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11월이 간다

2019.12.04 19:00

서경 조회 수:10

11월이 간다.jpg


11월이 간다.
11월은 가을의 끝무렵이요 겨울의 초입이다.
11월의 빈 들녘에 서면, 떠나 보내는 손짓과 오라는 손짓이 아롱댄다.
11월은 12월을 예고해 주는 사랑의 전령사다.
곧 추위가 오리라는, 그래서 더욱 ‘온기’가 필요하다는 그 절절하고도 절실한 예고다.
신영복 교수도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겨울이 가장 따스한 계절이라 했다.
감옥 철창 밖엔 시베리아 삭풍이 몰아치는데, 그래도 감방안엔 서로를 부둥켜 안고 자는 온기가 있어 따스했단다.
어찌 육체의 온기 뿐이랴.
서로를 품어주는 그 마음이 있어 더욱 따뜻했으리라.
또한, 11월은 나란히 홀로 걷던 길을 12월처럼 둘이 되어 함께 걸어가라는 잠언이다.
한 해를 보내는 마지막 달에 홀로 있다는 건 얼마나 쓸쓸한  일인가.
저 혼자 떠돌던 구름도 이때쯤이면 서로 불러 모을 일이다.
이렇듯, 감성적 의미를 지닌 11월은 내게도 각별한 달이다.
전례주기론 돌아 가신 모든 영혼을 위한 ‘위령성월’이요, 개인사로도 날 사랑하던 오빠가 수궁 속으로 이사간 달이다.
뿐인가.
한때 가슴 설레게 했던 정인의 영명축일인 11월 11일이 있는 달이기도 하다.
11월 11일은 젊은이들에겐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빼빼로 데이’라지만, 나에겐 그의 영명축일로 더 의미가 깊다.
나와 음력 생일이 같아 깜짝 놀라게 했던 정인은 달과 날이 같은 영명축일로 다시 한 번 날 놀래켰다.
내 본명 요안나의 영명축일이 12월 12일이란 걸 알았을 때의 놀라움은 경이 그 자체였다.
11월 11일과 12월과 12일이 뭐 그리 큰 대수라고.
남이 들으면 헛웃음칠 일에 나는 화들짝 놀랐다.
그때 난 또 한 번 일치의 기쁨을 맛보았다.
사랑은 사소한 일치도 운명인 양 의미를 부여해 준다.
내가 사랑하던 노래를 그가 알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얼마나 가슴 뛰었던가!
서로의 행운을 빌며 럭키 세븐인 일곱 번째 택시를 타고 떠나온 조국.
남이 보면 유치했을 어린애같은 이별 풍경도 우리에겐 비장하기만 했다.
정작, 여섯 대의 택시를 앞서 보내고 행운의 일곱 번째 택시가 왔을 때도 왜 그리 빨리 왔는지 야속했다.
어제런듯 생생히 떠오르는 이 마지막 이별의 밤을 그도 기억하고 있을까.
그동안 참 많은 계절이 다녀가고, 덩달아 달도 날도 오갔다.  
봄날도 가고, 여름도 가고, 가을도 가고, 겨울도 가고....
세월의 흐름을 생각하면 솔베이지 송이 절로 나온다.
시계는 멈춰도 시간의 강물은 어김없이 흘러간다.
다시, 달력을 본다.
11월, 12월, 1월......
숫자가 주는 의미가 남다르다.
나란히 걷던 가로수 그늘 밑을 지나, 둘이 하나 되어 걷던 흰 눈밭길도 지나, 이국 땅에서 겨울 정수리 같은 1월에 홀로 서서 맞는 냉기란!
시작은 늘 혼자라는 말인지.
돌이켜 보면, 오고 가는 사랑의 길목에서 우린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만나고 떠나 보내었던가.
피천득의 <인연>처럼 만나서 헤어지고 헤어져선 다시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을 떠올린다.
그럼에도 시간은 참 정직하게 세월의 짚단을 쌓아 올린다.
그 시간 속엔, 먼 길 돌아 다시 만난 정인도 있고 영영 만나지 못하고 살아가야 하는 인연도 있다.
시간은 늘 너그럽고 또한 잔인하다.
다시금 12월이 돌아오고 11월은 뒷모습 남긴 채 떠나간다.
내 인생에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2019년 11월.
그가 유언처럼 남기고 가는 ‘온기’는 ‘사랑’의 다른 말임을 이제사 알겠다.
어찌 남녀의 사랑 뿐이랴.
수평선처럼 더 넓은 이웃사랑과 수직의 정곡점인 저 하늘 꼭대기에 계신 그 분에 대한 특별한 사랑까지 넓혀가라는십자가의 삶을 얘기하는 말이겠지.
날이 갈수록 크게 울려오는 내면의 소리!
“신앙이 답이다!”
요즘 들어 계속 내 가슴에 방망이질 하는 말이다.
또 한 번의 부르심인가.
마음은 늘 앞서 걷는 그림자같이 급하나, 남은 시간은 여름날 해처럼 짧아져 간다.
어쩌랴.
‘오늘이 마지막인 듯이 살자’고 다짐할 수밖에.
11월아, 잘 가거라.
이왕 가려거든, 내년에 다시 돌아올 네 모습 반기며 달려갈 기쁨이나 주고 가렴!
- 아, 벗이여! 정인이여!
11월이 꽃잎처럼 지고 있어요. 


 (사진 : 조정훈)


회원:
2
새 글:
0
등록일:
2015.06.19

오늘:
312
어제:
1,672
전체:
732,5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