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벽돌집 (1장)

2021.09.05 10:01

최영숙 조회 수:37

                                                                            1

 

 < 부둣가에서>

 

  이른 아침, 이곳 말리 안식당은 애나폴리스 부둣가에서 가장 따스하고 아늑한 장소로 둔갑을 한다. 거리에 깔린 커피 향을 따라오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붉은 벽돌색 차양 아래 수증기가 뽀얗게 서려 있는 창문을 발견하고는 곧, 발걸음을 멈추게 된다. 일단 식당으로 들어서면, 긴 원통형의 등에서 흘러나온 노란 불빛이 식당의 카운터 안쪽 벽, 흑싸리와 홍싸리 이방연속무늬의 벽지를 따스하게 비추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카운터에서 일할 사람을 구한다는 신문 광고를 보고 내가 이곳에 처음 왔을 때, 면접을 하는 벤저민에게 그 무늬를 가리키면서, 이것은 한국의 야산에 흔한 나뭇가지를 많이 닮았다고 말했다. “그래서 이 무늬는 고향을 무척 생각나게 하네요.” 내 말이 끝나자마자 벤저민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말했다.

그래요? 이 벽지는 내 할머니의 취향이랍니다. 어쩌면 당신은 내 할머니가 간직하고 있는 상자 속의 물건들을 좋아할지도 모르겠군요.”

그는 나이도 적지 않은 나를 그 자리에서 채용했고, 내가 이름을 이라고 말하자마자 그는 내 이름 앞에 마마라는 호칭을 더했다.

내 이름은 벤저민이에요. 보통은 벤이라고 줄여서 부르지요. 하지만 할머니는 절 보보라고 불러요. 서아프리카 말로 화요일의 아이란 뜻이래요. 할머니도 화요일에 태어나서 같은 뜻의 이름을 가졌거든요. 그 분의 이름은 아베나라고 하지요. 할머니가 그러는데, 화요일에 태어난 아이는 신의 은총을 가득히 받는답니다. 그러고 보면 좋은 이름이지요?  하지만 사람들은 절 도도라고 부르는 걸 더 좋아해요, 얼간이, 멍청이, , 그런 뜻이거든요.”

그 말을 하면서 벤저민이 소리 내어 웃는 바람에 나도 따라 웃으며 말했다.

나도 벤저민보다는 보보가 훨씬 좋은데요?”

그럼 그렇게 부르세요.”

 벤저민은 내게 손을 내밀어 악수 했다. 두텁고 따스한 손이었다.

   벤은 마흔 살의 독신이다. 그는 식당 홀 안에서 삼백 파운드는 족히 나갈 것 같은 체중으로도 가볍게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슬며시 웃었다. 그의 발걸음은 탱고에 딱 맞을 템포인데, 오늘 아침 유선방송에서는 아쉽게도 노라 존스의 재즈가 흘러나왔다. 벤의 발놀림과는 엇갈려도, 노라의 목소리는 커피 향과 잘 어울렸다. 그녀의 노래를 듣고 있자니, 사는 일이 그다지 무겁게 느껴지지 않고, 지금처럼 바깥을 내다보듯이 그냥 그렇게 흘러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오늘은 집에 돌아가서 안 입는 옷도 빼내고 안 쓰는 그릇도 솎아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래야만 사는 일이 헐거워지고 여유가 생길 것 같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아마 그럴지도 모른다.

 벤은 하얀 셔츠에 자주색 벨벳 조끼를 받쳐 입고 아랫배를 한껏 내밀은 채 여전히 홀 안을 오가고 있다. 몇 대를 걸쳐 혼혈이 거듭된 증거가 그의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다. 높은 이마에 곱실거리는 검은 머리, 다갈색 눈동자, 특히 눈구석에 자리 잡힌 몽골 주름과 얇은 입술 그리고 풍부한 볼 살을 누르며 솟아있는 광대뼈는 그의 핏줄에 아시아인이 있었다는 증거를 말해주고 있다. 어쩌면 그의 조상 중에 아메리카 인디언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벤의 할머니, 아베나 부인을 보고 있으면 더욱 그런 확신을 하게 된다.

벤보다 약간 더 검은 피부를 가지고 있는 그녀의 자그마한 체구 전체에서, 베링 해를 넘어 알래스카로 넘어왔다거나, 아니면 배를 타고 해안선을 따라 아메리카 대륙의 서편으로 들어왔을 지도 모른다는 몽골리언의 우성학적인 유전의 흐름이 보이기 때문이었다. 아니면 먼 먼 옛날, 몽골 주름을 갖고 있던 인류의 조상 아프리칸 들이 아시아로 옮겨오고, 어떤 그룹은 다시 아시아에서 호주로, 다른 그룹은 아메리카로, 그렇게 퍼져 갔다는 미스터 웰스의 이론이 맞는지도 모른다.

  벤은 이곳, 말리 안 식당 건물의 상속자이다. 식당의 이 층과 삼 층에는 살림집을 겸한 모텔이 있다. 모텔이라고 해봐야 합해서 방이 여덟 개인 붉은 벽돌 건물이었는데, 그나마 그 방 중의 두 개는 벤과 그의 외할머니인 아베나 부인이 사용하고 있으므로, 손님에게 내 줄 수 있는 방은 여섯 개일 뿐이고, 그것도 아래층 식당 안에 붙어있는 계단을 통해서만 올라갈 수 있다. 옆의 기념품 가게 건물과는 벽이 맞닿아 있는데다 이백 년이 넘은 역사적 유물이라는 이유로 외장을 바꿀 수 없는 법에 묶여 있기 때문에 불편해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모텔은 아베나 부인의 손에서 운영되고 있다. 벤은 그 노인에게 남아있는 유일한 혈육이었다. 그러나 정작 상속자인 벤은 식당이나 모텔 따위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벤은 바삐 움직이던 발길을 멈추고, 카운터에 등을 대고 서서 은퇴자 모임 손님들에게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래서 이겼다잖아요, 백만 불짜리 소송을 말예요. 물에 젖은 고양이를 마이크로웨이브에 집어넣고 돌리면 안 된다는 경고를 안 붙였다고!”

바닷가 동네 솔즈베리에서 닭 농장을 했다는 프랭크가 입에서 빵조각이 튀어나오는 줄도 모르고 소리를 질렀다.

그 노인네가 고양이를 말린다고...마이크로웨이브, 그 안에 넣고 돌렸단 말이지!” 프랭크는 너무 웃다가 목에 사레가 들렸다. 프랭크의 부인이 그의 등을 쳐주며 말했다.그게 웃을 일이에요? 끔찍한 일이지. 불쌍한 고양이. 주인을 잘못 만났네.”

  벤은 아마추어 무선 통신사이다. 식당 건물의 옥상에는 날개가 많이 달린 야기 안테나가 서 있다. 안테나가 받아서 수신기를 통해 그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정치나 종교와는 상관없이 세상 구석 어디에선가 일어난 황당하거나 진지한 이야기들이었다.

벤은 벽에 걸려있던 잿빛 반코트를 들어 올렸다. 코트에 팔을 끼워 넣으면서 그는 코트 옆에 걸려 있던 모자를 집어 들고는 그것을 머리 위에 슬쩍 얹었다. 벤은 핸디 무전기를 오른손에 들고, 다른 손으로는 계산대 위에 올려놓은 진열대에서 감자 칩 한 봉지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문밖에서 마주친 갈색 아이리시 테리어를 끌고 나온 중년 남자에게 고개를 뒤로 젖히고 웃음으로 인사를 했다.

오늘, 제법 쌀쌀합니다!”

벤의 말에 남자가 목에 감긴 쑥색 목도리를 매만지고는 손을 흔들었다.

몹시 춥다네, 난롯가에서 떠나지 말게, 보보!”

  개를 끌고 남자가 사라지고 벤은 부두를 향해 걸어가고 있다. 부두 양쪽 선착장에 줄지어 매여 있는 보트 틈 사이로 아침 햇살이 찬 공기를 가르며 퍼져 나가고 있다. 그 아래에서는 수은 색으로 변한 바닷물이 마치 표면 장력을 일으킬 듯이 번들거렸다. 잠시 후, 벤은 애나폴리스 부둣가 광장 한쪽에 있는 알렉스 헤일리의 동상 옆에 앉아서, 들고 간 감자 칩을 갈매기들과 한 조각씩 나눠 먹을 것이다. 하루에도 몇 차례, 그가 하는 일이다. 메인 스트리트를 지나서 마켓 광장으로 나와 그곳을 걷는 사람들은 벤을,아프리카 감비아, 주푸레 마을에서 잡혀 온 만딩카 종족의 전사 쿤타 킨테의 자손인, 헤일리의 동상만큼이나 당연히 그곳에 존재하는 것으로 여긴다. 그가 널찍한 등판을 뒤로하고 동상 옆에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앉아있는 모습은 그곳에 예전부터 놓여있던 동상의 일부같이, 그렇게 정물처럼 보이는 것이다.

 아휴, 추워라!  이모, 안녕하세요?”

  여덟 시 반, 토요일. 지영이가 나오는 시간이다. 지영이는 까만 반코트를 입고 목에는 보라색 목도리를 세 겹, 네 겹 두른 채 긴 머리를 날리며 식당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녀의 얼굴과 코가 빨갛게 얼어있다.

오늘같이 추운 날도 주차할 데가 없네.”

  지영이는 한국에서 온 지 석 달도 안 된 아가씨이다. 커뮤니티 칼리지에 영어를 배우러 왔다는데, 회화실력은 이미 벤과 막힘없이 대화를 나눌 정도이다. 학교 수업이 없는 오후와 토요일에 일을 나오는 지영이는, 처음부터 날 보자마자 냉큼 이모라고 불러대며 다가왔다 

 

어느 날, 지나가는 말투로 여기 몇 년이나 사셨어요, 하고 물었지만, 굳이 내 대답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는지, 내가 이십 년, 그렇게 말했어도 지영이는 동전을 십 센트, 이십오 센트, 금전 통에 갈라 넣으면서 건성으로 네에, 했을 뿐이었다. 내 남편은 멕시코에 고추 농사를 지으러 가있어. 십년 째 들락날락 거리며 살고 있지, 내가 말하자 ,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분이시네요, 하면서 날 향해 밝게 웃었다.

 지영이가 가끔 문밖으로 슬그머니 나가는 건 담배를 피우기 위해서이다. 그녀는 황인종으로서는 드문 피부를 가졌다. 희기만 한 것이 아니라 투명해서 실핏줄이라도 들여다보이지 않을까 염려될 정도이다. 피부가 깨끗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사람이 그렇게 청순한 아름다움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에 나는 놀랐다. 게다가 이목구비까지 반듯한 그녀의 얼굴과 세상을 향한 적대감이 보이지 않는 맑은 눈을 바라보면 저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그녀의 진짜 매력은 앞니 사이가 살짝 벌어진 데 있다.

 사람들이 보기만하면 복 나간다고 앞니 사이를 막으래요. 저는요, 제가 싫어요. 태어날 때부터 그랬는데 이걸 바꾸면 나 자신이 낯설어질 것 같아서요, 근데, 약간 틈이 있어 보이는 게 매력적이지 않아요?”

 지영이는 앞니를 드러내고 깔깔 웃었다. 그녀의 피부는 유전적이라고 했다. 외할머니가 그랬고 어머니가 그렇다는 그녀의 말이었다.

울 엄마는 아빠한테 잘못 걸렸어요. 돈 많은 울 아빠는 그게 힘인 줄 알아요. 날 더러 빨리 돌아오라고, 와서 결혼이나 하래요. 안 그러면 돈을 다 끊어 버린다고 협박한다니까요. , 요새 젊은 애들이 결혼도 안하려고 하지만, 해도 아기를 안가지려고 하는지 아세요? 사실 돈돈돈, 하는 이런 세상에서 무슨 좋은 꼴을 보겠다고 애를 낳겠어요. 아이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그렇잖아요?  사람들은 돈 많고, 예쁘고, 좋은 집에 살면 할 말이 없는 줄 안다니까요. 한마디만 투덜대도 다 배불러서 하는 소리라는 거죠.”

나는 그녀가 좋아졌다.
근데, 이모, 여기, 이 부두에서 직선으로 선을 그으면 어디가 나오는지 아세요?”
지영이가 핸드폰으로 구글 지도를 열어 보여주면서 말했다.
지영이의 손가락은 지중해를 건너, 터키의 테네도스 섬이라는 곳에 가서 닿았다.
이름, 참 예쁘지요? 찾아봤는데, 바닷물 색도 끝내줘요. ”

 식당 안의 손님들은 앞에 놓인 일용할 양식에 코를 박고 있다. 다들 무심한 얼굴이었다. 나도 그들을 무심히 바라보았다. 나는 저들이 사진 전시회에 걸려있는 액자 속의 인물 같다는 생각을 한다. 저들은, 나와는 정신적, 물리적으로 아무 관계없이 액자 속에서 움직이고, 그 곳에서 생각하고 늙어간다. 그러다가 그 속에서 갑작스레 자신에 대한 자각을 일으켜 바깥으로 튀어나오기도 한다. 충돌하는 것, 사람들 속에서 더욱 강하게 느껴지는 나에 대한 자각이거나, 아니면 그들 속에 이미 묻혀서 없어져 버린, 나에 대한 자각이 부딪치는 시각이 하필 말리 안레스토랑이었다는 것이 어쩌면 저들의 불운일 때도 있다. 액자 속 공간에서는 자기가 듣고 싶은 대로 듣고, 보고 싶은 대로 보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 안에서 시간당 급여를 받기 위해, 상업적인 웃음을 띤 채, 현금 출납기를 두드리는 저들의 편의 도구일 뿐이다. 하지만 5피트 3인치의 키를 가진 이 동양인 여자가, 지구를 넘어서고 은하계를 넘어간 우주 공간 속의 어느 곳에서 숨 쉬고 있는 불멸의 실재를 믿으며, 자신이 태어난 모국에서 대중에 의해 강요당하는 불의에 대해 잠시나마 분노를 품었다든가, 게다가 자살시도를 적어도 세 번쯤은 시도해 보고 그것에 대한 명징한 결론, 즉 역설적으로 삶에 대해 진지한 관심을 두게 되었다는 생각은 도무지 할 수 없을 것이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그날 밤, 나는 꿈을 꾸었다.

경미, 소복이와 함께 콘크리트 토관 속에 들어가 놀고 있는 꿈이었다. 나는 어른이었는데 그 아이들은 초등학교 시절 모습 그대로였다. 우리는 별일이 아닌데도 토관 속에서 서로 어깨를 부딪쳐가며 깔깔댔다. 토관에서 나와 혼자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사방을 둘러봐도 낯선 길이었다. 나는 무서워서 경미를 부르고 소복이를 찾았다. 하지만 끝내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가도 가도 모르는 길이었다. 꿈속에서도, 이것은 꿈이니까 깨어나면 사라질 거야, 라고 외치고 나서야 간신히 깨어났다.

 새벽 4시였다. 나는 한국에 있는 경미한테 문자를 보냈다.
"
소복이 소식은 아직도 모르니?"
경미에게서 바로 답이 왔다.
"
너도 차암.. 잠 안자? 이제 잊어 버려, 벌써 사십년도 넘었는데... 그 기집애 죽은 거야. ”
어떻게 살아있는 사람이 흔적도 안남기고 사라져?”
소복이가 죽었다는 사실을 나는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렇게 없어진 여자들이 하나 둘이 아냐.... 못 찾아. 솔직히 말해서 살아있다고 해도 지가 어떻게 나타나겠어? 즈이 엄마, 아버지는 그 일 땜에 화병으로 일찌감치 다 돌아가셨지, 남동생 둘은 아예 동네를 떠버렸고, 자식들은 누구 손에서 컸는지도 모르고, 어디 사는지도 몰라. 걔 신랑은 술주정뱅이가 돼서 떠돌아다니다 없어지고....아주 풍비박산이야.”

초등학교 졸업반이던 어느 날, 경미와 소복이가 점심시간에 사라져 버린 일이 있었다. 두 아이가 가방을 놓아 둔 채, 한 시간 수업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자 담임선생은 두 아이를 찾아오라고 내게 명령했다. 교문 밖으로 나오기는 했으나 막막한 일이었다. 갈림길에 서서 돌멩이를 툭툭 걷어차며 고심하고 있는 데, 어딘가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영희야! 여기야, 여기! 노깡!”

분명히 경미 목소리였다. 소복이 웃음소리까지 들려오자 나는 설마하면서도 길 곁에 줄지어 놓여있는 콘크리트 토관을 향해 걸어갔다. 하수구 공사를 위해 가져다 놓은 토관 쪽에서 킥킥거리는 웃음소리와 함께 두 아이가 톡 튀어 나왔다. 눈이 휘둥그레진 내게 경미와 소복이는 먹다 남은 꽈배기 과자를 내게 주면서, 영희야, 너도 여기 있다가 가자! 고 손을 잡아끌었다. 말릴 새도 없이 먼저 가게로 뛰어간 소복이가 삼각 잼을 샀고, 그 뒤를 쫓아간 경미는 바가지 과자 한 봉투를 사들었다.
셋이 몰려간 토관 속은 생각보다 아늑했다. 얼마 안 있으면 하수구로 변할 운명인 토관이, 세상과 우리를 완전하게 차단해 주는 공간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둥그런 토관 벽에 등을 대고 앉아서 내가 사는 세상이 나로부터 한발자국 떨어져 지나가는 소리를 들었다. 트럭이 드르릉 소리를 내고, 서둘러 걷는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가 들리고, 아기를 어르는 소리, 개 짖는 소리, 마차가 굴러가는 소리가 연달아 지나갔다.

새큼달큼하고 밀가루 풀처럼 진득거리는 잼을 빨아먹고, 기름 찌꺼기가 여기저기 까맣게 눌어붙은 바가지 과자를 알뜰하게 나눠먹은 우리는, 토관 속을 아주 섭섭해 하며 기어 나와 달고나 까지 사먹고, 수업이 끝날 때쯤에서야 교실로 돌아왔다. 찾으러 나간 나마저 돌아오지 않자 단단히 화가 난 선생이 회초리를 집어 들고 기다리고 있었지만, 교실에 들어온 경미가 다짜고짜 주저앉아서, 내일부터 학교에 안 올 거라고 엉엉 우는 통에 오히려 난처해져서 경미를 달래놓고는 언짢은 얼굴로, 다시 이런 짓하면 혼날 줄 알아라! 하고 교실을 나가 버렸다.

우리 셋은 읍내 여중학교로 같이 진학을 했다. 지각을 밥 먹듯 하면서 어찌어찌 학교를 다니던 경미는 곧바로 학교를 때려치우고 일본에서 온 사촌언니를 따라 갈 거라고 자랑이었다. 일본에서 옷 공장을 하는 큰아버지 집에 가서 돈이나 벌거라고 부풀어 있던 경미는, 어깨에 바람이 들어가 규율에 어긋나는 애교머리까지 내리고 다녔다.

경미가 부르는 일본어 노래를 신기해하던 나와 소복이는 경미가 일러주는 대로 가사를 받아 적은 다음 열심히 따라 불렀다.

아시타 마떼미또 히짜따! 도꼬니 와따싱어 싱 하오미!”

우리 셋은 만나기만 하면 복도에서 머리를 맞대고 그 노래를 불렀다. 노랫말이 잘 외워지질 않았다. 물론 뜻도 전혀 알지 못했다. 어느 날, 나이가 지긋한 국어 선생이 지나가다가 우리들의 노랫소리를 들었다.

다시 불러봐라.”

나와 소복이는 쭈뼛거리며 비켜섰고, 앞에 나선 경미가 신이 나서 노래를 불렀다.

아시타는 내일이고, 마떼미또는 기다리면, 도꼬니는 어디로....히짜따가 아니고 히가데따 겠지. 해가 뜬다고 말야, 그래, 몇 마디는 알아듣겠는데 나머지는 말이 안돼요. 일본노래도 기왕이면 정확하게 배워라! ?”

머리에 꿀밤까지 한 대 얻어맞은 경미는 그래도 기죽는 법 없이 소풍 날 오락시간에 앞에 나가 날씬한 허리와 엉덩이를 유연하게 흔들며 그 노래를 불렀다. 졸지에 아시타 마떼미또 히짜따!는 교내 유행가가 되었고, 경미는 교내 체육대회에 학급 응원단장으로 뽑혀나가 아이들이 힘차게 불러주는 노래에 맞춰 신나게 엉덩이를 흔들어댔다. 경미는 학교를 때려치우기는커녕 나중에는 전교 규율부장이 되어서 교문을 지키는 권력까지 누리게 되었다.

소복이와 나는 그야말로 소리 없이 학교를 다녔다. 매사에 야단스러운 경미와는 달리 우리 둘은 그저 교실에 있는 둥 마는 둥한 존재였다. 키와 성적도 중간이었고 그림이나 음악 그리고 달리기마저도 딱 중간 실력이었다. 그런 어느 날, 새로 전근 온 수학 선생이 출석을 부를 때였다.

김 소복? 김 소복이 누구냐?”

선생이 출석부에서 눈을 떼고 소복이 이름을 부르자 소복이가 머뭇거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냐? 김 소복?”

키가 작고 안경 쓴 선생이 소리 내어 웃었다.

넌 생긴 거하고 이름이 똑같구나. 소복소복 김 소복!”

볼이 통통해서 마치 사탕을 물고 있는 것 같은데다, 가슴과 팔 다리까지 통통한 소복이는 하얀 얼굴에 까만 색연필로 그린 것 같은 눈썹이 제일 먼저 눈에 띠었는데, 그 눈썹 끝이 아래로 쳐져 있는 모습이 내 눈에는 그저 착하고 순해 빠져 보이기만 했다. 그러고 보니 소복이에게 소복이란 이름이 아주 어울리는 것이었다.

 근데 소복이가 어떡하다 그렇게 됐지... 착하고 순진했잖아...”
 내가 보낸 문자에 경미가 화다닥 답을 해 왔다.
그때 우리 셋이 같은 학교로만 갔어도 걔가 그렇게 됐겠어? 다 시대를 잘못 타고난 우리 팔자야, 자기 딸을 경기여고에 넣으려고 법을 바꾸는 그런 대통령 밑에서 태어난 팔자!””

 문자 속에서도 경미의 쇳된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루머처럼 들렸던 본교 진학이란 말이 사실이 되어 중학교를 졸업한 우리는 다른 도시로 고등학교를 갈 수 없게 되었고, 다른 실업학교나 본교인 상업학교로만 진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덕분에 본교도 입학시험 경쟁이 심해졌다. 공부에 관심이 없던 소복이는 지방으로 더 내려가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고등학교 졸업반이었던 경미와 내가 소복이를 일상에서 거의 잊다시피 하고 있을 때였다. 읍내에 갓 개업한 대형 슈퍼마켓 사장 마누라가, 길 한복판에서 소복이 머리끄덩이를 움켜잡고 질질 끌고 다녔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 너희들, 까짓 일에 득달같이 달려오냐?”

찾아간 우리를 향해 소복이가 유들유들 말했다. 발랑 까졌다고 자처하는 경미가 소복이의 말에 입을 빼물었다.

그냥 미친개한테 물린 거야...지 남편이 날 보고 쫓아다닌 걸 갖고 나한테 덮어씌운 거라니까...”

소복이는 하얗고 통통한 얼굴에 웃음까지 띄우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따로 있어

쌍꺼풀 없는 아몬드 모양의 눈을 깜박이며, 소복이가 우리 눈앞에 새끼손가락을 세웠다. 경미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소복이 앞으로 바싹 다가앉았다.

말해봐! 누군데?”

소복이는 그 남자를 수원 시내 클럽에서 만났다고 했다. 신나게 춤을 추고 테이블로 돌아오니까 웬 남자가 곁에 와서 앉았다. 인상도 좋고 무엇보다도 남자답게 통이 커서 그날 같이 간 친구들의 비용까지 다 내주는 바람에 자신은 기분이 부웅 떴다는 것이었다.

이차는 나만 데리고 가더라. 삼차를 갔는데 어쩌다 정신 차려보니까 여관인거야. 근데 얘, 내가 코르셋하고 다니는 거, 느이들 알지?”

우리는 숨을 죽이고 소복이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코르셋을 벗기려니까 좀 힘들어?”

소복이는 킥킥 웃었다.

거기다 내가 죽을힘을 다해서 코르셋을 붙들고 버티니까... 결론은 무사히 넘어갔다 이거지!”

경미와 나는 기집애야, 욕을 하면서 소복이 등판을 팡팡 두드려 팼다.

근데 말야, 진짜 웃겨, 내가 그렇게 버티는 게 너무 좋더래, 요즘에도 이런 여자가 있나 싶었대.”

게다가 학교를 졸업하는 대로 바로 결혼 할 거라고 해서 우리는 아예 입을 다물지 못했다.

뭐하는 남자야?”

경미의 물음에 소복이는 주저하지 않고 말했다.

조폭!”

우리는 숨을 삼키고 소복이 얼굴에 그림처럼 올라앉아 있는 까만 눈썹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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