우는 정말 큰일이었다. 운전면허증에서부터 크레디트카드 등, 중요한 것은 다 들어있으니 보통 일이 아니었다. 현금도 제법 들어 있었다.

  도로 올라가면서 민숙이 남편은 아내에게 언어의 폭력을 휘둘렀다. 아내를 완전 정신병자 취급을 하고, 아예 치매환자로 낙인을 찍으면서 이혼이라는 단어까지 입에 담았다.

  민숙의 가슴에서는 피가 철철 흘렀다. ‘차 세워.’ 하고 그냥 뛰쳐내리고 싶었다. 그러나 잘도 참았다. 참는 수밖에 길이 없었다. 이빨을 악물면서····. 같이 상대를 했다간 교통사고라도 날 것 같은 예감이 들어 더 꾹 참았다.

  백은 벌써 누가 집어갔다고 남편은 단정을 지었지만 민숙은 꼭 찾을 것 같았다. 민숙의 예감은 맞았다. 카페에서 잘 보관하고 있었다. 종업원이 의자에 걸려 있는 백을 카운트로 가져다 놓은 것이다. 백 안의 내용물도 그대로였다. 아직도 세상은 살 만 했다. 그러나 정작 살 만 해야 하는 남편은 그 세상에서 벗어나 있었다.

오는 길에도 그들의 기분은 저기압이었다. 두어 시간 동안 하도 당해서 민숙은 남편과 말을 섞기조차 싫었다. 그도 별 말이 없었다.

집에 온 후에 민숙은 도저히 그냥 넘길 수가 없어 대판 부부싸움을 했다. 도리어 민숙이가 이혼을 걸고넘어지며 강경하게 나갔다. 핸드백을 찾고 못 찾고 가 문제가 아니었다. 백을 언제 어디서 잃어버렸는지 기억이 안 났다면 몰라도 그 소재가 분명한 데도 아내를 치매환자로 몰아붙이며 이혼하자고 그 야단을 했으니 민숙이 남편이 너무하긴 했다. 결국은 그가 싹싹 빌어 이혼은 무마가 됐었다.

, 내가 치매라고? 어떻게 그런 말을 그리 함부로 할 수 있지! 그 다음엔 또 뭐랬는지 아니? 자기는 치매 와이프하고는 못 사니 알아서 하래. 참 기가 차더라. 그때 생각하면 지금도 열불 나. 셀폰이 있었더라면 차 안에서 분실신고하고 또 야단법석을 떨었을 거야.”

민숙은 휴대전화 없던 시절이 더 좋은 면도 있다면서, 그때 남편이 했던 한마디 한마디를 잊을 수가 없다고 한다. 불쑥불쑥 생각이 날 땐, 가슴에 쪼여와 안 되지. 이러다가 병나면 나만 손해야.’ 하고는 마음을 다스린다고 했다.

    세월이 약이었다. 더러는 잊어버리고, 생각이 난다해도 또렷하지가 않고 희미하고····. 그 후부터 민숙은 꺼진 불도 다시 보자.’를 되뇌며 조심에 조심을 거듭하고 있다. 아마 민숙이 남편의 말조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친구들이 모일 때면 남편들의 흉 타령은 반드시 등장한다. 민숙이 남편도, 경자 남편도, 다들 막상막하다. 그러나 아내들은 이구동성으로 늙은 남편들 불쌍하니, 이제는 우리가 봐주자.’ 하고 그냥 넘어가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은다.

  ‘이런 아내의 아량을 쪼다 남편들은 알기나 할까?’

건망증 역시 마찬가지다. 이런저런 얘기가 쏟아지다가 경애가 열변을 토하기 시작한다.

우리가 헤아릴 수도 없을 만치 깜빡깜빡하는 건, 이제 기정사실이 됐어. 그런데 우리 남편은 건망증이 눈앞에서 확인이 됐는데도 인정을 안해. 자기가 그러지 않았다는 거야. 어찌나 부득부득 우기는지 도대체 말이 안 통해. 증거가 나왔는데도 기억을 못 한다는 건, 혹시 치매 아니니? 은근히 걱정이 돼.”

항상 좋은 쪽으로 말하는 친구가 얼른 말을 받는다.

그건 아냐. 실수를 인정하기 싫어서 그러는 거야. 비겁하게 시리. 그런 남자들이 얼마나 수두룩한데 그래?”

그럼 나는 어떠니? 너무 기막혀 말하기조차도 창피하다. 한 번은 시장을 잔뜩 보고 계산까지 끝낸 후, 마켓 안에 있는 빵집에서 빵을 사고서는 그만 달랑 빵 봉지만 들고 집에까지 온 적이 있어. 야채, 과일 등 물건이 잔뜩 담긴 카트를 남겨놓은 채 말야. 그날 하루종일 기분이 찜찜했었어. ‘혹시 치매로 가는 길은 아닐까?’하고 걱정이 되더라고.”

어마마, 나도 똑같은 경험 있어. 너는 빵 봉지라도 들고 왔잖아. 빵에 정신 팔려 그럴 수도 있어. 한데 난 빈손으로 왔단다. 그것도 서너 시간이나 지난 저녁 때야 냉장고가 텅 비어 있는 걸 보고 생각이 났으니 말야. 나도 그날 너무 놀라서 치매 걱정을 했어. 너희들도 알잖아? 우리 친정어머니 치매로 고생하신 거. 그래서 유전인가 하고 더 걱정이 돼.”

그래도 너, 플러턴에서 엘에이까지 운전 잘 하고 왔잖아. 친구 만난다는 기대감에 기분도 좋았고. 치매는 아니고 건망증이 좀 도가 지나쳤던 것 같아.”

친구들의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한 친구가 결론을 지었다.

내가 건망증이랑 치매를 확실히 분간해줄게. 열쇠를 어디다 놓았는지를 몰라 찾아 헤매면 그건 건망증이고, 열쇠를 손에 쥐고 이게 뭐하는 것이지?’ 하고 요리조리 살피면 그건 치매야.”

친구들은 그래 맞아 맞아.” 하면서 스스로 위로를 했다.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하는 안도감과 함께 앞으로는 더 조심해야 한다고 다짐을 하면서.

실은 경자 시어머니께서도 돌아가시기 전, 1년 남짓 치매를 앓으셨다. 그런 가족력이 있는데도 붉구하고 경자는 남편이 혹시 치매는 아닐까?’ 하고 의심해 본 적이 없다. 왜 그런 생각을 못 했는지 아리송하다.


해가 서산에 걸렸는데도 남편에게서는 소식이 없다. 화가 잔뜩 나서 나갔기에 혹시 교통사고라도 났으면 어쩌나 하고 걱정이 되었다. 그의 전적이 하나하나 정수리를 내리치며 극도의 상상이 머리를 어지럽힌다. 거기다가 시어머니의 모습까지 합세를 해 가슴이 마구 뛰었다.

아침에 시시콜콜 외워댄 일을 돌이켜보니 그는 오래 된 일은 기억을 하면서도 얼마 전 일은 깡그리 잊어버렸었다. 괜히 화를 내는 것도 그렇다. 늘 먹는 빵 이름조차도 막 섞어 놓는다. 배우 이름, 방송극 제목도 뒤바뀐다.

혹시 치매?’

시어머니가 바로 그랬다. 다 들어맞는다.

설마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은 아니겠지? 치매 시초가 길을 못 찾는 것이라 했는데. 어쩌지? 어쩌지? 인생의 열솨를 잊어버리면 안 되는데····.’

이런저런 걱정과 함께 가엾다는 감정이 전신을 휩싸며 눈물이 났다. 연민의 정이 가슴을 메운다. 어디서 뭘하고 있는지 너무나 걱정이 되어 전화 걸고 싶은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다. 혹시 운전 중일지도 몰라 겨우 마음을 다스렸다. 보통 때는 신경도 안 썼던 일이 갑자기 왜 이리도 절박한지 모르겠다.

유전이라는 친구의 말 때문일까?’

 

  드디어 차 소리가 났다.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맨발로 뛰어나가고 싶은 심정을 꾹 참았다. 금세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야 할 그가 소식이 없어 내다보니 옆문을 열고 뒤뜰로 가서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온갖 잡동사니 연장들을 보관하고, 그가 잡일을 하거나 지붕에 올라가야 할 일이 있을 때 입는 작업복들을 걸어두는 곳이다.   

  한참 후에 남편이 나타났다. 한데 뜻밖에도 그의 손에 열쇠 뭉치가 들려 있었다. 얼른 열쇠를 뺏어들었다.

  “아니····. 이거 내 키잖아? 어디서 찾았어요?”

  순간, 경자는 혹시 반지 모양 길거리에서 주웠으면 어쩌지? 하는 상상에 가슴이 철커덩 내려앉았다. 그러고 보니 길거리 생각을 미처 못 했다. 별의 별 데를 다 뒤지면서도 길거리를 빼먹은 것이다. 반지의 전적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남편의 입에서 금세 키가 왜 길바닥에 떨어져 있지?’ 하고 한 옥타브 올라간 소리가 나오나 했더니 아니었다. 늘 당당하던 그의 자세가 왠지 엉거주춤했다. 그리고 말을 하는 표정이 아주 복잡하고 묘했다.

며칠 전에 내가 당신 키로 옆문을 열고 들어가 창고 정리를 했는데, 그때 입고 있던 작업복 바지 주머니에 키를 넣어놨나 봐. 그리고는 그만 깜빡했네. 미안. 미안.”

그게 뭐가 미안해. 그럴 수 있지 뭐.

준비나 한 듯, 경자의 입에서 순식간에 튀어나온 말이다. 다른 때 같으면 뭐라구? 그래 놓고 나한테 뒤깁어씌우며 그 야단을 해?” 하고 소릴 질렀을 것이다. 이상했다. 정말이지 하나도 화가 나지 않았다. 작업복 주머니에 열쇠를 넣어두었다는 기억이 난 것만으로도 그녀는 만사형통이었다.


  그중에서도 남편이 무사히 집에 도착한 것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아내의 반응에 남편이 놀란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침에는 모로 섰던 눈이 이제는 타원형으로 편안하게 누웠다.

서쪽 하늘을 수놓은 노을이 유난히도 아름다운 저녁이다.

  비록, 별들은 스러져가고 있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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