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시학(詩學) 2-정용진 시인

 

해몽(海夢) 전봉준(全奉準)녹두장군은 조선말 동학혁명의 지도자로 1854년 철종 5년에 전북 태인에서 태어났다. 고부군수 조병갑의 탐학에 항거하여 죽창을 손에 들고 보국안민(輔國安民) 제폭구민(除暴救民) 과 진멸권귀(盡滅權貴) 축멸왜이(逐滅倭夷)의기치아래 시호시호 불재래(時好時好 不再來)를 외치면서 농민혁명을 주도하였다.

고려시대 만적의 난 이후 민중의 봉기로서는 혁명적 거사였다. 그는 키가 너무 작아 별명이 녹두였고 왜군은 푸른색 군복을 입어서

 

새야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간다

새야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은새야

녹두꽃이 떨어지면 부지깽이 매맞는다

새야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은새야

아버지의 넋새보오 엄마죽은 넋이외다

새야새야 파랑새야 너는어이 널라왔니

솔잎댓닢 푸릇푸릇 봄철인가 널라왔지.

 

라는 민요가 가난에 찌들고 권세에 억눌려 가슴이 답답한 민중의 입에서 입으로 불려 져왔다.

그는 부하 김경천의 밀고로 왜군에 잡혀 서울로 압송되어 처형되었다. 그러나 지금도 그를 칭송하는 파랑새는 민중의 가슴속에 살아 푸르다.

 

매천(梅泉황현(黃玹(1855-1910)선생은 조선말에 올곧은 우국지사다. 자는 운경(雲卿본은 장수(長水 전남 광양 출신이다. 시문에 능하여 1885 (고종22생원시에 장원 하였으나 시국의 혼란함을 개탄하여 향리에 은거 하였다.1910 (융희일제의 강압으로 조국이 일본과 합방되자 국치를 통분하여 절명시 4편을 남기고 음독 순국하였다. 

조국이 이런 선열들의 목숨을 바친 음덕으로 독립이 되었는데 일제의 갖은 아양과 간교로 일신을 평안히 누리던 자들이 통치를 하였으니 참으로 슬픈 일이 아닐  없다

요사스런 기운에 가리어 임금별 자리를 옮기니

구중궁궐은 침침해져 햇살도 더디드네

조칙도 인제는 다시 있을  없어

구슬 같은 눈물이 종이 가닥을 모두 적시네

 

 짐승도 슬피 울고 강산도 찡그리네

무궁화  나라가 이젠 망해 버렸어라

가을 등불 아래서  덮고 지난 역사 생각해보니

인간 세상에  아는 사람 노릇 어렵기만 하구나

 

내 일찍이 나라를 버티는 일에 서까래하나 놓은 공도 없었으니 

겨우  이루었을  충을 이루지 못했어라

겨우 윤 곡을 따른 데서 그칠 

진동을  넘어선  부끄럽기만 하여라

어지러운 세상 부대끼면서  머리 되기까지

 번이나 목숨을 버리려 했지만 여지껏 그러지를 못했어라

오늘은 참으로 촛불만 푸른 하늘을 비추네. <매천. 황현

 

일성(一醒이준(李儁열사 1859 함북 북청에서 태어나 고종의 밀지를 받고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가서 활동  순사(殉死하였다. 그는 와세다 대학을 졸업하였다고 과거에도 급제 하였다. 그가 남긴 유시는 없었지만 그의 분사 소식을 듣고 당시 중화민국의 총통인 원세개(元世凱 보낸 만장(輓章 바로 애끓는 시이기에 여기 옮긴다

 

가슴 헤쳐  뿌리니  마음 참됨이여

장한 절개는 천하 사람의 가슴을 울리네

만리의  돌아와도 고국은 어지러워

 나라  충성에 눈물 뿌리네

처자를 두고 어찌 쉬이  감기

랴만나라 위해서는  몸도 버렸네

대의는 당당하여 일월에 걸리고  

구천에서 마땅히 백이숙제와 짝하겠네. <원세개

 

충정공(忠正公민영환(閔泳煥선생은(1861-1905) 한말의 문신이요 순국지사다. 그는 문과에 급제한  예조, 병조, 형조 판서를 역임 하였고 1905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망국의 설움을 달랠  없어 5통의 유서를 남기고 자결하여 고국과 국민을 향한 애국 충정을 보였다

 

! 국치와 민욕이 이에 이르렀으니 우리 민족은 장차 생존경쟁 가운데서 진멸하리라. 대저 살기를 바라는 사람은 반드시 죽고, 죽기를 기약하는 사람은 도리어 삶을 얻나니

제공은 어찌 이것을 알지 못하는고? 영환은 한번 죽음으로 황은에 보답하고 2천만 동포형제에게 사죄하려 하노라. 그러나 영환은 죽어도 죽지 않고 저승에서라도 제공을 기어이 도우리니 동포형제들은 천만  더욱 학문에 힘쓰며 한마음으로 힘을 다하여 우리의 자유 독립을 회복하면 죽은 몸도 마땅히  세상에서 기뻐 웃으리라. ! 조금도 실망하지 말지어다. 우리 대한제국 2천만 동포에게 삼가 이별을 고하노라민영환> 

 

<訣告我大韓帝國二千萬同胞

嗚呼國恥民辱乃至於此我人民將且殄滅於生存競争之中矣夫要生者必死期死者得生諸公豈不諒只泳煥徒以一死仰報皇恩以謝我二千萬同胞兄弟泳煥死而不死期助諸君於九泉之下幸我同胞兄弟千萬億加奮勵堅乃志氣勉其學問決心戮力復我自由獨立即死子當喜笑於冥冥之中矣鳴呼勿少失望<閔泳煥>

 

<마지막으로 우리 대한제국 이천만 동포에게 고함

오호라, 나라의 수치와 백성의 욕됨이 여기까지 이르렀으니, 우리 인민은 장차 생존 경쟁 가운데에서 모두 진멸당하려 하는도다. 대저 살기를 바라는 자는 반드시 죽고 죽기를 각오하는 자는 삶을 얻을 것이니, 여러분이 어찌 헤아리지 못하겠는가? 영환은 다만 한 번 죽음으로써 우러러 임금님의 은혜에 보답하고, 우리 이천만 동포 형제에게 사죄하노라. 영환은 죽되 죽지 아니하고, 구천에서도 여러분을 기필코 돕기를 기약하니, 바라건대 우리 동포 형제들은 억천만배 더욱 기운내어 힘씀으로써 뜻과 기개를 굳건히 하여 그 학문에 힘쓰고, 마음으로 단결하고 힘을 합쳐서 우리의 자유와 독립을 회복한다면, 죽은 자는 마땅히 저 어둡고 어둑한 죽음의 늪에서나마 기뻐 웃으리로다. 오호라, 조금도 실망하지 말라. <민영환>

 

그가 자결한 뒤에 남기고간  묻은 옷과 칼을 마루방에다 봉안했는데 이듬해 1906 7월비로서 그곳을 열고 보았을  마루 틈에서 4줄기 9가지 48잎사귀가 돋은 푸른 대나무가 솟아올라 있었다 한다. 그의 애끓는 우국충정이 고려  포은 정몽주의 선죽교 고사와 함께 우리 민족사의 애국 충절의 표본으로 길이길이 칭송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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