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늦은 시작은 없다

2020.03.13 13:45

서경 조회 수:7

늦은 시작은.jpg



헌팅톤 피치 마라톤에서 환히 웃고 있는 할머니 러너를 만났다.
방금 힘겹게 뛰고 왔는데도 힘든 기색 하나 없이 활짝 웃고 있다.
작은 체구에  채 100파운드도 안 되게 깡마른 모습이었다.
마침, 기록 책업하려는 내 곁에 서 있길래 말을 걸었다.
하프를 뛰고 왔는데 자기 연령대에서 1등을 했다고 한다.  
2시간 14분.
실례지만, 연세가 어떻게 되느냐고 여쭈었다.
81세.
엥?
언제 부터 달리기를 시작했느냐니까, 71세에 시작했단다.
와우! 71세에?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달리기 경력 10년.
자기 나이도 있고, 무리하지 않으려고 하프만 뛴다고 했다.
몇 번 정도 뛰었냐니까 “휴-“하며 셀 수 없다는 제스처를 취한다.
코스가 다른 하프는 찾아서 뛰고, 코스가 같아도 집에서 가까운 대회는 해마다 참가한다고 했다.
63살에 시작한 나를 보고도 친구들은 질겁을 하며 무릎에 무리 온다고 말렸다.
그런데 이 분은 일흔 한 살의 나이에 시작하셨다.
완전히 희망의 아이콘이다.
결코, ‘늦은 시작’은 없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새로 시작하는 사랑이 늘 첫사랑이듯, 새로 시작하는 그 출발선이 언제나 ‘새로운 시작’이요 ‘가장 빠른 시작’이란 생각을 했다.
말 끝마다 “이 나이에...” “이 나이에...” 하며 나이 타령하는 사람은 노인으로 살다가 노인으로 죽는다.
가만히 있어도 세월은 우리를 노인으로 만들어 준다.
마냥 노인네 행세만 하다 갈 것인가 아니면 무언가 노력하다 갈 것인가는 본인의 선택에 달렸다.
시작도 해 보지 않고, 지례 짐작으로 포기하는 사람은 시간을 소비하는 사람이 아니라 낭비하는 사람이다.
작은 것일지라도, 무언가 동적인 것을 시작해 볼 일이다.
편견이나 불안감을 버리고 자기 좋아하는 것을 한 번 시도해 보는 거다.
나이들수록 동적인 삶이 필요하다는 걸 새삼 느낀다.
나도 사십 년간, 짐에 가기는커녕 조깅도 한 번 안해 본 사람이다.
슬슬 위기감을 느끼던 순간, 일간지에 실린 마라톤 교실 기사를 보고 참가하게 되었다.
일 하기 전 새벽 시간을 이용할 수 있고, 새벽을 가르며 달리는 건강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겁없이 시작했다.
게다가, 파트너 없이 할 수 있는 운동에 경비도 그렇게 많이 들지 않는 운동이다.
뛰다가 걷다가 속도도 자기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다.
이토록 시간과 장소에 구애됨 없이 할 수 있는 운동도 흔치 않다.
좋은 선택이었고, 성실한 코치와 좋은 팀원들을 만난 것도 행운이었다.
아직도 이불을 박차고 침대에서 내려오는 그 동선이 가장 멀긴 하지만 일단 일어나기만 하면 절반은 성공이다.
가슴에 차 오르는 행복감과 자신감은 덤으로 얻는 보너스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라는 말씀을 읽을 때마다 마음이 좀 뜨끔하곤 했다.
이웃 사랑은커녕, 내 몸도 그다지 아끼고 사랑해 본 적이 없었다는 자괴감이 들곤했다.
나의 게으름 탓이다.
죽는 날까지 생동감 있게 사는 삶.
멋지지 않겠는가.
건전한 정신도 건강한 육체에서 나온다.
내 영혼을 담는 그릇인 내 육체도 좀더 애정을 가지고 가꾸어 줘야 덜 미안할 것같다.
내 몸과 육체는 죽을 때까지 동고동락해야할 운명공체가 아닌가.
불행히도 그녀의 이름은 잊어버렸지만 환히 웃던 모습은 아직도 눈 앞에 삼삼하다.
행복한그녀를 보고 나니, 더욱 용기가 생긴다.
나도 그녀처럼 건강한 몸과 행복한 모습으로 늙어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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