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엄마 이름은 베로니카

2020.04.28 16:27

서경 조회 수: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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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녘 새소리에 잠을 깼다. 오늘은 2020년 4월 26일. 엄마가 하늘로 비상하신 지 8주년이 되는 날이다.
  오늘따라, 유난히 새소리가 맑고 높다. 째엑 짹짹짹, 쭈우 쭈쭈쭈, 호로로 로로로... 리드미컬한 새소리는 멜로디도 다양하다. 감칠맛나게 노래 부르시던 엄마의 화신인가.
  - 희선아! 나 왔어! 나와 봐!
  엄마가 날 부르는 듯한 착각에 창문을 활짝 열었다. 진정, 엄마가 날 보러 오신 걸까. 나는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자그마한 새. 내 주먹 안에 들어옴직한 작은 체구다. 한복이 몸에 착 붙던 아담 사이즈 엄마를 닮았다. 포롱포롱 날아 다니는 새들을 물끄러미 보고 있노라니 코 끝이 시큰해 왔다.
  불쌍한 우리 엄마... 어려서 당신 아버지 여의고, 고지식한 구식 어머니 때문에 꿈에 그리던 진주사범도 못가고 한이 맺혔던 엄마.  
  얼마나 한이 맺혔으면, ABC도 모르던 사람이 영어 학교에 다녀 5형식도 다 알고 까다로운 문법도 통달했을까. 목적어와 보어 구분이 어렵다며 상을 펴놓고 애기처럼 조르던 생각이 난다.
  조근조근 설명해 주면, “넌, 선생 출신이라서 그런가? 어쩌면 이리도 귀에 쏙쏙 들어오게 잘 가르쳐 주노?”하며 칭찬해 주셨다. 나는 늘 플러스 알파를 하는 버릇이 있다.
  내친 김에, 육하원칙 5W 1H도 보너스로 가르쳐 드렸더니 너무나 기뻐하셨다. 엄마가 언제 공자를 만나셨나. 배우고 익히는 것만큼 엄마를 행복하게 해 주는 건 없었다.
   엄마 유품에서 가장 많이 나온 것도 역시 공부하던 책이며 노트와 연필, 팬이었다. 깨끗한 네프킨이나 남은 노트를 잘라 만든 육필 가사집도 여러 권 나왔다. 노래를 워낙 좋아하시기도 했지만, 한글을 익히기 위해 부지런히 노래 가사를 쓴다고 하셨다.
  엄마는 옛날부터 빈 종이를 버리는 법이 없었다. 변변한 여백만 보이면, 무엇이든지 쓰셨다. 신문을 읽다가 모르는 한자가 나오면, 옥편에서 찾아 신문 여백에 몇 번이고 써서 익히곤 하셨다. 자타가 인정하는 노력파다.
  뿐만 아니라, 엄마는 어릴 때부터 내 글의 첫번째 독자요 평론가였다. 어쩌다 쓴 글을 읽어 드리면, 먼 산 능선을 보는 눈빛으로 회상에 잠기곤 하셨다. 지난 날, 함께 걸어나온 추억의 통로를 엄마도 더듬는 거였다. 엄마의 평가는 한결 같았다.
 - 야야! 우째 그리 본 듯이 썼노?”
  엄마의 어법에는 생동감 있다는 둥, 묘사가 잘 됐다는 둥 하는 고급진 어휘가 없다. ‘본 듯이 썼다’는 게 최상의 표현이다.
  어릴 때, 우리 가난했던 시절 이야기를 읽어 드리면 “창피하게 그런 건 말라꼬 쓰노?”하시며 눈물을 훔쳤다. 고생시켜서 미안하다는 엄마의 반어법이다.
  엄마 병상을 지키며 함께 보낸 한달 간의 마지막 시간은 내 생애 가장 귀하고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우리는 열린 마음으로 모든 걸 허심탄회하게 나누었다. 장례 방법이며, 수의며, 심지어 엄마 수첩에서 장례식 때 부를 베스트 프렌드명단도 다 받아 두었다. 물론, 나는 ‘만약’을 위한 준비란 단서를 붙여 엄마 마음을 편안하게 해 드렸다.
  하루는 꽂꽂이 하는 친구가 병 문안 차 가지고 온 꽃을 보며 뜬금없이 물으셨다.
  - 희선아, 저 자잘한 분홍꽃 이름이 뭐꼬?
  - 글쎄요? 연미색 저 큰 꽃은 백합인데...
  - 꽃이 자잘하니 참 예쁘네? 꽃도 예쁘게 잘 꼽았네? 나도 나가면 꼭 저대로 한 번 꼽아 볼끼다.
  엄마는 꽃과 금붕어를 사랑하셨다. 병상에 누워서도 금붕어 밥을 걱정하시고 꽃에 물 주고 오라고 당부하셨다.
  - 그러세요! 엄마는 눈살미가 좋아서 딱 한번만 보면 아시잖아요!
   엄마는 나아서 나가리란 희망을 놓지 않으셨다. 하지만, 나는 위암 말기의 어머니가 이제 며칠 못 사신다는 걸 알고 있었다. 친구에게 꽃 이름을 물어 보니, ‘베고니아’라고 했다.
  - 엄마, 베고니아래요!
  - 그래? 저기 예쁜 꽃도 많이 있는데, 나는 자꾸만 저 꽃에 눈이 가네?
   어머니는 그런 분이다. 크고 화려한 것보다는 작고 소박한 것을 좋아하셨다. 다음날 새벽 네 시경 눈을 뜨니, 어머닌 벌써 일어나 앉아 계셨다.
  - 야야! 내가 어젯밤에는 참 희한한 꿈을 꿨다 아이가? 내가 하느님을 봤어!
  - 네? 하느님? 하느님은 빛으로 둘러 싸여 얼굴을 볼 수 없는데요? 예수님이라면 몰라도... 어떻게 생겼어요?
  - 아, 그라몬 예수님인갑다. 와, 저기 중동 사람들같이 긴 옷을 걸치고 샌달을 신었는데 발이 엄청 크더라.
  - 아! 그러면 예수님 맞는데?
   평생 불교 신자가 꿈 속에서 부처님도 아니고 예수님을 봤다니 신기했다. 병원에 입원하기 전, 동생이 모시고 온 목사님께 성령 기도를 받고 어머니 마음이 조금 열린 건 알고 있었다.
  - 꿈 속에서 예수님이 뭐라고 말씀하셨어요?
  - 으응, “니가 이 꽃을 그리 좋아하느냐? 그러면, 이 꽃 너 줄게!” 하면서 나한테 꽃을 안겨 주시더라!
  - 와우! 그래요오? 대단한 꿈이네요! 예수님한테 꽃을 다 받다니!
  엄마하고 나하고는 평소에도 친구같이 케미가 좋다.
  - 그래 말이야. 참 신기하제? 그런데 말야, 희선아! 너거 천주교에서 주는 이름 안 있나, 그 뭐라 카노?
  - 아, 네! 본명요.
  - 그래! 꿈에서 깨고 가마이 생각해 보니, 내가 꽃을 받은 게 아니라 성당에서 주는 이름 하나 받았다는 생각이 자꾸만 드는 기라! 혹시, 베고니아 비슷한 이름 있나?
  - 아, 있죠! 베로니카! 예수님이 십자가 지고 골고다 산으로 끌려 가실 때 손수건으로 피땀 닦아주신 분이에요!
  -...,..
  어머니는 더 이상 말씀하시지 않았지만 깊은 생각에 빠지시는 듯했다.
  - 희선아! 내가 만약 나아서 병원 나가면 니하고 성당에 나갈란다. 교회는 나하고 잘 안 맞는 거 같아! 불교하고 성당은 좀 비슷한 것도 많잖아...
  그런 날이 오면 오죽 좋을까. 그러나 어머니가 나가실 성당은 이 땅에 없다. 봄날도 여명 기간도 짧기만 하다. 여든 셋. 잔병없이 여기까지 오신 것만 해도 기적이다.
  - 네! 알았어요! 일단, 빨리 낫기나 하세요!  오늘부터 엄마  이름은 ‘베로니카’에요! 자, 여기......
  나는 하얀 백지를 꺼내어, < 베고니아=꽃이름, 베로니카= 본명 >이라고 크게 써 드렸다. 그리고 시간 있을 때마다, 어머니 머리 속에 입력시켜 드렸다. 엄마 이름은 예수님이 지어주신 베로니카라고.
  어머니는 그 일이 있고 사흘 뒤에 돌아 가셨다. 가난한 살림에 식구는 많아, 시어머니와 시동생 거기에 육남매까지 돌보시느라 평생 고생하셨다. 그 노고를 주님도 아셨던 것일까. 죽음 복 하나는 주셨다.
   평생 불교 신자로 살아오신 분이 죽음 이후에 베로니카란 본명을 받고 천주교 장례미사를 드릴 수 있었으니 이게 바로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랴! 신앙의 신비다. 어머니 돌아가신 건 너무나 슬프다. 하지만, 한 번은 치루어야할 일이기에, 최소한 죽음 복 받고 가셨다는 게 큰 위로가 됐다.
  지수연 베로니카! 한 사람의 아내였고 육남매의 어머니였던 한 여인. 그는 분명코 주님께 큰 상 받으시고 저 천국에서 영생 복락을 누리고 계시리라.
  한달 간, 병실에서 쪽잠을 자며 간호하는 나를 보고 계속 미안하다는 말을 달고 사신 어머니. “미안하다는 말 대신, <만약에> 천국 가시면 복이나 많이 주세요!” 했더니, “암! 내가 니 복 따따불로 줄끼다!” 하고 어머니는 흔쾌히 대답하셨다.
  우리 어머니는 약속 하나 보증수표다. 8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따따불은커녕, 따불도 못 받은 거 같은데 한번 지켜볼 참이다. 말끝마다 어머니께 “다 살았나?” 하고 큰 소리 치던 아버지 문구처럼, 아직 ‘다 살지’ 않았으니 앞날에 희망이 있겠지.
  - 왔나? 문 열어 주까?”
  아파트 벨을 누를 때마다 들려오던 어머니의 따스한 음성이 못내 그립다.
   - 어머니! 나 가거든 천국문이나 열어 주세요. 사랑해요!
   여전히 짹짹거리는 새소리에 그리움 후루룩 실어 보낸다.
    (2020.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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