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해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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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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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산해 作 "X 코드"

 

 

백주 테러

야권 대선 후보인 A가 여의도 국회 의사당을 방문했다.

자당(自黨)대표가 개최한 의원총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의원총회에는 야당 소속 국회의원 전원이 자리했다 .

A후보는 이 자리에서 자신이 구상하고 있는 정견(政見)을 가감없이 내비쳤다.제가 대통령이 되면 최우선 과제로 모든 국민이 골고루 잘사는 나라를 만들 것입니다.”

A후보는 덧붙여 이렇게 말했다.”대통령 혼자서는 국정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이는 만고의 진리입니다.따라서 최고의 국정을 펼치기 위해선 유능한 정치인과 각료들이 절실히 요구됩니다.”

A후보는 끝으로 대한민국은 제2부국강병(富國强兵)’을 원하고 있습니다.그것을 실현할 인물이 바로 저입니다.동지 여러분 저를 믿고 함께 가십시다. 감사합니다    .”

A 후보는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차기 대통령이 유력시되는 인물이었다.따라서 보수 야권은 A 후보에게 거는 기대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1시간에 걸쳐 정견발표를 한 A후보는 당 대표를 비롯한 원내대표 및 주요 당직 들과 악수를 나눈 뒤 곧바로 지하 주차장으로 향했다.

A 후보가 수행 비서와 보좌관들의 길안내를 받으며  자신의 승용차에 다가서는 순간이었다.

천둥소리와 같은 굉음을 수반한 탄환이 A 후보를 향해 날아왔다.

위험을 감지한 A후보가 몸을 날렸다.동시에 곁에 있던 보좌관이 자신의 몸을 던져 A후보를 감쌌다.

 

A 후보에게 총을 쏜 범인은 2명이었다.

검은색 마스크를 착용한 범인들은 검은색 선글라스로 눈을 가렸고 검은색 가죽 장갑을 끼고 있었다.머리에는 각기 헬멧을 썼다.

총격을 가한 범인들은 한치의 빈틈도 없이 근처에 세워 둔 경주용 오토바이에 재빠르게 올라 줄행랑을 놓았다.눈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오토바이의 요란한 엔진 음이 잦아지자 A 후보를 감싸고 있던 보좌관이 몸을 일으켜 세웠다.그러고는 A 후보의 동태를 살폈다.

헌데 A 후보가 얼굴을 찡그린 채 고통스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당황한 수행원들이 A 후보를 살폈다.A 후보의 왼팔 어깨에서 꾸역꾸역 피가 흐르고 있었다.

수행원 가운데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사내가 눈을 휘둥그레 뜬 채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후보님. 괜찮으세요?” A 후보가 말했다.“나는 괜찮아.그런데 자네들은 어떤가? 다친 데는 없으시고….”

팔에 총상을 입은 A 후보는 오히려 수행원들을 걱정했다.

인적이 끊긴 지하 주차장은 코를 찌르는 화약 냄새가 부유(浮遊)하고 있었다.

A후보의 어깨에선 출혈이 계속됐다.공포에 질린 젊은 수행원이 허리춤에 찬 혁대를 풀었다. 그러고는 총상을 입은 A 후보의 어깨를 질끈 동여맸다. 나이가 든 보좌관은 스마트 폰으로 119 구급대를 호출했다.

혁대로 압박한 A 후보의 어깨에선 출혈이 다소 줄어들었다.수행원들은 A 후보를 조심스레 부축한 뒤 승용차 뒷좌석으로 데려갔다.

A 후보가 상체를 숙이고 뒷좌석에 오르는 순간이었다.

당대표를 비롯한 원내대표 및 상당수 의원들이 허겁지겁 달려 왔다.이들 모두가 황망한 표정이었다.

A 후보 곁에 바짝 다가선 당대표와 원내대표가 걱정스런 투로 말했다.“후보님. 다른 곳은 괜찮으시죠?” A 후보가 애써 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물론입니다.”

대통령 후보가 정체불명의 괴한들로부터 총격을 당한지 10여 분이 지난 시각.

구급차가 번쩍이는 경광등과 요란한 사이렌 소리를 울리며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

 

살인(殺人)

여자의 주검에서 검출(檢出) 탄환은 9mm패러벨럼이었다.

일명 죽임의 예술이라 불리는 자동권총 글록19(Glock 19)에서 발사된 것이다.

주검의 몸에는 모두 3발의 총알이 박혀 있었다.

첫번째 총알은 복부 뒤쪽의 췌장 미부(尾剖꼬리)다음은 왼쪽 어깨뼈 견갑골(肩胛骨)그리고 마지막 한발은 대뇌(大腦)반구 전방에 위치한 전두협(前頭葉) 갈갈이 헤쳐 놓았다.

 

LAPD 살인계 소속 스티브 (한국명혁거세)형사가 주차장 아스팔트에 널브러진 시신을 살피고 있을 때였다.

금발에 푸른 눈동자와 하얀 치아가 살짝 드러난 매력적인 입술을 지닌 여자가 다가섰다.푸른 눈동자는 LA 카운티 셰리프국 과학수사대 소속 감식계 스페셜리스트였다.

군청색 면바지에 정장 상의를 걸친 요원은 대략 40대 초반으로 보였다.

키도 매우 컸다.175센티미터 이상이었다.

굽이 낮은 검정색 단화를 신은 요원은 익숙한 얼굴이었다.

스티브 혁 형사가 자신 곁으로 다가선 푸른 눈동자를 향해 두 팔을 활짝 벌렸다.그리고 큰소리로 말했다.“빅토리아 푸스토비토바. 오랜만입니다. 늘 행복한 일상이시지요?”

러시아계 이름을 지닌 푸른 눈동자가 말했다.“오랜만이네요. 스티브 혁 형사님.”

그냥 혁이라고 불러주십시오.”

푸른 눈동자가 입술을 호수같이 벌리며 미소를 지었다.마치 오랜만에 만난 연인처럼 살가운 인사를 나눈 두 사람은 혁 형사의 승용차 보닛에 엉덩이를 걸치고 사담을 나눴다.

.푸른 눈동자는 과학수사대에서 베테랑 감식반원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인물이었다.

여자가 스티브 혁 형사에게 친근감을 나타낸 이유는 LA 카운티에서 발생한 대형 살인사건 현장에서 늘 부딪혔기 때문 였다.

두 요원이 수다를 떨고 있을 때였다.스티브 혁 형사의 조력인 소피아 형사가 다가왔다.푸른 눈동자를 한 눈에 알아 본 그녀가 파안대소하며 부둥켜 안았다.

한동안 해후의 기쁨을 나눈 요원들은 자동차 보닛을 벗어나 시신 곁으로 갔다

푸른 눈동자가 시신 곁에 쭈그리고 앉았다.그녀가 볼펜 끝으로 상처부위를 가리키며 말했다. 형사님범인은 아마추어 총잡이 예요.”

혁 형사가 말했다..무슨 뜻입니까?”

푸른 눈동자가 머리 부위를 가리키며 말했다.탄환이 여기저기에 박힌 것을 뜻하는 거예요형사님도 아시다시피 프로들은 이런 식의 중구난방으로 총알을 먹이지 않아요프로들은 다급한 상황에서도 여유를 부리며 한방에 무너뜨리죠.헌데 주검의 목숨을 끊은 범인은 눈을 질끈 감고 방아쇠를 당긴 같아요.”

스티브 형사는 검시관의 가설(假說) 일리가 있다고 여겼다.

초동수사에선 온갖 추론(推論)을 늘어놓기 마련이다.그 추론을 따라 퍼즐을 맞춰가며 오리무중속에 몸을 숨긴 범인을 추적하는 것이다.물론 그렇다 해서 추론이 정론으로 결말이 나는 것은 아니다. 사건의 전말(顚末) 항상 엉뚱하게 풀리기 때문이다.

피를 흥건히 쏟아내고 널브러진 주검 주변에는 검은색 정복 경찰 순찰대원   명이 종이 컵에 담긴 커피를 마시며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시신에서 눈을 스티브 형사가 동료 파트너인 터키 출신의 여자 형사 소피아 데메트 아크바와 함께 정복경찰에게 다가갔다.

잡담을 주고받던 정복 경찰이 기립 자세로 상대를 맞았다.

스티브 형사가 데릭 캔드릭스라는 정복 경찰의 이름표를 곁눈질하며 말했다.시신을 확보한 시각은 언제인가?”

정복이 말했다.(Sir)! 오후 1시껩니다.”

형사가 덧붙였다.목격자가 있었나그리고 목격자는 확보하고…”

사건 현장을 목격한 증인은 없습니다 신고를 선한 사마리아인은 확보했습니다코리안이고요, 52 남성입니다직업은 웨스턴에서 음식점을 운영한다 했습니다.”그리고 없나?”

정복이 말했다.신고인은 당시 코리안 계통 언론사인 정론직필 신문사에서 특정인을 만나 대화를 나눈 자신의 승용차를 주차한 주차장에 들어섰답니다그리고 문제의 시신을 발견했고요즉시 자신의 스마트 폰으로 911 신고를 했답니다” 

당시 현장 상황은 어땠나?”사건 소식을 접하고 몰려든 상당수의 코리안들이 현장 주변을 에워싸고 있었습니다.”

데릭 캔드릭스라는 정복 경찰이 여기까지 말했을 때였다.

가지런히 모은 손으로 경찰모() 만지 작 거리던 다른 정복이 동료의 말을 자르고 끼어들었다.

!사건 현장에 코리안들이 북적인 이유는 현장 주변에 정론직필 신문사와 미주중앙일보그리고 권위 있는 미주한국문인협회가 위치해 있기 때문 였습니다.”

소피아 형사가 정복의 이름표를 곁눈질 하며 말했다.패트릭 커밍햄 순경.”패트릭이라고 불러 주십시오.’정복이 상체를 고추세우며 말했다.

패트릭 순경.현장을 확보한 직후 범죄를 확증(確證) 만한 단서 같은 물증을 발견했나요.”

정복이 말했다.별다른 특이점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다행히 현장 훼손은 없었습니다시신의 위치와 주변에 흩어진 탄피도 그대로 였습니다.”

소피아 형사가 이번에는 데릭 캔드릭스에게 물었다.시신이 널브러진 주차장에 주차된 차량들을 빠짐없이 캡처해 두었나요특히 여자 시신의 승용차 번호판도 필사(筆寫) 했겠죠?”물론입니다!”

정복 경찰이 마치 입을 맞춘 동시에 대답했다.

.소피아 형사와 어깨를 나란히 한 스키브 혁 형사가 말했다."사검ㄴ 현장을 캡처한 사진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나의 이메일로 전송하도록!"

스티브 혁 형사는 그러고는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 두 정복 경찰에게 건넸다. 

 

석비(釋妃)시인과 국대남(菊大南)시인

주차장에 널브러진 주검은 한때 유명세(有名稅) 떨친 시인(詩人)이자 수필가였다.

국적: 코리안 아메리칸( 시민권자)

이름: 석비(釋妃)

성별: 여성

나이: 65

특기:대한민국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원 

주거지: LA 서쪽 산타 모니카(Santa Monica)에 위치한 부촌(富村) 벨 에어(Bel Air).

직업: LA 코리아 타운에서 마사지 하우스 안마 출장소 호스트  룸싸롱 운영.

▲이력(履歷): 1980년대 신군부에서 실력자의 영어 통역사로 활동하다 미국으로 망명.

▲LA 정착 사업기반을 구축하며 여가 활용해 ()공부에 매진.

한국계 로컬 언론이 주최한 공모전을 통해 시단(詩壇) 이름을 올린 적극적으로 활동.

시와 함께 수필가로도 보폭(步을 더하며 한국과 미주 지역에서 유명세를 드날림.

▲피살자는 특히 좌편향(左偏向)노선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문민정부 때부터 보수 진영을 신랄하게 공격.이같은 성향 때문에 보수 진영으로부터 종북 좌빨 찍힘.

석비 시인은 자신의 무기인 시와 수필신문 방송 칼럼을 최대한 이용해 보수 우익 진영 인사들을 싸잡아 시비(是非)하며 수구 꼴통’ ‘토착왜구 몰아가며 인신공격을 서슴지 않았다

간담(肝膽) 서늘케 하는 악필(惡筆) 궤변(詭辯)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시인은 특히 천사의 도시 LA에서 활약하는 저명한 남자 시인 국대남(菊大男) 견원(犬猿)지간으로 척을 지며 사사건건 시비를 펼쳤다.

시비의 발단(發端) 보수성향인 국대남 시인이 신문 시론(時論) 통해 좌파의 행태를 신랄하게 비난 한데서 비롯됐다.

특히 서울 시장의 성추문 사태와 관련된 시인의 신랄한 시평(時評) 발끈한 시인이 까칠한 논박(論駁)으로 시인을 인신공격함으로써 감정의 () 극에 달했다.

 

사람의 감정 싸움은 박정희 정권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대남 시인이 종합 일간지 정론직필 미주지사 지면(紙面) 박정희 대통령의 치적(治績)  ‘구국(救國) 영웅으로 치켜 세우자 석비 시인이 즉각 정론직필 일사일언(一事一言)’오피니언에 반론을 제기했다.

내용은 이랬다.

국대남 시인이 박정희를 구국(救國) 영웅이라고 떠벌린 것은 궤변이며 자위(自慰)행위다세상이 아는 바대로 태어나서는 안될 귀태(鬼胎)박정희는 나라를 살리기는 커녕 집권 내내 도탄에 빠뜨리다 암살당한 파렴치 범일 뿐이다진정으로 대한민국을 오늘 강대국으로 만든 대통령은 김대중과 노무현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 뿐이다.”

이같은 반론이 신문지면에 실리자 국대남 시인도 발끈했다.

그러고는 곧바로 재 반박에 나섰다.

전세계가 칭송한 박정희 대통령을 귀태로 망발(妄發) 석 시인의 구조가 매우 의심스럽다박대통령이 대한민국에 남긴 위대한 유산(遺産) 역사의 페이지로 기록돼 있다지난 1960년대 초반지구별 최대의 거지 나라 대한민국을 단숨에 부국(富國)으로 이끈 그의 영명(英明)한 지도력과 애국심은 천하가 아는 사실이다물론 박대통령이 경제개발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일부 좌파들을 탄압한 것은 부인할 없다하지만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해 불가피하게 취한 공권력(公權力)이었다헌데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현재 박대통령이 뿌려 놓은 씨앗의 열매를 즐기고 있지 않은가.따라서 구국의 영웅을 파렴치로 폄훼하는 것은 빨갱이들의 자격지심의 발로(發露)

 국대남 시인의 반론이 신문에 실리자 수백 개의 댓글이 돼지감자처럼 주렁주렁 달렸다. 헌데 댓글의 대부분은 인신공격성 악플이었다.

국뽕에 취한 국대남이 대한민국을 거덜 낸 천하의 독재자 박정희를 미화했다는 폄훼성 댓글이었다    .

악풀이 절대 우위를 보이자 이에 고무된 석비 시인도 반론의 칼을 들었다. 애니웨이박정희는 일본에 나라를 팔아먹은 토착 왜구이며 대한민국을 아프리카보다 못한 후진국으로 파탄 원흉일 뿐이다.”

석비 시인의 주어(主語) 생략된 원색적인 비난에 더욱 반감을 느낀 국대남 시인은 LA에서 개최하는 각종의 문학행사장에서도 얼굴을 붉히고 삿대질을하며 으르렁거렸다.

사람은 공개 석상이외에도 자신의 시와 수필 () 통해 상대를 공격하며 비아냥거렸다.

석비 시인이 시로 시인을 공격하면 그는 수필로 응수하며 서로를 매도(罵倒)했다.

예컨대석비 시인이 방송에서 5.18 ‘5.18 광주민주화 항쟁(抗爭)’이라고 힘주어 말하면 국대남 시인은 지면을 통해 ‘5.18 광주 사태(事態)’ 표기함으로써 상대의 심기를 긁어댔다.

이를 보다 못한 동료 문인(文人)들이 사람의 화해를 종용했으나 마이동풍이었다. 사람은 오히려 날이 갈수록 악감정을 증폭시키며 급기야는 죽여버리고 싶다 적대감마저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헌데이들의 바램이 실제 현실로 나타났다.주차장 아스팔트에 널브러진 시신이 그것을 증명해 보인 것이다.

(계속)

이산해 / 추리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