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31 19:12
고향에 눈은 내리고 - 이만구(李滿九)
바다를 낀 고향에 도착한 것은
어느 초겨울 날,
바람이 사뭇 몰아치던 그때의 이별 후
또 다른 해후이었다
텅 빈 거리에 진눈깨비 날리고
나는 외투의 눈을 털고
누이랑 들어간 곳은
따스한 벽난로가 온기를 주는 카페였다
창밖에는 세월의 파편처럼
눈이 내리고 둘이서 안경에 낀
기억을 닦으며
눈가에 어린 물기도 애써 지웠다
가로등은 찬바람에 여위어가고
정든 사람들은 가고 없는
쓸쓸한 생각에
이방인이 되어버린 설야의 귀향이었다
거리 따라 내려다본 옛집터에는
함께 웃고 살았던
가족들 표정이 얼어붙은
눈만 수북이 닿을 수 없는 곳으로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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