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유자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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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빛바랜 사진 한 장 / 수필

2021.07.12 20:38

민유자 조회 수:69

빛바랜 사진 한 장

 

 모처럼 지갑을 정리하다가 깊숙이 안쪽에 넣어두었던 친정 엄마의 사진을 꺼냈다. 명함 크기의 작은 흑백 사진은 빛바래고 가장자리 모서리가 닳아서 둥글다. 돌아가신 지 57년, 그 긴 세월 처럼 내 돋보기를 통해 보이는 사진 속의 엄마는 가물가물 아련한 모습이다.

 

 지금 서울 시청 앞 롯데 호텔이 있던 자리에 옛날엔 반도 호텔이 있었다. 내 직장이 있던 반도 호텔 뒷문으로 나가면 조선 호텔 앞마당으로 통했다. 거기엔 원구단의 팔각당1)과 조경이 잘된 정원이 있었다. 사진 속의 엄마는 초여름 햇살이 화사한 정자 앞 잔디에 앉아서 온화한 웃음을 머금고 사진 찍는 딸을 바라보고 있다. 생각해 보니 엄마가 당시 65세였으니 지금의 내 나이보다 10 년이 젊은 연세다.

 

 엄마는 인물이 좋고 태가 고왔다. 1년에 한두 번 있는 나들이에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잘 어울리는 조바위를 쓴 모습이 지금도 어제 일인 양 선명히 떠오른다. 여름엔 옥색 치마에 흰 모시 적삼을 즐겨 입었다. 반듯한 가르마와 비스듬히 내리는 어깨선이 곱고 허리가 날렵하니 품위와 미색이 우리 엄마 맞는가 할 정도로 눈부셨다.

 

 허나 그건 평소에는 좀처럼 보기 힘든 모습이었다. 늘 수건을 머리에 쓰고, 넓고 긴 무명 행주치마를 입고 중동끈을 바짝 둘러매고, 저고리 소매는 둥둥 걷어올리고 숨 돌릴 새 없이 분주했다. 내가 줄줄이 팔 남매의 끝으로 둘째였으니 어느 날 잠시라도 엄마의 손끝에 물 마를 새는 없었다. 겨울에 등이 가려울 때 엄마의 손이 등을 쓸어주면 시원할 정도로 엄마 손은 언제나 거칠었다.

 

 엄마는 병약하지는 않았지만 몸이 허약한 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튼실하지도 않은 체구에 팔 남매를 낳고 키워냈으니 먹거리도 넉넉지 못한 그때 몸은 골병이 들고 뼈에 숭숭 구멍 뚫리고 삭아 내렸을 게다. 엄마는 나를 44세에 낳고 두 살 터울의 동생을 46세에 출산했다. 보기 드문 노산이다. 나를 가졌을 때부터 벌써 두 아이의 아범이 된 사위가 오면 배부른 모습을 보이기 부끄러워 얼른 일어서지 못했다고 한다. 동생을 가졌을 때는 떼어보려고 몇 가지 민간요법도 쓰고 한약도 달여 먹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낳고 보니 내가 없었으면 더 좋았을 군더더기 다섯 번째 딸인데 비해 동생은 다행히도 떡두꺼비 아들이었다.

 

 육이오전쟁이 내가 다섯 살, 동생이 세 살 때 일어났으니 엄마는 이미 오십을 넘긴 연세로 포화와 불길 속에서 가족을 건사하셨을 테니 얼마나 힘드셨을지 다 가늠이 안 된다.

 

 엄마는 나긋나긋한 목소리만큼이나 성품도 온화하고 고운 분이다. 전쟁을 겪고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악에 받쳐 그랬을까 당시에는 애나 어른이나 할 것 없이 싸움질이 심하고 욕을 많이 했다. 나는 자라면서 엄마가 누구와 고성으로 다투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욕도 들어본 적이 없다. 엄마는 험한 꼴을 보면 잠자코 돌아서고 양보하며 참는 분이다. 자신의 가슴을 퍽퍽 치면서도 꾹꾹 눌러 참는 분이다. 원칙에 충실한 아버지는 우리가 조금만 빗나가도 불호령을 내렸지만 집안의 반석인 엄마의 치마폭은 언제나 넓고 따뜻하고 포근했다.

 

 엄마는 바보처럼 늘 일더미 속에 묻혀 지내면서도 가끔씩 빛 나는 예기를 드러냈다. 그 흔한 유행가 한 자락 흥얼거리는 것을 보지 못했지만 엄마가 소리 내어 책을 읽으면 듣기 좋았다. 어려서부터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엄마에게 책을 읽혔다고 한다. 책은 읽는 사람에 따라서 재미가 더하기 마련이다.

 

 봄에 버드나무에 물이 오르면 버들가지를 꺾어 피리를 만들어 불었다. 우리 형제들은 암만 열심히 불어도 삐이 하고 단조로운 소리만 나는데 엄마의 피리 소리는 약간의 높낮이가 있고 꺾이면서 굴곡이 있어 삘릴리 삐리이 구성지게 듣기 좋았다. 때로 풀잎을 물고 부는 짧은 소리에도 이 꺾임과 굴곡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참 신기하다.

 

 정월 대보름에는 즐거운 연례행사로 잣불을 켠다. 온 식구가 둥글게 모여 앉아서 크고 실한 잣을 골라놓는다. 방 안의 불을 끈 다음 바늘에 잣을 꽂아 불을 붙인다. 멀리 강원도와 전라도로 출가한 언니들까지 식구 수대로 차례로 잣불을 켜면 엄마는 불꽃이 타오르는 동안 1년의 무탈을 기원하고 목표한 소원을 빌었다. 잣은 겉모양은 비슷해도 불꽃의 모양이 다르다. 곧고 크게 불꽃이 타올라 방 안을 환히 비추는 잣불은 그해의 성공을 예견하여 둘러앉은 사람들의 얼굴을 더욱 밝게 드러낸다. 어떤 잣불은 옆으로 가지를 치는 불꽃이 있는가 하면 곁가지로 풍풍 튀는 불꽃도 있다. 엄마는 잘 파악한 그 사람 성격의 개성과 평소의 역할, 특징적 습관을 버무려서 해학적으로 불꽃을 풀이해 나갔다. 우리는 진지하게 소원을 빌다가도 엄마의 기발한 문학적인 비유와 촌철 풍자에 뒤로 자빠져 데굴데굴 뒹굴면서 배꼽이 빠져라 웃었다.

 

 자식들이 성장하여 썰물처럼 빠져나가 뿔뿔이 흩어져 제 갈길로 떠나고, 이제 조금 있으면 편안할 수 있는 때에 엄마는 느닷없이 우리 곁을 떠났다. 나부터도 자식들은 모두 자기 삶에 열중하느라 엄마의 극한 상황을 눈치 채지 못했다. 평생 모시고 살아온 외할머니는 중풍으로 누웠는데 치매까지 앓게 되어 엄마는 계속 힘겨운 그늘을 안고 지냈다. 누구에게 떠맡길 사안도 아니고 어디다 하소연조차 할 수 없는 멍에에 짓눌리다가 마지막 한 방울의 진이 다 빠져 그만 세상을 하직했다. 갑작스런 엄마의 죽음은 미련하고 철없던 나를 혼절시킬 만큼 큰 충격이었다.

 

 사진을 들어 입을 맞추고 가슴에 안고 가만히 눈을 감아봅니 다.

먹먹한 가슴 젖어드는 눈시울에 떠오르는 엄마의 모습에서 겨울 강이 보입니다.

목숨 걸고 건너온 골 깊은 푸른 강에 실실 이 서린 하얀 서리꽃,

세월이 그린 그림입니다.

 

소임을 다하고 파선한 낡은 나룻배,

살얼음을 헤치던 세월의 꽃무늬 가득한 이 배로 겨울 강을 건넜군요.

굽은 등줄기 뼈마디 마디에 휘어진 허리 골절 사이사이에

꼼꼼히 새겨 넣은 천만 개의 꽃송이들은 세월이 공들인 작품입니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아기자기 작은 꽃들은 불을 켜고

화려한 꽃가마가 되어 밤하늘을 날아갑니다.

꽃들의 불빛이 아스라이 멀어져 반짝이는 별이 되었습니다.

내 마음에 꺼지지 않는, 어둠 속에서 더 빛나는 별.

항상 거기 계신 엄마!

 

 사진을 도로 지갑에 곱게 집어넣는다. 희생을 감내한 사랑만큼 고귀한 것이 또 있을까? 세상 사는 보람 중에 이보다 더 값진 것은 없으리라 생각된다.

 

 영웅이나 현자, 정복자나 발명가에 의해 세상은 좌우로 조금씩 흔들릴 수 있을지언정 정작 이 세상을 이어가는 맥락은 가정 안의 사랑이라는 생각도 든다.

 

1) 원구단의 팔각당 - 고종이 황제로 등극하여 하늘에 제사지내던 원구단의 부속건 물 황궁우(천신, 지신, 태조 이성계의 신위를 모신 곳)의 팔각당이다.

 

 

https://youtu.be/-jMsFN8GlJ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