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5.01 17:32
이.메일ㅡ죽어서 산다
호주 시골의 어느 요양병원에서 한 의지할 곳 없이 외로운 노인(연령미상)이 세상을 떠났다. 2012년 7월 20일의 일이다. 노인의 보잘 것 없이 소박한 소장품을 정리하던 간호사는 그 속에서 ‘Cranky Old Man'(註: 까다로운 노인)이란 제목의 詩를 발견하게 된다. 그 시의 내용에 감동한 간호사는 사본을 만들어 병원의 동료 간호사들에게 배포하였다. 한 간호사는 멜번((Melbourne)으로 나가, 노인의 시를 잡지에 게재하여 독자들로부터 큰 반향을 얻었다. 노인은 아무것도 세상에 남긴 것 없이 갔지만, 그가 남긴 평범한 시는 지금 까지도 ‘작자 미상’의 작품으로 인터넷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한다.
위의 이야기는 ‘Alive After’(註:죽어서 산다)라는 제목으로 페이스북에 올라 있는 것으로, 지인이 나에게 이.메일로 전송해준 것인데, 필자가 번역하여 여기에 소개하는 것이다. 그 속에 담겨있는 노인의 시(Cranky Old Man)도, 편집상 약간의 수정을 가하여, 한글로 옮긴 것임을 이해해 주기 바란다.
‘까다로운 노인’
간호사님! 나를 볼 때 무엇이 보이십니까? 그리고 어떤 생각을 하게 됩니까?/ 침침한 눈빛의 별로 똑똑치 못한/ 음식을 잘 흘리고, 크게 말하는데도 알아듣도 못하고, 대답도 없는/ 양말이나 신발을 항상 잊어버리고, 목욕 시킬 때나 식사 할 때 시간을 오래 끄는, 한 까다로운 초라한 노인이 보이시나요?/ 그렇다면 당신은 나를 본 것이 아닙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말씀 드릴께요./
내가 간호사님의 지시에 따라, 이 자리에 앉아 있거나 밥을 먹을 때/ 나는 사랑하는 아버지 어머니와 형제자매를 가진 열 살 난 애 랍니다/ 발에 날개가 달린 열여섯 살 소년이랍니다./ 스무 살에는 뛰는 가슴을 안고 곧 만나게 될 신부를 꿈꾸는 예비 신랑/ 스물다섯에는 결혼 서약을 하고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서른에는 한껏 청춘을 구가하며 마음껏 사랑하고 / 마흔에는 성장한 아들이 집을 떠나지만, 아내는 내 옆에서 나를 위로해 주었지오/ 사랑하는 아내와 같이 하는 행복도 잠시 일뿐/ 나이 듦과 함께 슬픔이 닥쳐 오드군요/ 마누라는 두려움에 떠는 나를 두고 먼저 가버리드군요/ 이제 청춘은 떠나 버리고 나는 지난날을 뒤 돌아 봅니다/ 자연은 냉엄하여 나는 이제 다 망가진 몸으로 바보처럼 돼 버렸습니다/ 생기와 품위는 모두 나에게서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 옛날 뜨거운 심장이 뛰던 곳에는 지금 차가운 돌덩어리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비록 몸은 늙었지만, 내 몸 속에는 아직도 청춘이 살아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나의 심장은 다시 부풀어 오릅니다/ 나는 지난날의 환희와 영광을 기억합니다. 나는 인생을 다시 사랑하며 살기로 했습니다./ 세월은 너무 빨리 지나가 버리고, 세상에는 아무것도 영원할 수 없다는 엄숙한 사실을 새삼 깨달았지오./ 간호사님! 눈을 뜨세요. 눈을 똑 바로 뜨고 바라보세요/ 까다로운 노인일랑은 말고, 더 가까이서 나의 안을 바라보아 주시기 바랍니다./ (註: ‘Cranky Old man)’의 끝)
노인을 다음번에 만나게 되면 그냥 스치지 말고 그분 안의 젊음을 보도록 하자. 우리 모두는 언젠가는 다 나이를 먹게 마련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위대한 것은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가슴 속으로 느낄 뿐이다. (註: ‘Alive After’라는 제목의 이.메일의 끝)
지인이 내게 전송한 ‘Alive After’ 라는 이.메일은 이렇게 끝난다.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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