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유자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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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사랑하는 까닭에 / 수필

2021.07.12 14:01

민유자 조회 수:15

사랑하는 까닭에

 

 막내 손자 이삭이 목 놓아 울었다. 눈물이 그치지를 않는다. 달 길이 없다. 안아줄 나이는 지난 다섯 살을 갓 넘긴 아이. 어미 품에서도 울음을 그치지 못한다. 너무 울어서 여린 눈자위가 불그레 퉁 부었다.

 

 되돌릴 수 없는 무정한 이별. 그 뼈아픈 아픔을 처음으로 생생히 체감하는 중이다. 잠시였지만 정들인 생명체를 잃은 상실감이 너무 크게 아팠나보다. 살면서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사랑의 단절이니!

 

 엄마, 아빠, 할아버지, 할머니는 모두 입가에 웃음을 우면서도 하도 서럽게 흐느끼는 녀석의 애련한 울음소리로 마음엔 안타까운 슬픈 안개가 뿌옇게 서린다.

 

 전에 살던 집에는 달팽이가 너무 많아서 진저리를 치고 보이는 대로 잡아내고 정기적으로 약도 뿌렸다. 어쩐 일인지 이 동네엔 개미도 흔치 않다. 학군이 좋은 동네라 아이들이 많아서 그런가 집집에 아름다운 정원보다는 수영장이 많고 페스트 콘트롤을 너무 잘해서인지 벌레가 귀하다.

 

 뒷마당에서 큰 포도알만 한 달팽이를 보니 새삼 반가웠다. 잡아다 둘째와 이삭에게 보였다. 둘째가 “아유! 징그러워” 하며 뒤로 물러선다. “아냐! 너무 귀여워! 자세히 보렴!” 집게손가락에 잡힌 달팽이를 내 왼쪽 손등에 얹었다. 움츠렸던 달팽이가 천천히 더듬이를 내밀고 길게 기어나와 앞으로 기어간다. 두 녀석이 얼굴을 디밀고 초롱한 눈길로 재미있는 듯 모양새를 관찰하며 질문이 많아진다. “이게 뭐야?” “스네일이야. 한국말로는 달팽이야.” “이건 뭐야!” “더듬이야.” “눈은 어디 있어?” “눈은 없어. 그 냥 더듬이만 있어.” “이거는 뭐야?” “집이야.” “이게 집이야?” “응 이게 집이야. 달팽이는 참 연약하단다. 아주 겁이 많고 수줍어. 그리고 아주 느리거든. 집을 지고 다니면서 조금만 무서워도 집 속에 들어가서 숨어. 그래서 힘들어도 집을 지고 다니는 거야. 이거 봐. 아주 살짝만 건드려도 움츠리잖아!”

 

“네 손바닥에 놓아볼래?” 두 아이가 다 쩍 물러나며 싫단다. 난 내 오른 손등을 혀로 살짝 으며 “그냥 이런 느낌이야!” 둘째가 먼저 하니 이삭도 해보겠다고 나선다. 달팽이를 손에 놓으려 하니 고개를 돌린 채 손바닥을 내밀고 눈을 꼭 감는다. 온몸에 힘을 주어 바짝 긴장하고 파르르 떨며 높은 소리를 지른다.

 

 한 번 하더니 팔에도 놓아보고 종아리에도 놓아보며 짜릿한 기쁨의 교감을 주고받는다. 두 녀석이 서로 번갈아 괴성을 지르고 깔깔댄다.

 

“이제 고만! 내가 말했잖아. 얘는 아주 겁이 많고 약하다고. 이제 여기다가 넣어서 쉬게 하자.” 맑은 유리병에 물을 한 수저 붓고 양상추를 조금 넣고 달팽이를 넣어주었다.

 

 다음 날 아침, 밤 동안에 양상추를 뜯어먹은 자리와 까만 실밥 같은 을 눈 것을 아이들과 함께 확인했다.

 

 이삭이 학교에서 돌아오자 먼저 병을 들여다보고 달팽이의 안부를 살핀다. “아, 이를 어쩌나!” 달팽이가 없어졌다. 뚜껑이 부실했나 보다. 이삭의 실망이 컸다. 어딘가에 기어들어가 숨어 있을 테니 할머니가 잘 찾아보겠다고 달랬다.

 

 다음 날 저녁, 둘째가 온 집 안에 들리도록 큰 소리를 질렀다. “달팽이 찾았다!” 이삭의 상심을 알고 있던 온 식구가 반가워하며 모여들었다. 제 집 속에 꽁꽁 숨은 달팽이는 나오지 않았다. 이를 보고 제 어미가 “말라서 죽었다. 내다버리자”라고 하자 죽었다는 말에 그만 이삭의 슬픔은 절벽에서 떨어지듯 달랠 길 없이 무너져 내렸다.

 

 한 시간쯤 후다. 병에 다시 넣어둔 달팽이를 살피다 둘째가 다시 크게 소리쳤다. “이삭! 이삭! 달팽이가 살았어!” 난감한 슬픔에 물들었던 온 식구들이 다시 모여들었다. 달팽이가 천천히 나오면서 살아 있음을 보여주었다. 무슨 기적이라도 일어난 양 모두가 웃으며 기뻐하고 안도했다.

 

“이삭! 얘는 지금 많이 지치고 또 엄청 아플 거야! 그리고 얘는 이 병 속을 좋아하지 않아. 그러니까 도망갔었지! 여기는 감옥 같을 거야! 그러니 우리 밖에 가서 놓아주자!” 이삭이 조금 을 들이다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삭과 함께 뒷마당에 나가서 스프링클러가 막 끝난 젖은 그라운드 커버 위에 그를 놓았다. 달팽이가 길게 몸을 늘이고 활발하게 기어가기 시작했다. “저 봐라! 가 참 좋아하는구나! 그렇지?” “야아!”

 

 달팽이의 재롱을 재미있게 보고 즐기며 가지려던 이삭이다. 달 팽이의 죽음으로 받았던 상처를 흔쾌히 자유롭게 놓아주면서 오히려 상실의 아픔을 치유함을 본다. 며칠 전, 유치원 졸업식에서 앙증맞은 졸업 가운을 입고 학사모를 쓰고 마이크 앞에 나와서 “나는 이다음에 커서 군인이 되고 싶어요. 왜냐하면 우리나라를 보호하고 싶어서요.”라고 말해서 큰 박수를 받았다.

 

 나라를 위해서 용맹을 떨쳐야 할 군인이 되고 싶은 이상과 달팽이의 죽음을 애달파 하는 여린 잔정의 커다란 간극을 이삭은 어떻게 극복해 낼까? 이삭의 생애에 앞으로도 수 없이 만날 애별리고3)꿋이 잘 감당해 내라고 축복하며 달팽이의 힘찬 전진으로 내 마음도 한결 가벼워진다.

 

 

 

3) 애별리고愛別離苦 - 불가에서 말하는 팔고八苦의 하나. 부모나 형제 또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의 고통.

 

팔고 – 생로병사의 사고四苦, 애별리고愛別離苦, 원증회고怨憎會苦, 구부득고求 不得苦, 오음성고五陰盛苦.

 

오음五陰 – 정신과 물질을 다섯으로 나눈 것. 색色, 수受, 상想, 행行, 식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