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강} 수필의 맥과 경로 잇기 (시리즈, 5)

2010.05.09 14:16

박봉진 조회 수:1339 추천: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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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의 맥과 경로 잇기 / 박봉진

수필을 쉽게 잘 쓸 수 있는 지름길은 없다.
오직 정도(正道)가 있을 뿐이다.
다독(多讀) 다상(多想) 다습(多習)이 정도다.
즉, 좋은 작품들을 선별해서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해보고, 많이 습작을 해봐야 한다.
누구나 자기의 체험과 알고 있는 지식만큼, 눈높이와 가시 영역만큼, 인생경지의 깊이만큼 글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1)수필작품을 읽을 때

작품의 맥을 탐색하며 중심사상을 찾아내어 작가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숙독하는 것과 작품에서 구사하는 풍부한 어휘들을 익혀두면 중요 자원이 된다. 그리고 앞뒤 문장의 말들이 이어지는 경로와 단락의 어우름도 세밀히 관찰하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2)수필창작에 앞선 유의점

글감 소재는 대체로 일상에서 얻지만, 남들이 미처 깨닫지 못하는 것을 육안과 심안으로 찾아내어 일상성 이상의 의미화를 나타내야 한다. 그것을 핵심 주제로 삼고 줄거리가 그 영역에서 벗어나지 않는 글로 풀어가되, 문장은 형상화로 표현되어야 문학 수필이 되는 것이다.

현재 “수필은 붓 가는 대로 쓴다.”는 사전적 해석만을 곧이곧대로 받아드리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 말은 문장구성에 익숙한 전문 작가가 창작과정 전후를 절제 함축한 시적표현임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것에 유의치 않고 자기감성에 들떠 미사여구만 동원한 주제빈곤의 기교파 글이나, 사진 찍기 같은 문장 모임 또는 스토리텔링 위주로 작품을 채웠다면 문학 수필엔 한참 못 미치는 신변잡기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다.

수필은 쓰는 것이 아니라 창작해야 한다. 한 편의 창작이 결코 쉽지 않기에 아무 것이나 소재로 삼고 문자화한다면 본인에겐 심신 소진, 독자에겐 아까운 시간낭비가 될 뿐이다. 그러기에 글감은 심사숙고 후 택해야 한다. 그 제목의 글이 본인에겐 절실함이 있고 독자의 주목과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인가. 또는 현실 사회의 필요에 응하는 것인가를 자문해봐야 한다.
창작은 먼저 밑그림(Blue Print)을 그려두고 시작하면 좋다. 도화지 중심에 그림 구도를 짜듯 필요한 한도의 배경과 소품, 글의 대상을 보는 거리, 글의 분위기와 속도감 그리고 적정수준의 지성과 감성 배합 등도 고려해 넣을 대상이다.

문장은 연상 작용에 의한 상상력으로 떠오르는 영감들을 일일이 메모로 모아두었다가 골라 넣으면 좋을 것이다. 문장이 단락을 만들고, 단락이 기승전결(起承轉結) 법에 의해 시종 물 흐르듯 흐르면서 짜놓은 밑그림의 과녁, 제 자리를 찾아 들어가면 한 편의 수필이 되는 것이다. 서두(序頭)와 이음(承)과 전개(展開) 그리고 결미(結尾) 순서대로 말이다.

(3)수필작품을 창작할 때

수필작품 창작은 당초 구상단계부터 달라야 한다. 작품의 완성도는 문학성이 기준인 이상, 먼저 글감의 소재를 어찌 보았느냐 에서 글쓰기를 시작한다. 그것에 따라서 중심사상인 주제를 확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주제 정신에 적합한 제목달기를 한다. 제목은 상징적이고, 참신한 것이어야 하며, 독자의 흥미를 유발시키면서도 내용과 격이 맞아야 한다.
서두는 예고와 전개기능을 예비하면서도, 독자의 시선을 꽉 붙잡고 끝까지 끌고 갈 수 있는 것을 찾아내는데 고심해야 한다. 서두가 진부하거나 산만하면 독자는 그 글을 읽고 싶은 의욕을 잃고 만다. 서두가 잘 뽑아졌으면 그 글의 절반은 성공한 거나 다름없다.

단락간의 글 이음은 자연스럽도록 유도하는데 최선을 다한다. 또 글 중심 줄거리의 지배적 인상은 세밀히 묘사하여 부각시키고, 그렇지 않은 부분은 슬쩍 거드는 문장 정도면 족하다.
결미는 마치 종소리가 잦아졌다 한 번 더 크게 울린 후 여운 속에 잠기듯, 글의 흐름에서 멈칫 한 호흡 쉬었다가 번쩍 새 정신이 들게 하는 암시 같은 말을 툭 던져놓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
그리고 문장의 주안점은 간결, 평이, 정밀, 솔직함이다. 전체 문장들은 짧은 단문형식을 취해야 뜻이 명료하고 글이 속도감을 내게 된다.
또한 그 글에는 재미와 감동과 뒷맛이 담겨있어야 맛깔스런 문학 수필로 정평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수필창작에 있어서 허방 길을 헤매지 않고 시종 직 코스를 달릴 수 있다면 그 이상의 정도는 없을 것이다. 지금은 많은 수필이론서가 나와 있다. 대다수를 정독해본 결과, 저자마다 표현과 순서와 강조점은 조금씩 다르지만, 주장의 윤곽과 핵심은 대체로 그게 그 말임을 알 수 있었다. 현실적으로 딱 와 닿지 않는 원론성 이론보다는 한 편의 문학 수필 작품을 펴놓고 여러 경우들을 유심이 관찰, 진지하게 토의하는 요점 특강. ‘수필의 맥과 경로 잇기’는 지름길은 아닐지라도 수필의 하이웨이임에는 별반 틀리지 않을 듯하다.

이런 수필 수업에 매료되다보면 작품을 제대로 창작해보지 못한 사람일지라도 글눈이 트인다. 잘 쓴 수필과 그렇지 못한 것도, 좋은 수필과 그렇지 않은 것의 경계가 보인다. 또한 잘 쓴 수필과 좋은 수필이 꼭 일치하지 않는다는 분별력도 생길게다. 그리고 주제에 요긴하지 않는 문장은 과감히 버릴 줄도 알고, 수필은 작가가 그리고자 하는 것만 선별해 넣는 의도된 ‘그림그리기’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마치 추사의 세한도처럼 원경을 생략하고 집 윤곽과 네그루 소나무로 화면을 채운 그림이 유배 환경과 그의 심중이 담긴 유명 그림이 된 것을 생각하면, 수필의 전범(典範)에 닦아서지고 수필창작의 길이 엿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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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 LA 글 동네' 수필특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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