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낙엽따라 가 버린 사람

2019.11.06 22:04

서경 조회 수:10

 낙엽 따라 김영문.jpg


    이 무슨 날벼락인가. 아직도 놀란 가슴 가누기 힘들다. 11월 늦가을 바람에 낙엽 따라 가 버린 사람. 미주문협 전 이사장님 김영문 소설가가 갑자기 세상을 떴다는 비보다.

   칠십이라면, 바삐 서둘러 갈 나이도 아니건만 그는 우리의 배웅도 받지 않고 총총히 가 버렸다.  출판 기념식장에서 ‘두 의사 사이에 끼어 앉아 숨도 쉬기 어려웠다’며 유쾌한 농담까지 한 게 불과 몇 주 전이란다. 사인이 심장마비라니, 우연한 농담치고는 묘한 느낌이다.
  몇 달 전, 빌린 책을 돌려주려고 출근 전에 잠시 만났었다. 그는 손수 커피와 빵을 사 주었다. 우리 미주문협에 대한 이야기와 본인의 작품 이야기 등 진취적이고 의욕적인 대화를 나누었다. 그 자리서 본인 수필집에 곁들일 삽화를 그려줄 화가를 추천해 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화가 친구를 추천해 주며 서로 연결해 주었다. 그것이 그와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그 날 우리의 만남이 지상에서의 마지막 만남이 되리라고는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오늘이 마지막 날인 듯 살라’는 말은 알고 있어도 그렇게 살지 못했다. 누군가 잃고 난 뒤에야 늘 아쉬움과 후회가 남는다. 참 우둔한 삶이다.
  미주문협 문우로 알기는 오래 되었어도 서로 장르가 달라 별로 가까워질 기회는 없었다. 언젠가 딱 한 번, 문학 행사를 마치고 소설가 신영철씨와 함께 밤 열 두시가 되도록 담소의 즐거움을 나눈 적이 있었다. 호기롭고 자신만만한 모습에 좋은 인상을 받았다.
  그도 아마 그날의 대화를 통해 나의 어떤 면모를 알게 되었나 보다. 그는 나의 수필 <빗속에 울리던 북소리>를 몇 번이나 읽었다고 했다. 나로선 반갑고 고마운 말이었다.
  그는 2017년 미주문협 이사장직을 수락하면서 회장님께 나를 총무 이사로 짝 맞추어 줄 것을 조건으로 내세웠다고 한다. 나는 총무 이사는커녕 이사도 한 번 안해 본 사람이라회장님 권유를 거절했다. 총무 이사는 별로 할 일이 없다고 이름만 걸어두라 하여, 그렇다면 더더욱 싫다고 하였다. 나는 다른 사람이 잘 할 수 있는 일을, 허명만 걸어두고 앉아 있는 건 민폐라 생각했다.
  일 주일이 가고 이 주일이 가도 사람을 못 구했다는 전갈이 오고 김영문 이사장이 급기야 직접 전화를 걸어 왔다. 끝까지 거절하려던 나는 몇 년 전 ‘마산 아구찜’에서 가졌던 그날의 담소를 기억하며 남성다운 호쾌함을 지녔던 그를 떠올렸다.
  일은 배워 가면서 하면 될 일. 거의 25여 년을 문협 회원으로 있으면서도 봉사 한 번 한 적 없이 공짜 먹었다는 가책도 작용했다. 그와 함께라면 어느 정도 호흡을 맞출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총무 이사직을 수락하고 말았다.
  우리는 첫만남에서 좀더 활기 찬 미주문협을 만들어 보자고 의기 투합했다. 유명무실하게 있는 사무실도 문협의 아방궁으로 만들어 누구나 드나들 수 있게 하고, 중단된 각 분과 토방도 활성화 하는데 일조를 담당하고자 했다. 이 모든 일은 회장단이 주축이 되어 할 일이지만, 이사진도 능동적인 참여를 하자는 거였다.
  그는 비지니스 맨답게 퍽이나 열정적이고 진취적인 사람이었다. 지난 2년 동안 미주문협 이사장과 총무이사로서 호흡을 맞추며 난 불편함을 몰랐다. 그가 불도저식으로 밀고 나가면 내가 브레이크를 걸고, 내가 까칠하게 굴면 그가 잠깐 숨쉬기를 권했다. 아무리 뜻이 옳고 좋아도 의견 조율을 위해선 소통 방법의 묘를 살려야 한다고 서로 다독였다. 부족함이 많은 우리였기에, 오히려 인간적으로 더 잘 통했는지도 모른다.
  시간 약속을 칼같이 지키는 그는 성격이 강직하고 직선적이었지만, 보기보다 섬세하고 여성적이었다. 전국 이사들께 메일을 우송할 때면 빠지거나 잘못 된 게 없는지 늘 내게 최종 점검을 받았고, 사무실로 찾아 갈 때면 시간 절약을 위해 봉투와 주소 스티커를 미리 마련해 두고 있었다. 뿐인가. 첫이사회 때는 참석 이사들에게 줄 선물까지 알뜰히 챙겨 날 감동시켰다. 어려움 속에서도 비싼 이사회비를 내어주니 얼마나 고마우냐고 했다. 그는 마음을 귀히 여기는 사람이었다.
  조그만 일에도 그는 내 의견을 경청하고 수용했다. 나는 일을 만들어서 하길 좋아하고 좀 멀리 나가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그게 신나고 재미있다. 단체 메일을 보낼 때도 이메일보다는 우표를 붙여 보내는 아날로그식 편지를 선호한다. 편함보다는 받는 이에게 더 큰 기쁨을 주고 싶어서다. 어쩌면, 단체 이메일보다는 우표 붙인 편지를 받고 싶어하는 나의 속내 때문인지도 모른다. 모든 일을 이메일로 처리하는 그도 나의 이런 소녀적 취향에 두 말없이 동의해 주었다.
  “상상해 보세요! 넘치는 홍보물 속에 예쁜 우표가 붙은 편지 한 통이 나온다. 그리고 그 속에 나만을 위한 육필 인사 메모까지 한 줄 들어 있다. 내용이야 모임 안내에 불과 하지만, 그 편지는 허접한 쓰레기 더미 속에 핀 한 송이 장미가 아닐까요? 문학도 상상의 힘! 일도 상상의 힘! 그래 봤자, 이것도 2년 임기 동안 네 번 뿐이잖아요?” 이렇게 내 수다가 이어지면 “허허, 못말려!” 하며 그는 호쾌하게 웃었다.
  우표 한 장이라도 예쁜 걸 붙이려고 우체국에 달려가 수집용 우표를 사 오면 “와- 이런 멋진 우표도 있었느냐?”며 신기해 하곤 했다. 그럴 땐, 마치 도시 구경 나온 시골 소년같이 순진한 표정이었다.
  무엇보다도, 통관 회사를 운영하는 사업가로서 일처리가 신속하고 추진력이 있어 좋았다. 막힘이 없고 답답함이 없었다. 나는 어떤 일을 추진할 때 너무 재거나 부정적 이유를 대며 머뭇거리는 걸 싫어한다. 그런 점에서 서로 죽이 잘 맞았다. 회사 직원을 대하는 모습에서도 그는 일하는 사람들에게 기운을 북돋아 주는 어떤 마력이 있었다. 허리 보호대를 찬 채 직접 발로 뛰며 솔선수범하니, 직원이 안 따를 수 없다. 그는 행동하는 리더였다.
  바쁜 와중에도 트럼펫 연주를 즐기며 그는 부지런히 소설을 쓰고 작품집을 냈다. 출판 기념회에서는 참석한 문우와 지인들께 자비로 푸짐한 음식을 대접했으며 들어온 돈도 모두 미주문협에 도네이션해 주는 통 큰 분이었다. 돈이 있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돈을 잘 쓰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그는 거의 모든 모임에서 당연하다는 듯 앞서서 돈을 내곤 했다.
  돌이켜 보면, 그는 오라버니같이 푸근하고 든든했다. 서류 든 가방이 무거울까 봐 바퀴 달린 가방을 손수 사 주신 분도 그 분이요, 수고한다며 유서깊은 재즈 바로 데려가 근사한 저녁을 사 주신 분도 그 분이다. 짧은 만남이고 인연이었지만, 내겐 좋은 기억으로 오래도록 남을 분이다. 함께 일하면서 즐거웠고 유쾌했다. 그리고 그의 진면목을 보며 함께 성장했다.
  이제 그는 가고 없다. 마치 바다에서 한움큼의 물을 덜어낸 듯 그가 없는 세상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게다. 하지만, 그의 부재를 아쉽고 애통해 하는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이 밤 파도도 잠 못 들고 출렁이리라. 그와 인연 맺은 사람 중에 애통해 하는 사람이 어디 나 뿐이랴.
  작은 새  한 마리 잠시 앉았다 떠난 빈 가지에 찬 바람만 스쳐간다. 혹시, 생전의 카톡 대화가 남아 있나 싶어 챙겨 보니 오래 전 대화라 몽땅 지우고 없다. 오, 그는 내 카톡방에서도 마지막 호흡을 거두어 갔는가. 점 하나 없는 카톡 빈 방을 보니 숨이 콱 막혀 왔다.
  어디에서 그를 찾나. 아쉬운 마음에 그의 카톡 프로필 사진을 눌러 본다. 평소에 카톡을 즐겨하지 않던 그였기에 사진 서 너 장만 덜렁 남아 있다. 그 중에서 낯설기만한 그의 젊은 날 사진 한 장 뽑아 놓고 카카오 스토리를 연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이 밤 그냥 잠들기에는 너무 미안하다. 새는 떠나고 없어도 그가 살다 간 작은 흔적이나마 증언해 주려 나는 이 글을 쓰고 있다. 금방이라도 “지희선씨!” 하고 굵직한 음성으로 전화를 걸어 올 것만 같다.
  찬 바람에 시나브로 떨어지는 낙엽들. 그 낙엽에 싸여 그도 본향을 향하여 먼 길 떠났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누구나 한번은 가야할 길. 다시 만날 때까지 영생복락 누리시길 두 손 모아 기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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