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와이너리 생일 밥상

2022.01.03 03:04

서경 조회 수: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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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째 비가 내리더니, 생일 선물인 양 비가 그쳤다. 올해는 그리 멀지 않는 샌 안토니오 와이너리에서 조촐한 식사를 하기로 했다. 몇 년 전, 재미수필 송년회 파티로 갔을 때 첫인상이 좋아 기억해 두었던 곳이다.
  1917년 가족 비지니스로 시작한 곳이라 하니 100년도 더 넘은 와이너리식당이다. 예약 없이 자유롭게 시간 맞추어 오라는 말에 우리는 점심 시간에 맞추어 갔다.
  코로나에 이어 파워는 약하나 전파력이 높다는 오미크론 탓인지 예전처럼 북적거리진 않았다. 식사 장소로는 인사이드와 야외 천막 식당 중 선택할 수 있었다. 우리는 비 온 뒤의 찬 기운을 피하느라 인사이드 자리를 선택했다.
  멋진 크리스마스 데코레이션과 각종 와인이 즐비한 선물 센터의 소품들이 마음 들뜨게 했다. 파스타 위주로 각자 음식 주문을 했다. 나는 버섯 파스타와 오늘의 스페셜 수프라 적힌 녹두 야채 수프, 스텔라 로사 와인 한 병을 주문했다.
  와이너리에 온 만치, 시음용 와인도 주문했다. 시음용 와인은 한 트레이에 네 가지씩 들어 있었는데 가격은 $20이었다. 우린 와인 시음용으로 두 트레이를 주문하여 여덟 가지 와인을 음미해 볼 수 있었다.
  혀만 축인 듯 몇 방울씩만 마셨는데도 속이 뜻뜻하게 데워져 술 기운이 얼굴까지 올라 왔다. 와인 마니아가 아니라 그런지, 맛도 이름도 그리 인상 깊게 남지 않있지만 기분은 업되었다.
  내 입엔 애플 소다 같은 스텔라 로사가 딱 맞았다. 파스타 소스로 느끼해진 입맛을 상큼하게 해 주는 뒷맛이 좋다. 알고 보니, 스텔라 로사도 주 재료에 따라 종류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색상도 복숭아로 만든 연핑크부터 블랙 배리로 만든 검은 색까지 다양했다.
   우리가 식사하는 중에도 계속 자리는 비워지고 비워진 자리는 이내 삼삼오오 마스크 쓰고 온 사람들로 채워졌다. 유서깊고 인기 있는 곳이라 그런지 위기를 느낄 정도로 불경기를 타는 것같진 않았다. 거리 유지와 통제가 심해 소상공인이 죽겠다고 아우성치는 고국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미국에서는 이미 돈을 많이 풀었다. 나도 연방 정부가 전 국민에게 준 재난금을 세 번이나 받았고, 주정부에서 주는 보조금도 받았다.
  텍스 보고에 따라 액수가 다른 EDD 실업자 수당도 1년 넘게 받았고 원금을 탕감해 주는 PPP 론도 두 차례에 걸쳐 받았다. 평소 수입에 거의 뒤지지 않는 액수였다. 정부 시책에 따라 가게 문을 닫은 우리에게 섭섭찮은 보상을 해 준 셈이다.
  전국민에게 주는 기본 재난 지원금과 케이스별로 액수가 다른 선별 지원금을 적절히 배합한 방법으로 동시에 지급했기에 별 불만이 없었다. 국민들 역시, 일정 시간이 지나 일터로 돌아간 사람은 실업 수당을 스스로 받지 않았다.
  어려울 때 도와주는 친구가 진짜 친구인 것처럼, 국민이 어려울 때 즉각 지원을 해 주어 그 고통을 덜어주는 정부가 진짜 좋은 정부가 아닌가 싶다. 우리나라도 이런 때일수록 경직된 관료주의 옷을 벗고 서민의 편에서 한 푼이라도 더 줄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 그것도 즉각적으로. 서민에겐 생활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모래밭으로 밀려와 도와 달라고 애걸하는 고기에게 행인이 “너 스스로 바닷물로 들어 가 봐!” 하며  매몰차게 말하던 동화가 떠오른다. 지금은 교육을 시킬 시간이 아니라, 바닷물에 넣어주는 자애로움이 필요한 시간이다. 일단, 바다에 들어간 고기는 가르쳐 주지 않아도 심해를 유영하며 살아 갈 것이다.
  국민이 낸 세금으로 주는 돈을 마치 자기 호주머니에서 나가는 것처럼 벌벌 떨어서도 안될 터이다. 물론, 최소한의 경비로 최대한의 효과를 거두어야 한다는 ‘경제 원칙’을 취하는 건 당연한 일. 그게 바로 경제 관료의 실력이다.
  포인트 뷰가 국민인가 아닌가에 답이 있지 않을까. 사람들이 견디지 못하고 여기저기서 스스로 죽어 나가는 위기 사항이다. 빠른 시일 안에 이 어려움을 털고 나갔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선진국은 딴 게 아니다. 국민의 눈물을 닦아 주고 가슴에 원망이나 한을 남기지 않는 나라다. 나의 조국 대한민국도 경제 선진국 뿐만 아니라, 하루 빨리 의식적으로도 선진국 반열에 들기를 희망한다.  신명나는 세상! 마음만 먹으면 해 낼 수 있다고 검증 받은 국민이고 나라가 아닌가.
  여기 미국도 급속도로 전파되는 오미크론으로 심각하다. 하지만, 하루에도 몇 만 명이 오미크론에 노출되었다고 다급한 뉴스가 나와도 조금 느긋할 수 있는 건 정부에 대한 믿음 때문이 아닐까 싶다. 정부 당국자와 방역 의료진이 살신성인의 정신으로 사투를 벌이고 있는 모습은 정말 눈물겹다.
  이 총체적 위기에 대처하는 방법은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뿐. 이 또한 지나가기 마련이라는 긍정적 생각으로 최대한의 인내심을 발휘할 때이다.
  식사가 끝날 즈음, 수수한 옷차림의 중년 남자가 우리 식탁으로 와 굽신 절을 하며 서비스와 음식이 어땠냐고 묻는다. 이 곳 주인이라고 자기를 소개했다. 우리는 기대하지 않았던 친절에 환히 웃으며 엄지 척을 했다. 미국에 살면서 이런 작은 친절을 대할 때마다 나는 늘 감동을 한다.
  식사를 끝낸 사람들이 기웃대며 와인을 고르고 있다. 우리는 남은 음식과 스텔라 로사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 났다.
  비 온 뒤의 하늘을 보며 푸르른 희망 가슴에 안고 힘찬 발걸음을 내딛는다. 한 살 더 먹었으니, 아름답게 익어 가리라 자신과 새끼 손가락을 걸었다. 모든 걸 준비해 준 딸아, 오늘도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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