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금진의 원룸생활자

2016.11.12 22:52

정국희 조회 수:179

                       


최금진의 원룸생활자

                                                                                                정국히



 

 

국화 한 뿌리 심을 데 없는 가상의 땅에 전입신고를 하고

라면을 끓여먹다가 쫄깃쫄깃한 혓바닥을 씹는다

파트타임 일용직, 조각난 채 주어진 어느 휴일 아침엔

거울을 보며 낯선 서울 말씨를 연습한다

화분에 심은 쪽파는 독이 올라 눈이 맵고

빛이 안 드는 창문엔 억지로 한강의 수로를 끌어들인다

실업수당도 못 받은 개나리들이 대책 없이 황사 속으로 출근할 때

누런 걸레 같은 목련이 창문을 닦아내느라 팔목이 홀쭉하다

우리 내일도 만나세, 경로당 노인들은 녹슨 철사 같은 몸으로

오늘의 악수를 내일의 화투짝에까지 잡아보지만

경제적 가치가 없는 것은 사회복지사의 일일 뿐

저녁이면 강에 나가 돌을 던진다

돌멩이가 날아가 떨어지는 지점마다

정신 착란의 야경 불빛들이 벌떡벌떡 일어나 앉는다

정부의 면죄부가 가끔은 공짜 쿠폰처럼 발행되어도 좋을 텐데

투명한 유리컵에 양파를 심으면

이렇게 독거노인으로 살다 죽을 것 같은 노후가

가느다란 실뿌리처럼 아래로 자라는 걸 본다

땅속으론 지하철이 무덤 같은 터널을 돌아다니고

휴대폰에 뜨는 대출 메시지를 지우다가 모르고 자신까지 지운다

종로에 사과나무를 심자고 노래했던 가수는 곧 환갑이고

사과 한 알씩을 모두에게 나눠준다면 그는 시장이 될 것이다

오래 묵은 기침은 구겨진 빨래처럼 방바닥에 쌓이고

희망은 결국 자기암시일 뿐이라는 캄캄한 결론을 베고 누우면

꼭 불 꺼진 성냥개비 같을 것이다, 원룸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 옛날에는 원룸이라는 말 자체가 없었다. 대신에 집이 없는 사람들은 하꼬방 같은 판잣집이라도 있으면 좋겠다고 했고, 그 이전에는 다 쓰러져가는 오두막이라도 있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었다. 전자는 길에서 문을 열면 바로 방으로 연결되는 두 평 남짓한 공간을 말하는 것이고, 후자는 짚으로 지붕을 이운 움막 같은 흙담집을 말하는 거다. 이를테면, 등을 대고 누울 수 있는 내 방이면 코인로커 같은 곳이라도 마음이 편하다는 집에 대한 집 없는 사람들의 한탄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원룸 생활자를 읽으면서 백석의 남신의주 유동 박시공방을 떠올렸다. 비록 다른 시대의 다른 공간이지만 시의 흐름은 똑같다는 것을 느꼈다. 다만 백석은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면서 현재의 처지를 한탄하는 반면, 원룸생활자는 최소한으로 축소하여 지은 초간단 공간에서 생활하며 불안전한 사회구조 속의 암담한 미래를 나타냈다고 하겠다. 이를테면, 이 두 시가 가지고 있는 공통의 위치가 다 삶의 장소이며 생명을 유지해 가야 하는 다소 암울한 신세한탄적인 장소임에는 틀림없다. 여기에는 70여년의 차이가 있지만 독자에게 똑같은 감성으로 읽혀지는 이유는 두 작가의 문학적 상상력이 사실적 경험에 의한 것이기 때문일 게다.


원룸 생활자는 모든 것이 축소된 작은 공간에서의 일거수일투족을 재미있게 그려낸 작가의 상상력은 참 기발하고 재미있다. 국화 한 뿌리 심을 데 없는 공간은 작은 화분 하나 둘 수 없는 마음의 여유를 나타낸 것일 게다. 작은 공간은 최소생활자를 의미하는 것이고, 또한 이 시의 원룸 생활자는 아직은 젊거나 나이가 들었어도 기반을 잡지 못한, 말하자면 대게는 실패한 인생에 속하는 부류라고 볼 수 있다. ‘거울을 보며 낯선 서울말씨를 연습해야하는 파트타임 일용직 노동자는 더 나은 생활을 위해 고향을 등진 사람이다. 당연히 학연도 지연도 없는 사람이다. 이를테면, 이런 빛도 안 드는 쪽방에서 하루를 산다는 건 하루를 사는 게 아니라 하루를 연명해 간다는 게 오리려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독거노인으로 살다 죽을 것 같다는 표현은 마치 우리 내일도 만나세하며 철사 같은 몸으로 악수하는 노인들에겐 내일이 없는 현실을 나타내는 표현이라 할 수 있겠다.

 

이제 아날로그 시대는 갔다. 무서울 정도로 하이테크가 발전하는 요즘시대는 핵가족은 이미 옛이야기다. 말하자면 초핵가족인 일인가족 시대다. 근래엔 식당까지 일인식당이 나오는 판국이니 집이야 오죽하랴. 마켙에서도 한 사람을 위한 포장용 음식들이 쏟아져 나온다. 인구가 많아지면서 다들 바쁘다 보니 시장도 차에 앉아서 보고, 음식 또한 Drive Through 에서 산다. 렌지에 데워 먹는 것도 귀찮아서 뚜껑만 열고 바로 먹는 시대다. 뭐든지 간편한 게 최고라는 현대인의 시각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이런 편의성의 추구는 현대인의 삶을 앞으로도 계속 변화시킬 것이다.

 

작은 공간의 형상을 통해 공간이 가지고 있는 상상력의 진폭을 잘 드러내주고 있는 원룸 생활자는 도시에 자리 잡게 된 비관적인 삶을 세태적 특성을 살려 약간 풍자스럽게 잘 드러내놓았다. , 시를 통해 궁핍한 현실을 비판하는 입장에서 쓰인 슬프고도 알찬 맹랑한 작품이다.


회원:
2
새 글:
0
등록일:
2015.03.19

오늘:
0
어제:
10
전체:
88,046