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웨이 단상

2018.06.13 05:14

김향미 조회 수:186

 

                           

                                 프리웨이 단상

                                                            


  오늘 아침도 엘에이로 향하는 5번 프리웨이는  많은 차량이 밀리며 가다서다를 반복한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봄 음악이 경쾌하다. 음악 따라 기분도 상쾌해진다. 여유로이 주변의 차들을 두리번거리는데 옆 차선의 젊은 남녀가 눈에 띄었다. 운전석에 앉은 짧은 머리의 백인남자에게 옆자리의 동양 여자가 환한 얼굴로 재잘 거린다. 무슨 재미난 이야기 길래 저리도 얼굴이 밝을까. 한 눈에 보아도 연인이거나 아니면 갓 결혼한 신혼 커플이 분명하다. 나도 저렇게 푸르고 아름다운 시절이 있었다는 생각에 잠시 가슴이 부풀어 오른다.

 

  사십여 년 전 미국으로 이민 올 때 같은 반 친구들이 환송 편지를 써 모아 예쁜 책을 만들어 줬다. 그 안에는 ‘미국가도 꼭 한국인과 결혼해야 되.’ 라는 당부 편지가 많았다. 몇 친구는 ‘국제결혼 결사반대!!’ 라며 구호처럼 여러 번 반복해서 써 넣은 친구도 있었다. 여고 이학년생이던 친구들은 내가 미국에 가면 분명히 눈이 파란 백인과 결혼하게 될 거라는 걱정을 한 것 같다.  

 

  이민 오기 전 나는 외국인을 많이 볼 수 있는 이태원에서 살았다. 아버지의 사업 때문에 간혹 우리 집까지 찾아오는 멋진 미국인도 있었다. 하지만 동네에서 가끔씩 보게 되는 국제 결혼한 한국여자들의 모습은 내 눈에 부정적으로 비쳤다. 그래서일까 결혼은 같은 언어를 쓰고 문화와 음식을 이해할 수 있는 동일 민족끼리 해야 하는 거라는 생각이 굳어져 갔다. 

 

  나는 다행히 한국인이 많은 남가주에 살게 됐고 친구들의 당부대로 한국 남자와 결혼을 했다. 그리고 두 아이를 낳았다. 나는 내 자식들이 어린 나이일 때부터  ‘너희는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한국인이니까 꼭 한국 사람과 결혼해야 되는거야’라고 교육 시키는 엄마가 되었다. 

 

  아들아이가 2,3학년쯤의 일이다. 녀석은 뜬금없이 왜 한국여자와 결혼을 해야만 하는 거냐고 물었다. 조금 당황했지만 나는 아이에게 “ 네가 외국여자와 결혼하면 엄마가 영어로 말해야 하쟎아. 그러면 영어를 잘 못하는 엄마랑 친해지기 힘들겠지? 그래서 한국여자와 결혼하라는 거야 ”라고 쉽게 말해 주었다. 아들 녀석은 씩 웃더니 “엄마, 그럼 미국여자애가 한국말 배워오면 결혼할 수 있네” 한다. 내가 대꾸할 겨를도 없이 활짝 웃으며 뛰어 나가던 아들의 모습이 오랫동안 불쑥불쑥 기억나곤 했었다. 어쩌면  그때 아이의 작은 가슴에 예쁜 금발머리 여자아이가 들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이가 자라 고등학생이 되어 학교에서 주최하는 댄스파티에 가게 되었다. 아들의 첫 댄스파티 파트너는 금발도 아니고 한국아이도 아니었다. 얼굴이 까무잡잡하고 키도 자그마한 베트남계 여학생이었다. 녀석은 엄마가 분명히 반대할거라고 짐작했나보았다. 힐끔힐끔 내 눈치를 보며 ‘그 애는 크리스챤이고, 일을 많이 하는 제 엄마를 대신해서 동생들을 보살피는 착한아이‘ 란다. 내가 뭐라고 말할 새도 없이 그 여자애의 좋은 점만 찾아 애써 설명했다. 나는 뭔지 모를 아쉬움이 목구멍을 타고 올라왔지만 꾹꾹 참아내며 마지못해 오케이했다. 엄마에게 허락을 받으려고 애쓰는 모습이 조금은 위안이 되는 것도 같았다. 

 

  허락을 받은 아이는 신바람이 나서 프로포즈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고등학생 댄스파티가 뭐 그리 대단한지 순서와 절차가 제법 복잡하다. 밤을 새워가며 파트너가 되 주기를 청하는 멋진 포스터를 만들어 보여 주기까지 했다. 선물과 꽃다발도 준비해야 한단다. 마치 애인에게 청혼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거창했다. 하지만 아들의 신바람 난 모습에 비해 나의 마음은 구름 낀 하늘이었다. 또래의 한국여자아이가 주변에 드물기도 했지만 ‘하필이면 베트남 아이야’ 라는 차마 내뱉지 못한 말이 입안에 맴돌았다. 하지만 내안에 숨어있는 인종차별적인 속내를 아들에게 들키고 싶지는 않았다. 속은 탔지만 겉은 근사한 엄마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직접 꽃을 사서 멋진 리본을 곁들인 꽃다발을 정성들여 만들어주며  ‘진짜남자는  자기 파트너가 여왕이 된 기분이 들도록 잘 보살펴 줘야 되는 거’라며 멋진 멘트까지 곁들어 주었다. 비록 맘은 편치 않다 해도 교육은 제대로 시켜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감동받은 얼굴로 엄지손가락까지 추켜 보이는 아들 앞에서 난 비로소 근사한 엄마가 될 수 있었다. 속으로는 ‘그래, 댄스파티쯤이야, 결혼을 하겠다는 것도 아닌데 뭐’ 라고 위로하며. 

 

  미국에서 타인종과 어울려 살아 온지 강산이 네 번쯤이나 변했다. 유형무형의 변화 속에서도  결코 바뀌지 않는 몇 가지가 나에게 있다. 한국인은 한국인과 결혼해야 한다는 생각도 그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며 그런 나의 신념에도 변화가 인다. 사람이 한세상을 살아가는데 가장 필요한 것이 정말 무엇인지 나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묻곤 한다. 참된 사랑으로 서로의 부족한 점을 메꾸어 주고 보듬으며 조금 흔들리더라도 먼 길을 함께 갈 수 있다면, 인종을 구분한다는 것은 사치에 불과한 것이겠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변하게 했을까. 자식들이 제짝을 찾아 어미의 품을 떠나갈 나이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해안이 열리나 보다. 버리지 못하고 움켜잡았던 많은 것들이 참으로 부질없이 변하고 사라져가고 있다. 내 영혼에 수 백 겹이나 둘려 쳐졌던 거미줄이 한 올씩 풀려져 나가는 것만 같다.

 

  차창을 살짝 내린다. 초봄의 싱그러운 바람이 훅 들어온다. 좀 전에 보았던 두 젊은 남녀의 차가 어느새 저만치 앞서 간다. 속도가 조금 빨라진다. 길이 좀 뚫렸나보다. 아예 뒷 창문도 내린다. 머리카락이 헝클어지며 바람에 날린다. 라디오의 볼륨을 높인다. 나는 정면을 똑바로 응시하며 핸들을 단단히 움켜쥐었다.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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