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상훈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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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이올라니 Iolani 의 애환

2022.08.05 12:51

양상훈 조회 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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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올라니 Iolani 의 애환

양상훈

 

 

 

신성한 새(聖鳥)가 노래를 멈추고

눈물을 머금고 있다.

까마득한 태고시대

태평양이 처음 열리면서

화산 폭발로 끊어 오른 용암이

샌드위치 여러 섬을 꾸며냈다.

 

 

어느 날 야망의 노블맨 한 청년이

향군을 징집해 제도諸島(8)를 정복하려는 야심

오하우에서 마지막 승부를 걸어야했다.

흥분한 바람의 팔리고지에서 피아간 혈투

군사의 함성과 군마의 발굽 울음소리

번쩍이는 창칼, 비명을 지르는 화살의 탐욕.

밀물썰물의 허공을 잡고 육박전으로 아수라장

 

 

노도怒濤처럼 덮쳐오는 폭풍대열을

제압한 카메하메하 장수. 통일왕국의 시조,

거룩한 땅에 처음으로 알로하정신을 선포하였다.

<대지의 생명은 정의가운데 영원히 존재 한다>

"Ua Mau Ke Ea O Ka Allia I Ka Pono"

 

 

그 숭고한 정신 오늘날 하와이주표어로.비운의 마지막 이올라니 궁전에

지금도 눈물에 젖은 채 새겨져있다.

진주만에 해군의 쿠데타로

왕궁에 습격하여 여왕을 겁박

왕정을 무너뜨리고 대륙의 땅으로

강제 편입한 식민지 야욕에.

하와이안들은 땅을 치고 원통 한다.

 

 

대통령도 지난 역사에 대해 사과했다.

강제합병에 대한 억울함은 여전하다

영토와 주권의 회복은 돌아오지 않았다.

하와이원주민이 자치정부수립의 길은 열렸다

상당수의 주와 컬럼버스데이를 챙기지 않는다.

.백인차별의 멸시풍조가 이때부터 일어나기시작

알로하 정신에 묻혀가고 있었다.

 

 

조국을 사수 결심한 두 남매왕의 석양 길은 처량하였다.

칼라카우아왕, 칼라우오칼라이 여왕!.

전통문화의 선양, 영어보다 하와이어를 공식어로 선포한 태평시대

왕궁안에메리 모나코하와이 國歌를 제정하고.

수십 여곡을 하와이원어로 작곡한 섬세한 마지막 여왕.

물려받은 거룩한 조상 땅을 소수백인집단에 의해 강탈되고

2등 시민으로 되어가니 강산도 애통함이 가득

 

 

오늘날 전통문화가 관광의 사구려 도구로

낚시 온천을 즐기던 고향 터전, 성스러운 와이키키모래밭.

빽빽한 빌딩산성으로 사면초가에 덮였다

강산계곡이 도로로 풍비박산이 되었다

진록색 해변 리조트, 사탕수수농장.

미합중국의 유일한 왕궁 이올라니 궁전

천국낙원의 뒤안길에 숨어있는 역사가 애처롭다.

 

 

 

 

 

 

*시작노트-하와이가 지상의 천국이라 하지만 이올라니 궁전을 보면 하와이왕국의 흥망성쇠와 파란만장한 역사의 애환을 엿볼 수 있다. ‘이올라니는 하와이어로 신비 성스러운 새. 하와이는 태평양 한가운데라는 지리적 이점에다 서구와의 교류도 활발하여 서구문명을 꽤 많이 받아 상당한 수준의 근대화를 이룩했다. 식민지화되지 않고 정식국가로 인정을 받아 서구국가와의 교류도 활발하여 오랜 태평성대를 이어나갔다.. 이때쯤 미국에서 많은 이민자가 밀려와 사탕수수농장을 경영하고 있었는데 이들의 세력이 점차 커져 하와이 국정에 개입하면서 문제를 일으켰다.. 이에 대응 결국 마지막 하와이국왕이 미국인의 농장을 국유화 조치를 취했다.. 이에 항거 백인 농장 집단이 진주만에 주둔하고 있는 해군에게 도움을 요청, 이들 150명의 수군이 쿠데타로 이올라니 왕궁에 진입, 여왕을 겁박하고 감금하여 왕정을 무너뜨리고 임시 하와이공화국을 설립하였다. 1897년 합병조약을 체결하고 미국영토로 편입해버렸다 .어처구니없이 당해버려 우여곡절 끝에 19598.21 미국의 한 주로 확정된 것이다. 이올라니 궁전을 재고하면서 애잔한 심정으로 하와이역사를 돌이켜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