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만섭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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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손자 껴안기

2020.12.22 02:59

라만섭 조회 수:8

손자 껴안기

 

벤튜라 카운티에 사는 아들 내외가 손자들과 함께 다녀갔다. 그 동안 주로 전화와 영상으로만 연락해 오던 터에, 오래간만에 직접 대하는 얼굴인지라 반가운 김에 막내 녀석(16)을 덥썩 껴안았다. 이어서 순서를 기다리는 듯 한 표정의 형들(3형제)도 연속으로 포옹하게 됐다. 몇 달 동안 집콕을 해오던 가운데 후련한 기분도 들었지만 마스크도 안한 채 이래도 되는 건지 이러다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건 아닌지 불안한 생각이 스쳤지만, 이내 오가는 이야기에 정신이 팔려서 잊고 있었다.

 

애들이 떠나자 아까 그 생각이 다시 떠올랐다. ‘좀 참을 걸 그랬나?’ ‘팔굽 인사나 하고 말걸....’ 하고 후회를 하게 됐다. 방광암 수술 뒤라 면역력도 떨어졌을 텐데...라는 생각에 미치매 덜컥 겁이 났다. 에이드리안(가운데 녀석)이 저녁에는 파트타임으로 피자 배달을 한다는 말이 귓전을 때린다. “How many times do you go out to make delivery a night?" 내가 물었다. “At least 10 times" “Do you and co-workers wear mask?" 내 질문은 이어졌다. 바이러스 공격을 피할 길은 없겠지만, 그래도 지금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바탕 포옹 강박감에 사로 잡혀 있다가 깨달은 바는, 바이러스의 잠복기간이 14일이라니까 이 기간을 잘 넘기는 수 밖 에 다른 도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애비가 의사이니 알아서 잘 하고 있겠지하고 자위하면서. 비록 겉으로는 애써 태연한 척 하면서도, 피 말리는 하루하루의 연속이었다. 드디어 14일의 고비를 무사히 넘겼다. 그저 모두에게 감사한 마음뿐 이다. 몇 달째 이어지는 코로나 사태로 지쳐버린 가운데 심리적인 불안과 초조를 겪게 되니 몸과 마음이 더 피곤해 진다.

 

이 세상에 나올 때와 마찬가지로 가는 것도, 나의 선택 밖의 일인 것 같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갈 것인지 내가 뜻대로 결정 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갈 때가 됐는데도 가지 않으려고 발버둥 쳐 보았자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안다. `

 

포옹은 소통의 수단, 친밀한 유대관계의 유지와 발전, 이해의 촉진과 행복의 촉매제로서 매우 효과적인 것이라고 한다. 특히 노인에게 포옹의 의미는 크다. 손자, 손녀를 향한 할아버지, 할머니의 포옹은 무조건적인 무언의 애정의 표현이다. 포옹을 하면 옥시토신(oxytocin)이라는 뇌하수체 호르몬의 분비가 촉진되어 면역력을 증진 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베이로 의과대학의 아심. 샤아(Asim A. Shah)교수는 주장한다. 최근의 한 조사에 의하면 코로나 19로 인한 봉쇄 조치로 집안에 갇혀 지내야 하는 노년층이 가장 아쉬워하는 것이 손자, 손녀를 끌어안지 못하는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코로나 19 팬데믹은 종래의 일상에 큰 변화를 몰고 왔으며 포옹도 예외가 아니다. 가까운 친지나 가족이 아닌 사람과의 허깅, 코로나 이후에도 당분간 모습을 감출 것으로 내다보인다. 웬만한 모임도 비 대면이 대세가 돼가고 있는 요즈음이 아닌가.

 

하지만 늙은 조부모들의 손자 사랑은 변함이 없다. 사랑하는 손자를 껴안지 못하는 괴로움은, 비대면 영상으로 해소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하루 빨리 팬데믹 사태에서 벗어나 옛 모습을 되찾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20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