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 쓴 맛의 여운

2022.03.21 11:34

서경 조회 수:13

 쓴맛의 여운.jpg

 

   가슴 졸이며 개표 상황을 보다 유튜브를 껐다. 곧 결과가 나오겠지. 결과나 보자. 가슴 졸인다고 달라질 일은 없으니까. 마음을 다잡고 핸들에 힘을 주었다. 심경이 흐린 건지 시야가 흐린 건지 스치는 풍경도 흐릿했다.
  가게에 도착해서 유튜브를 켜니… 마지막까지 기대를 걸며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꿈만 같았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세상도 있구나! 탄식이 절로 나왔다. 정말 대실망이다. 일하는 내내 기분이 꿀꿀했다. (지금은 저속한 표현을 써도 용서해 주기를)
  앞으로 5년. 365x5= 1825(일). 1825x24= 43,800(시간). 그 사이 윤달이 있던가? 있으면 하루 더 보태야겠지! 어휴, 24시간 더… 어떻게 견디나. 공황장애가 발작하려 한다. 하지만, 주사위는 던져졌고 결과는 명확하다.
  0.73% 차이. 역대 이렇게 ‘근소한’ 차이는 없었다 한다. 그러나 ‘근소한’이란 관형어에 불과한 것. ‘졌다’라는 뒷말이 중요하다. 24만 7000표란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막판에 크게 결집한 2030 여성 유권자에서 이재명이 2.7% 앞섰다는 얘기에 아쉬워하는 사람도 많다. ‘좀더 일찍 결집되었더라면…’ 하지만, 인생엔 가정이 없는 법.
  민주당은 시시하게 결과를 두고 시비하진 않으리. 이재명도 겸허히 패배를 받아들이고 깨끗이 승복했다. 깔끔했다. 모두가 내 부족함이요 내 탓이라고. 그는 트럼프도 아니고 부정선거 운운하던 윤석열도 아니다. 역시 이재명은 이재명이다.
  졌다, 해서 그에 대한 믿음이 무너지진 않을 게다. 삶의 과정이 그를 대변하고 행정 실적이 그를 증언한다. 그도 지지자도 최선을 다 했다. 역부족이었을 뿐이다. 다시 때를 기다려야 할까 보다.
  5시간 비행이면 갈 수 있는 지근 거리를 이스라엘 민족도 40년 긴 세월 광야를 헤매다 복지로 들어 갔다지 않는가. 그것도 ‘젖과 꿀이 흐르는 곳’이 아니라 개척해야 할 돌산인 것을. 뿐인가. 애굽을 출발한 제1세대 60만 명 중 살아 들어간 이는 오직 두 명. 개인사도 그렇고 역사도 녹녹찮다. 견딘다는 건 어려움을 전제로 한다. 누군가 삶은 이겨내는 것이 아니라 견뎌내는 것이라 했다.
  시간은 잔인하나 때로는 너그럽다. 시간을 믿어 봐야 겠다. 대기만성. 조숙한 과일은 먼저 떨어지는 법. 일찍 익기만을 고집해서는 안될 터. 지금이 가장 위기라 하지만, 인생이란 매일 매시 매분 매초가 위기다. 오늘이 마지막인 듯이 살아야 하지만, 실상은 마지막이 아니다. 내 눈 감는 날이 마지막이다.
  겨울 나무 마른 가지는 봄을 기다린다. 그러나 그 겨울 나무는 마냥 봄을 기다리지 않는다. 잔뿌리 앙다문 힘으로 봄을 ‘키운다’.
  절반의 찬성과 절반의 반대로 새 대통령이 되었다. 찬성과 반대로 생각이 나뉘어졌다 해도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야 어디 나뉘어지겠는가. 서로 적대시하던 마음 접고 힘을 합하여 전진하는 대한민국, 역동하는 대한민국을 만들었으면 한다.
  부디 나라 잘 되기를… 내 삶이 나아지기를… 신명난 세상이 되기를… 억울한 사람이 없기를… 삶의 질도, 인간의 질도 더 나아지기를 … 그저 빌고 빌 뿐이다. 2002년 한마음 되어 붉은 물결 휘몰아치던 그때의 감격으로 다시 한번 “대~한민국!”을 크게 외쳐 보자.
  적어도 우리는 지금 전쟁통에 내버려져 있지 않다. 생명은 고귀하고 목숨은 비루한 것. 목숨을 담보로 비루한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다. 지금은… 이것만 생각해도 행복하지 않는가.
  새 대통령이 ‘생각 외로’ ‘기대치 이상으로’ 잘 해 주길 바란다. 적대감은 망국으로 가는 지름길이요 목숨을 내 놓는 일이다. 문제는 기득권이다. 기득권은 독버섯처럼 매혹적이고 칡처럼 질기다. 이재명을 지지한 것도 공정과 평등을 외치며 끊임없이 기득권과 싸워 왔기 때문이다. 사리 사욕이 없었던 것도 크게 작용했으리라.
  의견이 분분한 세상에서 통장 반장하기도 쉽지 않은 세상이다. 하물며, 국민의 생명을 지키고 국가를 경영해야 하는 대통령 자리가 만만하겠는가. 노후가 편했던 대통령이 없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잘 해도 욕, 못해도 욕. 국민이 아무리 착해도 때로는 못된 시어머니가 되기도 한다. 이래도 트집, 저래도 트집. 바람 덜 찬 풍선처럼 여기 눌리면 저기가 불룩, 그 쪽 눌리면 또 이 쪽이 불룩. 생각만 해도 어질어질한 자리가 대통령 자리다.
  이제 우리라도 힘을 보태야 한다. 의견이 달랐다고 해서 서로 적대시 하거나 싸우지 말자. 빨갱이라니. 피를 뿌리며 등장한 그 잔인한 말을 계속 입에 달고 산다면 그 입도 마음도 얼마나 추할까.
  같이 살던 룸 메이트 여자 목사도 허구헌 날 빨갱이란 말을 달고 살았다. 문재인 대통령 되면 빨갱이 나라 된다더니 멀쩡하다. 바로 북한에 먹힌다더니 그것도 아니었다. 통일이 대박,이란 말은 박근혜 대통령도 했다. 태평양 건너 온 사람들이 여기서도 할아버지가 썼던 빨갱이란 말을 서슴없이 뱉을 때는 딱하기 그지 없다.
  우리 나라는 대통령 직선제를 할 수 있는 민주 공화국이다. 얼마나 자랑스럽고 행복한가. 이 행복도 피로써 얻은 결과물이다. 모든 건 표로 심판하면 되고, 힘이 모자라 졌으면 깨끗이 승복하면 될 일이다. 얼마나 멋진 승부인가.
  피조물은 창조주(하늘)의 뜻을 따라야 할 터.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신의 뜻이지만  어쩌겠나. By His Plan, In His Time을 믿을 수밖에. 아침 되면 해 뜨고, 밤 되면 달 뜨듯이 자기 위치에서 제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게 애국 시민이요 민주 시민이 아닐까. 국민 각자가 제 구도를 그리며 멋진 대한민국 풍경화를 그려가는 거다.
  하루가 지나, 솟아 오른 태양을 보니 한결 마음이 개운하다. 나라 잘 되길 빌면서도 한편으론 ‘너무 잘 하면 어쩌지?’ 하는 이 이중 마음은 또 뭔가.
허, 참! 나도 역시 인격수양이 덜 된 인간인가 보다. 하지만, 오를 산이 있기에 행복한 등산가처럼 나도 내 인생을 즐기며 오르련다.
  아무쪼록, 20대 대통령 선거 결과는 쓰디 쓰지만, 이 쓴 맛이 부디 ‘보약의 뒷맛’이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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