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연서안의 동봉 편지

2007.08.02 13:28

박봉진 조회 수:979 추천: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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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앵두 알을 입에 넣고 있는 것처럼 입안이 달콤했다. 그런 글을 읽어도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내게도 풋사랑 같은 첫사랑의 추억이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황순원 소설의 ‘소나기’에 나오는 때 묻지 않은 첫사랑 이였어도 좋을 게고, 미우라 아야꼬의 병상에서 있었던 시한부 인생과의 애련한 사랑 이였어도 괜찮았을성싶다. 그런 지순 지결한 첫사랑의 기회가 왜 나를 피해갔는지 모르겠다.

맞선 이야기만 해도 그랬다. 우리 세대는 이제 꺼내놓기 민망스러워할 나이를 넘겨서 그럴 거다. 길을 가다 무심중에 동행이 되었던 사람 이였거나, 어떤 모임에서 몇 마디 인상 깊은 대화를 나누었던 인연처럼, 보따리 속에 쌓아두었던 비밀스런 것들을 다른 사람 이야기인양 쉽게 풀어놓곤 한다. 마음이 내키지 않아 바람맞힌 이야기와 의례적인 말 한 마디를 듣고 마음이 들떴었는데, 알고 보니 딱지였더란 이야기도 우스갯소리처럼 털어 내놓는다.

천상의 눈길로도 내 인생의 보따리가 하도 빈약해서 무얼 하나 얹어주었던 것이었을까. 절실했던 상황이 아니었는데, 내게도 단 한번으로 끝난 맞선이란 것이 있긴 있었다. 그 때 나는 현역 군인이었고 그녀는 어느 지방 대학을 다니고 있었다. 그것도 첫 대면에 서로는 싫지 않았던지 다음 약속까지 단단히 정했었다. 그러나 그쪽 할머니가 나서서 일을 그러 쳐버렸다. 할머니의 딸, 그러니까 그녀의 고모가 우리 집안의 한 어른과의 혼인이 순탄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였다. 같은 집안에 손녀까지 혼인시킬 수 없다는 왕고집에 뿌리 없는 그 약속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참 애달팠다.

태연하려고 애썼지만 속은 좀 쓰렸다. 없었던 일처럼 거의 마음정리가 되었을 무렵이었다. 나에게도 제법 열을 지필 수 있는 일이 생겼다. 수취인이 실존하지 않는 편지 한통이 내 손에 들어왔다. 보낸 사람은 해군 간호장교였다. 그 시절 육군에선 그런 직급이 많았지만 내가 소속돼 있은 공군에선 그 같은 편제는 아예 없었다. 그러나 해군에선 소수이긴 하지만 그런 편제가 있었다. 내 직무상 실존하지 않는 수취인을 상대편에게 알려주어야만 했다. 그 확인서 같은 편지를 쓰면서 좀 자상스런 몇 마디를 더 얹었던 것 같다. 이어서 감사편지를 받았고 그를 계기로 계속 편지를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처음 얼마동안은 호기심에서, 그 다음부터는 조심스런 탐색으로 이어졌다. 차츰 그녀가 자랐던 동네와 집안 형편도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 한 까풀 한 꺼풀씩 마음 문을 열어갔다. 생년에 이어 본명의 끝 자가 “숙”임도 말해주었다. 그리 불리고 싶다는 말도 덧 붙였었다. 우리는 한 도시에서 성장기를 보냈기 때문에 서로 나눌 공통정서의 이야기꺼리가 많았다. 그럴수록 나는 양은 냄비처럼 화들짝 달아오른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될 것 같기에 조급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편지 매수가 조금씩 늘어 가는가 싶더니 어느새 지질이 달라졌다. 색깔 있는 종이로 바뀌어졌다.

검부러기 불이였던 것이 모닥불이 되고, 모닥불이 타면서 이글거리는 잉걸불이 되면서 무쇠 가슴을 달구었다. 언제인가부터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우리는 오랜 정인처럼 서로의 이름자 앞에 친근한 형용사 하나를 더 부쳤다. 한 주일이 너무 길었다. 한 날은 어엿한 제복을 입고 좀 멋을 낸 그녀의 모습과 백의를 입은 천사의 얼굴도 함께 동봉해왔었다. 세상에 다시없을 사람이지 싶었다. 저리도 예쁜 사람이 아담의 갈비뼈에서 재창조된 하와의 후예일순 없다고 생각했다. 못된 뱀에게 꼬임을 당하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나는 짬나는 대로 그것을 꺼내 보곤 했다. 한참 들여 보았는데도 돌아서면 또 보고 싶었다.

장작불도 한 개비로는 불이 잘 타지 앉지만 두 개비가 넘으면 불꽃과 열을 내며 활활 타는 이치였을까. 우리는 그 때까지 한 번도 만나보지 않았는데도, 오래 사귀어온 사람 이상으로 열을 내고 있었다. 한참 세월이 지나가고 나서야 알았지만, 대체로 연애의 패턴은 그런 단계를 거치는 것을-. 아마 그 때의 내 눈에는 무슨 꺼풀이 하나 씌워져있었을 게다. 역시 상대편도 그랬을 것이다. 그것이 묘약 이였을 터이니까.

우리는 먼저 마음부터 통했던 사이임으로 사실 서로의 외모 따위는 생각하지 않았다. 둘 다 건장한 사람 이였기에 공군과 해군으로 선발되었을 것이고, 피차 사진까지 주고받았으니 마음만 맞으면 되는 것이었다. 드디어 만나자는 이야기가 오갔다. 서로의 형편을 들으며 차근차근 우리의 휴가 계획을 구체화해가고 있었다. 그것 때문에 편지도 더 자주 오갔다. 마음만 들떠 있은 것이 아니라 양발도 공중에 붕 떠서 발걸음이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었다.

하루가 열흘 같던 어느 날, 여느 때와는 달리 편지봉투가 두툼했다. 왜 일까? 부리나케 봉투를 뜯어야 하는 손이 잘 나가지지 않았다. 먼 하늘로 날아가는 한 떼의 새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하마터면 공중에 떠 있은 내 발이 푹 꺼진 땅바닥을 헛딛을 뻔 했다. 연인의 편지가 먼저 집혔다. 첫 장부터 느낌이 이상했다. 자주 쓰던 말을 절제한 상당히 정제되어있는 편지였다. 다음 글을 읽다말고 그 예감은 곧 풀렸다. 옆 사람과 함께 보내는 편지인데 어찌 내밀 서러운 말을 쓸 수 있었으랴.

같은 과에 근무하는 위생병에 대한 이야기가 들어있었다. 한 동네에서 자랐기 때문에 그저 이웃의 호칭으로 그를 오빠라고 불러왔다는 것과 때때로 그로부터 훈수 같은 말을 들어 왔다고 했다. 사귀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고 물어서 그대로 실토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깜짝 놀라며 고등학교 때부터 잘 아는 동급생 친구이니 자기 편지도 함께 넣자고 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금세 그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었다. 좀 떠벌리는 성격이긴 해도 모나지는 않았던 친구이었다. 그 친구에 대한 거부감에서가 아니라 둘만의 공간에 난데없이 다른 남자가 끼어든 것이 영 꺼림직스러웠다.

왜 더 깊은 사려가 없었는지 모르겠다. 진정한 기대감이 엿보여지지 않는 것 같았다. 물엿 가마 곁에 재가 날고 있으면 엿이 안 된다는데, 멀건 날에 웬 재 가루일까. 푹푹 압력솥에서 김빠지고 있는 소리. 동창 친구의 투박한 편지글체엔 잘해보라는 내용을 담은 듯 했다. 그 글은 차라리 안본 것만 못했다. 웬일인지 그 편지뭉치에선 연인의 편지는 조그맣게 보이고 동창의 편지만 굵다 막게 보였다.

요새처럼 이메일로 사람들과 쉽게 교류를 할 수 있는 처지였으면 어쨌을까? 화상 채팅도 한다면 예민한 부분에서 서로간의 입장을 잘 정리할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그 때 기다림의 줄을 거두어버렸으니 그리움도 걷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도 나는 안개 속에 묻혔다가 다시 떠오르곤 하는 초록별처럼 그 육필편지를 간간이 떠올리고 있는 것은 왜일까.

내 인생의 보따리에 쌓던 단 하나의 보석이라서 그런지 모르겠다. 그것을 넣어준 그 사람은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혹 알 수만 있다면, 나는 그 보석을 소중히 가슴속에 묻고 있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그리고 그 때 참 고마웠다는 말과, 지금도 고맙다는 말을 빠트리지 않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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