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노래

2018.06.13 12:10

김향미 조회 수:41



                                                할머니의 노래  

 

                                                                                                                김 향 미


                                                                                     

  할머니가 또 엄마, 엄마하며 칭얼대기 시작한다. 요즘 종종 듣는 소리인데도 아직 낯설다. 안쓰럽게 들리는 목소리와는 달리 침대에 누워 아이같이 손장난을 하고 있다. 나는 곁으로 다가가 얼굴을 빤히 들여다본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할머니는 쑥스럽다는 듯이 “왜?” 하고 웃는다. 그러다 손사래를 치며 “ 어여 가서 밥 먹어” 한다. 항상 낯익게  듣던 할머니의 목소리로 돌아왔다. 돌아서는데 한 가사에 한음인 노랫소리가 또 들린다. 단조롭지만 느린, 요즘 유행하는 랩처럼 중얼거린다. 엄마, 엄마, 엄마.... 

 

  혼자 사는 게 편하다며 이십년 넘게 노인 아파트에 살던 할머니가 양로 병원으로 들어 온지 열 달이 지났다. 삼년 전 허리에 금이 가는 사고를 당한 뒤로 식구들은 늘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아파트로 음식을 해 나르며 안부를 챙겼지만 할머니의 안전은 늘 걱정거리였다. 결국 외부인의 도움이 필요 없다던 할머니의 오랜 고집을 내가 강제로 꺾었다. ‘구십 다섯 살 노인이 혼자 살다가 또 사고가 나면 그때는 아파트에서 쫓겨나게 된다 ’는 나의 협박에 일주일에 삼일씩 도우미가 오는 것을 간신히 허락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할머니의 몸과 정신이 급격히 약해져 가는 게 확연히 느껴졌다. 하지만 아직은 혼자 살아 갈만큼 건강하다고 믿는 할머니의 자부심은 여전했다.  

 

  할머니가 살던 아파트 길 건너에 성 마리아라는 큰 병원이 있었다. 소파에 앉아 창문을 바라보면 병원 벽에 붙어있는 빨간색의 큰 십자가가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였다. 할머니는 하루 종일 십자가를 바라볼 수 있는 방에 살게 된 걸 큰 복으로 생각했다. 모든 노인들의 바람인 잠자듯이 죽는 것, 할머니 소원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우리 할머니는 꼭 그리 되실 거라고 믿었다. 욕심 없고 절제된 생활 습관으로 치매도 걸리지 않을 것이고 양로병원 같은데 가서 말도 통하지 않는 생면부지의 외국인들에게 몸을 맡기는 일 따위는 절대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할머니의 원대로 십자가가 정면으로 바라보이는 그 아파트에서 편안하게 돌아가실 거라는 생각만 품고 있었다. 하지만 할머니는 점점 쇠약해져 갔다. 

 

  이제는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할머니 원대로 혼자 살아 봤으니 이제 그만 식구들이랑 함께 살아요. 아니면 내가 여기 와서 같이 살까? 이제 더 이상 할머니 혼자 여기서 살기 힘들잖아요.” 하는 나에게 “그러면 차라리 양로원으로 가자. 괜찮아. 다들 그렇게 하는데..” 하며 담담히 양로병원을 택했다. 할머니의 선선한 결정에 깜짝 놀라고 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마음은 아리고 미안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게 보였지만 얼마나 어려운 결단이었을까. 할머니는 곧 우리 집과 가까운 양로병원으로 서둘러 거처를 옮겼다. 다행히 식구들의 우려와는 달리 할머니는 낯선 병원생활에 잘 적응해 나갔다. 

 

  지난 설날에 의사의 허락을 받은 할머니는 모처럼 아들네 집으로 외출을 나왔다. 전보다 더욱 보행이 힘들어진 할머니는 지팡이와 내 팔을 의지해 한 발자국씩 내 딛을 때마다 어머니, 어머니...를 신음처럼 쏟아냈다. 할머니의 입에서 처음 듣는 어머니라는 소리, 그것은 알 수없는 충격으로 내 마음을 둥둥 울려 대었다. 약해 질대로 약해진 몸이지만 강화 대지주의 맏며느리로서 위엄 있던 할머니의 모습이라고는 전혀 생각할 수 없었다. 마치 잃어버린 어머니를 애타게 찾는 어린 소녀의 간절한 애원처럼 들렸다. 육신이 약해진 할머니는 정말 어린아이로 돌아가 자신의 어머니를 부르고 있는 건 아닐까. 내 팔을 의지한 채 연신 어머니를 부르는 할머니의 떨리는 음성에 나는 마음이 아렸다. 그날 저녁 몇 시간의 외출에 녹초가 된 할머니는 병원 침대로 돌아와 눕자마자 또 그 어머니, 어머니를 자꾸 불렀다. 

 

  옷장 정리를 하고 있는 내 등 뒤로 할머니의 작은 웅얼거림이 들려 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어머니가 아니라 엄마, 엄마 했다. 그것은 지난번 할머니가 어머니, 어머니 했을 때 보다 더 큰 충격이었다. 아주 순간적인 깨달음으로 할머니의 몸이 더욱 쇠약해졌다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할머니의 음성이 어머니를 부를 때처럼 애절하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고저 없이 단조롭게 부르는 엄마, 엄마가 나와 할머니의 사이를 아득히 멀어지게 하는 것만 같았다.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침대 위의 할머니가 마치 강기슭을 돌아가는 나룻배처럼 아득해 보였다.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내 시야속의 할머니는 바쁘지도, 서두르지도 않는 음절로 연해 엄마를 부른다. 길손을 부리고 돌아가는 뱃사공의 노래처럼 아무 걱정 없이 엄마를 그렇게 부른다. 나는 가만히 팔을 뻗어 할머니의 손을 꼬옥 잡는다. 할머니의 손은 여전히 따듯하다.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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