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소소한 이야기

2021.12.30 17:35

서경 조회 수:10

소소한 이야기.jpg

 

  피곤했었나 보다. 간밤엔 한 번도 깨지 않고 정신없이 잤다. 꿈 속을 헤매다 눈을 뜨니 새벽 5시 50분이다. 이제 밤이 길어졌는지 창 밖은 아직 어둠에 싸여 있다.
 잠을 깼는데도 꿈 속의 잔영이 남아 가슴에 맴돈다. 그다지 대단한 꿈도 아니련만 뚜렷이 기억된다. 꿈 속에서 본 그 젊은이는 누구였을까.
  꿈 속의 공간적 배경은 합창단 야외 연습실이었고 시간적 배경은 어둠이 깔린 밤 열 시경이었다. 합창 연습이 끝났는데도 우린 왁자하게 떠들며 떠날 줄 몰랐다.
  그런 와중에, 한 마디 말도 없이 조용히 서 있는 청년이 있었다. 합창단에 처음 나온 친구였다.  우리랑 조금 떨어져 서 있는 모양새가 물리적 거리가 아니라 마음의 거리로 느껴졌다. 그때 마침 아주 먼 거리에 산다는 그의 소개가 생각났다. 노래가 좋아서 먼 길 마다하지 않고 찾아왔다고 했다.
  다가 가서 말을 걸었다. 늦은 시간인데 먼 길 가노라면 힘드시겠다고 하며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는 지하철 타고 가다가 버스 바꿔 타고 가면 된다고 했다.
  ‘아니, 차도 없는 사람이 그 먼 거리에서 왔다구?’ 나는 깜짝 놀랐다. 그의 열정이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동시에 내 입에선 “잠깐만요! 제가 모셔다 드릴 게요!” 하는 말이 절로 튀어 나왔다. 메시아 신드롬이 또 발동한 거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면 참지 못하는 성격. 꼭 내가 나서서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심리. 어느 모임이든, 처음 온 사람이 쭈뼛거리면 제일 먼저 다가가 말을 붙이는 마음. 목에 힘 준 사람은 병적으로 싫어하고, 힘 없는 사람에겐 지나치게 연민을 느끼는 이상 심리. 꿈에서도 그 심리가 발동했다.
  처음엔 머뭇거리며 대답을 못하던 그가 마지못해 내 말에 응했다. 오고 가면 네 시간을 소요하는 거리였다. 요즘은 밤운전을 피하는 중이지만 대수롭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외려 기쁜 일이라 생각됐다.
  언제나 그렇듯이 단짝 합창단 친구 한 명 더러 같이 가자고 권했다. 그녀도 두 말 없이 응했다. 젊은이는 뒷자리에 앉고 난 운전대에 앉았다. 친구는 내 옆자리에 앉았다.
  막 출발하려하자, 한 남자가 뛰어 왔다. 남편인지 약혼자인지 기억에 흐릿하다. 나하고 특별한 사이임은 확실하다. 이야기를 듣더니, 본인이 운전해 주겠다며 운전석에 앉았다.
  평소에 그에 대해 불만이 딱 하나 있었는데 어떤 일을 할 때 ‘마음을 담지 않는 거’였다. 모든 게 대충대충, 자기하고 직접 관계되지 않은 일이면 하기 싫어했다. 하지만, 자기가 좋은 평가를 받아야 할 사람이라면 허리 굽신대며 친절했다. 그런 그의 이중성을 내심 싫어하고 있던 터였다.
  하지만, 웬일로 친절을 베푸시나 싶어 고마웠다. 아니나 다를까. 하기 싫어하는 일을 하려니 금방 그 마음이 드러났다. 처음부터 운전이 난폭했다. 주차장에서 나가는 곳도 아닌데 차를 빼는 바람에 차가 심하게 흔들리더니 덜커덩하고 도로에 내려졌다.
   일전에도 같이 차를 타고 가다가 앞서거니 뒤서거니하며 어떤 멕시칸 운전수하고 실갱이 하는 바람에 가슴 졸였던 일이 있었다. 그 일 이후로는 거의 차를 같이 타지 않았다. 이렇게 난폭한 운전으로 왕복 네 시간을 달리는 건 심장 조여오는 일이다. 먼저 집에 가라며 내려주고 내가 운전대를 잡았다.
  비로소 마음이 풀리고 여유가 생겼다. 왕복 네 시간이면 어떠랴. 좋은 일도 하고 오고 가며 친구랑 담소를 나누는 것도 덤으로 얻는 즐거움이다.  
  시동을 걸었다. 아차, 이를 어쩌나. 부르릉하는 시동 소리에 그만 아까운 잠을 깼다.
  스무 살 남짓, 이름 모르는 그 젊은이. 모두가 낯설어 혼자 멀찌감치 떨어져 있던 그 애. 노래에 대한 열정이 얼마나 뜨거웠기에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다시 갈아 타 가며 왔을까. 잠을 깼어도 꿈의 잔영이 가시지 않는다.
  꿈은 잠자는 동안에도 깨어있는 뇌의 일부가 저장된 기억을 무작위로 재생해 내는 정신 현상이라 한다. 어떤 건 기승전결이 뚜렷하지만 어떤 건 뒤죽박죽 뜬금 없는 것도 있단다. 이렇게 꿈을 깬 뒤에도 남는 건 뇌에서 기억하기 좋은 형태로 인과관계를 재설정한 때문이라고.
  오늘같이 만나 본 적도 없는 사람이 나타나거나 생전 가 보지 못한 곳이 꿈 속에 나오는 것도 여러 형태로 저장 되어 있던 정보가 합성해서 재생되어 나온 거라고 한다. 한마디로 무의식의 재현이라는 거다. 오늘 내 꿈은 기이한 건 아니지만, 사실적인 것도 많이 포함되어 있다.
  내가 합창단에 속해 있고, 합창단 속에 단짝 친구가 있고, 연습 장소에서 내가 살던 집까지 먼 거리인 것도 맞다. 합창 연습 끝나는 시간도 거의 밤 열 시다. 약혼자인지 남편인지 모르나 운전을 난폭하게 하는 사람도 알고 있다. 내가 싫어하는 유형이 이중성 인간형인 것도 맞고, 내가 유난히 아웃사이더에게 애정을 갖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함에도 하필 왜 오늘 새벽 이 꿈을 꾸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꿈을 꾼다는 건 살아있음의 증표다. 죽은 자는 꿈을 꿀 수도 없거니와 어줍잖은 꿈을 이렇듯 소상히 기록할 수도 없다. 특별한 꿈은 아니지만, 모월 모시에 내가 이런 꿈을 꾸었다고 보고하는 것 역시 살아있기에 가능하다.
  얼마 전, 내 생애 처음으로 주치의를 정하고 여러가지 건강 검진을 했다. 피검사와 골다공증, 초음파 검사를 했다. 의사 선생님은 이 정도면 아주 양호하다며 몇 가지 설명을 덧붙였다.
 피검사를 통해서는 나쁜 콜레스트롤이 높다는 거. 골다공증 검사를 통해서는 등뼈 특히 넘버 2가 좀 안좋다는 거. 초음파 검사를 통해서는 쓸개에 돌이 가득 차 있다는 거였다. 내 나이에 암도 없고, 피도 깨끗하고… 이 정도면 아주 양호하고 좋은 소식이라고 주치의가 거듭 말했다.
 아니, 문제가 한 두 가지 아닌데 양호하다니. 기가 찼다. 고기를 거의 먹지 않는데 어찌하여 콜레스트롤이 높은지. 쓸개를 떼 내어 자칫하면 ‘쓸개없는 x’ 처지에 놓여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몸은 정직한 거. 분명히 나의 잘못된 식습관과 생활 습관으로 빚어진 일일 게다. 콜레스트롤 주범으로 새우와 달걀을 찾아냈다. 좋아하던 것을 줄여야 하고, 부침개를 좋아하는데 식물성 기름도 피해야 할까 보다.
  주치의를 만난 이후로 은근히 오른쪽 갈비뼈 밑에 손이 자주 간다. 쓸개가 있는 위치다. 쓸개를 떼어내면 소화액은 어디서 나오나. 종종 급체로 혼돌림도 하는 내가 아닌가. 옆구리를 찌르며 암 걱정을 하던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잔병없이 살아오며 비타민과 정로환만 챙겨 먹던 나도 의사 처방약이 필요해졌다. 공황장애약에 위장약, 골다공증약. 어휴. 많기도 하다. 앞으로 먹어야 할 약이 더 늘어나겠지. 엊그제 급체로 혼돌림한 이후로 챠콜도 상비약으로 더해졌다. 아예 큰 약통을 사 가지고 왔다.
  건강과 삶은 한 단짝이다. 살아 있기에 할 수 있는 어줍잖은 일들이 귀하게 다가 온다. 눈 깜빡일 수 있는 거, 손가락 하나 움직이는 거, 내 힘으로 일어나 걸을 수 있는 거, 기침 제대로 할 수 있는 거…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는 게 없다. 정말 모든 게 고맙다.
   생로병사. 인간의 4대 코스 중 이제 ‘병’까지 왔다. ‘사’가 오기 전, 하루 하루 매 순간 충실하게 살아야겠다. 기억이 온전할 때, 내 손가락이 움직일 때 모든 걸 기록해 두고 싶다.
  요즘은 문학작품보다는 생활 기록으로 글을 쓴다. 정자가 아닌 흘림체로. 사랑하는 사람은 사소한 이야기에도 공감해 준다. 이런 믿음으로 새벽 수다를 늘어 놓았다.
  어느 새, 희부염했던 동녘 밝아 오고 다시 새 날이 주어졌다.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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