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 칼럼
2020.10.21 03:06

사라진 대통령 후보(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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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명감독 알프레드 히치콧 작품 가운데 스틸 캡쳐


파라다이스 마사지 

전화를 받고 출동한 두 형사는 경광등을 번쩍이며 전력질주(全力疾走)한 끝에 예상보다 5분여 먼저 현장에 도착했다.

LA 재패니스 타운 상가 지역 한 귀퉁이에 위치한 파라다이스 마사지샵은 평범한 철골조(鐵骨造)에 시멘트를 외벽에 발라 

건축한 구조물이었다.

출입구 기둥에는 영문으로 표기한 파라다이스 마사지란 네온싸인이 걸려 있었다.

두 형사는 발뒤꿈치를 들고 조심스레 안으로 진입했다.

그러고는 사업장 카운터에 도달한 뒤 그곳을 지키고 있는 중년 동양여성과 마주쳤다.

여성과 눈을 마주친 소피아 형사가 방패 배지를 보이며 소근거리 듯 말했다.

“LAPD예요. 방금 코리안 여성으로부터 연락을 받고 왔어요. 이름이 엘리자벳 문이라 했는데, 지금 어디 있죠?”

 

여자가 유창한 영어로 말했다그녀는 지금 손님을 받고 있어요.”

순간, 스티브 혁 형사가 끼어들었다손님은 누굽니까? 동양인, 아니면…..”

여자가 말했다. 코리안 남자 두 사람이에요.”

두 형사가 중년 여인을 통해 동정(動靜)을 살피고 있는 사이 룸 안에선 격렬한 교접(交接)이 펼쳐지고 있었다.

룸에 설치된 두 개의 침대 위에서 짐승처럼 포효하며 여자를 짓누르고 있는 사내들은 다름아닌 북한에서 밀파된 팽목항과

양동일이었다.

두 사내는 마치 박음질에 굶주린 야수처럼 두 마사지 팔러 여성을 달구었다.

사내들의 거친 몸짓에 덩달아 달아오른 두 마사지 팔러 역시 적극적으로 반응했다.

 

그동안 직업을 통해 수많은 남자들을 상대해 왔지만 이들처럼 거칠고 묵직한 것은 처음이었다.

뒤로 사내를 상대하고 있는 엘리자벳 문은 방금 전 스티브 혁 형사와 통화를 한 사실조차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좀처럼 맛보기 힘든 짜릿하고 황홀한 담금질에 취해서 였다.


거친 쉼을 몰아 쉬며 여자를 몰아(沒我)속으로 빠트리고 있는 사내는 몸속의 모든 세포가 아우성을 치며 갈구(渴求)했는

가공할 힘을 쏟아내며 밀어붙였다.

짜릿한 고통을 맛보고 있는 여자도 몸속의 모든 기운을 그곳에 집중 시키고 남자를 한껏 조이며 농락했다.

 

여자가 마술을 걸자 진저리를 친 사내가 고개를 뒤로 젖혔다.

그러고는 밤꽃같은 섬광(閃光)을 터트리며 먼 꿈결로 빠져들었다.

미국에서 마지막 환희(歡喜)를 즐긴 두 사내는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은 뒤 마사지 룸을 빠져 나왔다.

순간, 복도에서 대기중이던 스티브 혁 형사와 소피아 형사를 비롯한 순찰 대원 십 수명이 두 사내를 향해 번개처럼 달겨들

었다.

무술 수십단인 두 사내는 손 한번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손목에 은팔찌를 걸었다.

 

뒤로 수갑을 채운 두 사내에게 소피아 형사가 어눌한 한국말로 미란다 수칙(守則: Miranda Waming)을 읊조렸다.

“…묵비권을 행사 할 수 있으며, 씨부린 발언이 법정에서 불리할 수 있다. 그리고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고….”등등

 

마사지 룸 복도에서 순경들에 의해 밖으로 내몰린 두 사내는 스티브혁 형사의 업무용 차량 뒷 좌석에 구겨 넣어진 뒤 비로

소 한국어로 변호사를 불러 달라고 말했다.

 

변호사를 요청한 사내는 스포츠 머리를 한 양동일 이었다.

그는 변호사를 청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보시라요. 혁 형사. 변호사는 울프 파이터(Wolf Fighter)소속 최강철을 불러 주시기요.”

호아킨 아로요 키브릴레스

LAPD 살인계 취조실로 연행된 두 사내는 자신들이 요구한 코리안 변호사가 올 때가지 입을 다물었다.

두 사내가 묵비권을 행사하며 취조에 응하지 않자 두 형사 역시 이들로부터 물러나 만약을 대비했다.

행여, 증거 불충분으로 두 사내가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파커 빌딩을 벗어나는 낭패를 사전 차단키 위해 만만의 준비를 서

둔 것이다.

마사지 가게에서 두 사내를 연행 한지 어느 덧 2시간이 흘렀다.

꽁지 머리에 갈색 캐주얼 정장, 그리고 핑크색 와이셔츠에 초록색 넥타이로 치장한 동양인 사내가 헐레벌떡 숨을 몰아 쉬며

살인계로 들어섰다.

 

꽁지 머리가 얼굴을 들이밀자 모든 시선이 그에게 집중됐다.

차림새가 너무나 우스꽝스러웠기 때문 였다.

금테 잠자리 안경을 걸친 꽁지 머리는 콧잔등 아래로 흘러내린 안경을 밀어 올리며 자신을 향하고 있는 시선들을 향해 말했

.

물론 영어였다. 스티브 혁 형사가 누굽니까?”

순간, 시선 가운데 한 사내가 손을 번쩍 들었다.

그러고는 한국어로 자신이 장본인이라고 말했다.

꽁지머리가 혁 형사 곁으로 다가와 악수를 청하며 말했다.

형사님이 연행한 코리안을 변호할 최강철입니다.”

 

꽁지 머리가 변호사 운운하며 너스레를 떨자 자신의 데스크에서 컴퓨터를 만지작거리던 소피아 형사가 혁 형사의 데스크로 다가왔다.

소피아 형사가 꽁지머리를 향해 말했다카운슬러, 양반. 제 말 똑바로 들으세요. 취조실에 갇힌 두 사내는 지금 살인혐의를 받고 있어요. 댁도 알겠지만 피해자는 다름아닌 사우스 코리아의 우력 대선 후보였어요. 따라서 우리 공권력은 여타 살인사건보다 더욱 신중을 기해 저들을 심문할 거예요. 노파심에서 미리 말하지만, 취조 과정에서 공권력이 다소 불필요한 언행을 보이더라도 너무 나대지 말아요.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겠죠?”

소피아 형사가 노골적으로 협박하 듯 말하자 꽁지머리가 비릿한 웃음을 입가에 드리우며 말했다.

미녀 형사나리. 시작도 하기 전에 미리 겁부터 주는거요? 아무튼 나의 임무는 피의자의 방어권을 보호해 주는 것이니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마쇼.”

꽁지 머리가 비웃듯 말끝을 치켜 세우자 듣고만 있던 스티브 혁 형사가 입을 열었다.

긴 말은 필요 없고….쓸데 없이 나대지만 않는다면 우리는 그것으로 족해.”


정확히 5분 뒤

취조실에 설치된 52인치 HDTV 모니터에는 두 살인혐의자가 빗물 통인 다운스팟을 타고 2층으로 기어오르는 장면이 재생됐다.

2층 창가에 도착한 살인 혐의자 가운데 스포츠 머리의 양동일이 허리춤에서 유리 절단기를 꺼내 손잡이 부분을 원형으로 도려낸 뒤 창문 안쪽 잠금 장치를 풀고 문을 연 뒤 두 사내가 차례로 안을 몸을 구겨 넣었다.

눈과 코만 뚫린 스키 모자에 나이키 추리닝 운동복 차림이었다.

신발 역시 나이키 런닝화()였다. 검정색이었고 육안으로도 밑창이 두툼해 보였다.

앞서, 과학 수사대의 족족 검사에서 이들의 신발 자국이 나타나지 않은 이유는 다름아닌 신발 밑창에 신축성이 뛰어난 스폰지를 부착(附着)했기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한편 모니터에 이어진 영상은 이들 살인혐의자들이 다시 창문을 통해 물통을 타고 내려간 뒤 사라지는 장면이 다였다.

이어진 영상은 검정색 면바지에 알록달록한 무늬가 새겨진 와이셔츠를 걸친 두 살인 혐의자가 나이키 매장에 나타난 장면이었다.

이들은 매장 안을 어슬렁거리며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다 살인 현장에 입고 나타난 검정색 나이키 추리닝 운동복을 골랐다.

그러고는 캐셔에게 가격을 디스카운트 해달라며 흥정했다.

캐셔는 프로였다.

손님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고도 상대의 요구를 슬쩍 비껴나가는 요령을 터득하고 있었다.

하여, 캐셔는 얼굴에 미소를 가득 지으며 손사래를 쳤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손님, 미안해요. 디스카운트는 연중행사 때나 가능합니다.

두 사내도 더 이상의 농 짓거리를 거두고 현찰로 옷값을 치룬 뒤 곧바로 매장을 나섰다.

두번째 영상도 여기까지였다.     

동영상을 모니터 화면에서 걷어낸 소피아 형사는 이번에는 스틸 사진을 화면에 클로즈업 시켰다.

컬러사진 이었고, 배경은 꿈결 마사지가게였다.

 

소피아 형사가 턱으로 모니터 화면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포 의원 살해 현장에선 놈들이 모두 스키 모자를 써 얼굴을 확인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나이키 매장에서 드러난 두 얼굴

은 빼도박도 못하게 완벽 했어. 이러고도 그대들이 범인이 아니라고 발뺌하지는 못할거야.”

 

순간 꽁지머리가 소피아 형사의 말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역시 듣던 소문대로 소피아 형사나리는 성질이 매우 급하시구먼요.”

“……”

형사님. 방금 하신 말씀 액면 그대로 해석하면 이 두 분이 살인을 저지른 유력한 용의자라 단정을 하신건대….그건 말도 

안되는 추립니다.”

“……”

생각해 보십쇼. 소피아 형사님. 미국에는 현재 33천만명 넘는 다양한 인종이 섞여 살고 있고요. 하루에도 2백 만명이 

넘는 외국인들이 들락 거리고 있죠. 이처럼 계산 조차 버거운 유동인구들 가운데 제 의뢰인인 이들 두 분께서 특정인을 살

했다….. 이거 말이 되는 겁니까? 단지 심증만 같고 예단 하다니요? 는 두 형사님의 명성에 스스로 똥칠을 하시는 겁니

.”


꽁지 머리가 비아냥 조의 변론을 펴자 얼굴에 불편한 심기를 드리운 소피아 형사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게 무슨 개소리야! 공권력이 심증만 같고 저들을 죄인 취급한다고? 당신도 영상을 봤잖아? 저 증거만으로도 공권력은 

저들을 빵(유치장)에 가둘 수 있어. 저 두 놈은 살인예비 혐의자야. 뿐만 아냐. 저들이 사용한 여권도 가짜야. 남의 것을 도

용했다구. 공문서 위조에, 불법입국 죄 추가야.이래도 할말이 있어?”

 

꽁지머리 변호사는 할말을 잃었다.

소피아 형사의 앙칼진 지적이 하나도 틀린 것이 없었기 떼문 였다.

하여, 도무지 빠져나갈 구멍이 보이질 않았다.

살인 예비혐의 / 주거침입 / 여권 법 위반 / 불법 입국.

이것만으로도 공권력은 저들을 충분히 1년 이상 구금할 수 있다.

사면초가(四面楚歌)였다.


변호사가 입맛을 다시며 전전긍긍하자 두 살인혐의자가 영문을 몰라해 하는 눈초리로 꽁지머리를 살폈다.

팔짱을 낀 채 한동안 소피아 형사를 째려본 꽁지머리가 스티브 혁 형사에게 말했다.

형사님. 잠시 저희끼리 나눌 야기가 있거든요. 자리 좀 피해주실래?”

스티브 혁 형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단지 소피아 형사에게 눈짓을 하곤 취조실을 떠났다.

 

스파이 거울 밖에서 안을 훔쳐본 형사 반장과 3급 형사 등 살인계 소속 팀원들이 밖으로 나 온 혁 형사와 소피아 형사를 바

라보며 이구동성으로 물었다.

갑자기 무슨 일인가?”

소피아 형사가 반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모르겠어요. 제가 꽁지 머리에게 살인 예비 혐의 및 불법 입국 여권법 위반운운한 뒤 당장 구속 시키겠다고 했더니 저 

두 놈이 얼굴이 사색이 된 채 변호사에게 마구 소리를 지르더라구요. 그러고는 자기들끼리 할 말이 있다며 우리에게 나가달

라 했어요.”

소피아 형사가 뭔가 저들에게 급소를 찌른 것 아냐?”

맥스 웨인버그 반장이 스파이 거울을 통해 안의 동정을 살피며 말했.

취조실 안에서는 목소리를 높인 두 살인혐의자가 꽁지머리를 향해 삿대질을 하며 길길이 날뛰었다.

두 사내에게 영문 모를 공격을 당하고 있는 꽁지 머리는 양손바닥을 하늘로 향한 채 어깨를 들썩거렸다.

 

한동안 옥신각신 하던 두 사내와 꽁지머리 변호사는 대략 10여 분 후 평정을 되찾고 밖으로 나간 두 형사를 불러들였다.

두 형사가 각자 자리를 차지 앉자 꽁지 머리가 말했다.

혁 형사님. 저 분들이 매우 중대한 것을 털어놓을 겁니다. 무척 놀라실 겁니다.”

꽁지 머리는 그러고는 두 사내에게 시선을 주었다.

순간, 스포츠 머리를 한 양동일이 두 형사를 곁눈질 하며 입을 열었.

혁 형사님. 우리는 그 날 여포라는 대통령 후보를 죽이지 않았읍네. 그 양반을 죽인 놈은 따로 있시요?”

혁 형사가 허리를 고추 세우며 말했다뭐라구, 여포 의원을 죽인 범인이 따로 있다니….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이번에는 필터까지 타 들어간 담배 꽁초를 플라스틱 재떨이에 비벼끈 뒤 새 담배에 불을 붙이던 팽목항이 끼어들었다.

그렇습네다. 저 친구 말이 사실이라요. 우리가 방에 들어갔을 때 외국인 젊은 남자 놈이 손에 권총을 쥐고 깊은 잠에 빠져 

있던 여폰가 뭔가 하는 그자를 내려다 보고는 방아쇠를 당겼시요. 총구에는 소음기가 장착돼 있었지비.”

 

통역기를 통해 이들의 진술을 듣고 있던 소피아 형사가 팽목항을 향해 서툰 한국어로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봐, 그걸 지금 우리더러 믿으라는 거야?”

그러자 이번에는 꽁지 머리 변호사가 나섰다.

역시 듣던 대로 소피아 형사님의 성질머리는 대단하십니다.”

“…….?”

애니웨이. 그건 그렇고. 이들 두 분이 살인범이 아니라는 증거는 이겁니다.”

 

꽁지 머리 변호사는 그러고는 경찰이 이들에게 압수한 삼성 갤럭시폴드 폰을 가져다 달라고 혁 형사에게 부탁했다.

눈치가 바른 소피아 형사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비운 뒤 5분만에 다시 돌아왔다.

소피아 형사 손에는 폴더 폰이 쥐어 있었다.

 

소피아 형사로부터 폴더 폰을 건네 받은 꽁지머리가 팽목항에게 패스워드를 물었고 곧바로 화면을 연 뒤 동영상 앱을 작동 시켰다.

폴더 폰의 화면을 곁눈질 하고 있던 팽목항이 문제의 영상을 골라 재생 시켰다.

영상 속 장소는 글로리아 방의 저택 2층 이었다.

전개된 영상의 초기 화면은 좌우로 마구 흔들렸다.

그리고 약 4~5초가 흐르자 영상 화면이 비로소 자리를 잡고 방 안 전체를 이리저리 비췄다.

영상은 다시 침대로 향했다.

침대 곁에는 소음기가 장착된 권총을 손에 쥔 외국인 젊은 사내가 두 눈을 치켜 뜨고 상대를 바라보는 장면이 담겼다.

손은 푸른색 라텍스 고무 장갑을 착용하고 있었다.

 

유력 대선 후보는 몸에 총알을 박고 이미 절명한 상태였다.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두 사내 중 양동일이 유창한 영어로 젊은이에게 말했다.

너는 누구야?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나?”

상대가 말했다.

히스택닉 억양이 짙게 가미된 영어였다.

보면 몰라? 놈을 제거한 걸. 그런데 너희들은 누구냐?”

우리도 너처럼 침대에 있는 이 놈을 해치우러 왔지.”

 

영상은 시신이 덮고 있던 블랑킷 위로 피가 꾸역구역 적셔 나오는 장면을 클로즈업 하고 있었다.

수초 동안 주검을 담았던 영상은 다시 히스패닉 젊은 사내에게 옮겨 갔다.

 

비록 폴더폰이기는 했으나 세심하게 영상을 담아냈다.

모르긴 해도 이처럼 영상에 심혈을 기울인 것은 일을 처리한 증거 사본으로 제출키 위한 것임이 틀림없었다.  

계속해서 양동일이 히스태닉에게 물었다.

그런데, 너는 어떻게 이 방으로 들어왔지?”

상대가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어떻게 들어오다니….안방 문으로 들어왔지.”

거기에는 CCTV가 없나?”

순간 히스패닉이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야? CCTV라니….집 안에는 그런거 없어.”

 

두 사내는 그때서야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히스패닉이 다시 말했다.

헌데, 당신들은 어디에서 왔나? 어느 소속이지? 다운타운 차이니스 그룹이야?”

역시 영어가 능통한 양동일이 상대의 말을 받았다.

우린 아무 소속도 아냐. 그냥 프로지.”

히스패닉은 프로라는 말에 피식 웃고는 등을 보이며 걸어나갔다.

그러고는 권총을 쥔 손을 번쩍들어 휘젓이며 큰소리로 외쳤다.

굿 럭!”


폴더 폰에 담긴 영상은 여기까지 였다.

영상에 주목한 두 형사는 변호사로부터 폴더 폰을 다시 인계 받고 밖으로 나왔다.

두 형사와 마주친 반장이 말했다.

빌어먹을! 이거 일이 점점 이상하게 꼬이는구만. 이쯤에서 사건이 해결될 줄 알았는데, 정작 킬러는 따로 있으니 말야. 모처럼 가족과 함께 마이애미로 여름 휴가를 즐기려 했는데, 씨부럴 말짱 도루묵일세.”

망연자실(茫然自失)한 표정의 반장이 연거푸 씩씩대자 그를 둘러싼 형사들이 킥킥거리며 고소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반장이 목과 양미간에 핏대를 세우며 말했다.

이봐, 스티브. 그리고 소피아 형사. 당장 저 두 놈을 살인 예비 혐의와 주거 침입죄로 유치장에 처넣어.그리고 히스패닉 킬러가 안방 문을 통해 무사히 안으로 들어 온 것이 아무래도 냄새가 나. 내부 협력자는 없는지 집구석을 샅샅이 뒤져보라구.”

스티브 혁 형사와 소피아 형사를 곁눈질하며 이렇게 주문한 반장은 스파이 거울을 통해 취조실 안을 훔치며 다시 한번 빌어먹을! 을 토해냈다.

 

랜초 팔로스 버디스(Rancho Palos Verdes)  

평생 동안 한번도 오지 않았을 법한 이곳에 다시 발을 들인 스티브 혁 형사와 소피아 형사는 클로리아 방이 거주하는 대저택에 들어섰다.

소규모 성채(城砦)를 방불케 할 정도로 압도적인 규모의 대저택은 마치 흉가(凶家)처럼 긴징감만 맴돌았다.

저택 입구에 설치된 CCTV 벨을 누르자 삼성 갤럭시 테블릿 S7 크기만 한 모니터에 얼굴이 나타났다.

얼굴이 말했다.

히스패닉 여성이었다.

누구세요? 어떻게 오셨죠?”

소피아 형사가 말했다.

“LAPD예요.”

LAPD라는 말에 철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그러고는 수초 후 검정색 메르세데스 벤츠 S600 승용차가 미끄러지듯 다가왔다.

운전석에 앉은 여성은 다름아닌 집주인 글로리아 방이었다.

두 형사를 한눈에 알아 본 여자가 유리문을 내리고 깍듯한 영어로 말했다. 

오랫만이군. 먼 길 오시느라 수고 하셨어요. 뒤 좌석에 오르세요.”

 

메르세데스는 대략 2분여 거리를 되돌아가 저택 본채 입구에 정차했다.

여자의 안내를 받은 두 형사는 집 안으로 들어서자 마자 2층으로 향했다.

여전히 경찰에 의해 폐쇄된 마스터 베이스 룸은 외부인의 출입을 불허한 채 적막감에 빠져 있었다.

노란색 폴리스 라인 출입금지 테이프를 낚시용 칼로 잘라낸 소피아 형사가 먼저 안으로 들어섰다.

방 안은 사건 감식 후의 모습 그대로 흐트러져 있었다.

 

두 살인혐의자가 침입한 창문의 잘려나간 유리창은 비가 들이치지 않도록 덕 테이프로 두텁게 발라 놓았다.

여포 의원이 누웠던 침대에는 자주색으로 변한 커다란 혈흔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스티브 혁 형사와 소피아 형사는 사건 현장을 다시 이리저리 훑어보며 폴더 폰의 영상을 오버랩 했다.

손에 소음기가 장착된 권총으로  망자를 가리키며 위풍당당하게 씨부린 히스패닉계 라티노는 대체 어떤 놈인가?

무슨 이유로 망자를 살해 했을까?

치정(癡情)인가?

그건 말도 안되는 추리다.

그렇다면, 원한 관계?

이것 역시 지나친 가설(假說)이다.

왜냐?

상대는 다름아닌 코리아의 현직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히스패닉과는 결코 원한을 살 이유가 없지 않은가.

두 형사는 방 안을 선회(旋回)하며 수많은 시나리오를 상상했다.

 

현장에서 대략 10여 분을 머문 두 형사는 1층 거실로 옮겨가 집주인이 안내하는 다이닝 룸으로 갔다.

다이닝 룸 식탁에는 여러가지 다양한 과일과 견과류 그리고 과자들이 놓여 있었다.

 

집주인이 두 형사에게 물었다

어떤 종류의 차를 준비할까요?”

두 형사가 이구동성으로 답했다.

카페인이 가득한 블랙 커피로 부탁합니다.”

 

블랙 커피는 집주인이 손수 만들어 대접했다.

두 형사와 마주보고 앉은 집주인은 배와 사과 등 과일도 깎아냈다.

 

소피아 형사는 여자의 일거수 일투족을 머리 속에 스캔했다.

흰색 폴로 티셔츠를 걸친 집주인의 단단한 젖가슴도 여전히 눈길을 끌었다.

젖꼭지가 드러날 정도로 노출된 젖가슴은 둥글고 팽팽했다.

같은 여성으로도 성적 매력을 느낄 수 있는 형상이었다.

 

신발은 캐주얼인 뉴 밸런스를 신었다.

여자는 엄청난 재력가였음에도 차림새는 더없이 순수했다.

블랙 커피를 홀짝거린 두 형사는 커피가 식어가자 잔을 내려 놓고 집주인을 바라보았다.

두 형사의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되자 여자가 말했다.

형사님들께서 저를 보자고 한 이유가 궁금하군요.”

소피아 형사가 자세를 고쳐 잡으며 말했다.

우선 바쁘신 와중에 시간을 내 주셔서 고마워요. 방 여사님에게 여쭤 볼 질문은 두가지 입니다.”

그냥 글로리아라고 불러줘요.”

집주인은 얼굴에 보조개를 만들며 소피아 형사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소피아 형사가 말했다.

우선 드릴 말씀은 혹시 이 집에 드나드는 외부인들이 많은가 하는 질문 이예요. 덧붙여 히스패닉계 인물들도 포함돼 있는지 알고 싶군요.”

집주인이 말했다.

물론이예요. 수많은 히스패닉들이 내 집에서 일하죠. 우선 하우스 키퍼가 그렇고요. 다음으론 정원관리인들 역시 히스패닉예요. 그밖에도 매일 아침마다 그로서리를 배달하는 이들도 남미계 사람들이죠.”

 

집주인이 다양한 계통의 히스패닉 인물들을 거론하자 이번에는 스티브 혁 형사가 폴더 폰에서 캡처한 컬러 스틸 사진을 뒷주머니에서 꺼내 들었다.

사진 속 인물은 살해 현장에서 총을 발사한 히스패닉 계 젊은 청년이었다.

스티브 혁 형사가 말했다.

이 남자를 기억하십니까?”

집주인은 혁 형사가 턱으로 가리킨 스틸 사진을 노려보았다.

그러고는 놀라는 투로 말했다.

이 청년은 까밀라 로드리게스의 아들이예요.”

이번에는 소피아 형사가 나섰다.

까밀라씨는 무엇을 하는 분인가요?”

집주인이 말했다.

주말에만 저희 집에서 살림을 돕는 하우스 키퍼예요.”

방금 아들 운운 하셨는데.”

그래요.”

집주인은 그러고는 시선으로 사진을 가리키며 덧붙였다.

이름은 호야킨 아로요 기브릴레스구요. 간혹 엄마와 함께 이곳에 와 허드렛일을 도와주곤 했죠.”

소피아 형사가 계속했다.

남미 출신이겠죠? 그리고 나이는 몇 살이나 됐나요?”

집주인이 말했다.

까밀라가 말하길 남미 콜롬비아 출신이라고 했습니다. 호야킨의 나이는 27살이고요.”

 

여기까지 말한 집주인이 잠시 뜸을 들이다가 이내 말꼬리를 이었다.

헌데, 이 청년에 대해서 왜 물으시는거죠?”

듣고만 있던 스티브 혁 형사가 말했다.

놀라지 마십시오. 이 자가 여포 의원을 살해한 진범(眞犯)입니다.

뭐라고요? 호야킨이 우리 그이를 죽인 살인범….말도 안돼. 이 청년은 결코 법이 없어도 살 수 있는 얌전하고 예의 바른 사람이예요.”

시선은 여전히 사진에 집중하고 있는 집주인이 곤혹스런 표정으로 몸을 가늘게 떨었다.

순간적으로 공황장애(恐慌障碍)에 빠진 집주인을 향해 진정하라며 위안을 준 혁 형사가 조심스레 말했다.

방여사께서 당혹스러워 하시는 이유를 알겠습니다. 예의 바르고 얌전한 청년이 총잡이가 돼 그것도 다름아닌 사랑하는 사람을 저격했다는 사실에 놀라시는 것은 당연합니다. 허나 현실은 이같은 상황입니다.”

여기까지 말한 혁 형사는 일순간 침묵한 뒤 허리춤에 찬 삼성 갤럭시 노트 스마트 폰을 꺼내 들었다.

손에 쥔 갤럭시 노트의 화면을 지문인식으로 푼 혁 형사는 사진 앱을 클릭한 뒤 비디오 클립을 작동해 저장해 둔 영상을 재생했다.

영상은 북한에서 밀파(密派)한 킬러들이 이곳 2층 침실에서 찍은 동영상이었다.

스티브 혁 형사는 아직도 불안에 떨고 있는 집주인을 향해 갤럭시 노트를 조심스레 보여주며 말했다.

마음이 편찮으시더라도 보아 주십시오. 사건 해결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습니다.”

집주인은 처음에는 동영상을 애써 외면했다.

하지만 혁 형사가 사건 해결 운운하자 양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화면에 시선을 주었다.

동영상은 파커 빌딩 취조실에서 재생한 내용 그대로였다.

살해 당한 여포 의원이 내려다 보이는 가운데 히스패닉 청년이 손에 소음기가 부착된 권총을 쥐고 모습이 보이지 않는 상대와 영어로 대화하는 장면이었다.

영상에 시선을 빠트린 집주인은 오마이 갓을 연발했다.

전신(全身)은 점점 더 심하게 떨었다.

집주인을 곁눈질 한 스티브 혁 형사가 더 이쯤에서 동영상을 닫아도 된다고 생각하곤 갤럭시 노트 화면을 아래로 쓸어 내렸다.

집주인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망연자실(茫然自失)한 표정이었다.

어깨도 축 늘어진 상태였다.

두 뺨에는 굵은 눈물이 빠른 속도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집주인이 불안정한 모습을 취하자 소피아 형사가 다가가 어깨를 다독이며 위로했다.

글로리아씨. 미안해요. 하지만 우리 직업이 싫든 좋든 확인을 거듭하는 것이어서 어쩔 수 없었어요.”

집주인이 말했다.

충분히 이해해요. 제가 너무 주책을 떤 것 같군요.”

집주인은 그러고는 다시 자세를 추스렸다.

집주인이 안정을 되찾자 소피아 형사가 말했다.

호야킨의 거주지를 아시나요? 전화번호 또는 집주소 같은 것….”

물론이예요. 제가 일꾼들을 채용할 때는 항상 면접을 본 뒤 ID와 전화번호 그리고 집주소를 기록해 둡니다. 때문에 하우스 키퍼 까밀라의 집주소도 갖고 있어요.”

집주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곧바로 서재로 갔다.

그러고는 수십 초 후 A4용지에 손 글씨로 휘갈겨 쓴 살해범의 집주소와 하우스 키퍼의 전화번호를 두 형사에게 건넸다.

집주인 글로리아 방과 헤어진 두형사는 차에 올라 즉시 구글 로드맵에 호야킨이 거주하는 주소를 입력했다.

주소가 가리킨 곳은 아파트 단지였다..

아파트는 히스패닉 밀집 거주 지역인 웨스트 LA에 위치해 있었다.

차에 시동을 건 스티브 혁 형사는 소피아 형사가 안전벨트의 버클을 끼우자 엑셀을 밝고 목적지를 향해 달려 나갔다.

(계속)

이산해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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