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시간을 멈춘 시계

2020.02.27 09:32

서경 조회 수:16

시간을 멈춘 시계.jpg


유튜브를 통해 이승철의 희망콘서트 프로그램을 보았다.
언제 찍었는지 모르지만, 재능 기부의 일환으로 찍은 영상인 듯하다.
대상은 이런 저런 연유로 소년원에 들어 와 죗값을 치루고 있는 소년들이었다.
희망 콘서트를 위한 합창단 모집에 몇몇 아이들이 모여 들었다.
그 중에 한 소년이 눈에 들어 왔다.
이름은 알 수 없지만, 소년원에는 어울림직하지 않는 순진한 얼굴의 십대 남자 아이였다.
그의 나이로 보면, 분명 ‘청소년’이란 이름이 어울림직하다.
하지만, 그는 자유를 억압 당하고 한동안 푸른 꿈을 보류해야만 하는 아이다.
웃음기 가신 아이의 얼굴이 짠하다.
무슨 연유인지 모르나, 그는 자기가 가장 좋아하던 동생 같은 아이를 죽이고 들어 와 죗값을 치루는 중이었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동안, 서서히 아이들 마음이 열리고 몇몇 아이들은 속내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이 아이도 속내를 털어놓기 시작한 아이 중  하나였다.
다만, 이야기 시작부터 좀 특이했다.
아이는 차고 있는 자기 시계를 보여주면서 말했다.
- 시계는 제가 만들 때 일부러 멈추게 해 놨습니다. 7시 24분으로요.
- ???
- 이 시간은 사고가 일어났던 바로 그 시간입니다.
- 아!
- 보면서 계속 반성하려고 이 시계를 꾸준히 차고 있습니다.
- ......
그 말을 듣는 순간, 모두 할 말을 잃었다.
다만, 가슴과 가슴으로 그 애의 진심이 전해져 와 감동할 뿐이었다.
보는 나도 할 말이 없었다.
아이는 시계공 재활반에 들어가 시계 조립 기술을 배우고 있는 모양이다.
7시24분으로 멈춰져 있는 시계 얼굴엔 자기가 죽인 그 아이와 함께 환히 웃고 있는 사진이 깔려 있었다.
시계를 볼 때마다 얼마나 가슴이 아플까.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는 아이의 얼굴이 새겨진 사진.
그리고 두 번 다시 돌아보고 싶지 않은 그 때 그 시간.
시침을 돌리듯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그 애는 1분이라도 사건 이전의 시간으로 돌리고 싶었을 게다.
그럼에도 자기가 죽인 아이 사진을 보고 그 시간을 기억하며 반성에 또 반성을 하고 있다는 아이.
이 아이에게 누가 돌을 던질 수 있을까.
다시는 네 죄를 묻지 않겠다는 예수님이 떠오른다.
하얀 밤을 지새며 밤마다 사과의 편지를 써 보지만, 미안한 마음에 죽인 아이 어머님께 차마 건네지 못했다는 아이.
자기를 형처럼 따르던 아이를 죽이고 아이 어머님께 사과조차 하지 못한 채, 영어의 몸으로 살아가야 하는 아이의 처지가 안타깝다 못해 가혹했다.
정말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한 순간의 실수가 천추의 한이 된 아이는 그 애 앞에도 뒤에도 옆에도 있었다.
아, 이 아이들의 인생은 어떻게 될까.
어둠이 짙을수록 한 줄기 빛은 더 간절한 것.
누구의 아이디어였을까.
한 줌의 햇살같이, 한 뼘의 푸른 하늘같이 어느 날 ‘희망 콘서트’가  찾아 왔다.
노래를 부를 일이 없는 아이들에게 잃어버린 노래도 왔다.
그 선봉에 형같은 멘토 가수 이승철이 섰다.
노래가 무언지, 곡조는 아이들 마음을 울리고 가슴에 와 박히는 가사 한 마디 한 마디는 제 사연인 양 울먹이게 했다.
그러나 결코 서러움의 눈물만은 아니었다.
웃음기 가신 아이들 얼굴에 웃음이 돌아오고, 처음엔 수줍어서 소리조차 못내던 아이들이 합창단원으로 당당히 무대에 섰다.
수의를 벗고 합창단 단복으로 갈아 입으며 신나서 어쩔 줄 모르는 아이는 영락없는 개구쟁이 십대 소년이었다.
연습에 연습을 거듭한 아이들은 혼신의 힘을 다해 좋은 무대를 선보이려 애썼다.
멘토 가수 이승철도 남다른 감회에 젖어 지휘를 했다.
방청석에선 한 곡 한 곡이 끝날 때마다 박수가 터져 나오고 한 쪽에선 소리 없이 흐르는 눈물로 응원을 대신했다.
정말 감동적인 희망 콘서트였다.
나는 사연 있는 아이들 얼굴을 하나 하나 눈여겨 보며 눈부처로 새겼다.
그 중에서도 시간을 멈춘 시계를 찬 아이와 유독 오래 눈맞춤했다.
한 번의 실수가 비싸게 값을 치룬 보속이 되기를...
이 힘든 시간이 외려 기회가 되어 인생에 반전이 오기를 ...
뜨거운 가슴으로 빌고 또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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