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사월 2.jpg

 

   엄마가 위암 말기로 시한부 생명이 되자, 바빠진 건 막내 여동생이었다. 365일 신앙생활에 빠져 사는 동생에게는 제일 시급한 문제가 어머니의 영혼 구원 문제였다.
  엄마는 평생을 불자로 사셨다. 그러던 어머니가 절에 나가지 않고 두문불출하셨다. 주지 스님과 부자 신도 사이에 금전적 불화가 생겨 절이 공중분해 되어 버렸다. 절도 교회와 다를 게 없구나, 싶어 엄마는 신앙에 깊은 회의를 느끼셨다.
  불행은 단체 입장이라더니 급기야 우울증까지 겹쳤다. 그렇게 명랑쾌활했던 엄마가 웃음을 잃고 매사에 시들했다. 동생이 교회 함께 나가자 해도 고개를 저으셨고, 절하고 분위기도 비슷하니 나와 함께 성당에 나가 보자고 권해도 거절하셨다. 그 일이 한 4년 정도 진행되었다.
  다행히, 어머니 증세가 좋아진 건 근교에  새로 생긴 보건 센터에 나가고 부터였다. 그곳 부부 원장님과 간호사들이 지극정성으로 어르신들을 모셔 감동을 받았단다. 역시, 모든 병의 명약은 ‘사랑’이다.
  엄마는 다시 머리 모양에 신경을 쓰고, 아침마다 옷 매무새 다듬는데 시간을 보내셨다. 어떤 땐, 나에게 자청해서 점검까지 받으셨다.
  - 희선아! 이 옷 괜찮나?
  - 네! 아주 멋져요!  
  - 호호호! 그래? 나 보고 모두 ‘이뿐이 할머니’라고 부른다. 팔십이 넘은 노인네가 아직도 이뿌나?
  농담 반 진담 반 섞어 내게 물으신다.
  - 그럼요! 고성 3대 미인 출신인데 그 인물이 어디 가나욤?
  엄지를 치켜 올리며 기분좋게 오버 리액션을 했다. 엄마의 입이 귀에 걸리는 건 한순간이다. 엄마와 나는 어릴 때부터 친구같이 지낼 정도로 재미있고 끈끈했다. 활기를 되찾은 어머니의 모습이 너무나 보기 좋았다.
  보건 센터에 나가신 지 일년 쯤 되었을까. 속이 거북하고 옆구리를 찌르면 아프다고 하셨다. 이십 년 째 매달 단골로 찾아가는 주치의는 소화제만 처방했다. 급기야, 찌르면 옆구리가 아프다고 하소연했더니 “나도 옆구리 찌르면 아파요!” 하며 퇴박을 주더란다.
   - 아니, 그 놈이 미쳤나! 아프다는 환자에게 위로는커녕 퇴박을 주다뇨?
   나도 화가 나, 욕까지 뱉으며 엄마 편을 들었다
  - 그러게 말야. 의사가 참 친절했는데 좀 변했는갑더라.  
  엄마는 풀이 푹 죽어 있었다. ‘한 시간 두 시간 기다리게 해 놓고 진료는 채 5분도 안 보는 주제에 뭐?’ 속이 부글부글 꿇어 올랐다. 한번 가서 따져 봐야 겠다고 벼루었다.
  그러나 내가 한번 따져 보기도 전에 변고가 났다. 위장내과 전문의에게 가서 내시경을 찍어 본 결과, 위암 4기라는 판정을 받았다. 예라이썅! 그 놈의 주치의! 가서 멱살이라도 잡고 싶었다. 하지만, 그 마음도 잠시였다.
  문제가 생겼으면 문제 해결을 해야 하는 법. 일단, 나는 암치료 전문의에게 예약을 했다. 여동생은 역시 열심한 교인답게 서둘러 목사님을 초빙했다. 좀 특별하신 분이라 했다.
    목사님이 오신다는 당일 아침이 되었다. 평소 같으면, 낯선 손님이 오는 곳 자체가 싫어 목사님 방문을 반대했을 게다. 그런데 이 날 아침만은 어쩐지 ‘귀한 손님’이 오는 것같더란다.
  옛날에는 귀한 손님이 집에 오는 날이면 마당을 곱게 쓸어 싸리비 자국을 남겨 놓는 게 예의였다. ‘아파트라 쓸 마당도 없고, 어째지?’ 고민하던 어머니는 문득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어머니의 마당은 아파트 방 앞에서 엘리베이터 입구까지. 목사님 밟고 오실 복도를 샅샅이 살펴 한 톨의 쓰레기도 남김없이 다 주웠다. 어머니가 생각한 거룩한 예식이다. 나는 정말 감동했다.
  이것이 바로 어린 아이 같은 마음이 아닌가. 평생 불자가 개신교 목사가 온다는데 이토록 지극 정성 마음을 쏟다니! 이스라엘 백성이 제 옷을 깔고 종려 가지를 흔들며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환영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어머니하고 인연이 맞아서 그랬을까. 아니면, 주님의 인도하심이었을까. 앤디 목사님의 첫인상은 진중하고 온화했다. 한마디로, 친밀감이 들었다.
  그는 서두르는 마음 없이 벽에 걸린 어머니 영정 사진과 몇몇 사진을 천천히 둘러 보셨다. 약간 불안하고 긴장된 모습으로 앉아 있는 어머니에게 그가 던진 첫마디는 퍽 인간적이었다.
  - 어머니가 상당히 미인이시네요!
  - ……
  어머니는 기대하지 않던 한마디에 아무런 대꾸도 못하고 공손한 자세로 고쳐 앉았다.
  - 기도하시죠. 편안히 누우세요.
  어머니는 자리에 누워 가슴 위로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았다. 목사님의 기도 방법은 좀 특이했다. 손을 어머니 얼굴 가까이 올리시고 심령기도(방언)로 주님과 교통한 뒤, 어머니께 한국말로 통변해 주셨다. 기도가 끝났다. 곁에서 같이 들었는데도 내용은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하지만, 목사님께서 하신 마지막 말씀만은 또렷이 기억한다.
  - 오늘부터 매일매일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어머니는 그게 무슨 말인지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신자인 나도 반신반의했다. ‘저 목사님은 무슨 근거로 저리 확신에 찬 말씀을 하시지? 그러다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어쩌려고?’
  내심 불안했다. 괜히 기대했다가, 엄마의 순수한 마음이 흔들릴까 봐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그건 하나의 기우였다. 기적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목사님이 떠나자, 어머님이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 야야! 목사님이 기도하시는데 얼굴이 어찌나 뜨겁던지 살그머니 눈을  뜨고 봤다 아이가. 그랬더니, 눈앞에 있는 목사님 손바닥에서 그렇게 뜨거운 열이 뿜어져 나오는 거 있지! 참 신기하제?
  - 엄마! 그게 바로 성령이에요! 와- 엄마가 아침부터 목사님을 그토록 지극히 모시니 하느님께서 큰 선물을 주셨나 봐요!
  - 그래? 아까, 목사님이 매일매일 기적이 일어 날 거라 했는데 이것도 기적 아이가?
  - 그렇죠! 깜짝 놀랄 일만 기적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 있는 매 순간이 기적이래요.
  - 그래, 그 말이 맞다! 아프고 보이 더 실감난다.
  - 일단, 마음을 한 곳에 모두어야 하니 반야심경 액자하고 달마사 그림은 내려 놓는 게 어때요?
  - 그래, 불교 서적도 다른 사람한테 다 줘야 겠다. 대신, 법정 스님 책은 니가 가져라.
  -  네, 그래요! 엄마, 힘냅시다!
  -  알았다!
  목사님 기도를 받으신 후, 엄마의 기분이 확실히 업되었다. 정말 기적은 매일매일 일어났다. 작은 기적들의 이야기는 다음 편에 이어 가기로 하자.  
 

 (사진 출처 : 유투브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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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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