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9.03 01:26
돌배나무의 꿈 - 이만구(李滿九)
지난 늦가을, 새로 이사 온 그 집 앞
눈 오지 않아 아쉬웠던 이 고장에
중키의 앙상한 나무 한 그루 서 있었다
산과 산사이로 하늬바람 불어와
하얀 뭉게구름 꽃 피우더니만
따스한 봄날에 문밖의 정원 앞까지
하늘 밝혀 환하게 만발하던 배꽃
바람결 코끝 시큼 비린 내음으로
눈 내리는 산속의 풍경 인가
세세히 하얀 꽃잎 날리던 돌배나무였다
한 여름 시원스럽게 신록 우거지고
소슬바람 불어오는 구월에 들어
그리 무슨 소중한 결실의 열매라고
풀벌레 울음소리 자욱한 밤,
창밖의 높다란 가로 등불 아래
가지 사이 머루 만한 돌배 몇 개 달고서
바람 잘날 없이 잎사귀 흔들어댄다
이제 마악, 노란 잎 떨구는 가을나무
그 낙엽 지는 소리에 귀 기울이며
베란다 불 밝힌 계절의 화보 바라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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