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 에세이 - 거리에 비 내리고

2019.11.06 22:44

서경 조회 수:9

 거리에 비 내리고.jpg



후두둑, 비가 내린다.
난데없는 비.
앞서가던 차들 서서히 속도를 낮추고 나도 서행을 한다.
꼬리를 문 차량처럼 생각이 생각을 불러 와, 연어떼마냥 추억 속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상상아, 날개를 달지 마라.
지금은 운전 중, 발 아래를 조심할 때다.
이럴 때일수록 눈은 매같이 날카롭게 떠야 하리.
저 멀리 시야를 붙드는 팜트리.
출렁이던 잎 모아 조신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섰다.
잊을 건 다 잊어야 하듯, 버릴 것 다 버리고 소소한 생각 몇 이고 선 팜트리.
그는 나를 많이 닮아 있다.
달랑, 세 살 짜리 딸 아이 하나 손잡고 내린 엘 에이 공항.
고국을 떠나오며 나도 얼마나 많은 걸 버리고 왔던가.
이국 땅에 발 디딘 첫날부터 팜트린 내 사랑으로 자리했다.
거리가 젖고 있을 때 팜트리 저도 젖고 있구나.
함께 젖는 것.
그게 바로 사랑이지.
우산을 찾는 내 부끄러운 손을 거두자.
수분 없는 삶을 어찌 참인생이라 말할 수 있으리.
밟으면 바스락 부서지는 마른잎 삶이라면 행복과는 거리가 멀 테지.
난 비를 사랑하고, 슬픈 노래를 사랑하고, 눈물을 사랑한다.
빗방울, 창을 타고 음악처럼 흐른다.
바람은 지휘자.
빠르게 혹은 느리게 ......
짧게 더러는 길게 ......
강하고 또 여리게 ......
전깃줄에 앉은 새벽새처럼, 빗방울은 오선지를 그리며 높고 낮은 단조의 음률로 춤을 춘다.
지난 날, 우리네 감정도 얼마나 다양한 음악을 탄주했던가.
다이아몬드처럼 영원하길 바랬던 사랑도 찰나의 행복.
봄날의 꽃처럼 지고 말았지.
그러나 생각해 보면 ‘변한다’는 건 희망이지.
미움이 미움으로 남아 있고, 슬픔이 슬픔으로 고여 있다면 새사랑은 시작할 수도 없는 일.
그래, 변한다는 건 은총이고 축복이야.
눈물 흘릴 일이 아니고 달팽이처럼 칩거할 일도 아니지.
게다가, 얘들아 목숨은 왜 끊어.
‘다시는 시작할 수 없어!’
그런 어리석은 한계도 짓지마.
세상은 바다처럼 넓고 어종도 많아.
할 일도 많지.
처음엔 어려울 테지.
하지만, 시간은 우리의 최고 도우미.
다 지나간다고 하지 않니.
씨앗이 씨앗으로만 존재한다면, 꽃 피울 수 없지.
열매 맺을 수도 없잖아.
시인이 별 하나에 이름 붙이듯, 신은 상처마다 추억 하나씩 붙여 주셨지.
아픔까지도 승화시킨 아름다운 추억말야.
살아오면서 상처가 어디 하나 뿐이겠니.
밤하늘의 별처럼 참 많기도 하지.
은하수, 우리 말로 미리내라는 이 고운 이름도 어쩌면 우리들 상처가 올라가 만든 별들의 고향 아닐까.
상처도 하나만 있으면 너무 크고, 별도 혼자 있으면 너무 외로워 신이 배려해 주신 선물일지도 몰라.
이 세상엔 필요 없는 게 없다더군.
심지어 선도 악이란 짝이 있고, 미도 추라는 짝이 있다는구나.
그런데 이별은 만남의 짝이 아니라는 거 아니?
살면서 배운 건데, 그건 사랑의 짝이더구나.
이전 건 다 오늘의 실전을 위한 연습이라 생각해.
그러니, 힘 내고 크게 한 번 웃어 봐.
광야를 지나야,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복지가 있단다.
죽음 없는 부활이 없는 것처럼 말야.
게다가, 십자가는 ‘지고’ 오라니 그 분 주문도 꽤나 까다롭지?
“......”
대답 없는 걸 보니, 삶이 어렵긴 어려운가 보구나.
누구와의 대화인가.
상처 받은 아이인가, 여인인가.
내 위로가 필요한 사람, 외로운 아웃사이더인가.
아니면, 내 마음 속의 또 다른 나인가.
플라톤의 향연.
리액션 없는 혼잣말로 대화의 향연을 펼친다.
거리에 비는 내리는데 비에 젖은 저 팜트린 무얼 위해 기도하고 있나.
우린 또한 무얼 바라 간절한 기도를 올리나.
이렇게 비 오는 날은, 잎을 버리듯 말을 버리고 만년 설산의 침묵이나 배워 볼까.
언제 그랬냐는 듯, 비가 멈추었다.
난데없는 소나기.
짧은 봄날처럼 지나갔다.
대체, 이 자연이 주는 짧은 연서는 무언가.
자연은 너무나 많은 암호를 품고 있다.
해독하는 건 우리의 몫.
11월은 천국문도 열려 있다는 위령성월이다.
그렇다면, 죽은 이를 기억하고 떠난 이를 위해 기도하라는  신의 암시였나.
그러고 보니, 유독 이 계절에 떠나는 사람들이 많다.
가을날의 대지는 그다지도 풍성하고 부드러운가.
꽃이 안기고, 잎이 찾아가고, 열매 떨어지듯 사람 목숨 참  쉽게도 대지에 안긴다.
쓸쓸한 가을 풍경은 그 하나만으로도 족한데, 어이하여 정인들은 하필이면 이 계절을 택하여 여름날 소나기처럼 가슴에 홈을 파고 떠나는지.
오빠도 그랬고, 엊그제 또 한 사람 그도 그랬다.
아, 너무 무겁다.
여기서 생각을 멈추자.
생활이 날 기다리고 있다.
생활은 꿈이 아니다.
환상도 아니다.  
엄연한 현실, 개인 실록사에 기록될 역사적 사실이다.
묘지에서 바람개비를 돌리며 노는 아이들을 보라.
삶과 죽음을 친구삼아 공원처럼 놀지 않느냐.
연어야, 이제 여행을 멈추어라.
생각아, 깊은 바다로 침잠하라.
상상아, 날개를 접어라.
차 시동을 끄자, 모든 게 제 위치로 돌아 왔다.
내 두 발은 힘차게 흙을 밟는다.
비 그친 가을 하늘은 더 높고 깨끗하다.
하늘을 볼 수 있는 날, ‘오늘’이란 선물이 또 하루 주어졌다.
작은 키로 큰 문을 열고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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