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잎 클로버
2007.12.30 14:09
네 잎 클로버
여기, 한 번도 들쳐보지않은 그리 두껍지 않은 문고판 수필집이 한 권 놓여있다.
그것을 집어든다.
오늘은 사랑하는 여인도 곁에 없고 밖에는 온 종일 눈이 내리고 집안은 열길 물속보다
더 고요하다. 글을 읽기 시작한다. 읽다가는 잠시 멈추고 책의 가장자리가 엷게
빛 바래가는 것을 바라보기도하고 책장을 펼칠 때마다 스며나오는 무어라 말할 수없는,
어쩌면 게피향같은 아슴아슴한 냄새을 맏는다. 그 냄새가 글 만큼이나 좋다.
책을 읽기전에 올려놓은 주전자의 뚜껑이 이따금 달삭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를 들으며 그대로 책을 읽어 내려간다.
책의 중간을 지나 다음 장을 여는데 클로버 하나가 툭- 무릎위로 떨어진다.
네 잎 클로버다.
들여다보니 책 갈피속에는 네 잎 클로버가 세개나 더 끼어있다. 나는 무릎위로
떨어진 것을 조심스럽게 집어들고 책과 함께 식탁으로 갖어온다. 그리고는
책 갈피에 끼어있는 것들도 꺼내어 식탁 유리위에 가지런히 놓고는 들여다 본다.
어느 한 잎 한 줄기도 접혀지거나 바스러지지않은 온전한 모습이다.
나는 너무 놀랍고 반가워 책 읽는것도 잊어버리고 네 잎 클로버만 들여다 본다.
까마득하게 잊고있는, 아니, 이제는 가물한 기억속에서 조차 잊혀져 기억도 기억하지
못하는 내 유년의 네 잎 클로버.
동네 아이들을 따라 들판으로 네 잎 클로버를 따러 나갔다. 너무 어려 안됀다는 것을
이웃집 누나가 한 손 꼬옥 잡고 데려갔다. 여기저기 흩어져 하루종일 놀다가 배가고파
뒤돌아 보았을 때 아이들도 안 보이고 누나도 안 보이고 혼자 엉엉 울면서 집 찾아
오면서도 놓지 않고 들고 온 네 잎 클로버. 동네 어귀에 들어 섰을 때 잎들은 어디
론가 다 날라가 버리고 손 안에는 뭉그러진 줄기만 남아있던 네 잎 클로버.
그날 누나는 누나대로 혼나고 나는 나대로 무섭게 혼나고 그리고는 두 번 다시 네 잎
클로버는 찾으러 가지 않았지.
" 네 잎 클로버 찾았어? 땄어? "
" 응, 그런데 날라갔어. 누나 주려고 했는데 다 날라갔어."
뭉그러진 줄기를 받아들고 미안해하며 얼굴 쓰다듬어주던 이웃집 누나.
누나에게 주려던 그 네 잎 클로버. 기억 밖으로 멀리 날라간 그 네 잎 클로버를
누가 이 책속에 끼워 놓았을까.
그리고보니 이 책을 산 기억이 없다. 내가 산 책은 아무리 오래되고 한번도 펼쳐보지
않았어도 잊지않고 기억한다. 언제 어디에서 산 것까지도 기억한다. 누구에게 선물
받거나 얻어온 것이거나 빌려와 돌려주지 않은 것도 낱낱이 기억한다. 그런데 이 책은
전혀 기억이 안난다. 다른건 몰라도 책에 관한 기억력은 남 다른데 이 책은 안 그렇다.
참 이상하다.
차를 마시며 밖을 내다본다. 눈이 점점 쌓이고 있다. 흩날리는 눈속으로 네개의 네 잎
클로버가 다가선다.
나는 얼른 외투를 걸치고나와 차에 시동을 건다. 달리는 차창으로 주먹만한 눈송이가
떨어진다.
액자를 고르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소비했다.
바깥 큰 테두리는 검고, 가는 안 테두리는 회색이다. 액자의 뒤를 열고 유리를 깨끗이
닦은 다음 네 잎 클로버를 놓는다. 어떻게 놓아야 할지 잠시 망서린다. 이럴 때 사랑하는
그녀가 곁에 있으면 좋을것을. 잎을 들어 이리저리 놓는데 그만 잎 하나가 떨어진다.
저런, 저런, 나는 어쩔줄 몰라 당황해하며 손을 놓고는 떨어진 잎을 바라본다.
아, 잎은 또 날라가 버릴려나 보다. 내가 당황해 하는사이 잎들은 하나 둘 모두 어린
시절 그 들판으로 날라가고 줄기도 날라가고 빈 액자만 덩그런히 앞에 보인다.
나는 얼른 액자의 뒷 커버를 덮고는 작은 잠금쇄를 꼭꼭 채운다.
책속에 오랫동안 숨어있던 네 잎 클로버가 오늘 내 서재에서 다시 피어난다. 다시
피어나 나를 들판으로 내 달리게 한다. 물론 그녀에게는 비밀이다.
사랑하는 여인은 사랑하는 남자의 코흘리개 추억속의 여인에게도 질투하는 법이니까.
책에대한 기억은 덮어두기로 한다. "아하, 어쩌면 그 시인의? "하며 떠오르는 생각도
무시하고 아예 잊기로 한다. 나의 책은 분명 아니고 누구의 책은 더더구나 아닌, 아주
오래전부터 제 혼자 내 곁에 있어온, 그 책속에서 설편(雪片)과 함께 활짝 열어논 창문으로 날라들어 온 네 잎 클로버만을 생각하기로 한다.
여기, 한 번도 들쳐보지않은 그리 두껍지 않은 문고판 수필집이 한 권 놓여있다.
그것을 집어든다.
오늘은 사랑하는 여인도 곁에 없고 밖에는 온 종일 눈이 내리고 집안은 열길 물속보다
더 고요하다. 글을 읽기 시작한다. 읽다가는 잠시 멈추고 책의 가장자리가 엷게
빛 바래가는 것을 바라보기도하고 책장을 펼칠 때마다 스며나오는 무어라 말할 수없는,
어쩌면 게피향같은 아슴아슴한 냄새을 맏는다. 그 냄새가 글 만큼이나 좋다.
책을 읽기전에 올려놓은 주전자의 뚜껑이 이따금 달삭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를 들으며 그대로 책을 읽어 내려간다.
책의 중간을 지나 다음 장을 여는데 클로버 하나가 툭- 무릎위로 떨어진다.
네 잎 클로버다.
들여다보니 책 갈피속에는 네 잎 클로버가 세개나 더 끼어있다. 나는 무릎위로
떨어진 것을 조심스럽게 집어들고 책과 함께 식탁으로 갖어온다. 그리고는
책 갈피에 끼어있는 것들도 꺼내어 식탁 유리위에 가지런히 놓고는 들여다 본다.
어느 한 잎 한 줄기도 접혀지거나 바스러지지않은 온전한 모습이다.
나는 너무 놀랍고 반가워 책 읽는것도 잊어버리고 네 잎 클로버만 들여다 본다.
까마득하게 잊고있는, 아니, 이제는 가물한 기억속에서 조차 잊혀져 기억도 기억하지
못하는 내 유년의 네 잎 클로버.
동네 아이들을 따라 들판으로 네 잎 클로버를 따러 나갔다. 너무 어려 안됀다는 것을
이웃집 누나가 한 손 꼬옥 잡고 데려갔다. 여기저기 흩어져 하루종일 놀다가 배가고파
뒤돌아 보았을 때 아이들도 안 보이고 누나도 안 보이고 혼자 엉엉 울면서 집 찾아
오면서도 놓지 않고 들고 온 네 잎 클로버. 동네 어귀에 들어 섰을 때 잎들은 어디
론가 다 날라가 버리고 손 안에는 뭉그러진 줄기만 남아있던 네 잎 클로버.
그날 누나는 누나대로 혼나고 나는 나대로 무섭게 혼나고 그리고는 두 번 다시 네 잎
클로버는 찾으러 가지 않았지.
" 네 잎 클로버 찾았어? 땄어? "
" 응, 그런데 날라갔어. 누나 주려고 했는데 다 날라갔어."
뭉그러진 줄기를 받아들고 미안해하며 얼굴 쓰다듬어주던 이웃집 누나.
누나에게 주려던 그 네 잎 클로버. 기억 밖으로 멀리 날라간 그 네 잎 클로버를
누가 이 책속에 끼워 놓았을까.
그리고보니 이 책을 산 기억이 없다. 내가 산 책은 아무리 오래되고 한번도 펼쳐보지
않았어도 잊지않고 기억한다. 언제 어디에서 산 것까지도 기억한다. 누구에게 선물
받거나 얻어온 것이거나 빌려와 돌려주지 않은 것도 낱낱이 기억한다. 그런데 이 책은
전혀 기억이 안난다. 다른건 몰라도 책에 관한 기억력은 남 다른데 이 책은 안 그렇다.
참 이상하다.
차를 마시며 밖을 내다본다. 눈이 점점 쌓이고 있다. 흩날리는 눈속으로 네개의 네 잎
클로버가 다가선다.
나는 얼른 외투를 걸치고나와 차에 시동을 건다. 달리는 차창으로 주먹만한 눈송이가
떨어진다.
액자를 고르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소비했다.
바깥 큰 테두리는 검고, 가는 안 테두리는 회색이다. 액자의 뒤를 열고 유리를 깨끗이
닦은 다음 네 잎 클로버를 놓는다. 어떻게 놓아야 할지 잠시 망서린다. 이럴 때 사랑하는
그녀가 곁에 있으면 좋을것을. 잎을 들어 이리저리 놓는데 그만 잎 하나가 떨어진다.
저런, 저런, 나는 어쩔줄 몰라 당황해하며 손을 놓고는 떨어진 잎을 바라본다.
아, 잎은 또 날라가 버릴려나 보다. 내가 당황해 하는사이 잎들은 하나 둘 모두 어린
시절 그 들판으로 날라가고 줄기도 날라가고 빈 액자만 덩그런히 앞에 보인다.
나는 얼른 액자의 뒷 커버를 덮고는 작은 잠금쇄를 꼭꼭 채운다.
책속에 오랫동안 숨어있던 네 잎 클로버가 오늘 내 서재에서 다시 피어난다. 다시
피어나 나를 들판으로 내 달리게 한다. 물론 그녀에게는 비밀이다.
사랑하는 여인은 사랑하는 남자의 코흘리개 추억속의 여인에게도 질투하는 법이니까.
책에대한 기억은 덮어두기로 한다. "아하, 어쩌면 그 시인의? "하며 떠오르는 생각도
무시하고 아예 잊기로 한다. 나의 책은 분명 아니고 누구의 책은 더더구나 아닌, 아주
오래전부터 제 혼자 내 곁에 있어온, 그 책속에서 설편(雪片)과 함께 활짝 열어논 창문으로 날라들어 온 네 잎 클로버만을 생각하기로 한다.
댓글 0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 | 네 잎 클로버 | 이윤홍 | 2007.12.30 | 872 |
221 | 물방울 하나 | 이윤홍 | 2007.11.21 | 779 |
220 | 삼월 -2- | 이윤홍 | 2008.02.26 | 665 |
219 | 할머니의 십자가, 성당 찾아가는 길 | 이윤홍 | 2007.03.13 | 807 |
218 | 3월, 한 해의 첫 달 | 이윤홍 | 2007.03.13 | 685 |
217 | 그리움의 문제 | 이윤홍 | 2007.02.25 | 549 |
216 | 고요함이 나를 일으켜 세운다 | 이윤홍 | 2008.03.17 | 960 |
215 | 야외미사 | 이윤홍 | 2008.02.14 | 581 |
214 | 나의 사제, 부르노 | 이윤홍 | 2007.02.14 | 470 |
213 | 폐광촌 | 이윤홍 | 2008.02.14 | 641 |
212 | 꽃밭에서 | 이윤홍 | 2007.02.10 | 563 |
211 | 2월, 짧아서 더 소중한 | 이윤홍 | 2007.02.10 | 459 |
210 | 그냥 사랑이면 어때 | 이윤홍 | 2007.02.09 | 287 |
209 | 사제司祭의 방 | 이윤홍 | 2007.02.09 | 293 |
208 | 생명 | 이윤홍 | 2007.02.03 | 305 |
207 | 새해 | 이윤홍 | 2007.02.03 | 264 |
206 | 잡초 | 이윤홍 | 2007.02.03 | 217 |
205 | 희망 | 이윤홍 | 2007.02.03 | 198 |
204 | 흔적 | 이윤홍 | 2007.02.03 | 173 |
203 | 흔들리는 것이 어디 나뭇잎들 뿐이랴 | 이윤홍 | 2007.02.03 | 2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