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상훈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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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American Dream의 애환

2021.06.01 20:36

양 상 훈 조회 수:28

 

                                         American Dream의 애환

                                                                                                                       양 상 훈

 

  아메리칸 드림은 미국에서 이루고자하는 가치(價値)나 사회적 수준, 민주주의, 평등, 부의 축적 등 많은 사람들의 꿈을 상징하는 말이다. 미합중국은 일찍이 이민의 나라로 200여 민족이 다양한 문화를 융합하여 셀러드 문화를 형성하여 국가발전에 기여한다. 세계 초강국으로서 세계경찰 및 국제패권주의 위상을 견지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이민정책의 근본원리는 개국한 선조들의 건국이념인 자유 평등 정의의 정신을 실천코자하는 데 뿌리를 두고 있다. 따라서 세계이민자들이 그 소망의 꿈을 실현코자 미국으로 몰리고 있다.

현재 3 23백여만 명의 미국 인구 대열 속에 우리 한민족도 118년이란 이민사를 갖고 있다. 이민 초기 망국의 어둠이 짙어질 때 이루 말할 수 없는 서글픈 사연과 가슴 아픈 애환을 새겨 볼 필요가 있다.

 

190211월 조선말 고종이 하와이 농장주들의 요청에 이민을 허락함으로써 한인 노동자들의 이민이 시작되었다. 190212 22Gaelic호를 타고 신천지를 향해 아메리칸 드림을 안고 인천항을 기약 없이 떠난 게 첫 이민이다. 한국에서 하와이로 직접 갈 수 있는 길이 없어 일본 고베 항을 경유하게 되었다.1903113일 호놀룰루 항에 도착하여 101명 중에 신체검사로 15명이 탈락하여 최종적으로 86명만이 허가를 받아 상륙하게 되었는데, 이들이 한민족 최초의 한인 이민으로 기록 되고 있다.

이때에 웃지 못 할 일들이 많이 일어나곤 했다. 한인 노동자 대부분이 남자들로 결혼을 하여 가정을 이루기를 원했으나, 한인 여성이 거의 없어 결혼 할 수가 없었다. 당시 동양인과 미국인과의 결혼을 금지하는 금혼법이 있었기 때문에 현지인과 결혼할 수도 없었고 ,결혼하려 한국을 다녀온다는 것은 거리와 비용 탓에 상상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궁여지책(窮餘之策)에 생겨난 이변이 사진결혼 이었다.서로가 사진으로 중매인을 통하여 주고받고, 이 사진을 들고 아가씨가 남자를 만나려 하와이로 건너오는 방법인데 이런 식으로 1910년부터 1924년까지 약1000명 정도의 사진 신부가 하와이에 건너오게 되었다사진만 보고 결혼하다보니 우습기도하고 슬프기도 한 에피소드가 참으로 많았고 문제도 적지 않았다. 노동이민 온 총각들은 결혼비용을 마련하기위해 10년 이상 부지런히 일해서 저축을 해야 만했다. 그러다보니 늙은 신랑과 어린 신부가 맺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그들의 평균나이 차이는 무려 15살이나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건너온 아가씨들에게 기다리고 있는 것은 연분홍빛 희망, 금의환향 (錦衣還鄕) 의 꿈보다는 척박하고 힘든 고생의 나날들 이었다. 대부분의 경우 낮에는 사탕수수밭에서 노동을 했고, 밤에는 삯바느질을 하여 오로지 자식과 자식교육에 온힘을 다하였다. 하와이를 우리민족사에 이민 종가로 이름 부친 분들이다. 부모들의 희생으로 후손들이 대부분 성공하여 미 주류사회에서 활약하며 조국 독립을 위해 헌신한 애국자들도 많이 나왔던 현상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그 후 일제 식민통치에서 이민 허용은 불가능 했고, 해방의 혼란기와 정부 수립 후 6.25전쟁 의 종결로 1953-65년 미군과 결혼한 한국여성과 양자로 기른 전쟁고아들이 미국으로 이민 오게 되었다. 그러다가 미국이민의 본격적인 물결은 1965년 이민법개정으로 한인의 이민제한 이 폐지되었다. 한인의 본격적인 미국이민은 1960년대 말부터 시작 1970-80년대에 봇물처럼

50만 명으로 급증하였다. 특히 1980년대 제5공화국의 해외유학 자유화로 유학생이 대거 미국에 유입되었다. 조국의 가난과 어려운 환경상황을 탈피하여 풍요로움과 기회의 땅 신대륙에 몰려오기 시작한 때였다. 여건과 기회가 되면 너도 나도 미국으로 이주하기를 원했고, 사회에서도 선망의 대상이 되었음을 숨김없는 사실이다.

  물밀듯이 밀려든 이민 물결이 증가추세였던 패턴이 1980년대 말에 접어들어 주춤하기 시작하여 그 후론 감소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막연히 아메리칸 드림을 품고 신대륙에 정착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을 깨닫기 시작 하던 때였다.

 그러나 여러 형태로 미국을 향한 출국 물결은 끊어지지 않았다. 그 동안 저마다 더 높은 이상으로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키 위하여 미 대륙에 상륙한 한인들의 각오는 대단하였다. 이질 문화의 갈등과 어려운 장벽을 잘 극복하면서, 짧은 이민사에 비해 근면한 민족으로 뿌리를 내려 성공적인 이민 모델을 창출한 민족으로 비쳐지는 점은, 타민족이 모두 인정하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약 250만의 한인들이 현재 미국 땅에 정착하여 활약하고 있다. 이들은 안에서 없거나 부족한 것을 밖에서 발견하고 안에서 이루지 못한 것을 밖에서 이뤄가고 있다. 이런 현상은 결국 애국의 길이요 국력신장의 길로 조국 발전에 크게 공헌 해 왔었다고 말할 수 있다.

  주변 이민세대들에게 왜 이 땅에 왔느냐고 물으면, 대부분 자녀교육 때문에 오게 되었다고 대답한다. 아메리칸드림의 본질이 자녀교육의 목적일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자녀들을 보다 좋은 환경에 성장시켜 더 훌륭한 교육시스템에 양질의 교육을 받게 하고 기회의 나라에서 그들의 꿈을 펼 수 있도록 하는 소망은 누구나 바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소망은 아무리 기름진 옥토에 좋은 꿈나무를 옮겨 심었다하더라도 저절로 자라지 않는 법이다

사랑과 정성으로 꿈나무를 가꾸어 나가야 할 것이다. 흙을 북돋우고 물을 주며 김을 매고 거름을 주며 가지를 치어야 무성한 나무로 자라게 된다. 경제적으로 성공을 하였다하더라도 자녀교육에 실패한다면 아메리칸드림도 허망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자연환경, 풍요로운 물질문화의 홍수에 아이들에게는 지상낙원이라 할 수 있지만, 갑자기 울타리 없는 자유 분망한 환경에 정상레일을 벗어나지 않을까 노심초사(勞心焦思)하기도 한다.

  이민 역사가 길어지고 그 뿌리도 정착됨에 따라 청소년들의 비행과 범죄도 늘어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것은 이민자의 모두 아픔이요 고통이며 책임이다.

우리의 전통문화와 미풍양속(美風良俗)을 이곳 토양에 적절히 혼합시켜 미국문화를 자연스럽게 소화하면서 이이덴티를 유지하는 길을 바람직하게 생각한다.

 

  짧은 역사에 족보도 없는 나라이면서도 소프트 하드웨어로 치밀하게 짜여 진 사회, 백만장자도 극빈자도 차별 없이 햄버거로 점심을 때우는 민주주의 동등의 나라, 누가 정치를 해도 굴러 가는 이상한 나라, 기독교적인 양심과 사랑에 바탕을 두고 그래도 약자에게 온정을 베풀어 주는 사회, 정의와 인도주의가 살아 있다는 나라, 다수와 소수, 정의와 불의, 선과 악이 부단히 싸우고 있는 사회. 노력하는 만큼 보상이 주어지는 공정한 룰의 사회...

   한인들은 자유 개방적인 이 사회에 초심으로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키 위하여 눈물로 대지를 갈며 열심히 노력하여 성공을 이루고 있다언젠가 성공해서 돌아간다 하지만, 지금까지 잘 살고 있어 막상 떠날 수 없는 유혹의 땅인지 모른다. 우리 주변엔 수십 년 이상 미국에 살면서 시민권자이면서도 한국을 늘 그리워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성공해서 고향에 곧 돌아간다 하면서도 아름다운 미국에 미련을 떨치지 못하고, 지금까지 꾸준히 잘 살고 있는 것이다. 언젠가 돌아간다는 그 푸념이 이민생활의 촉진제가 되고 있는지 모른다.

  이민세대는 아메리칸 드림의 날개를 달고, 바다를 날라 온 이상, 소중하게 간직해온 고향의 토양을 버리지 않고 여기서 후손들에게 새로운 둥지를 함께 튼튼히 설정해주는 일이 과제이며 보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이 땅에 주인의식을 확고히 심어주어 미 방방곡곡에 한민족 물결이 뻗어나가도록 해야 할 사명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황금을 위하여 기관차처럼 앞만 보고 질주 해온 사람들도 그동안 값진 많은 것도 흘리며 달려오지 않았는지 이제 잠시 뒤돌아 봐야 할 때이다.

밤이 새도록 돈을 헤아리는 손가락보다 시 한 줄을 쓰는 손이 더 아름다울 때가 있다. 행복은 부와 재력에 있는 것이 아니고, 사랑을 바탕으로 보람찬 평범한 생활 속에 발견되는 것이리라

워즈.워스도‘Plain living and highly thinking’.이 행복의 요건이라고 하였듯이 평범한 생활과 고상한 사고, 이것이 이민생활의 철학이었으면 한다. 소유의 최대화, 명예의 최고화, 향락의 극대화가 이민생활의 성공일 수 없고, 더구나 아메리칸 드림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타고르는 임종을 맞이하는 인간에게 이렇게 말했다.

죽음이 당신의 문을 노크할 때 무엇을 그에게 드리겠습니까? 나는 나의 생명이 충만한 광주리를 그 손님 앞에 내어 놓겠습니다.나는 절대로 그를 빈손으로 돌려보낼 수 는 없습니다.’

 우리는 떠날 때 무엇이라도 값진 것을 남겨 놓고 떠나야 하겠으며, 죄악과 오욕으로 점철된 누더기를 광주리에 담아서는 안 될 것이다. 작은 것이라도 아름다운 유산을 생명의 광주리에 남겨 놓고 가야할 것이다.

광활한 대륙에 높은 이상과 꿈을 안고 정착한 이상, 보람을 위해서 살며 역사적인 나그네로서 아름다운 유산을 남기고 가야할 것이다. 아메리카드림 이란 것도 이제는 삶의 질과 사랑을 바탕으로 한 보람된 생활이 진정한 아메리칸 드림으로 재고 할 때가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