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사랑인가, 만용인가

2020.05.02 07:48

서경 조회 수:34


 동미 사진.jpg

   눈을 뜨고 보니, 창밖엔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 새들도 곤히 자는지 조용하다. 시계를 보니, 채 다섯 시가 되지 않았다. 머리맡에 있는 전화기를 들어, 페이스 북에 올라온 글들을 읽기 시작했다.
  시골에서 특수 농작물을 짓고 있는 폐친의 글이 하나 올라 와 있었다. 서울행 버스를 타고 가는 길에 생긴 일이었다. 코로나 관계로 버스속에서도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고 있었나 보다. 두 사람이 앉는 자리에 각각 한 사람씩 앉아 있었다.  
  마지막으로 젊은 군인이 올라 탔다. 혼자 앉을 자리가 없다. 부득불 누군가와 같이 앉아 가야만 했다. 그 순간, 앉아 있는 모든 사람들이 ‘제발, 내 옆에 안 왔으면...’하고 바랬다.
  운 나쁘게도 하필이면 내 폐친 옆자리에 ‘털썩’ 앉았다. 심히 불쾌했다. ‘다른 자리 모두 혼잔데 내 자리만 둘!’ 속이 부글거렸다. 하지만, 피하거나 선택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그는 스스로 마음을 고쳐 먹었다. ‘에이, 그래! 내가 편하게 보였나 보지 뭐!’ 그러자, 거짓말같이 마음이 편해졌다. ‘나는 편안한 사람이다! 야호~!’ 그는 쾌재를 불렀다.
  그의 ‘야호~!’라는 쾌재에 나도 미소지었다. 그리고 포장하지 않고 들려준 진솔한 속내가 좋았다. 그는 신실한 믿음 생활을 하는 사람이다. 파안대소하고 있는 그의 프로필 사진을 보면 누가 봐도 ‘사람 좋아 보이는’ 인상이다.
  그럼에도, 그는 순간적이나마 For You가 아닌 For Me의 마음을 가졌다. 이게 바로 인간 본성이다. 코로나가 잦아들고 있다고는 하나, 아직은 옆에 사람이 앉거나 가까이 오면 조심스러울 때다.
  나는 그 글을 읽고, 내가 현장에 있었으면 어찌 했을까 생각해 보았다. 우선, 버스 속 풍경을 그려 본다. 모두가 한 자리씩 자리잡고 앉은 상태에서 젊은 군인이 성큼 들어선다. 사람들은 순간! 긴장한다.
  ‘앉을 자리가 없는데?’ ‘저 젊은이가 어디 앉을까?’ ‘아, 제발, 내 옆에만 안 왔으면!’ ‘재수없이 내 옆에 앉는 거 아냐?’ 짧은 순간이지만, 갖가지 생각을 할 것이다.
  자, 그 버스 속에 내가 있다 치자. 분명히 창가에 앉았으리라. 나는 풍경 보기를 좋아하고, 이왕이면 한 치라도 더 가까이에서 보기 좋아하니까.
  버스는 출발하지 않았으나, 이제 더 이상 혼자 앉아 갈 자리는 없다. 뜻밖에도 한 사람이 더 올라 탔다. 그것도 아들같은 군인이다. 귀향을 하는 건지, 귀대를 하는 건지 알 수 없으나 그도 분명 먼 길을 앉아서 가야 한다.
  사람들은 자리를 찾기 위해 서치하는 그의 눈빛을 피하거나 애써 외면한다. 이런 상황, 내 행동은 안 봐도 비디오다. 내 눈길은 그 군인이 버스에 올라 타는 순간부터 계속 주시한다. 더 이상 자리가 없는 것을 알기에.
  그렇다. ‘외면’이 아니라 ‘주시’한다. 왜? 여차하면 도와주려고. 그가 한 바퀴 휙 돌아 보는 순간, 나와 눈이 마주친다. 나는 미소 짓는다. 그리고 눈빛으로 말한다. ‘그래! 어서 와요!  여기 내 옆 자리에 앉아요!’
  설령, 그 친구가 잠재적 보균자라 해도 그 순간만은 괴이치 않는다. 선을 행하다 죽으면 그 또한 행복이다. 일단, 앉을 자리를 마련해 주고 본다. 모두가 원치 않고 거부할 때, 오히려 나는 마음이 급해진다. 선천적 아웃사이더 마니아다.
  잠시나마, 타인에게 ‘거부’ 당해 무안해 할까 봐... 앉아 있는 분들이 외면하다 민망해 할까 봐... 자신을 서슴없이 받아준 사람이 있었다는 아름다운 기억을 주기 위해... 무엇보다도 내 마음의 기쁨과 평화를 위해서.
  사랑은 ‘나’ 중심이 아니라, ‘너’ 중심이다. 난 엄마가 되면서 배웠다. 문득, 오래 전 일이 떠오른다. 안에서 총기 사건이 일어났는지도 모르는데, 그 속에 있는 딸을 구하기 위해 뛰어 들어간 사건(?)이다.
  딸이 스윗 식스틴 파티를 레스토랑에서 열고 싶다고 했다. 딸은 그때 sweet하지도 않았고 sixteen도 아니었다. 열 다섯 살이었다. 하지만, 나는 두 말 없이 딸아이의 말을 받아들였다. 단, 식당은 위험해서 안 되고 성당 강당에서 하자고 제의했다.
  그때만 하더라도, LA에서는 청소년들의 마약 문제와 총기 사건이 큰 이슈가 될 때였다. 특히, 총기 사건은 틴 에이저 생일 파티에서 가장 빈번하게 일어났다. 나는 아이들이 외로워서 그런 사고를 낸다고 생각했다.
  딸 생일 핑계삼아, 이 기회에 성당 청소년도 같이 불러 아예 ‘발렌타인스 데이 댄스 파티’를 열어주고 싶었다. 스윗 식스틴은 청소년들이 가장 기다리는 이벤트로 빅 생일 파티다. 일생에 한 번이니 판을 크게 벌려도 상관 없다.
  딸도 내 의견에 찬성했다. 딸의 생일은 1월 24일, 2월 14일이 발렌타인스 데이다. 사랑을 주고 받는 발렌타인스 데이라 해도, 초콜렛 하나 못 받는 아이들도 있다. 그 아이들도 초대하라 했다.
  강당은 약 200여 명 들어갈 수 있고 파킹장도 충분하다. 성당이라 식당보다 안전하기도 했다. 어릴 때부터 이벤트를 좋아하던 딸아이는 신이 나서 친구들을 불러 장식을 하고 $300짜리 전문 디제이까지 불렀다. 관례인지 모르나, 디제이까지 부르고 놀 때는 보통 일인당 $2씩 낸다고 한다.
  나는 음식 준비를 하고, 안전대비를 위해 거금 300불을 들여 시큐리티 가드까지 세웠다. 시간은 저녁 7시부터 10시까지. 청소에 정리까지 하고 나면, 밤 11시다. 성당 사무실에도 시간을 알렸다. 돈이 제법 많이 들어도 딱 한 번인데 뭐, 싶어 나도 즐거웠다.
  삼삼오오. 아이들이 모여 들었다. 이 정도는 기대 안했는데 예상 외로 많이 몰려든다. 거의 200명에 가까웠다. 딸의 친한 친구는 20명 정도. 생일 파티가 아니라 완전 발렌타인스 댄스 파티다.
  시큐리티 가드는 한 명 한 명 몸검사를 한 뒤 들여 보냈다. 시큐리티 가드에게 치킨까지 사서 안겨드리고, 만약을 위해 나도 옆자리에 지키고 앉았다. 그만큼 청소년 파티에서는 사고가 잦았기 때문이었다.
  약 2시간 쯤 지났을까. 갑자기 파티장 안에서 ‘우당탕탕’하는 굉음이 들려 왔다. 안에서 놀던 여자 아이들이 비명을 지르며 달려 나왔다. 모두 혼비백산한 모습으로 달아났다.
  순간, ‘총소리다! ’하는 생각과 함께 “우리 딸!”하고 소리치며 뛰어 들어갔다. 튀어 오르듯 달려 들어가는 두 명의 시큐리티 가드보다 내가 더 빨랐다.
  남자 애들끼리 싸움판이 벌어져 난장판이다. 의자를 머리 위까지 올려 당장 내려칠 기세로 분기탱천한 녀석도 있었다. ‘임마들이 미쳤나, 성당에서 무슨 짓이야! 돈 들여서 실컷 놀라고 파티까지 열어 줬더니 싸워?’ 하는 생각에 화가 치밀었다.
  평소 감정이 안 좋았던 녀석들이 만나 주먹다짐까지 오가는 싸움으로 번졌단다. 총싸움이 아니라서 천만다행이다. 딸아이도 너무 놀라 파랗게 질려 있었다. 싸운 아이들은 우리 성당 아이들이 아니었다. 금방 사태수습은 됐으나, 파티도 끝이다.
   겁에 질린 여자 아이들은 이미 달아났고, 남자 아이들도 하나 둘, 빠져 나가기 시작했다. 씩씩거리며 싸우던 두 녀석도 눈물을 훔치며 멀어져 갔다. 아이들을 데리러 오는 엄마도 없이, 저들끼리 왔다가 저들끼리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보호받지도 못하고 가여운 녀석들. 자리를 펴 줘도 제대로 놀 줄도 모르는구나 싶어 눈물이 났다. 성당 마당을 무연히비추고 있는 달빛이 괜히 서러웠다.
  남들이 외면할 때 주시하는 것. 다 도망칠 때, 목숨 걸고 뛰어 드는 것, 건장한 녀석이 어덜트 스쿨에서 피 튀기며 싸울 때 소리치고 말린 것, 지하철 철로에 떨어질까 봐 황급히 달려가 뜯어 말린 것. 심야에 우는 이웃 아이 울음소리를 듣고 이불을 박차고 달려 나간 것...
  이것은 사랑인가, 만용인가. 착함인가 우매함인가. 미국에서는 그리 하면 큰일난다고 말린 사람도 있었다. 분명한 것은 그것을 따지지 않고 난 늘 ‘사람’에 꽂혀있다는 사실이다. 또한, 내 한 몸 날려 언제든지 도와 줄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 이것이 내 태성이다.  Not for Me, Only for You!   (2020. 4)

(사진 : 딸 동미. 스윗 식스 틴이 올해 마흔 살이 됐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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