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희진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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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평일 오후 두시

2020.01.08 17:05

전희진 조회 수:93

평일 오후 두 시

전희진

 

 

이글은 미국에서 평범한 이민의 삶을 살아가는 한 가정의 우여곡절 이야기이다.

미국의 주류 사회에서 배제된 채 닭장 속의 닭같이 하루하루 손바닥만 한 하늘을 살아가는 이민 일 세대의 적응 체험기이며 아메리칸 드림은 무엇인가, 어메리칸 드림은 과연 이루어지는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

등장 인물로는 주인공 미경, 미국 조지아 주의 애틀란타로 가족 이민 와서 이 도시에서 현재의 남편인 승철을 만나 결혼을 한다. 올해 50대 중반으로 시 습작생이다. 조그만 세탁소를 꾸려가는 한 이민 가정의 아내이자 어머니,

승철이란 인물은 미경의 남편이며 한국의 모 기업에서 일하다가 좁고 숨 막히는 한국의 현실이 싫어서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 애틀란타로 취업 이민을 간다. 그곳에서 닭장 속의 닭처럼 일 년만 견디면 닭장의 우리를 빠져나와 당당하게 영주권을 받고 행복하게 살 수가 있는 것이다. 현재는 엘에이 소재 모 한인 방송국에 다닌다.

 

 

#1

방의 두 벽면을 천장까지 책으로 도배한 책장.

천장 아래 책꽂이엔 멕시코에서 산 크고 둥그런 챙이 달린 모자가 보인다.

미경의 손이 쉽게 닿을 수 있는 높이의 책꽂이에 조 말론의 향수가 보이고

나란히 탁상시계가 오후 두 시를 가리킨다.

미경이 책상 밑으로 고개를 숙이는가 싶더니 무엇이 생각났는지 급하게 핸드백만 챙겨 문 앞 신발장 위에서 차 열쇠를 잡아채더니 차를 몰고 나간다.

 

#2

어젯밤 화장이 반 지워진 상태로 머리카락을 귀 뒤로 쓸어 넘기는 그녀,

레잌 에브뉴에서 꺾어 직진해서 세탁소에 도착한다. 스트릿에 파킹한 그녀가 차문을 열고 나온다. 잠시 세탁소 내부를 살핀다.

환한 대낮인데 세탁소 안 실내에는 불이 꺼져 있고 문은 굳게 잠겨 있다.

핸드백을 뒤져보지만 가게 열쇠가 만져지지 않는다. 십여 년 전에 4.19 폭동을 회상하는 그녀의 옆모습이 서서히 굳어진다. 입력된 전화번호를 찾아서 종업원에게 전화한다. 남편에게도 전화를 건다. 전화를 받을 리 없다. 그녀는 전화기를 땅바닥에 내팽개친다.

곧 사이렌 소리가 나더니 빨간 소방서차와 경찰차 여러 대가 미경을 포위하듯 거리를 휩쓸고 지나간다. 버스 정류장 앞 긴 벤치에 누워 있던 홈리스가 겁먹은 얼굴로 이쪽을 흠칫 돌아본다. 미경 옆으로 드레스를 입고 곱게 머리를 세팅한 젊은 여자가

어린아이 둘의 손을 잡고 익스큐스 미, 하며 지나간다. 그 바로 뒤로 까만 벨벳 천으로 된 아기 손바닥 만한 빵떡 모자를 눌러 쓴 검은 정장 차림으로 지나가는 유대인 남자, 가족들의 옷차림을 잠시 넋 나간 듯 바라본다. 교회가 이 근처에 있었지.  오늘이 일요일 , 가게가 문을 닫는 일요일이지.   그제야 미경이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어 올리며 몸을 일으켜 세운다.

 

#3

오후 610, 집에 돌아온 남편이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뒤뜰로 나간다.

그 옆 잔디밭 위에 떨어진 오렌지들이 몇 개가 보인다.

뒤뜰 잔디밭에서 자신의 골프 포즈를 수시로 교정하는 모습이 부엌의 창으로 쉽게 보인다. , 하는 골프채 스윙 소리가 나고 이웃집 담장으로 아이들이 농구공이 아스팔트 바닥에 튀는 소리를 낸다. 여자의 허스키 목소리가 아이들을 불러들이고 이내 잠잠하다. 저녁 식탁 위, 7, 8 종류의 반찬들이 차려져 있다. 다이닝 테이블과 부엌 그리고 거실까지 확 트인 공간.

남편은 저녁을 먹으면서 식탁 위의 반찬 대신 티브이에 시선이 고정되어 있다.

나이스 샷! 소리가 부엌 개수대까지 들린다. 안방 화장실의 변기 주변에 골프 만화책이 어지러이 널브러져 있다. 말없이 치우는 여자의 손이 확대된다.

**

십년을 골프에 빼앗긴 남편과 이제 막 시마에 붙잡혀 미친 길을 걷는 아내는 한국의 모 문예지에 막 응모를 한  시인지망생. 가끔 전화로 안부 전화가 걸려오는 타주에 사는 아이들. 의대를 나와 인턴을 하고 있는 큰아이와  모   아이티 산업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앞 날이 창창한  작은 아이, 너무 바빠서 띄엄띄엄 부모를 보러오는 아이들. 멀리 떨어져 있지만 아이들만 생각하면 왠지 가슴이 뿌듯해진다.

 

남편은 골프로 아내는 문학으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먼 곳에, 한 가정이 점차 균열되어 나가는 발단의 과정이다.

 

#4

아침 7, 남편은 샤워실에서 샤워를 하고, 전화벨 소리가 울린다. 부엌에서 아침 식사를 준비하던 미경이 남편 서재에 가보니 벌써 전화는 이미 끊어져 있었고 낯선 여자의 이름이 핸드폰의 스크린에 뜬다. 애슐리. 처음 보는 이름은 아니다.

 

**

한인 대형 마켓, 입구에 두 팔이 절단된 한인 남자가 휠체어에 앉아 있다.

입구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고개를 돌려 그쪽을 애써 외면한다.

입구 계산대에 서서 미경은 멕시코인 점원에게 크레디트카드를 건네주고 있다.

뒷줄에서 기다리고 있던 여자 하나가 미세스 킴, 하며 부른다.

돌아보니 초록색 골프복 차림을 한 그녀는 남편의 직장 동료의 아내다.

한두 번 본적이 있는데, 꽤나 수다스러워 피하고 있다.

미경에게 뭔가 이야기를 하고 싶은 그녀를 뒤로하고 수인사만 하고 헤어진다.

 

문자에 뜬 낯선 여자의 이름과 직장에서 들려오는 남편의 소문에 미경은 갈등한다. 수십 년을 함께 해온 남편과의 결별은 쉽지가 않다. 그러나 이대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살 수는 없는 것이다.

 

 

#5

긴 통유리문 앞에 선 미경의 검은 실루엣이 보인다. 그때 전화벨 소리가 난다. 남편의 친구의 이름이 핸드폰 스크린에 뜬다. 꽤나 다급한 목소리. 골프를 치다가 남편이 갑자기 쓰러졌다는 것이다. 동맥파열로 응급실에 있다는 것이다.

**

병원의 수술실 웨이팅 룸에는 한쪽 벽면에 중형급 수족관이 보인다. 온갖 화려한 색깔의 열대어들이 자유롭게 움직인다. 의자 여럿이 혈관처럼 일렬로 늘어섰고,

미경이 맥없이 아무 의자에 철퍼덕 앉는다. 일반 병실로 옮겨지기 전, 남편은 지난 이틀 동안 퓨즈가 나간 기계처럼 소리를 질러대서 병실 벽에 응급 불빛이

하루에도 여러 번이나 깜빡였다. 간호사들이 그를 꼼짝 못하게 몸을 침대에 묶어놨기 때문이다. 아마도 남편은 추운 닭공장에서 누런 닭기름을 잘라내며

하루하루 자신의 몸이 냉동 닭이 되는 생각을 하나 보다. 미경을 보고 누구세요, 하는 바람에 많이 놀라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기적적으로 남편은 살아났다.

다만 변한 게 있다면 그의 어눌한 말투였다,

 

이혼을 굳게 결심한 후 혼자 여생을 계획하던 미경으로서는 남편의 발병은 뜻하지 않은 복병인 것이다. 언제 또다시 터질 줄 모르는 남편의 치료되지 못한 복부의 동맥은 그녀를 꼼짝 못하게 만드는 올가미인 것이다. 남편은 가정으로 돌아오나 아내 미경은 공허할 뿐이다.

 

**

일상의 평범함은 평일 오후 두 시로 시작되는가.

어느 40대 미모인 여자의 방문. 뭔가 미스터리를 가득 담고 있는듯한 긴 머리카락.

아직까지 그녀의 이름을 물어보지 못했다. 애슐리 애슐리 그 이름을 되뇌인다. 언젠가 보았던 이름, 남편의 애인으로 오해를 하고......

옛날에 남편의 집에서 세 들어 살던 아주머니의 딸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것을 기억해낸다. 남편의 이복 동기간임을 알게 되고, 남편의 소문은 결국 소문으로 끝이 난다. 이혼 후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유일한 아들을 미국에서 명문대에 보내고자 하는 마음에 미국으로 미경의 남편을 찾아오게 된 것이다.

 

**

더 이상 미경에게 이혼의 사유가 없어졌기 때문에 이 스토리는 주인공인 미경의 개인사에겐 극의 절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일상 속에 묻히고 마는 그녀의 삶은 자신에게 설명이 필요하다.

 

#6

방에서 웃음소리가 새어 나온다.

벽에는 가족사진과 작은 유화 그림이 걸려 있다.

방 한 켠, 트렁크와 자잘한 짐가방들이 잡다하게 옷과 구두들을 쏟아낸다.

무관심하다고 생각했던 자식들이 남편의 발병으로 부모를 위해 쉽지 않은 결정을 내린다. 부모의 집으로 다시 모여들게 되고, 균열이 된 듯싶은 이 가정에 다시 웃음이 새어 나온다.

**

시월 중순의 오후 두 시 쯤, 창밖으로 쏟아지는 눈부신 가을볕 봄을 기다리는 자카란다 나무의 큰 키가  허공을 바라보는 여자의 옆얼굴과 대비되며 카메라에 클로즈업된다.

미경이가 독백처럼 중얼거린다. “당신들은 내가 아무것도 되지 못한데 대해 책임이 있어요” (입센의 인형의 집에서 나오는 대사)

 

**

스토리의 외면은 해피앤딩으로 끝이 나는 듯이 보인다.

하지만 주인공 미경이 시인으로써 이루고자 하는 삶은 이곳에 나와 있지 않다.

미경의 입장으로 입센의 인형의 집이 생각나는 시점이다.

아메리칸 드림은 과연 이루어지는가.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누구의 아메리칸 드림이며 어떻게 실현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